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
2화 누구시라고요?(2)
미친 사람은 환청 같은 것을 듣는다고 한다. 자신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는데 남들은 그걸 듣지 못하니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가 미쳐 날뛰는 거라더라.
[뭐야, 너. 내 말이 들리냐?]그렇다면 정말 지금 내가 미쳐서 환청을 듣고 있는 걸까? 차라리 그편이, 이걸 진짜 장삼풍 조사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것 같다. 적어도 장삼풍 조사님이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예, 잘 들립니다.”
[그래?]“……너무 잘 들려서 곤란할 정도입니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머릿속에 들려오는 이 말을 믿기로.
여전히 머릿속 한구석에는 미진함이 남아 있지만, 차곡차곡 접어 정리해 버렸다.
이게 정말 미쳐서 나오는 목소리라 생각하기엔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 윤시후를 완전히 발라 버린 움직임에 대한 지시라든가.
그 지시는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다.
믿어야 하고.
[꽤나 고민 좀 했나 보네? 아, 내가 이 빌어먹을 곳에서 당하는 갈굼을 못 이기다 드디어 돌아 버렸구나, 뭐 그런 거?]“…….”
새삼 다시 느끼는 부분이지만, 말투 진짜 저렴하시다.
너무 편하게 들려서 곤란하다고 할까. 이 목소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위치 선정이 좀처럼 안 잡히는 느낌이다.
비쭉 솟구치는 웃음 한 자락을 애써 누르며 내 입이 열렸다.
“뭐, 사실 제가 미친 거라고 생각도 해 봤습니다만…….”
[해 봤지만?]“그냥, 미친 것보다는 이 목소리가 정말 조사님인 편이 더 좋잖아요?”
특별한 것과 정상이 아닌 것.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
어찌 보면 좀 뻔뻔한 생각인 것 같지만, 뭐 어때.
어차피 내 안에서 시작해 내 안에서 끝나는 목소리다. 다른 누군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도 아닌 것 같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하하하!]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드셨는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큰 웃음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재미있는 놈이네, 이거?]“조사님도 생각보다 재미있으신 분이시고요.”
[그리 뻣뻣하게 움직이는 게 무슨 태극권이냐. 술 취한 살쾡이 같은 게.]나는 조사님이 내 무공을 보고 답답함을 못 이겨 했던 말들을 상기하며 답했다.
세상에. 직접 듣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 했을 거다. 무당파의 개파조사 장삼풍의 입담이 이렇게 막 나간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그런 모습이기 때문에 이 목소리가 진짜 장삼풍 조사님일 것이라고 믿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래도 넌 나은 편이다. 아마 내가 인간이었을 시절 이런 경험을 했으면 잡귀를 쫓겠다고 종일 신기가 머문 성물에 머리를 박고 있었을걸?]내가 정말 미쳐서 가상의 인격을 만든 거라면 내가 상상한 장삼풍 조사님은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 테니까.
좀 더 위안이 되는 성격으로 만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장삼풍 조사님의 성격이 이런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방향을 달리하니 이런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러자 새삼 장삼풍 조사님이 무림에서 살아 숨 쉴 때의 별호가 떠올랐다.
“장랍탑(張邋遢)(랍탑: 지저분하고 불결하다). 납탑도인.”
격식 따윈 차리지 않은 모습으로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하다는 황제부터 저 아래의 천민들을 차별 없이 대했다는 기인.
확실히 고상이나 떨며 허허거리는 성격이었다면 후대에 그를 칭하는 별호는 많이 달랐을 거다.
[그리운 별호로군.]장랍탑. 납탑도인.
살아생전에 불렸던 별호들.
신선이 되어 천상에 오른 뒤부터는 그리 불린 일이 없었는지, 내가 부른 별호에 머릿속의 목소리는 가득한 그리움을 담아 읊조렸다.
‘그러고 보니, 이분 신선……이지?’
뒤늦게 받아들인 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인지 새삼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삼풍 조사님이 신선이라는 게 다시 체감이 된다.
신선은 신선이구나.
생각이 거기에 닿으니 가장 궁금한 것이 하나 떠올랐다.
아마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봤을 궁금증이다.
“천상은 어떤 곳인가요?”
사후세계.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삼풍 조사님이 현실이라면 사후세계 역시 있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곳은 어떤 모습일…….
[좆같아.]“…….”
……저기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이 저렴함은 대체.
장삼풍 조사님의 품성이야 알고는 있던 부분이지만 이건 좀 세다.
[네가 원한 대답은 뭐 이런 거겠지? 아름답고, 화사하고, 따사롭고, 안빈낙도의 극치를 달리는 도원경.]“예, 뭐…….”
[어, 아니야. 좆같아.]“…….”
[신선이라고 해 봐야 미관말직 신세인데 좋아 봐야 얼마나 좋을라고. 뭐, 짬밥 좀 생기고 아랫놈들 생기고 하다 보면 팔자 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어, 그럼…….”
[그런데 하계가 병신 같이 돌아가니 후임이 없네?]“…….”
뭔가 천상에서 말 못 할 고충이 참 많으신 것 같다.
너무 높은 곳의 이야기라 그런지 체감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신선이신데…….”
[미관말직(微官末職)이라는 뜻 모르냐? 너도 여기 올라와 보면 기가 막힐걸? 천마가 똥지게 메고 똥 푸러 다니고, 달마가 밭 갈고 말 먹이 챙겨준다?]실화냐?
“천마라면…… 그 천마요?”
[그럼 축생 이야기하는 거겠냐?]하늘이 내린 마, 하늘을 뒤덮는 마(天魔).
위대한 마의 시작이라며 마교 애들이 일 년 삼백육십오일 빨아대는 그 천마가?
[화탕지옥에서 엿 같은 애들 똥물로 튀기다가 가끔 술 처마시고 진상 부리러 오는데…… 아오!]“……술친구세요? 천마랑?”
[여긴 원래 그래. 그러니 천상인 것이기도 하고. 하계에 속해 있는 네가 볼 땐 그냥 웃기는 짬뽕처럼 보이겠지만.]“아니, 그 정도면 웃긴다는 범위를 아예 탈주했는데요?”
뭔가 듣지 말아야 할 걸 들은 기분이다.
아는 이름들 갑자기 확 와 닿네, 그거.
“그럼 조사님은…….”
“아니, 아닙니다.”
뭔가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은 기분이 든다.
무지하게 든다!
물어보면 안 될 것 같다.
입 닫자.
[후임이라도 잘 들어오면 여기 생활도 좀 할 만하겠……. 응? 잠깐만.]후임 운운하시며 짜증을 부리시던 장삼풍 조사님이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신다.
[호오? 요놈 보시게?]그리고 묘한 콧소리를 내신다.
뭐지, 이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 같은 목소리는?
[자오경이 뭔 짓으로 천상을 감싸고 있는 봉신대결계를 뚫고 이런 조화를 부리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과율 문제도 알아보고 하려면, 이건 준비가 좀 필요하겠는데?]“예?”
자오경이니, 봉신대결계니, 인과율이니.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아니다. 내일 보자. 흐흐흐.]그렇게 장삼풍 조사님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예, 내일.”
내심 한 가지를 말해 보려던 나는 갑자기 자리를 비워 버리시는 장 삼풍 조사님의 목소리에 살짝 아쉬움을 담아 중얼거렸다.
***
상당히 빡빡한 규율 속에서 살아가는 본산제자와 달리 속가제자들은 비교적 편한 생활을 누리는 편이다.
속세를 벗어난 무당파 안에서 감금(?)된 채 살아가는 신세이긴 하지만 그를 빼곤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아침에 본산제자가 직접 방문해 주도하는 단체 연무에만 참여하면 나머지 시간은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거의 방임주의에 가깝게 풀어 놓는다.
그 외에 굳이 하나를 더 꼽자면 이따금 성취를 확인하자는 취지로 열리는 속가제자들끼리 행하는 비무 정도가 전부다.
처음부터 속가제자를 대하는 방식이 이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쪽에는 귀한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좀 있다 싶은 가문의 둘째나 셋째들.
가문을 이어받을 후계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짐짝처럼 처박아 놓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시켜야겠다며 일단 이런 곳으로 보내는 거다.
다들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탓인지 그런 이들이 속속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맥을 쌓아 나갈 수 있는 자리가 되어주었다.
좀 있다 싶은 가문의 사람들이 다수 모여 있는 이런 곳에서 인맥을 쌓게 되면 그것도 나름 힘이 된다. 인맥만 잘 쌓아놔도 천덕꾸러기 신세는 면한다는 거다.
덤으로 무당파 무공도 익히면서 무당파 속가제자라는 간판도 생기고.
나름 좋게 볼 수 있는 점을 언급하자니, 이런 완벽한 곳이?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이 당연히 나쁜 점도 있다.
윤시후 같은 놈이 생긴다는 거지.
나처럼 나름 무공에 뜻이 있어서 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인맥을 생각해서 온 녀석이라면 아무래도 배경이 있는 녀석과 친하게 지내려고 할 수밖에 없다.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는 입장에서는 나름 사활이 걸린 문제다. 집에서 사람대접받고 싶으면 자기 가치를 만드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내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나를 장난감처럼 여기는 윤시후 놈의 가문은 여러 방면으로 힘 좀 쓰는 집안이다.
그래서 내가 힘들었던 거고.
“분위기가 싸한 이유도 그거겠지.”
왜 너는 윤시후에게 허리를 숙이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은 시선들. 아침에 있는 단체 연무에 참여한 나는 산속 새벽의 찬 공기만큼이나 싸한 분위기를 담은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분위기에 위축되어 겁먹고 벌벌 떨 거였으면 애당초 여기 남아 있지도 않았다.
주변의 싸늘한 시선들이 꽂히는 가운데 나는 보란 듯이 몸을 풀었다.
그런 가운데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턱은 괜찮나?”
어제 윤시후와의 대련을 봐주던 본산제자였다.
도명이 명진이던가?
“예, 뭐.”
쭉 데면데면하게 지내 왔던 사람인데 오늘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명진은 본산제자다. 속가제자들과 처지가 다르다. 굳이 나에 대한 태도를 바꿀 필요가 없는 사람이란 소리다.
그런데 왜?
“갑자기 왜 말을 거냐는 얼굴이군.”
“아마 그렇겠네요.”
솔직히 껄끄럽다.
윤시후가 저렇게 날뛸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당파 본파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방관하기 때문이다. 그런 본산의 운영 정책이 여기 있는 본산제자 한 사람의 책임이라 볼 순 없지만, 감정이 아예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겠지.
굳이 감추지 않고 속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나를 보며 명진이 피식 웃었다.
“윤시후, 그 녀석은 아직 의약방에 있다. 타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럼 당분간은 편하겠네요.”
“당분간은 말이지.”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왜 그가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다.
“윤시후가 다음 대련 때 널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것 같더구나.”
“……각오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윤시후라면 분명 그럴 거다. 그놈 성격이라면 그간 당해 온 게 많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독이 오른 윤시후라면 대련 중 실수했다는 식으로 과하게 손을 쓸 가능성이 크다. 아니,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십 중 십, 무조건이다.
명진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다음 대련이 있을 때까지 병신 되기 싫으면 도망치거나, 마음 단단히 먹고 강해질 생각을 해라’라고.
“어제 펼친 육봉사폐는 훌륭했다.”
아예 가망이 없는 노란 떡잎이라면 이런 말도 안 했겠지만. 아무래도 명진은 내가 윤시후를 상대로 펼친 초식의 대응을 보고 꽤나 장래성을 느꼈던 모양이다. 다시 한번 때려눕혀 보라는 거면 이 양반도 속으로는 윤시후를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기야, 그 망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
“아침 연무를 시작한다!”
용건을 끝내고 연무장 단상으로 향한 명진이 평소처럼 아침 연무를 시작하며 태극권의 기수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모여 있던 속가제자들이 명진을 따라 태극권의 투로를 펼쳤다.
나도 일단 다른 동기들처럼 태극권의 투로를 따라 했지만, 머리에는 다른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윤시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치고 싶진 않아.’
무섭다고 해서 도망칠 생각부터 할 거였으면 진즉에 때려치우고 집에 갔을 거다. 그리고 다른 길을 찾아봤겠지.
나는 싸워야 할 순간에 도망치는 겁쟁이가 아니다.
그저 오기만이 가득한 결심이라면 만용이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결심은 단순한 오기로 택한 선택이 아니었다.
[곤란한 상황인가 보지?]흥미진진하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목소리.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 들려온 그 목소리에 나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런 것 같네요.”
[곤란한 녀석치곤 너무 환하게 웃는 거 아니냐?]묘한 곳에서 꼬투리를 잡으시네.
“제가 별난 놈인가 보죠. 별난 거 안 좋아하세요?”
[하하하하! 그야 완전 좋아하지.]장삼풍 조사님이 머리가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크게 웃으신다. 그리고 그 웃음기를 담은 다음 말이 이어졌다.
[어떻게 해 줄까?]“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럼 무공 좀 배워 볼래?]“예!”
무림사에 가장 깊이 자신의 존재감을 남긴 전설 중 한 명.
무당의 창건자, 납탑도인 장삼풍.
“잘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오늘부터 내 사부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