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1
30화 소림의 요란한 밤(2)
“뭔가 오해하는 것 같지?”
“딱히 그게 중요한 것 같진 않은데.”
조심스레 속닥이듯 백무호에게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저 장소월이라는 여자, 구파 제자들에게 영향력이 상당해 보이던데 오해하면 문제가 커질 거 아냐?
이상한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다.
아, 그게 아닌가?
하긴, 나라도 갑자기 모르는 놈이 튀어나와서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면 경계하고 볼 것 같다.
위험한 상황에서 돕고자 나타난 사람으로 보이면 무조건 환영해 줄 거라 생각한 것이 순진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 이상한 분위기부터 좀 어떻게 해야겠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적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그런 고민이 잠시 머리를 스치는데.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적은 아니신 거죠?”
장소월이란 여자가 침착한 어조로 내게 물어왔다.
분위기가 이상한 가운데 유일하게 똑바로 정신이 박혀 있는 모습이다.
겉과 속이 같은 느낌이다. 여자에게 당차고 늠름하다는 말이 어울릴 거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고고함마저 느껴지는 장소월은 누구보다 그 말에 어울려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예뻐서 나오는 칭찬은 절대 아니다.
“예, 물론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예, 그럼 오해 안 할게요. 절대로.”
뭔가 뒤에 붙은 저 ‘절대로’라는 단어에서 무척이나 강한 어조가 실린 기분이 드는데.
아무튼, 오해하지 않는다고 하니…….
사악!
순간 서늘한 것이 이마 위를 훑고 지나갔다.
밤이지만 달빛이 밝아서 반사된 검광을 보고 피할 수 있었다.
솔직히 눈으로 보고 피했다기보다 그럭저럭 사람 구실 하게 된 감각과 청경이 제 역할을 해 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거 안 피했으면 이마가 썰렸을 거다. 머리통의 오 분지 일 정도가 잘렸을 거란 소리다. 아마 보기 흉한 뻘겋고 하얀 게 줄줄 새어 흘렀겠지.
상상해 보니 살벌하네.
말하는 중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쾅!
다급히 피하는 사이 근처에 있던 다른 놈이 치고 들어왔다.
회피하는 중이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에 일단 받아냈는데, 팔을 통해 전해져 오는 충격이 얼얼하다.
발이 땅을 그으며 주르륵 밀려나는데 팔뚝이 저릿하게 느껴질 정도다.
중토신공 일 단공을 이룬 상태니까 받아냈지, 그게 아니었으면 팔이 부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뭐야, 이거. 이놈들 뭔가 이상한데?
눈깔부터가 좀 정상이 아닌 게, 얘네 뭐 약이라도 처먹은 것 같아.
입에 문 거, 저거 거품 맞나?
“죽여 주마! 정파 놈들!”
장소월과 대치 중이었던 검을 쓰는 인간이 소리를 지른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썩 멋있는 악역은 아니다.
“조심하세요. 잠폭단을 먹은 상태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아! 약을 먹어서 맛이 간 거구나.
장소월이 내게 주의를 주었다. 내가 정면으로 공격을 받고 주르륵 밀려나는 모습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이상한 거로 꼭지가 돌아버린 저쪽은 괜히 성질내는 중이고.
그래서 그런지 동작이 크다.
첫 검격에서 느낀 부분이지만 무공 자체는 은밀하고 조용하게 뻗어내는 것이 강점처럼 보이는데, 거기에 기존에 없던 힘이 과하게 실리니 도리어 어설퍼진 느낌이랄까?
확실히 위력이나 기세는 늘었을지언정, 무공 자체의 위력은 낮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저런 거 먹고 날뛰는 건 처음인 게 아닐까 싶다.
‘나, 왜 이렇게 침착해?’
그 와중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전 같으면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려고 노력한다 해도 속으로는 좀 경직된 면모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분석까지 하고 있다.
여유가 생길 만한 힘을 갖췄다는 의미인 걸까?
혜원 스님과 손을 겨뤄봤을 때 느낀 거지만, 아무리 수(數)가 뛰어나도 몸이 그를 받쳐 주지 않으면 발휘할 수 없다. 갓난아이가 아무리 대단한 수를 갖췄다고 해도 어른의 주먹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아니, 장삼풍 사부라면 갓난아기 상태였어도 넘겼을 것 같아.
물론 내가 장삼풍 사부는 아니니까 이 부분은 넘어가고.
어쨌거나 중토신공 일 단공을 이루고 천상에 오른 고마운 성성이가 전한 힘이 합쳐지니 일단 기본적인 기량은 갖춰질 수 있었다.
밀릴지언정 일방적으로 달리지는 않는다.
배운바 수를 행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설퍼진 강맹한 공격은 반가웠다.
‘이런 거 잡아먹으라고 배운 게 얼만데.’
갓난아기였을 때라도 어른을 넘겨버렸을 분의 가르침.
괴성을 지르며 뻗어오는 공격을 세 번이나 피해내자, 동작이 점점 커지며 흐름이 보였다.
그 맥을 짚는다.
섞여 들어가듯 자연스럽게 파고들어서.
사악!
검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
휙!
던져버린다.
쿵!
바닥에 꽂히는 몸뚱이.
뻐억!
동시에 상대의 몸이 바닥이 꽂히는 순간 방어가 무너진 몸뚱이를 발로 후려 찼다.
상대의 몸이 발끝에 차인 공처럼 날아갔다.
손안의 공깃돌 다루듯, 그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라고 보여야 했는데.
[쯧쯧. 삼풍이 여기 있었다면 한 소리 들었을 게다.]“예, 저도 알죠.”
자연스럽게 내다 꽂은 거라면 손에 힘의 여력이 남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저항한 힘의 여력이 찌릿할 정도로 손목에 남았다.
이런 빈틈투성이의 허접도 제대로 못 다루냐며, 장삼풍 사부가 계셨다면 엄청 까였을 거다.
뭐랄까, 고작 일 단공이긴 하지만 중토신공을 이루고 난 이후부터 뭔가 몸이 뻣뻣해진 느낌이다. 착각인가?
착각이 아니라면 이거 장삼풍 사부가 나 엄청 갈굴 것 같은데.
뭔가 정신 나간 짓 같은 거 막 시킬 것 같아.
“무당……파?”
그런데 분위기, 또 왜 이래?
장소월이 뭔가 믿기 어려운 걸 봤다는 듯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본다.
다른 몇몇 곳에서도 나를 주시하는 눈길들이 있다.
그중에는 무당파의 기재라는 인물도 있었다.
아, 거기 윤시후. 넌 그냥 눈 깔고.
아무튼, 이것도 두 번째라 그런지 좀 익숙해지네.
주목받아서 그런지 좀 짜릿한 느낌도 들고.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후웅!
뒤통수를 노리고 휘둘러 온 주먹이 흉흉한 소리를 냈다.
타격음 없이 빈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잦아들기 전에.
빠각!
수직으로 올라간 내 팔꿈치가 뒤통수를 노렸던 상대의 턱에 닿았다.
장작 쪼개지는 소리가 울린다.
한 방에 정신이 날아갔는지 눈을 까뒤집고 몸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놈, 뒤로 또 한 명이 달라붙는다.
헌데 그 수가 한 명이 아니다.
좌우를 점하며 치고 들어오는 둘.
치사하게 협공이다.
하기야, 치사한 거 따지는 놈들이면 뒤통수를 노리고 기습 같은 건 안 했겠지.
그럼 누구부터?
일단 가까운 놈부터 조진다.
생각이 움직이니 몸도 움직인다.
다듬어지는 기. 압축하는 근육. 힘을 꼬아 뭉치는 흐름이 주먹에 담긴다.
극강격.
동선의 낭비 없이 일직선으로 질주한 몸이 파괴력 넘치는 일격을 날렸다.
콰앙!
“커헉!”
한 놈 그렇게 보내 버리고.
지체 없이 다른 놈을 대비하는데.
촤아악!
남은 한 놈의 몸이 두 동강 난다.
정수리에서 사타구니로 이어지는 수직의 선.
“날 너무 물로 보네, 이 인간들.”
끝장나는 참격을 가한 것은 이맛살을 구기고 있는 백무호였다.
그런데, 이 녀석. 검 쓰는 게 이렇게 살벌했나?
[흐음.]달마 사부도 백무호가 검 쓰는 걸 보고 묘하게 반응하신다. 달마 사부가 보기에도 방금 참격은 눈여겨볼 만했나 보다.
영물 성성이와의 만남에서 뭔가 얻은 게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벽면에 남겨져 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위압감이랄까?
달마 사부가 성질머리 고약한 작자의 것이라고 했는데, 누구인지 새삼 궁금하다.
[이걸 좋게 생각해야 할지. 그게 또 그렇게 이어지나.]딱히 누구라고 이야기하시지 않지만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더 그렇다.
[생각보다 거물이구나, 네 친구는.]“여러 가지 의미로 거물이죠, 저놈은.”
천년쯤 됐을 흔적을 보고 그 기질을 훔쳐 오다니. 무슨 천무지체(天武之體) 같은 거라도 되는 건가.
재능이 남다르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하게 되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너만 하겠느냐만.]“물론 저 녀석이랑 다르게 저야 사부님들이 있으니까요.”
[순수하게 재능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재능이라? 그런 게 내게 있었던가?
그런 게 있었다면 무당파 속가제자 신세도 유지하기 버거워 빌빌거리지 않았을 건데.
대체 달마 사부는 무엇을 보고 백무호의 저런 재능보다 나의 재능을 높게 보는 걸까?
[한눈팔 때가 아니구나.]잠시 정신을 다른 곳에 팔았던 나는 달마 사부의 말과 동시에 피부를 긁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존재감을 느꼈다.
달빛이 밝은 밤.
몸에 닿아오는 달빛이 갑자기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진다.
차가운 밤바람에 예기가 실려 불어온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쪽을 바라보니 한 명이 검을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공진살…… 팔…… 법…….”
장소월과 대치하고 있던, 조금 전 내가 걷어찬 그 양반이다.
외견만 보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있었지만.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형상이다. 이빨은 온전한 게 없고, 찢어진 입술 사이로 허연 뼈와 치아가 보인다. 얼굴 가운데 구멍이라도 난 것 같은 그 속에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람처럼 새어 나왔다.
하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겉모습 이상으로 바뀌었다.
한 방 얻어맞고 정신이라도 차린 걸까?
가다듬어지고 있다.
어설프고 거칠던 검세를 다듬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 점으로 수렴하는 일 검의 기세.
겁 없이 날뛰던 내 심장 한 편에 검을 댄 느낌이다.
알 수 있다. 이자, 일 검에 생을 걸었다.
목숨을 건 인간은 그 의지가 닿는 영역까지 강해질 수 있다. 일생을 건 인간의 의지는 그만큼 무섭다.
손끝 저리는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꽈악!
나는 주먹을 쥐었다. 저린 주먹을 움켜쥐어 올라오는 그것을 내리눌렀다.
“이쪽도 똥개는 아니거든?”
위험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래서?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만 짖어댄다?
추하잖아, 그런 건.
“덤벼.”
“……간다.”
어두운 밤, 일생을 건 검사의 일 검이 달빛을 머금은 섬광을 발하고.
비할 것 없는 위대한 주먹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
구파의 제자들은 습격해 온 자들을 상대로 열세에 몰렸으나, 일방적으로 밀린 것도 아니었다.
대치하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구파의 제자들은 단숨에 상대를 몰아세웠다.
그렇다고 모두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윤시후. 그의 기량은 딱 속가제자들 수준이다.
습격해 온 자들은 하나 같이 어느 정도 완숙에 이른 무공을 펼쳤다.
형제의 정이었는지, 아니면 형을 버렸다는 평판이 싫어서였는지 윤시후의 동생 윤승환은 형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를 했다.
대가는 옆구리에 남았다.
꾸역꾸역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를 지혈하며 윤시후는 품속에 있던 비상용 금창약을 꺼내 발랐다.
“죽지 마, 승환아.”
“……이 정도론…… 안 죽어.”
옆구리의 상처 때문인지 말하는 게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의외로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아 보였다. 흉터는 남겠지만, 잘 정양하면 쾌차할 수 있어 보였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윤시후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곧 보게 된 연청운의 무공을 보며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 속 뭔가에 불이 붙은 기분이다.
저열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저런 힘을 얻었을까?
무슨 짓을 해서 저런 힘을 얻었을까?
자신도 저런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텐데.
저열한 감정이 윤시후를 물들였다.
그리고.
“……승환아.”
한 가지를 깨달았다.
“죽지 마.”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동생이 무척이나 약하다는 걸.
언제나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던 동생이 지금은 손아귀에 잡힌 여린 새 같았다. 꽉 주먹을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찌그러트릴 수 있다.
상처는 깊지 않지만, 옆구리를 파고든 저것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동생이 죽는다고 자신이 종남파의 본산제자가 되진 않겠지만, 동생에게만 향하던 가문의 힘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렇게 된다면?
‘나도 기회가 생길지 몰라.’
갑자기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동생이, 처음으로 고맙게만 느껴지던 동생이 다르게 보였다.
때마침 주변에는 보는 눈도 없다.
거의 대부분이 기울어진 승기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중이다.
약간이나마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얻은 사람들은 연청운의 전투를 쳐다보기 바빴다.
“죽으면 안 돼, 내 동생.”
더 이상 지혈을 위해 상처를 누르고 있지 않은 윤시후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손에 힘을 주었다.
“……?!”
눈을 부릅뜨는 윤승환의 입과 상처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형……!”
“내 동생, 죽지 마.”
작살에 맞은 활어처럼, 피를 쏟아내는 윤승환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멈췄다.
***
“오우야. 이거 이야기가 재미있게 돌아가네?”
윤시후가 아무도 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는 와중, 한 명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매경풍이 화산파 특유의 자색, 아니 자색보다는 붉은색에 가까운 영웅건을 만지작거리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