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98
297화 제갈세가의 힘
오대세가는 가문별로 뚜렷한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무림에는 도검의 무서움을 아는 자는 삼 년을 더 살고, 독과 암기를 조심하는 자는 십 년을 더 산다는 격언이 있다.
그 독과 암기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사천당가다.
남궁세가는 중검을 중심으로 한 패도적인 무공으로 이름이 높았다.
하북팽가는 대대로 천하제일도를 배출해내는 가문이며, 동시에 군문으로 출사한 이들이 상당해 신창이라 불리는 양가, 산동의 악가와 더불어 군에 영향력이 큰 가문이기도 하다.
모용세가는 치우침이 없는 검도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모든 부분을 두루 수련하며 단련한 검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기에 검성의 칭호에 가장 가까운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쟁쟁한 가문들 사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명문가가 있으니 바로 제갈세가다.
제갈세가의 특색을 관통하는 단어는 짜임새다.
논리적으로 완전함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오밀조밀한 기관진식과 진법으로 명성이 높았고, 가문의 무공 역시 합리성을 추구하는 계산적인 면모가 강했다.
물론 무공과 전투가 늘 합리적이지만은 않기에 제갈세가의 성향을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검진.
개개인의 기량을 겨루는 자리라면 제갈세가는 오대세가의 말석도 아슬아슬하지만, 집단전에서 제갈세가를 무시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일대일에서는 필승의 기량 차가 있을지라도 백 대 백의 싸움에서는 필패를 각오해야 할 정도라는 말이 떠돌 정도다.
무당산 아래에서 천하제일살문이라는 흑살대를 상대하는 모습에서 제갈세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흑살대의 일자살수이자 이인자인 흑살 이호의 칼에 검은 강기가 일렁였다.
벼락이 치는 칼의 형상을 따라 뻗어나간 검은 강기가 제갈세가의 검진을 후려쳤다.
“검망(劍網)!”
그에 맞서 제갈세가의 검사들이 검기를 뽑아냈다.
허공을 가득 채운 검기의 다발이 그물처럼 벽을 세웠다.
콰콰콰쾅!
검기 하나하나는 검강에 비할 수가 없지만, 다수의 검기가 층층이 겹을 쌓으니 벼락의 형상을 한 검은 강기도 이를 뚫어내지 못했다.
그 틈을 노려 흑살대 자객들이 비수처럼 틈을 찔러봤지만, 제갈세가의 검진은 어느새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틈을 지워버렸다.
한 사람의 힘은 부족해도 주변이 그 부족함을 채운다.
여전히 단단하게 자리한 제갈세가의 검진을 보며 흑살 이호가 입맛을 다셨다.
“아주 차륜전의 교본이구만? 우리 애들도 좀 배우게 하고 싶을 정도야.”
차륜전의 장점은 끊임없는 이어짐에 있다.
보통 공격을 한 뒤 그 공격을 거두는 찰나가 가장 큰 취약점이 되기 마련이지만, 제대로 된 차륜에는 그 틈새가 없다.
특히 제갈세가의 검진은 어떠한 순간에도 홀로 공격과 방어를 연이어 나가는 경우가 없다.
누군가 움직이면 다른 두어 명이 맞물려 호응한다.
기십 명의 고수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맞물리니 그 자체로도 역동적이며 아름다울 정도다.
“제갈세가의 검진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이거 사람 새끼들이 아니라 아주 톱니바퀴네, 톱니바퀴야.”
“칭찬 고맙구려.”
“칭찬 같냐?”
비아냥과 함께 흑살 이호가 품에서 구슬을 꺼내 땅에 던졌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일었다.
“독무(毒霧)라…….”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신무는 검은 연기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했다.
시야를 가리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검진을 일부나마 붕괴시키려는 목적을 파악한 제갈신무가 즉시 대응했다.
“풍압(風壓)!”
제갈신무의 외침에 이열에 있던 이들이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화악!
바람 찢기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가 말끔하게 밀려났다.
꽤나 유독한 독무였는지 연기에 닿은 초목들이 순식간에 검게 말라비틀어졌다.
그 사이로 은색의 섬광이 그어졌다.
제갈신무의 검 끝에서 만들어진 검사(劍絲)가 순식간에 전방의 공간을 휩쓸고 지나갔다.
제갈세가의 절기로 알려진 칠현무형검.
광범위한 공간을 통째로 휩쓸어버린 절기에 흑살 이호가 재주를 넘으며 미꾸라지처럼 몸을 피했다.
“와아, 씹! 이걸 또 이렇게 파훼하네. 나 참, 더러워서 같이 못 놀겠구만.”
흑살대는 자객답지 않게 정면으로 쳐들어가 모조리 죽이고 나오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살아있는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라는 논리였다.
그 정도로 흑살대의 무위는 뛰어났다.
그런 흑살대의 이인자 위치에 있는 흑살 이호로서도 완벽하게 태세를 갖춘 제갈세가의 검진은 껄끄러운 상대였다.
애당초 자객의 무공이 집단전과는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상성상의 문제점도 있었다.
“순순히 항복한다면 험하게 대하진 않겠네.”
“항복은 개뿔. 그래 봐야 댁도 우릴 어찌 못하는 건 매한가진데.”
흑살 이호가 제갈신무의 권고를 씹으며 코웃음을 쳤다.
“검진의 위력은 짜임새 있게 맞물려 돌아갈 때나 나오는 거지. 검진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기동성을 따라올 수 있겠어?”
기동성 있게 움직이는 흑살 이호를 잡고자 무리하게 치고 나갔다간 검진의 장점인 짜임새가 무너져버린다.
제갈세가가 흑살대를 포위해 퇴로를 끊은 상태로 두들기는 중이라면 모를까, 양측이 대치한 현재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치명타를 넣을 수 없다.
흑살 이호는 비리하게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톱니바퀴 하나만 어그러져도 크게 무너지는 법이지. 어디 톱니바퀴의 내구성이 얼마나 되는지 볼까?”
흑살 이호의 기형도에 다시 한번 검은 강기가 맺혔다.
암형무도(暗形武道).
흑살대 고위 살수만이 익힐 수 있다는 절기가 이빨을 드러냈다.
“입(立)!”
그에 대항하기 위해 제갈신무가 명을 내리자 검진을 구성하는 제갈세가 검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검을 세워 올렸다.
기가 질릴 정도의 일체감을 갖춘 기세가 방벽처럼 세워졌다.
콰아아앙!
***
“독한 새끼… 아니, 또라이 새끼들.”
통솔자를 잃었음에도 흑룡회 무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승산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음에도 몸을 던지는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방어 따윈 내던진 수준으로 달려들었기에 오히려 빨리 정리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마지막까지 목숨을 도외시하며 달려드는 광경은 살벌하기까지 했다.
어지간한 실력 차이는 오히려 압도당해 잡아먹혔을 것이다.
복마검법을 통해 진정한 광기를 체험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우, 지금도 오싹오싹하네.”
[산채로 머리를 뜯어내는 놈이 말은 잘한다.]사부님들은 좀 달리 본 것 같지만.
아무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제갈세가는 아직도 격돌 중인지 무당산 입구 쪽에서 폭음이 끊이질 않았다.
무당산 입구 쪽으로 향하면서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손도끼를 주워들었다.
자고로 배운 건 써먹어 보고 볼 일이다.
그렇게 격전 중인 곳으로 다다르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검진에 맞서는 자가 보였다.
이쯤이면 되겠다 싶은 거리에서 냅다 손도끼를 던지는 순간.
콰아아앙!
벼락처럼 뻗어진 검은 강기가 손도끼를 쪼개며 날아들었다.
“누구 앞에서 습격질이냐!?”
뭔가 습격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이 느껴지는 외침이다.
사파를 대표하는 거대 세력인 제육천 중 암습이나 습격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작자들이 누가 있을까?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긴 했다.
흑살대.
확실히 제갈세가와 격돌하고 있는 자의 차림새가 야밤중에 몰래 싸돌아다니기 좋은 복장이긴 했다.
아무래도 흑살대가 맞는 것 같다.
흑룡회에 이어 흑살대까지. 제육천의 사파 세력들이 연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증좌다.
평화조약은 완전히 날아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짜증 나는 일이다.
구파 내부의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정사간의 평화조약까지 날아갔다.
‘양면전선은 좋을 게 없는데.’
문제는 이 최악의 상황을 피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짜증이 치솟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씁! 일단 한 대 맞자.”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가자 다시 한번 검은 벼락을 닮은 흑색 강기가 뻗어왔다.
콰아아아앙!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강기를 깨부수고 계속 돌진했다.
그렇게 지척에 다다르자 상대가 팔뚝에 차고 있던 소도를 뽑았다.
팔뚝 길이의 소도와 벼락 모양의 기형도를 양손에 쥐고 난도질하듯 휘둘렀다.
상대의 두 손이 수십 개로 늘어난 듯 보였지만, 내 감각에는 어지럽게 난무하는 칼의 궤적이 잡혔다.
탕! 터텅! 타앙!
쳐내고, 튕기고, 흘린다.
무당권으로 흘리고, 천마 사부의 권갑으로 쳐내며, 연금강의 수법으로 튕긴다.
근거리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수십 번의 격돌이 오갔다.
하나같이 강기가 실려 있는 위력적인 공격들이었지만, 모두 막아냈다.
“헐!?”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듯 상대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물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팔뚝에 뜨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실핏줄이 그어진 주먹을 난무하는 궤적 사이로 묵직하게 뻗었다.
쩌엉!
부서진 소도를 놓은 채 상대가 뒤로 물러나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소림? 무당? 뭐야, 이 박쥐 같은 무공은?”
“그따위 안목으로 여태껏 잘도 살아있네?”
거슬리는 입담이다.
짜증을 눌러 내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팔뚝의 작은 상처에서 검은 피가 찌익 뿜어져 나왔다.
독기가 감도는 피, 저자의 칼에 묻어있는 독을 몰아냈다.
“헐! 흑룡회 놈들이 고만고만한 놈들이긴 했어도 미친 또라이들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그놈들이 당할 만했구만. 백마창이 죽은 건 좀 의외긴 했지만.”
“백마창?”
“네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그 대가리. 몰라?”
“이젠 알 것 같네.”
“하하하하! 백마창 하후선엽이 제 이름도 모르는 애송이에 뒈졌단 말이지. 하! 이것 참,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말이지… 하! 것 참.”
파안대소를 하던 상대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내 결정을 내린 듯 침을 퉤 뱉으며 몸을 뒤로 뺐다.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벽궁도장이랑 내응하는 건 물 건너갔네. 그럼 발 빼야지 뭐. 물러난다.”
흑살대 살수들이 기다렸다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거 말실수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살수가 자기 의뢰인을 까발린 거나 마찬가지다.
“살수가 그런 거 까발려도 되냐?”
“응! 의뢰인도 아닐뿐더러, 너네 정파 위선자들끼리 대가리 깨지며 싸우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거든.”
“지랄났네.”
“하하하하! 봐봐, 벌써부터 재미지잖아.”
시원한 웃음과 함께 그자가 훌쩍 거리를 벌렸다.
혀를 차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졌지만, 능운금광보라면 충분히 추격이 가능하다.
“쫓지 말게.”
그때, 제갈세가 선두에 있던 중년인이 나를 만류했다.
“저만한 규모를 동원했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것은 중간에 저들을 돕는 조력자가 있다는 의미일세. 함부로 뒤를 쫓다간 역습을 당할 우려가 크네.”
“그렇겠군요.”
타당한 판단이기에 발을 멈췄다.
기형도의 주인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는 것을 보니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상황이 수습되자 나를 만류했던 중년인이 다가왔다.
“자네가 연합의 구심점인가?”
이름이 아니라 책무를 묻는다.
제갈신무, 제갈세가의 가주가 나를 가늠하는 시선을 보내왔다.
“죄송합니다만, 우선 급한 것부터 해결해야 할 듯합니다. 이야기는 추후에 자리를 마련함이 어떠실는지요?”
“정답이군.”
무례하다면 무례하다 할 행동이지만, 제갈신무에게서는 내 무례를 탓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무작정 흑살대의 뒤를 쫓으려는 내 행동이 못 미더웠기에 시험을 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제갈세가 입장에서는 연합에 몸을 담는 일은 가문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문제다.
그 구심점(?)이 될 내 그릇을 가늠하는 것은 제갈세가의 가주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내 관심은 이미 무당산에 향해 있었다.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으려나.’
일이 완전히 어그러진 벽궁도장의 얼굴이 빨리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