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44
343화 정신이 혼미해진다
“사천에서 온 배라……. 그쪽과도 교역하는 곳이 없진 않지만, 요즘 시기에는 드문데. 게다가 타고 온 자들은 무인이군.”
거구의 사내가 나와 종노를 훑어보며 말했다.
탐색하듯 이쪽의 면면을 살피던 시선이 우리가 타고 온 배로 향했다.
“역시 교역을 하러 온 것은 아닌 모양이군.”
그리고 확신을 하듯 선언했다.
그 말에 나는 포구에 있는 다른 배들을 확인했다.
확실히 눈앞에 있는 사내들처럼 큰 배가 주를 이뤘다.
‘기후가 온난하다. 겨울이 없는 곳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농사는 잘되겠네.’
중경의 주요 교역품이 곡식이나 과일 같은 농산물이라고 한다면 확실히 우리가 타고 온 배는 교역에 부적합하긴 할 것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에 사천당가에서 쾌속선을 내어줬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왔나?”
소속을 물으면서 손끝이 슬쩍 까닥거리는 것이 같잖은 대답을 하면 즉각 출수할 태세다.
[하! 이 새끼 보소? 제자야, 쓱! 하고 빡! 해버려라!]장삼풍 사부가 환하게 웃으며 조질 것을 종용하셨다.
어째 이들이 썩 내키지 않으시는 것 같다.
내 뒤에 있는 이화나 종노도 달가워하는 느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만큼 내 결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큰 파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에 응했다.
“사천연합에서 왔습니다.”
무림맹을 자칭할 수도 있지만, 온전히 맹을 이룬 단계는 아니었기에 이리 소개했다.
그런 내 소개에 상대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천연합? 내가 알기로 사천에는 그런 세력이 없다. 설령 있다 한들 연합을 꾸릴 만한 곳이라면 정파삼세 정도일 텐데?”
상대의 눈에 경계심이 짙어졌다.
손가락도 은연중에 까딱거렸다.
아마 저 손가락이 한 번 더 움직이면 그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가 출수를 하든, 종노가 손을 쓰든.
나는 이를 막기 위해 설명을 이었다.
“거기에 흑애무천과 천마신교를 더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거구의 사내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는 좀 전과 달리 손가락을 까딱거리진 않았다.
이전과는 궤가 다른 반응이다.
“그쪽의 혀가 멋대로 움직이는 건가, 아니면 내 귀가 이상한 건가?”
“제대로 말한 게 맞고,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다.”
“……???”
어째 반응이 느리다.
정확히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람은 상식을 벗어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사고가 굳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머리가 아픈 친구인가?”
“제 머리는 멀쩡하니 걱정 마시죠.”
“으음…….”
천천히 숫자 열을 셀 시간 동안 입을 다물고 침묵하던 거구의 사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았지만, 바로 반박을 당하자 곤혹스러워했다.
“믿기 힘들군.”
“이해합니다.”
“으으음…….”
대신 이번에는 불신감을 드러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감추지 못했기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기꾼 취급이다.
아마 내가 사기꾼을 본다면 저런 표정을 지을 것 같다.
확실히 무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상대가 손을 내밀었다.
“손.”
‘기맥을 훑어볼 생각인가?’
손목을 통해 기맥을 탐색해 상대가 익힌 내공의 기질을 파악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요구받는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타인이 기맥을 훑어본다는 것은 내부를 관조할 수 있게 모든 통로를 열어놓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악독한 마음을 먹을 시 쉽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고작 그 정도로 손해를 볼 정도로 내 기맥이 약하진 않다.
천상의 사부님들을 통해서 담금질 된 내 몸은 강하다.
육체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기맥 또한 남들과 다른 경지에 올라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기가 흘러가는 것만으로 기맥이 터지고 근육이 갈가리 찢길 힘도 너끈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러죠.”
나는 태연히 손을 내밀었다.
상대가 내 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응?”
말 그대로 꽈악이다.
솥뚜껑같이 커다란 손으로 거센 악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내 손을 으스러트릴 기세로 힘을 주었다.
‘뭐 하자는 건데?’
이대로 두면 정말 내 손을 으스러트릴 참이라 나도 힘을 주어 대응했다.
본의 아니게 힘겨루기를 하는 꼴이 됐다.
꽈드드드드드득!
근육과 관절이 우악스럽게 맞물리며 묵직한 소리가 났다.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상대의 손과 팔에서 힘줄이 꿈틀거리며 구렁이처럼 요동쳤다.
그렇게 한동안 힘겨루기가 이어지더니 상대가 활짝 웃었다.
“사나이군!”
“엥?”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앞이 막막해지는 느낌이다.
갑자기 어휘력이 청우가 세 살이던 시절로 떨어진 기분이다.
“이런 몸을 단련한 사나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지.”
여전히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
아니, 분명 호의적으로 변한 것 같기는 한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추락한 어휘력은 복구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손을 맞대어 보니 알겠다. 그대는 분명 스스로의 몸을 극한으로 단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몸을 극한으로 단련하긴 했다.
무당산에서 쫓겨나듯 하산한 후, 그리고 명운표국에서 오리들을 수련시킬 당시의 단련은 그야말로 미친놈이 지랄 발광하는 수준이긴 했다.
무공의 고수는 찰나에도 수십 번의 움직임을 보인다.
그만한 집중도로 하루 열 시진. 보통 무인이라면 진즉에 폐인이 되고도 남을 만한 횟수를 채우고서야 곯아떨어지곤 했다.
“한참 때는 하루 열 시진 이상 쉬지 않고 단련하긴 했었습니다만…….”
“역시! 사나이군!”
그러니까 그 사나이라는 말이 뭔 뜻이냐고!!!
혹여 이 동네는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냐고!!
“가자! 대장을 만나게 해주지!”
“아, 예.”
어쨌든 일이 잘 풀린 것 같으니 다행이다.
다행이긴 한데…….
‘찜찜하잖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이 아랫배에서 솟구쳐 올랐다.
아무래도 청우 세 살 시절로 떨어져버린 어휘력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
거구의 사내를 따라가며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삼악도의 장금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생각했던 대로 삼악도의 무인이 맞았다.
‘그나저나…….’
거리의 풍경은 뜻밖이었다.
한눈에 봐도 활기가 넘치는 것이 도시에 생동감이 있었다.
강대한 사파가 자리 잡은 영역 같지 않았다.
사파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도시가 꼭 엉망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예전 사천의 사파 영역이었던 고현 역시 딱히 흉악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예 사파의 영역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파 영역의 도시도 이 정도로 활기찰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에 대해 묻자, 장금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대답했다.
“정파는 옳은 일을 할 때도 절차를 따지지.”
“그렇기는 합니다.”
“우리는 그딴 거 없다. 개새끼는 죽인다.”
해석하기에 따라 무척이나 살벌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역시 사파가 맞았다.
성향 자체가 악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일을 해결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사파다.
그런데 이것이 나쁘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납득은 안 되지만, 수긍은 된다고 해야겠다.
동시에 왜 멸천회와 손을 잡지 않았는지도 알 것 같다.
그냥 성향 자체가 안 맞는다.
이것이 이들의 정체성이라면, 멸천회와는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삼악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 것 같다.
그렇게 삼악도에 대해 알아가는 가운데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했다.
대문 앞에 멈춰선 내 앞으로 큼지막한 장원이 위용을 자랑했다.
쿠우우우웅!
“받아라 역발산기개세!”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앙!
“와하하하! 역시 대단하구나!!”
그런데 뭔가 괴랄한 소리가 들린다.
후우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
“으하하하! 너는 사나이가 부족하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니 뭔가 보이긴 했다.
대문 너머에서 사람보다 더 큰 둥근 구체가 날아다녔다.
“……뭡니까, 저건?”
“공놀이.”
“……놀이?”
내가 아는 범주에서 놀이라는 것은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즐기는 것이지, 맞고 뒈져라를 시도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게다가 저들이 집어 던지고 날리는 것은 쇳덩이 같았다.
저만한 크기라면 장검 천 자루는 너끈히 뽑아내지 싶을 정도다.
그런 쇳덩이로 공놀이라?
할 수 있더라도 하고 싶단 생각은 안 든다.
“공놀이해 본 적 없나?”
“저런 공놀이를 해 본 적은 없군요.”
장금보의 눈동자에 측은함이 서렸다.
“저런, 안타까운 사나이군.”
슬슬 저들이 말하는 사나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아니, 그보다 이곳에 들어가면 뭔가 끔찍한 것을 볼 것 같다는 필연에 가까운 예감이 차올랐다.
“들어가지.”
그런 내 걱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닌지 장금보가 대문을 열었다.
콰아앙!!
‘연다’라기보단 ‘때려 부순다’에 어울릴 것 같지만, 아무튼 대문이 열렸다.
저만치 날아간 대문이 안쪽의 누군가를 향해 떨어졌다.
“으하하하하! 하늘 끝까지 날아가라!”
호쾌하게 웃는 사내가 날아든 대문을 잡더니 공놀이(?) 중인 쇳덩이를 후려쳤다.
애석하게도 당사자의 외침과는 달리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두터운 대문에 구멍이 뚫렸다.
투웅!
뻥 뚫린 대문으로 날아든 쇳덩이를 사내는 머리로 받아냈다.
당연히 이마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흘렀다.
신기한 것은 두개골이 박살 나지는 않았는지 선 자세 그대로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하하하!”
갑자기 소림의 무공 중 하나가 떠올랐다.
‘저것이 철두공이라는 것인가?’
동시에 공손 노야에게서 들었던 말도 함께 상기되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소림의 제자이기도 했지?”
갑자기 공손 노야가 나를 콕 집어 인선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다지 이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 이해하고 싶지 않은 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괴성을 터트렸다.
“사나이!”
“싸나이!”
“쏴놔이!”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행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뭔데, 저 새끼들?] [하여간 사파라는 놈들이 상종하기 어려운 또라이들로 가득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놈들은 급을 달리하는군.]천상의 사부님들께도 좀 규격 외였는지 장삼풍 사부와 천마 사부가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리셨다.
다만, 한 분은 예외였다.
[허허허. 좋은 외공이로다.]‘……달마 사부?’
달마 사부는 저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달마 사부의 취향이 매우 의심스러워졌다.
“종노.”
“예.”
“통역 좀 부탁드립니다.”
“으으음!”
내 물음에 종노는 침음과 함께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종노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인 것 같다.
“이화야?”
“저는 육체파가 아닙니다.”
아쉽게도 이화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런 상식 밖의 작자들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사나이?”
대체 이 물음에는 뭐라 답해야 옳은 것일까.
아니, 그보다 정말 이 미친놈들을 데리고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들을 연합에 데려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마치 우물에 독을 푸는 기분이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