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먹고 먹히는
남수는 벽궁도장과 만난 이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깐 눈이라도 붙이려 하면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렸다.
그 악몽은 무당파 본산제자들이 쳐들어와 잡혀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지금 남수에게 무당파는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디에도 눈이 달려 있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미치겠네…….”
숨 한 번 쉬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죄짓고 못 산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벽궁도장의 음모를 고발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반란이란 게 혼자 하는 건 아니지. 틀림없이 동조자가 있어. 괜히 섣불리 찔렀다간 나만 뒈지는 거라고.”
남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신은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그 납득 아래에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잘 알았다.
“실패하면 반란이지만, 성공하면 혁명이야.”
반란을 고발하는 것보다, 동참하는 쪽이 더 큰 이득이 된다.
어차피 도박이라면 더 많은 것을 얻는 쪽을 택하는 것이 맞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돼.”
남수는 반란이, 혁명이 성공했을 때의 과실을 떠올리며 고발하고자 하는 갈등을 짓눌렀다.
잘난 본산제자 놈들의 시체를 밟고 승리자가 된 모습을, 비참하게 일그러진 연청운의 원통한 대가리를 발아래 두는 상상만으로도 고발하고자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래,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어. 이게 그 기회야.”
자기 세뇌를 마치고 마음이 편해지자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쓰러지듯 누운 남수는 간만에 단꿈을 이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눈을 떴을 때 남수는 침상 위에 뭔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와…… 이거…….”
상자를 열어 보니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말린 전복이 열 개나 놓여 있었다.
자고 있던 사이 벽궁도장이 다녀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만한 전복이라면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다.
이런 내륙 지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남수도 이 정도 크기는 처음 봤을 정도다.
“오늘이구나.”
바보가 아니더라도 이걸 어떻게 쓰라는 건지는 알 수 있다.
“주방에 가져가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겠어.”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 때문인지 독이 든 느낌은 나지 않는다.
조리를 맡은 녀석도 이런 귀물은 다뤄본 적이 없으니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할 거다.
“명분도 그럴싸하고.”
듣자하니 연청운의 복귀 소식을 들은 속가제자 중 둘이 도망쳤다고 한다.
겁이 나서 잘 보이려고 귀한 물건을 진상하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거다.
“이런 걸 보면 벽궁도장님도 은근히 세심하신 성격이시네. 음!”
앞으로 잘 보여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한 남수는 벽궁도장의 성격을 살폈다.
기름종이에 곱게 포장된 말린 전복을 내려다보는 남수는 지금까지 벌벌 떨었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마냥 평온했다.
***
‘오늘인가?’
일을 벌일 날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장문인을 통해 잡무 쪽 일을 알아본 결과 신제현이 있는 곳에 식량을 배급하는 날이 오늘임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벽궁도장은 신제현을 요긴하게 써먹을 생각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신제현의 움직임에 맞춰 공격을 시작할 것이 틀림없다.
[한 가지 더 짚이는 게 있긴 하다만…… 보면 알겠지]장삼풍 사부가 뭔가 아리송한 말을 꺼내셨지만 캐묻진 않았다.
어쨌거나 내가 할 일은 분명하다.
벽궁도장이 무당파 장문인이 되는 것을 막는다!
무당파 장문인 벽하도장과 허도진인이 살아 있는 한 그럴 일은 없다.
독을 쓰려는 계획을 사전에 차단할 것이니 두 분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이제 둘에게만 밝히면 되겠네.’
제갈세가의 조력을 요청하기 위해 제갈윤재를 보냈는데, 무슨 영문인지 팽철도 함께 동행했다.
현재 객당에 머무는 동료는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 둘뿐이다.
아침식사가 있기 전 장소월 소저까지 불러 자리를 만든 나는 오늘 벌어질 일을 털어놓았다.
“오늘 무당파가 공격당할 겁니다.”
“농담?”
“내 표정이 농담 같냐?”
“네 얼굴은 좀 농담 같지.”
백무호 녀석이 시답잖은 말로 이야기를 흐렸다.
아무래도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연 소협, 예언 능력도 있으신가요?”
“아뇨.”
‘능력‘도’는 뭡니까. 능력‘도’는!’
언제고 한 번 장소월 소저가 생각하는 내 능력들이 뭐가 있는지 진득하게 대화 좀 나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좋은 이야기도 아니니 한 번만 말할 겁니다. 집중해서 들으세요.”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사부님들과 관련된 부분은 가급적 생략했지만, 대강이나마 설명은 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미치겠네. 그래서 화산파를 살펴달라고 했던 거냐?”
백무호의 반응은 거칠었다.
반면 장소월 소저는 입을 꾹 닫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다행히 처음과는 달리 내 이야기를 받아들인 것 같다.
“오늘만큼은 다른 곳 기웃거리지 말고 허도진인께 붙어 있어요.”
“너는 뭐 할 건데?”
백무호가 나와 자신들을 분리했다는 걸 알아듣곤 곧장 항의를 했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어.”
“쳇!”
자신들만 편한 자리로 보내진다고 생각하는 건지 백무호의 표정에 불만이 어렸다.
목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장소월 소저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다.
“무당파라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어. 이곳에서 허도진인의 등을 맡길 수 있는 것은 너뿐이야. 어쩌면 그곳이 사지가 될 수도 있어.”
내 진심이 먹혔는지 백무호의 얼굴에 자리 잡은 불만이 가라앉았다.
“걱정 마세요. 연 소협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게요!”
강한 의지가 담긴 장소월 소저의 말이 마침표를 찍었다.
***
백무호와 헤어진 직후 곧장 무당파 입구인 산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해검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존 무당.
최근 구파에 대한 습격으로 인한 구파 회동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제한이 풀렸지만, 방문자들이 무당파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무기를 걸어둔다는 나무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감회가 새롭냐?]과거 무당파를 떠날 때를 지켜보셨던 장삼풍 사부가 불쑥 말을 걸어오셨다.
“그러네요.”
무당파를 원망하며 떠났던 그때와 달리, 오늘은 이 이름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가만히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피고 있자 산문 안쪽에 나 있는 속가제자들의 숙소와 연결된 길을 통해 급히 달려오는 남수가 보였다.
고급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고 뛰는 것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거네.’
벽궁도장이 입막음까지 하며 준비한 독이 저 안에 있을 것이다.
[일단 지켜봐라.]바로 빼앗아 사전차단할 생각을 했지만, 장삼풍 사부가 만류하셨다.
남수를 미끼로 더 큰 것을 낚아 보자는 의도인 것 같아 일단 조용히 남수의 뒤를 따랐다.
역시나 남수는 무당파의 식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내공으로 청력을 높여 저곳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엿들었다.
***
“남수……였나?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주방을 맡고 있는 무당파 제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이건…… 말린 전복이잖아?”
“크기 보소. 귀물이 따로 없네.”
“와! 이 정도면 영약 아냐?”
상자가 열렸는지 주방이 소란스러워졌다.
전복은 클수록 비싸다. 하물며 내륙 지방에서는 어지간해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귀물이다.
“제가 청운이랑 좀…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가문에 부탁해 준비한 물건입니다.”
“음!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빠르게 이해한 무당파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눈앞의 고급 식재료에 눈이 돌아간 모습이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걱정 마라. 간만에 제대로 솜씨 좀 부려 보마! 청운이도 널 용서 안 하곤 못 배길 요리를 만들어 보마!”
완전히 정신줄을 놓은 모습이다.
지켜보는 내가 다 조급해질 정도다.
“더 지켜봅니까?
[조금만 더.]금방이라도 요리가 시작될 것 같은데, 장삼풍 사부는 아직도 나를 만류하신다.
“급하게 달려온 것 같은데,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
주방에 있던 무당파 제자 중 한 명이 남수를 주방 뒷문 쪽으로 데려갔다.
우득! 와르르르!
사람 목이 부러짐과 동시에 장작더미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별거 아닙니다. 남수 녀석, 얼마나 급한지 가다 장작을 무너트렸네요.”
“어휴! 새끼. 일단 식사 준비 먼저 하고 나중에 치워.”
태연하게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주방에도…….”
[당연히 있겠지. 요리하는 틈틈이 간을 봐야 할 테니까.]허도진인을 노린 독이라면 여간한 게 아닐 것이다.
간자가 없다면 시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 왜 굳이 남수를 이용했는가.
무색무미무취(無色無味無臭)인 무형지독은 사천당가에서도 외부 유출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극독으로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귀물이다.
때문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를 통해 독의 냄새를 가린 것인데, 저만한 크기의 말린 전복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때문에 주방 내에 간자가 있음에도 남수를 이용한 것이다.
남수라면 저런 귀물을 바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 철저하게 이용당한 거네요.”
[신제현도 같다.]“아아…….”
[무당파를 멸문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파는 존속시킨 채 알맹이만 갈아치울 거라 하니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벽궁이란 놈이 굳이 신제현에게 혈교 대법을 베풀어 끌어들이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었을까?]멸문시킬 생각이라면 총력전으로 갈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신제현이 드러나도 별반 문제는 없다.
하지만 멸문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저 화산파처럼 무당파를 분노하게 만든 상태에서 벽궁도장이 장문인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뒤집어쓸 사람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딱이지. 속가제자를 담당했던 전 현도당주이니만큼 남수라는 녀석과도 관계성이 있을 것이고.]“하지만 신제현이 입을 연다면…….”
[제자야, 제자야. 어떻게 입을 연단 말이냐? 우리가 종종 정보를 뽑아줘서 네가 헷갈리나 본데, 원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어…… 음?”
[수뇌부가 독살당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습격이 있는데, 신제현이 갑자기 나타나 혈겁을 일으킨다면 누구나 범인으로 예상을 하겠지. 그때 벽궁이란 놈이 등장해서 신제현을 죽인다면? 곧바로 영웅이 되는 거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한다면 수월하게 장문인 자리에 오를 수 있겠지. 애초에 벽궁이 그 새끼가 장문인 후보였다며. X벌!]장삼풍 사부의 예상은 확실히 납득이 되었다. 딱히 반박할 만한 내용이나 허점을 찾기 어려웠다.
남수는 제거를 당했다.
신제현은 혈겁을 일으킨 뒤 제거한다.
이걸로 벽궁도장의 연관성을 밝혀낼 사람은 사라진다.
벽궁도장이 얼마나 치밀하게 이 계책을 짜낸 것인지 치가 떨렸다.
“이제 막아도 되겠습니까?”
이젠 나서야 한다.
저 식재료가 요리가 되었다간 큰일이다.
그때였다.
‘어?’
막 나서려는 찰나에 주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몰래 주방을 훔쳐보고 있는 다른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문도장?’
공동파 장로가 이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