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0
29화 소림의 요란한 밤(1)
“이거 뭐 하는 놈인 것 같아?”
대뜸 기습을 가해 온 놈이다. 일면식도 없는 놈이 보자마자 칼부터 휘둘렀으니 죽어도 할 말 없는 놈이긴 하다.
“나야 모르지. 누가 피떡을 만들어 놔서.”
백무호가 빈정거렸다.
보란 듯이 자기 뒤통수를 툭툭 치면서.
쪼잔하긴.
농담이나 나눌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걸 몇 대 더 후려갈겨?
“그러고 보니 낮에 혜원 스님이 이런 놈들이 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내 눈빛이 변하는 걸 읽었는지 백무호가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사전에 미리 차단하여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금도 은근히 암수를 걸어오는 족속들이 있다던가?
“사파나 마교?”
[방금 펼치던 상대의 기수식은 소마출격(小魔出擊)이었다. 마교겠구나.]달마 사부가 답을 알려 주셨다.
지난번도 그랬지만, 기습을 당할 때는 좀처럼 알려 주시는 바가 없는데 상황이 끝나고 난 다음엔 이것저것 알려 주시는 것이 많다.
달마 사부라면 진즉에 누가 기습을 가해 올 것이란 걸 알고 계셨을 것 같은데.
알고 계셨으면서도 선뜻 미리 알려 주시지 않은 건 일종의 방침 같은 건가?
아니면 천상의 규율 같은 거?
뭐, 그런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 보긴 했다.
지상이 이렇게 개판이 되어 가고 있는데 실제 존재하는 천상의 위대한 존재들은 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일까?
그런 부분을 생각한다면 저 천상의 위대한 존재들도 어떤 제약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내게 직접적인 훈수를 내리는 것이 그에 위반하는 거라면 앞뒤가 맞다. 장삼풍 사부도 딱 한 번을 제외하곤 직접적인 훈수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나저나 곤란한 일이다.
“마교라…… 별일이네. 숭산이면 놈들 터전인 서쪽과는 거리가 먼 곳인데.”
북쪽과 동쪽은 정파가, 남쪽은 사파가, 서쪽은 마교가 그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지역들이다.
숭산이 있는 하남이라면 차라리 사파 쪽의 움직임이라고 보는 게 더 맞았을 건데, 정체는 생각과 달리 마교란다.
“왜 갑자기 마교로 굳어져?”
백무호도 그게 의아한지 따져 묻는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머릿속에 달마 사부님이 가르쳐 줬다고 하면 정신 차리라고 턱부터 후려갈길 텐데.
선의보다는 보복성 악의를 가득 담아서.
상대가 펼친 무공을 알아봤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결국, 대답할 것은 하나뿐이다.
“감.”
“가암?”
아주 꼬투리 제대로 잡은 말투다.
그런데 지금은 그거 들어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나는 내 직감이 맞다고 확신하거든? 니 직감은 뭐라고 하는데?”
뚜득!
“마교 놈들 예의가 없네.”
손가락 관절을 풀면서 하는 물음에 백무호는 고분고분 동의했다.
그런 거로 치자.
그것보다는 다른 것이 더 급하다. 미약하게 들려오는 칼부림 소리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이거 안 좋은데.”
“응?”
“누가 공격당하는지 알 것 같아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던 백무호가 꺼낸 말이다.
고개를 갸웃하는 내게 백무호가 설명을 이었다.
“소림에 쇳소리 나는 병장기를 챙겨 들고 왔을 이들이 누구겠어?”
소림 무공은 권법과 봉술로 이름이 높다. 어느 쪽이든 날붙이가 달린 무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소림의 영역에서 쇠로 된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면?
“구파의 제자들?”
“공격해 온 게 정말 마교 놈들이라면 딱 입맛에 맞는 표적이겠지.”
나이 어린 제자급 아이들에게 손을 쓰는 것은 무림 선배로서 체면을 구기는 짓이라며 지양하는 일이다.
사파조차도 체면을 앞세우며 이유 없이 손을 쓰진 않는다.
하지만 마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동네는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미친놈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다면 협상도 통하지 않을 거다.
아마도 목적은 하나.
구파 제자들의 몰살.
이번 구파 제자들의 모임은 장소월의 참여로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한다. 그 미래의 동량들이 일거에 몰살되면 정파 입장에서도 타격이 클 거다.
“이거, 잘못되면 진짜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는데.”
막아야 한단 소리다.
하지만 가능할까?
중토신공 일 단공을 이루면서 기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무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잘 봐줘야 젊은 후기지수 중 선두를 달리는 정도?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에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시간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을 정도의 성장 속도이긴 하지만, 당장 칼날이 오가는 전투에서 필요한 것은 현재의 기량이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내 역량만으론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제자급을 노린 거라고는 하나, 숭산을 노리고 움직인 놈들이라면 혜원 스님 정도의 고수가 없을 리 만무하다.
안전한 길을 택한다면 소림으로 달려가 구원을 청하는 일인데, 그사이 구파 제자들과 장소월이 죽으면 백무호 말대로 진짜 전쟁 시작이다.
위험하지만 전쟁을 막는 길이냐, 안전하지만 전쟁이 날 수 있는 길이냐.
‘할 수 있을까?’
마음은 이미 선택을 내렸지만, 이를 이룰 수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해 보거라.]그런 내 머릿속에 달마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직접 훈수를 둘 생각은 없다만, 사부로서 무공을 가르치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이다.]내 의구심을 지우는 말.
[중토신공의 일 단공을 이루었으니, 이제 제대로 쓰는 법을 가르쳐주마.]무엇보다 든든한 말이 등을 떠민다.
“가자.”
더 이상 고민은 필요 없었다.
달마 사부는 불가능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
달마 사부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
의혹이 없어진, 단호한 말에 백무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더 이상 장난기가 보이지 않았다.
“위험한 거 알고 있지?”
“괜찮아.”
적어도 나는 내 역량을 냉정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달마 사부가 해 보라 하시는 이유는 이것이겠지.
중토신공을 제대로 쓰는 법.
그것이 내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라면?
“내가 이겨.”
***
이번 숭산의 구파 후기지수들의 습격을 주도했던 인물, 적홍패는 찌푸린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제자급 어린 것들이라기에 처리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다수인 놈들이 흩어져 도주하면 놓치는 놈이 나올까 싶은 것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단 한 놈도 놓칠 생각이 없었기에 매복을 두는 대비까지 했다.
헌데 이 어린 녀석들이 예상과 다르게 분전하고 있었다.
종남파에서 근래 천재로 이름을 떨치는 윤승환이란 녀석도 그렇고, 무당파의 애송이도 만만치 않았다. 한 놈은 쓰레기였지만 다른 한 놈은 저 윤승환이라는 놈 못지않았다.
기량의 차이가 있어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결판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고수는 사마(邪魔)에서 나고, 늙은 고수는 정파에서 난다는 무림 격언이 이젠 정말 옛날 말이라는 듯 젊은 놈들이 보이는 무위는 상상한 것을 뛰어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지금 적홍패와 검을 맞대고 있는 여아.
장소월.
“그게 장문경의 절정검도(絶頂劍道)인가?”
정‧사‧마를 통틀어 검으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무인 장문경의 여식이다.
천하 모든 검의 장점을 모아 만들었다는 검도.
그런 만큼 높은 기량을 요구한다.
어린 계집이 쓸 무공이 아니다.
자신의 검기를 알아본 것 때문일까.
장소월이 상처가 난 뺨을 튕기며 조용히 웃었다.
여자라면 보통 얼굴에 상처가 났을 때 반응이 있는 법일진대,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다.
태연하게 피를 튕겨 떨쳐내는 모습은 굳건하기만 하다.
여인일지언정 무인이다.
그것도 보통 간덩이가 아닌.
장소월의 입이 홀연 열렸다.
“명공진살(冥空進殺), 맞지요?”
“어떻게?!”
“잊혀진 옛 무공이라 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옛 마도명가의 무공이라. 무슨 연유로 이곳을 노렸는지는 짐작이 갑니다만.”
“닥쳐라.”
적홍패의 검이 움직였다.
어둠 속을 흐르는 검이 소리보다 빠르게 뻗었다.
캉!
장소월의 검이 날카롭게 쳐냈다.
허나 적홍패의 검은 쳐낸 이후로 진가를 발휘했다.
소리가 공명하여 울리듯, 부딪침이 일어나는 순간 파장처럼 검이 흔들리며 장소월을 향해 스며들었다.
조금 전 장소월의 뺨을 벤 검격이 이러했다.
캉!
“알아봤다고 했습니다만.”
“……절정검도!”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 말하듯 장소월의 검격이 흐릿한 존재감을 방패 삼아 움직이는 검의 흐름을 차단했다.
“알아본 이상 지지 않습니다.”
장소월의 검에 장중한 기세가 실렸다.
적홍패는 직감했다.
이 계집을 이기려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걸린다.
“대형! 우측을!”
그런 와중에 수하 한 명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잠시 그쪽으로 눈길을 돌린 적홍패의 몸이 흠칫 경직되었다.
“봉화?”
멀지 않은 하늘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작긴 하지만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다.
단번에 마무리 짓지 못하면 소림의 조력자가 달려올 거다.
“분명 빠져나간 놈은 없거늘!”
“이곳은 숭산입니다. 지척에 누군가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그보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만.”
“길은 열어 주겠다?”
“희생자가 나오는 것보단 낫지요.”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하물며 지금 궁지에 몰린 것은 쥐가 아니라 맹수.
장소월의 말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이가 있었다.
“그딴 결과를 보자고 여기 온 게 아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말이 적홍패를 자극했다.
“모두 잠폭단을 먹어라!”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 적홍패가 그것을 입안에 털어 넣으며 소리쳤다.
잠폭단. 이름만으로도 그 효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그것을 먹은 적홍패의 기세가 달라졌다.
적홍패를 따라 다른 자들도 모두 품에서 단약 하나를 껍질째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한순간에 변한 것을 보며 장소월조차 얼굴을 굳힐 정도였다.
콰앙!
그런 가운데 뭔가가 무시무시한 기세를 품고 적홍패의 등으로 날아들었다.
“쿠엑!”
과히 듣기 좋지 않은 괴성을 곁들여서.
***
구파 제자들을 구하러 가는 쪽을 택했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 봉홧불을 지폈다.
참고로 이건 백무호의 생각이었다.
“산불 나는 거 아니지?”
“땅은 니가 팠잖아.”
산이다. 자칫 잘못하면 산불이 될 수도 있기에 땅을 좀 파낸 웅덩이에 불을 지르긴 했다.
땅은 무식하게 힘이 세진 내가 팠다. 달마 사부가 가르쳐 준 무공을 사용해 시험 삼아 휘둘렀더니 퍽퍽 파였다.
하지만.
“불은 니가 질렀지.”
“인명은 재천이래. 산불이 중요하겠냐?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그 말이 잘 통하길 빈다.”
진짜 산불이라도 나면 일이 잘 풀려도 뒷맛이 안 좋을 테니.
아무튼, 지금은 구파 제자들을 돕는 게 우선이다.
그런 마음으로 힘껏 달리는 내 귓가에 누군가의 빡친 목소리가 들렸다.
“그딴 결과를 보자고 여기 온 게 아니다!”
저곳에 사람 성깔깨나 건드리는 인간이 있는 모양이다.
누구려나?
그것과 별개로 내 몸에는 중토신공이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준비를 갖췄다.
땅 판답시고 몇 번 구사해 본 게 전부인데, 그게 불씨라도 된 듯 활성화된 중토신공이 꿈틀거렸다.
달마 사부가 알려준 이 무공은 엄청났다.
실제로 그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대력금강장이 강한 무공이긴 하나 거친 면모가 없지 않더구나. 그래서 좀 더 깔끔하게 힘을 압축하여 효율적으로 만들어 보았지. 그런데 압축과 효율성을 높이니 무공 자체에 여백이 생기더구나. 그 여백을 채운다고 채워보니 다시 거칠어지고, 다시 압축과 효율을 높이니 여백이 생기고. 그 과정을 일천 번 정도 다듬어 보니 이런 게 나오더란 말이지.]달마 사부는 분명 천상에 오르기 전까지 중토신공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불완전해 보이는 중토신공의 비급이 그 증거다.
그런 중토신공을 제대로 쓰는 법이라며 가르쳐 준 무공이다. 당연히 지상에서 다듬은 무공이 아닐 것이다.
일천 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달마 사부가 천상에서 일천 번을 다듬은 무공.
[극강격(極強挌)이라고 한다.]극강(極強).
더 나아갈 데가 없는 강함.
격(挌).
그 강함으로 친다.
탄생 비화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 이름의 무공은.
퍼어억!
휘이이익!
쿠당탕탕!
진짜 단순무식하게 강했다.
핏덩어리가 되어 날아가는 사람의 형체가 잠깐 적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등을 향해 날아가다 그 앞에 대치하고 있던 사람에게까지 날아갔다.
적으로 보이는 놈에게 날린 것이지만, 그놈이 피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이 노려진 꼴이 되어 버렸다.
장소월이라 했던가? 설아 누나 정도는 아니지만 잊기 어려운 미인이긴 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람 몸뚱이를 암기 삼아 던진 느낌이다.
어째 아까 연습할 때 펼친 것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이거.
단순한 만큼 제 위력을 살리기 위해선 깊이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럼 숙련될수록 위력이 더 올라가는 무공이란 소리인데…….
뭐야, 이거. 무서워.
아니, 그전에!
“아군입니다! 그쪽 노린 거 아닙니다!”
일단 사람을 암기처럼 날린 거나 사과하자.
실수였다니까.
분위기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