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88
287화 악연
무당산은 크고 작은 칠십이 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수상쩍은 무당파 장로가 움직인 경로를 역으로 되짚어간다고 해도 바로 역추적을 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경공을 펼칠 때는 내공으로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경공의 고수라면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몸을 얹고도 태연히 서 있을 수 있으며, 풀잎을 밟아도 꺾어지는 일 없이 걸을 수 있다.
일반적인 추적에서 쓰이는 족적이나 몸을 움직인 흔적을 찾기란 지극히 어렵다.
물론 무림에는 그런 무림인들의 흔적도 찾아내어 추적을 하는 추종술의 전문가들도 존재한다지만, 말 그대로 전문 영역이다.
“이쪽 방향에 걸쳐 있는 봉우리면 대략 여덟 개쯤 되려나?”
졸지에 달빛 아래서 산봉우리를 뒤지고 다니게 생겼다.
밤 산책이라고 하기엔 과하다.
만약 별거 아니면 그야말로 헛고생이다.
하지만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 그만한 거리를 두고 있었음에도 느껴진 피 냄새가 마음에 걸린다.
피 냄새를 풍겼다고 해서 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출출해서 야생동물을 잡아 구워 먹고 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야 속가제자 동기들이랑 데면데면하게 지냈기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따금 삼삼오오 뭉쳐서 산을 타는 일이 있다고 들었다.
야생에서 채집한 약초들로 담근 술을 은밀한 곳에 묻어 놓고, 올가미 같은 함정으로 잡은 토끼 등을 구워 먹으며 즐겼다고 했던가.
이를 알고 있음에도 굳이 발품을 파는 것은 역시나 수상쩍기 때문이다.
만약 젊은 본산제자 서너 명이 함께하는 것이었다면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장로급 인사가 홀로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무래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긴가민가한 마음을 달래며 다섯 개의 봉우리를 훑고 지나가는 가운데, 여섯 번째 봉우리에서 수상쩍은 기운이 느껴졌다.
“저기네.”
산기슭이 만연한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암자 하나가 달빛 속에 어슴푸레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짙은 음영이 엿보이는 암자는 귀신 이야기에 나오는 폐가마냥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음산한 기운이 아니다.
역겨운 느낌.
어두운 건물 위로 붉은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듯하다.
“혈교…….”
혈교와 피 냄새.
두 가지 사실이 이어지자, 저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무당파에서 떨어진 곳에 외로이 세워진 암자의 역할이 무엇일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마치 죄인을 가둬두기 위한 유배지.
이를 떠올리자 나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분노로 피가 달궈지게 만드는 사람.
“가라. 네 건방진 말에 벌을 내리지 않고 그냥 내려보내는 것이 대무당의 마지막 자비인 즉.”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그가 마지막으로 혀를 차던 소리까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지막 자비라…….”
정말 저기에 현도당주가 있다면 나는 어떤 자비를 내리는 것이 좋을까?
“재미있네.”
참기 어려운 감정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이상하게 입가에 웃음이 그려진다.
거울을 보고 확인한 것은 아니나, 분명 그 웃음은 차디찰 것이다.
한결 빨라진 발걸음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암자 앞에 다다랐다.
탁!
선명한 소리를 자아내는 발소리가 고요한 암자 주변을 울린다.
넘쳐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파인지 마지막으로 내디딘 발걸음에 힘이 실린 것이다.
‘상관없겠지.’
암습을 가할 생각이었다면 실수가 맞겠지만, 기척을 죽이고 접근한다는 선택지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면으로 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기다렸다.
“먼저 가시는 것 같더니, 끝까지 지켜보고 계셨던 게요?”
아직 열리지 않은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귓가에 선하던 그 목소리가 맞다.
‘신제현.’
그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암자에 드리워진 것만큼이나 어두운 기운을 두른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벽궁도…….”
말을 잇던 신제현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내가 그를 보고 있듯, 그도 나를 보고 있다.
오랜만에 본 신제현의 모습에 나는 만연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렇죠?”
“……연청운!!”
나찰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 신제현에게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일갈이 터져 나왔다.
당장에라도 나를 찢어 죽이고 싶은 듯 강한 살기가 몰아쳤다.
밤바람을 타고 난폭하게 날뛰는 감정이 피부 위로 닿아왔다.
피비린내와 역겨움이 뒤를 따랐다.
오물마냥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감정을 느끼며 나는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더욱 짙게 그렸다.
추하게 몰락한 자가 눈앞에 있다.
‘짜릿하네.’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가장 큰 복수는 자신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말에 의하면 나는 지금 최고의 복수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복수를 해낸 당사자로서 평가를 하자면, 몰락한 꼴을 같잖은 눈으로 깔아보는 것은 정말로 즐거웠다.
다만, 담백하고 순한 맛이라는 아쉬움이랄까.
다행히 그 이상의 것이 기대가 되었다.
속가제자였을 때 괴롭히던 동기들에 대해 백무호와 이야기를 하며 분노는 시간이 흐르며 사그라들기 마련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니다.
그들에 대한 내 감정은 그 정도로 사소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진짜를 보는 순간 격하게 움직이는 감정은 추스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피 냄새가 역합니다. 몸보신이라도 하셨습니까?”
“닥쳐라!!”
콰각!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기 힘든 모양이다.
몸을 날리기 위해 밟은 문턱이 박살 나며 파편을 뿌린다.
패기가 넘쳐흐르는 야생동물 같다.
힘차게 달려든 신제현이 강맹한 일장을 뻗었다.
“하아…….”
하지만 내가 볼 땐 그저 꼴값이다.
감정을 앞세운 우악스러움만이 있을 뿐이다.
차라리 명광이 나았다.
직선적이면서도 단순한 움직임.
무당파 무공이 상대하기 가장 편한 초식이다.
속가제자들을 관리하기에 가장 급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무당파의 당주를 맡았던 사람이 펼치는 초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다.
그에 맞서 진짜 무당파 무공을 펼친다.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다.
뻗어오는 일장을 피해 한걸음 물러난다.
동시에 추수를 하는 농부의 낫질처럼 손목을 휘두르며 비튼다.
타탓!
손은 부드럽게, 하지만 그 중심은 거목처럼 단단하게.
흔들림 없이 상대의 힘을 측면으로 비껴 흘린다.
“크윽!”
신제현은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허우적댔다.
나라는 목표를 잃고 몸이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나는 힘을 비튼 방향으로 가볍게 등을 떠밀었다.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등을 떠민 내 힘이 더해지니 암자의 벽면에 던져진 신제현의 몸이 낡은 건물의 일각을 무너트렸다.
쿵! 콰르르르!
기울어지는 건물의 지붕이 신제현의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자욱하게 먼지가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폭급합니다. 힘만 앞세우면서 손발이 제멋대로예요. 속가제자들조차 입문할 때 배우는 무당파 무공의 여덟 특징, 팔자진결은 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한때 스스로가 무당파 그 자체였다는 것처럼 지껄였던 그에게 이 말은 무엇보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힐 것이다.
“이따위 것은 무당파 무공이 아닙니다.”
“크윽! 어딜 감히 속가제자 따위가!!!”
콰르르릉!
몸을 뒤덮은 건물 파편을 날려버리며 몸을 일으킨 신제현이 두 눈을 부라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안광은 무당파 무인이라 볼 수 없는 붉은빛을 띠었다.
강맹한 기운을 자랑하는 그 모습이 내 눈에는 무척이나 추해 보였다.
“속가제자 따위라…….”
그렇기에 그가 한 말 역시 너무도 우스웠다.
“그리 당당하신 분께서 혈교의 대법을 받아들였습니까?”
“헉!?”
신제현은 치부를 들킨 사람마냥 흠칫했다.
내가 모른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나쁘지 않다.
더 치욕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신제현 입장에선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보인 꼴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다, 닥쳐라, 이 빌어먹을 둔재 놈아!”
상처 입은 짐승이 으르렁거리며 위협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동정심이 들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쌓여 있는 과거가 너무도 많았다.
‘과거라…….’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꿈이 많을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처음 무당파에 입문했던 순간을. 무당파 제자가 되었던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던 시기를.”
과연 이 사람은 그 시기에도 이렇게 썩어 있었을까?
“시건방지게 훈계질인 게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날의 이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
하지만 그 말들은 끝내 가슴속에 남았다.
‘하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일까.’
무슨 이유가 있었든 간에 이제 와선 모두 추한 변명일 뿐이다.
대다수는 어렵고 힘든 시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간다.
이런 썩은 쓰레기의 사연 따윈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건 당당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무례다.
이런 자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스스로의 꿈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다.
“타협은 남이랑 하는 겁니다. 내 스스로와 타협하는 게 추한 짓이라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도 아는 일이에요.”
“추하다?”
“남이 나더러 병신이라고 해도 스스로 아님을 자신한다면 무시하고 흘려들을 수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병신 짓을 해버리면 그건 병신이 맞으니까요.”
“……나, 나더러… 병신이라는 거냐?”
“이제야 알아듣는 것을 보면 병신이 확실하네요.”
이보다 더 대놓고 비아냥거릴 수도 없을 것이다.
“어디 한 번 봅시다. 뭘 얻고 싶어서 그런 병신 짓을 했는지.”
아니, 생각해보면 더 긁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번이 신제현을 엿 먹일 마지막 기회가 아니겠는가.
어차피 살려 보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울화통이 터지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슬쩍 몸을 틀며 오른손을 크게 뻗어 손짓을 했다.
“선수는 양보하죠.”
고수가 하수에게 하는 배려다.
다만, 이런 식으로 잘난 척을 동반한다면 강력한 도발(挑發)효과도 있다.
하물며 스스로가 고수라 생각한다면 더더욱.
으드득!
신제현의 얼굴이 딱 내가 바라는 표정이 되었다.
여기서 더 긁을 수 있으려나?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속을 잘 긁는 놈이 누구인지 떠올려봤다.
그 녀석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십 초식 정도는 한 손만 쓸까요?”
“……죽… 인다!!”
효과는 확실했다.
***
밤늦은 시간, 자오경을 지켜보던 장삼풍이 깊이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시작의 순간이라…….”
과거를 말하는 제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자신이 있을 때는 차마 드러내지 못한 마음이 엿보였다.
꿈을 꾸게 해주었던 것도 무당파.
꿈을 산산조각 낸 것도 무당파.
과거는 사라질 수 없으니, 이 기억과 마음은 제자의 마음속에 영원히 머무르리라.
그 무당파의 시조된 사람으로서 장삼풍은 제자에게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쯧! 일기장을 훔쳐본 못난 애비가 된 기분이군.”
남들에게 직접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엿본 기분에 장삼풍은 더욱 속이 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