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03
302화 사람이 모이면 정치가 생긴다
공료.
법명보다 신승(神僧)이라는 별호로 더 유명한 노승으로 당금 소림을 이끌어가는 실세들보다 두 배분이 높은 전대 고수다.
그 권위는 소림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사실상 최고 존엄이라 해도 무방하다.
막말로 소림방장을 찾아가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제지할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허!허! 내가 이런 꼴을 다 당하는구먼.”
그 소림 최고 존엄께서 무척이나 기분이 언짢으셨다.
그 원인은 소림방장과의 면담에서 비롯됐다.
천자산에서 소림의 절기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을 파악한 신승은 곧장 소림으로 복귀한 뒤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리고 수상쩍은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조치를 위해 소림방장을 찾아갔을 때 신승이 들은 대답이 기대했던 것과 크게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문제가 있다 하시니 엄밀히 조사해보겠습니다.”
문맥상으로는 신승의 말에 동조하는 것 같았지만, 소림방장은 즉각 움직이지 않았다.
본인의 선언대로 ‘엄밀히’ 조사하겠다는 듯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
결국, 소림방장의 대답은 이런 거다.
조사는 해보겠다.
어디까지나 조사를 해보겠다는 것이지, 신승의 생각처럼 소림을 뒤집어엎을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만히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던 신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소림방장도 그들과 한통속이 아닌지를 의심했으나, 이내 소림방장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뒷방 늙은이가 날뛰는 것이 거슬리는 게로구나.”
신승이 가진 권위는 소림에서 그 누구보다 높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승은 오래전 실무에서 손을 떼고 물러난 사람에 불과하다.
조용히 있는다면야 소림의 웃어른으로서 존중해줄 수 있지만, 소림의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흔들려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소림방장이 내보인 의지다.
“늙은 것이 너무 오래 살았나 보구먼…….”
사실 신승이 지금 같은 상황으로 몰린 실질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배분의 차이가 한 단계만 낮았어도 이래저래 개입할 수 있는 방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며 알고 지내던 사제, 사질들은 대부분 귀천한 지 오래다.
일부 귀천하지 않은 이가 있더라도 신승처럼 은퇴해서 실무와 거리가 먼 뒷방 늙은이 신세다.
몇몇 살아있는 사질들을 통해 실무를 맡고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지만, 소림방장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기에 효과가 없다.
게다가 신승은 본래부터 지금의 소림무공은 잘못되었다며 고집스럽게 정통적 수련을 주장해왔기에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권력이란 게 뭔지 원.”
소림방장 입장에서 본다면 신승이 실무에 손을 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걸 이해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신승의 권위는 소림방장을 능가한다. 그런 신승이 실무에 손을 대며 권한까지 쥐게 된다면 소림방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신승으로서는 안타까웠다.
소림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피워 보려는 의도가 이런 식으로 좌절된다는 것이 답답하고 억울했다.
그런 가운데 구파회동을 위해 무당파에 다녀온 도연이 귀환했다는 소식에 그를 불렀다.
어딘가 꺼려하는 기색이 느껴지는 도연은 말을 아꼈지만, 종국에는 다 밝혀질 이야기라 여겼는지 무당파에서 벌어진 사달에 대해 털어놓았다.
“쳐 돌았구만.”
“……아미타불.”
도연이 못 들은 척 불호를 외우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신승은 도연의 말에 꺼져가려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소림도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무당파와 같은 꼴을 보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소천룡…… 그러니까 청운이가 자네 무공을 보고 소림 무공이 완벽하다 했다고?”
“예. 그리 말했습니다, 사백조 어른.”
“그렇군. 고생했네. 이만 가보시게.”
도연이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 신승의 표정이 흉흉해졌다.
“저놈도 그쪽이구만.”
소림 무공에는 문제가 있다.
신승은 연청운 또한 이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연청운이 조언을 포기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청운은 도연을 천자산에서 보았던 수상쩍던 무리와 함께하는 자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장로들 사이에도 간자가 있단 말이지……. 허!허!허!”
신승은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반대로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는 더욱 커졌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어.”
뒷방 늙은이가 날뛰는 것은 당금 소림을 이끌어나가는 이들에게 누가 되는 일이라 여겨 어떻게든 절차와 수순을 밟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금 도연과의 대화에서 그 선택지는 날아갔다.
자칫 말년에 흉한 꼴을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애초에 권위니 명예니 하는 것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달마 조사님의 가르침대로 살다 보니 신승이라 불리게 되었을 뿐이다.
“소림을 좀먹는 것들을 모조리 부처님 앞으로 보내주마.”
단단한 암석을 손아귀 힘만으로 으스러트린 신승이 사납게 눈빛을 번뜩였다.
***
소림은 방문해 본 적이 있다.
설령 첫 방문이라 할지라도 소림까지 가는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불상 앞에 향이나 꽃을 공양하고 복을 비는 향화객들을 졸졸 따라가면 된다.
‘부부인가?’
내 앞에 걷고 있는 사람들은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녀였다.
부부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 두 사람 사이에 일곱 살 남짓한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향화를 올리고 자식을 얻었거나, 아니면 아이의 복을 빌기 위함일 것이다.
소림의 영향력은 무림에만 뻗어있는 것이 아니다.
민간에도 이처럼 크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소림이 학에 넘어가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 해.’
눈앞의 모습을 보니 더욱 결심이 강해졌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있는데 앞에 가던 남녀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소림을 찾아가는 길이십니까?”
아무래도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것이 신경 쓰였나 보다.
소림이 지척인데 흉흉한 일을 저지르는 미친놈이 있겠냐만서도, 당한 사람만 억울해지는 세상이니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 연이 있는 분이 계셔서 뵈러 가는 길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내 대답에 부부는 안도하며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반면 부부 사이에 있는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훑어봤다.
“형도 소림 제자예요?”
나는 눈을 빛내는 이 아이에게 뭐라 답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정식 제자는 아니지만, 명예 제자라는 것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거라고 해 두자.”
“에이, 아닌가 보네.”
고민 끝에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더니, 아이는 단번에 실망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애매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하는 거라고.”
“어어…….”
“소림사 무승들은 덩치도 크다고 했는데, 형은 우락부락하지도 않잖아.”
“이 녀석이.”
아이의 아버지가 난처한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좀…… 아하하…….”
“아닙니다. 아이가 나이답지 않게 현명하네요.”
“아…… 이게 참…….”
아니라고 하는데도 아이 아버지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이 어머니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서로 잘 어울리는 부부로 보였다.
그런 부부의 모습을 보며 새삼 애 앞에선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상화와 함께 지내며 난감한 일이 여럿 있었기에 남의 일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난처해하는 부부를 다독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소림의 입구라 할 수 있는 산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산문 앞에서 소림 제자들이 향화객을 받고 있었다.
사람이 몰렸기에 나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향화객들의 이름을 일일이 방명록에 적고 관리했던 탓에 반 시진 가량을 기다려서야 차례가 되었다.
“시주님은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비교적 젊은 소림 제자가 조용히 물어왔다.
나는 별생각 없이 이름을 밝혔다.
“삼양현에서 온 연청운이라고 합니다.”
“아, 예. 연청운…… 연청운?”
알아본 모양이다. 눈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지 싶은 표정이 무척이나 인상 깊다.
그 모습을 보며 장문경 선배가 명운표국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명운표국 사람들 표정이 딱 저랬다.
“소천룡! 아니! 무종 연청운 시주님이 맞으십니까?!”
이 양반 목소리가 참 크다.
덕분에 줄 서서 기다리던 향화객들의 시선이 죄다 내게 몰렸다.
‘그놈의 무종!’
여기까지 그 망할 별호가 퍼진 모양이다.
“수식어가 많네요.”
“아, 그…… 아하하하.”
불편해하는 내 대답에 소림 제자가 멋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대신 조금 전의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허면, 방문하신 연유가…….”
이건 미리 준비해둔 대답이 있다.
“근래 신승 어르신께 배운 무공이 성취가 있어 뵈러 왔습니다.”
“예에?!!”
새삼 다시 느끼는 거지만, 이 양반 목소리가 참 크다.
역시나 소림이 자랑하는 일기가성(一氣呵成)인 것일까?
달마 사부가 그거 가라라고 했는데.
“자자자자자,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 주세요!”
어지간히 놀랐는지 말을 더듬던 소림의 젊은 제자가 후다닥 산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림 제자다운 경신법을 펼치며 빠르게 멀어지는 모습에 주변에서 탄성이 들린다.
하지만 그 감탄의 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모든 관심이 내게로 몰렸다.
그렇게 반 각쯤 기다렸을까?
아는 얼굴이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연청운! 너 달마 조사님 무공을 완성했다며! 어떻게 된 거야?!!”
‘옮았냐?’
범각 놈의 목소리는 산문을 지키던 젊은 소림 제자 이상으로 컸다.
***
연청운이 산문 너머로 사라진 뒤, 소림사 입구는 시장바닥이라도 된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달마대사의 위명은 무림 못지않게 민간에 널리 퍼져있다.
그런 달마대사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소림 제자들을 붙잡고 연청운에 관해 물었다.
“근래 장강에서 큰 도적이 발호했는데, 방금 그분이 장강의 물줄기를 부려 도적놈들을 모조리 수장시켰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장강 부근에서는 저분을 용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더군요.”
물론 그 대단한 분이 소림의 명예 제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명예 제자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반 제자보다 더 대단한 것 아니냐며 받아들였다.
“그 형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연청운과 동행했던 아이 또한 눈을 반짝였다.
이상한 곳에서 연청운의 전설 하나가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휴가는 고사하고 휴일마저도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혹사당하는 용린대에 있어 손꼽히는 꿀보직이라고 한다면 바로 삼양현이다.
그 삼양현에 얼마 전부터 이상한 방문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용린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여기가 무종 연청운의 고향입니까?”
“??”
웬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방문자들이 향화객이라도 된 것마냥 마을 입구에서 머리부터 박았다.
“뭐냐, 저거?”
“낸들 알겠냐.”
동료 용린대원이 와서 물었지만, 그라고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실감하는 것이 있었다.
“오오! 여기가 무종 연청운의 고향 삼양현!!”
그 이상한 작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저기에서 누군가가 ‘믿습니까!’라고 외쳤다간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게 용린대원들은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결론을 내렸다.
“야, 우리 엿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