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47
346화 사나이!(3)
자연재해는 언제나 제멋대로 찾아와 난장을 피워놓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처럼 사라진다.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경태세는 거친 폭풍과도 같았다.
그럼 손을 잡고 있어 퇴각이 불가능한 상태에서의 경태세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위험물을 움켜쥐고 있는 기분이다.
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근육이 한 번 꿈틀댈 때마다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어서 저 재해에서 손을 떼라고!
하지만 의지로 이를 억누른다.
수컷끼리의 우격다짐에서 존재하는 감정.
현명함이라는 단어와 대극을 이루는 오기(傲氣)가 등을 떠민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오기에는 언제나 대가가 뒤따른다.
‘이런 썩을!!’
삼악도 무공의 뿌리가 소림이라는 주장이 실감 난다.
순수한 기량 싸움으로 맞서는 순간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다.
무릎이 움직이고 허리가 비틀리는 순간, 그 역동적인 흐름을 담은 일격이 벼락처럼 떨어진다.
후확!!
머리를 쪼갤 기세로 떨어진 팔꿈치가 사선을 그었다.
이마 끝자락이 뜨끔했지만, 치명상은 피해냈다.
만약 제대로 흘려내지 못했다면 깨진 머리 안쪽에 담긴 허연 것이 주르륵 쏟아졌을 것이다.
‘흐아…… 뒈질 뻔했네…….’
피할 수 없는 것을 직감한 순간, 나는 맞잡고 있는 손을 이용했다.
청경을 통해 감지해낸 힘의 흐름을 비틀어 가까스로 자세의 일부를 무너트렸다.
무당파 무공에 정통한 자는 손가락 하나로 사람의 균형을 무너트릴 수 있다.
지금은 자세를 흩트린 게 고작이지만.
이 작자의 하체는 뿌리 깊은 거목 같았다.
일거에 뽑아낼 수 없다.
그럼 부러질 때까지 치면 된다.
쿵! 쿵!
등을 보일 만큼 허리를 비틀어 팔꿈치를 휘둘렀으니 옆구리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훤히 드러난 빈틈으로 극강격을 연격으로 꽂았다.
“큼!”
타격이 아예 없지는 않은지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맞잡고 있기에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작자의 몸뚱이도 무적은 아니다.
극강격을 두 방이나 맞고도 멀쩡한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지만, 아무튼 무적까진 아니다.
손을 맞잡고 싸우는 사지(死地)로 들어서면서 오히려 활로를 찾았다.
상대가 강이라면 나는 유.
손을 잡고 있기에 상대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노림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상화야!’
이기어검을 사용하려던 계획을 폐기하면서 상화에게는 다른 임무를 맡겼다.
천라무결의 수법을 제어하는 역할이다.
천라무결이 통하지 않은 이유는 천라무결의 수법이 충분히 파고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계속 맞잡고 있는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계속해서 기운을 투입할 수 있으면 제아무리 철벽이라도 무너트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명확한 해법은 되지 못한다.
내가 유라면 상대는 강.
손을 잡고 있다는 이점을 살릴 수 있는 것은 경태세 역시 마찬가지다.
‘젠장… 큰 게 온다!’
잡고 있는 손에서 근육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큰 힘을 쓰기 위한 예비동작에 긴장하는 찰나, 거센 힘이 나를 잡아당겼다.
“우워어어어어어어!!”
잡초 뽑듯 잡아당기는 힘에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와, 씹!”
그와 함께 상대의 안면이 크게 확대된다.
박치기다.
제대로 부딪치면 깨지는 건 내 대가리다.
‘흡!?’
나는 발끝으로 기운을 모아 허공을 박찼다.
손이 잡혀있어 날아오르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위로 솟구치며 상대가 생각한 타격점을 벗어났다.
경태세의 박치기가 가슴팍으로 쇄도해오는 위치에서 다시 한번 허공을 박차며 무릎을 치켜올렸다.
빠악!!
악다문 경태세의 턱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턱을 맞으면 머리가 통째로 흔들린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다.
잡아 뽑히는 힘에, 허공을 박차는 힘까지 더해 후려 찼는데도 턱이 박살 나지 않았다.
나는 가슴팍 높이에 있는 미간을 팔꿈치로 체중을 실어 내려찍었다.
콰앙!
팔꿈치에 따끔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사혈 중 하나를 팔꿈치로 내려찍었는데 오히려 충격이 돌아온다.
한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직도?’
턱을 후려치는 일격으로 의식 정도는 날렸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오산이었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
시야가 급변한다.
타의에 의해 몸이 휘둘러진다.
“젠장!!”
가차 없이 바닥으로 낙하되는 상황에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콰앙!!
“큽!!”
오장육부가 움직임을 멈춘다.
폐가 오그라들고 귀에는 이명이 울렸다.
‘제기랄…….’
최대한 충격에 대비했기에 의식을 움켜잡을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온몸을 뒤흔드는 통증이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우워어어어어어!!”
‘또?!!’
코와 목구멍을 통해 꾸역꾸역 튀어나오는 토혈이 뺨을 길게 긁으며 뿌려졌다.
다시 한번 휘둘러진 몸이 반대 방향으로 내쳐졌다.
위기일발(危機一髮)!
멍한 머리는 몸을 수습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상화는 꾸준히 움직여줬다.
“……큭!”
신경을 다스리는 상화의 힘에 몸을 가득 채우던 통증과 머릿속의 이명이 순식간에 씻겨나갔다.
몸의 제어를 되찾음과 동시에 상황을 살폈다.
내던져지는 것을 막을 상황은 아니다.
좀 더 일찍 몸의 제어를 되찾았다면 버텨낼 방도를 찾아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미 늦었다.
‘방향을 바꾼다!’
던져지는 가운데 몸을 팽이처럼 돌려 비틀었다.
등으로 떨어지던 몸이 두 발로 착지할 수 있는 자세가 되었다.
쿠웅!
발목과 무릎, 골반의 관절을 총동원해서 바닥에 내다 꽂힌 충격을 완화하고 흘려보냈다.
그럼에도 시큰한 통증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걸로 두 발이 땅에 닿았다.
그리고 하나 더!
투투투툭!
제대로 열 받았는지 준비를 끝낸 상화가 이마로 신호를 보냈다.
천라무결이 기어이 맞잡고 있는 경태세의 몸에 길을 만들었다.
그 안으로 기운을 흘려보냈다.
“응?”
경태세의 몸속에서 어떤 기운이 발작하듯 튀어나왔다.
‘……왜 이게?’
잘 알고 있는 기운이었기에 더 의아했다.
하지만 당장은 이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투우우우웅!
“크흡!”
처음으로 경태세의 코와 입에서 피가 튀었다.
천라무결이 먹혔다.
게다가 그의 내부에 숨어있던 그 기운이 발작하며 타격을 배가시킨 모양이다.
경태세의 몸이 제어를 잃고 휘청였다.
기회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나는 맞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몸을 비틀어 튕겨냈다.
무지막지한 무게에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끈질기게 힘을 이어냈다.
“허헛?!”
경태세의 거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거목이 뿌리째 뽑혀 내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몸이 낙하하는 순간!
빠아아악!!
확 뒈져버리라는 심정으로 경태세의 명치를 힘껏 밀어 찼다.
“어엇?!”
밀어 차는 순간 몸이 확 당겨졌다.
당연하다.
경태세는 몸의 제어를 잃는 순간에도 강한 악력으로 움켜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맞잡고 이어져 있는 이상 경태세가 날아가면 나도 딸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거푸 들어간 타격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쿵! 쿠쿵! 콰르르르!
억척스럽게 내 손을 잡고 있던 악력이 사라지자 딸려가던 몸이 균형을 잃고 바닥을 굴렀지만 바로 몸을 일으켰다.
내 손을 놓친 채 날아간 경태세 역시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른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킁!”
한쪽 콧구멍을 막고 거칠게 콧김을 뿜자 핏덩어리가 바닥으로 툭 쏘아졌다.
마지막에 연거푸 때려 박은 공격들이 타격을 준 흔적이다.
“쯧!”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경태세가 혀를 찼다.
“자네도 한 번 풀게. 숨쉬기가 좀 편해질 테니까.”
“졌다고 시인하시면 하죠.”
“쳇!”
손을 잡은 채 초근접전을 벌였다.
먼저 손을 놓치고 날아간 것은 경태세다.
“진 건 아니야. 자네도 놓쳤잖아.”
경태세는 유치하게 굴며 패배를 시인하지 않았다.
그런 경태세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나이답지 않은데요.”
“에잉!”
궁지에 몰린 채 아쉬운 소리를 내던 경태세가 양손으로 허리를 집고 하늘을 올려보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내가 졌다.”
전투 종료의 선언이다.
그제야 나도 마음 편히 먹고 경태세처럼 코를 풀었다.
“크응!”
질퍽한 핏덩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후아!”
온몸이 쑤셨지만 상쾌한 청량감이 머릿속과 폐부를 채웠다.
그렇게 결판이 난 연무장을 향해 삼악도 무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나이!!”””
깔끔하게 승복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외쳤다.
“사나이!”
“““사나이!!”””
이들이 내뿜는 열기에 나도 모르게 옮은 모양이다.
“하하하하하!”
***
한판 뜨자고 했을 때, 승패 결과에 대한 약조를 합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태세는 암묵적인 동의로 여겼는지, 삼악도가 내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나로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다.
사실, 승부를 통해 호감을 산 뒤 설득을 해보려는 생각이었는데,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곧바로 큰 연회가 열렸다.
돼지가 끊임없이 희생된 큰 연회였다.
다들 한 덩치씩 하다 보니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먹어댔다.
이 사람들이 합류한다면 식비를 대는 것도 일이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근육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모양이다.
안도감에 절로 가슴을 쓸어내렸을 정도다.
이런 인간들이 단체로 술을 마신다면 소모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 작자들이 단체로 주사를 부렸을 경우를 생각하니 그야말로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나저나…… 그거 흑기였지?’
나는 돼지갈비를 뜯으며 경태세와 겨루던 순간을 떠올렸다.
내가 승기를 잡은 결정적인 순간은 기어이 천라무결을 때려 박았을 때였다.
사실 그것만으로는 승기를 잡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내부에서 튀어나온 기운이 발작을 하며 타격을 배가시켰다.
그때 경태세의 내부에서 튀어나왔던 그 기운은 분명 흑기였다.
‘분명 흑기를 쓰는 자들과 부딪친 것이 몇 년 전이라고 했는데…….’
흑기에 당한 무인이 어떤 꼴이 되는지는 직접 봐서 잘 안다.
소주에서 관중연은 흑기에 당한 팔을 잘라낼 각오까지 다졌었다.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아, 그거? 근육으로 눌렀지. 수련에 제법 도움이 되어서 참 좋았었는데, 사라져서 아쉽군. 쩝!”
어이가 가출하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 흑기를 수련용 도구로 썼다니!
외공이란 게 몸을 극한까지 혹사시키며 다듬는 것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상식 밖의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무식하게 싸우지 않고 이기어검 등 내가 가진 모든 힘을 활용해 전략적으로 임했어도 쉽지 않은 전투를 치렀을 것 같았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이만한 전력이 함께해준다면 분명 멸천회와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옆에서 신경 쓰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악도의 방식…… 활용할 수 있겠어…….”
화톳불 너머에서 돼지고기를 뜯으며 ‘사나이’를 외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는 삼악도 무인들을 보며 이화가 싱글싱글 웃었다.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알아채자마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이화야.”
“예.”
“안 돼.”
“어… 음…… 예.”
이화가 시무룩해졌다.
어쩌면 나는 지금 미래에 있을 끔찍한 사태 하나를 막은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