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65
364화 각성(1)
삼양현에 도착해 땅에 두 발을 딛고, 내게서 반도와 사부님들이 마련한 영약, 그리고 연단 제조법을 다 전해 들은 뒤에야 당사연 소저는 나를 돌아보았다.
“기다려요. 뚝딱 해치워 줄 테니까.”
거기에는 모든 망설임이 사라진 당사연 소저가 있었다.
다시 한번 성장한 내면의 강인함이 엿보였다.
“알아요.”
“말은 잘해. 어휴!”
새침하게 등을 돌린 당사연 소저가 삼양현에 마련된 사천당가의 장원으로 향했다.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숙일 정도로 당찬 모습이다.
[저 아이도 네 덕을 보겠구나.]“제 덕이요?”
[독공을 익힌 아이가 아니더냐. 제조하는 약재들이 보통 것들이 아니니 연단 중 흘러나오는 약기 역시 일반적인 것이 아니지. 특정한 목적성을 가지고 만드는 영약이니만큼 부산물로 걸러 나오는 약기도 적지 않을 것이고. 이번에 얻는 것을 기반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당천기라는 녀석보다 더 높은 가능성을 틔울 수 있겠지.]장삼풍 사부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거다.
당사연 소저 역시 얻어가는 것이 크다.
기연이다.
“그렇다면 좋겠네요.”
왠지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아까운 아해인데, 정말 생각 없냐?]그런 가운데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뭔…….’
굉장히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 물음이다.
적어도 마음속에 부채 의식이 남아있는 와중에 들을 만한 물음은 아니다.
[뭐라는 거야, 이 양반이!] [아니, 영웅은 삼처사첩이라고도 하잖나? 애가 좀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고.] [허허! 오랜만에 탱자탱자 노니 대가리도 같이 풀려버렸구만?]신분이 신분들이니만큼 차마 화를 내지 못하는데, 다른 신선분들의 타박이 이어졌다.
다행히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신선은 소수인 것 같…….
[그렇게 따지자면, 난 장소월이라는 아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어이, 도르셨소?] [아니, 그만하면 참한데 왜?]‘이건 또 뭔…….’
정말 아까 어떤 신선분 말마따나 대가리가 풀려버린 건가?
갑자기 여기서 장소월 소저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뭔가 인원이 늘면서 소란스러워진 부작용이라고 해야겠다.
사람이 대화를 함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필요한데 해도 되는 말, 해서는 안 될 말이 걸러지지 않은 채 막 튀어나왔다.
[흠흠! 장래성을 보자면, 나는 이화라는 애가 키울 보람이…….] [저 새끼 죽여.]“…….”
개판이다.
그리고 말은 쉽게들 하시는데, 저리 간단히 말할 만한 주제가 아니다.
그리 간단한 것이었다면 당사연 소저에게 품었던 미안함이 무의미해지지 않는가!
이 부분은 확실히 짚어서 추후에 말이 나오는 일은 없게 할 필요가 있다.
“저는 설아 누나 외에는 받아들일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대놓고 처첩을 늘리더라.] [그때 그놈도 제일 먼저 혼인했지.] [어우, 인기 많은 놈들 다 뒈졌으면.]누가 저 양반들 좀 패 줬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소망을 품는데 기억에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개소리 지껄인 놈들 집합!]태을진인이신 것 같다.
필사적인 항거가 뒤를 이었다.
[눈치 챙기고 따라오기나 해라, 이 얼간이들아.]하지만 태을진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찍어 눌렀다.
눈치 챙기라는 말이 어느 분인지 꽤나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다.
왠지 그 어느 분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
[흠흠! 오해하지 말거라. 선계는 이토록 농이 넘치고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는 화목한 곳이니라.] [화목은…… 읍! 읍읍!]“……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을진인의 조언(?)대로 나는 눈치를 챙겼다.
다행히 퍽 흡족하신지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를 직접 볼 날이 기대되는구나. 사랑스러운 아이야.]뭐랄까, 최근 여러모로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그런 모든 것이 잠깐이나마 잊히는 기분이 들었다.
좀 안 좋은 방향으로.
***
당사연 소저는 약을 연단 하겠다고 틀어박힌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나는 나름대로 주변을 정비했다.
삼양현에 남아있는 용린대를 찾아 모인 정보를 검토하고, 아직 회복하지 못한 부상자들을 위해 약재를 공급했다.
“저 녀석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군.”
그러는 사이 경태세가 다가왔다.
“고생했으니 잘 챙겨주세요.”
“암! 저런 녀석을 부리는 대가로 그 정도면 싸지.”
경태세는 청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처음 경계심을 드러냈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크고 아름다워.”
삐이!
마치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다.
사이가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기가 꺾인 모습이 아니라는 점도 다행이다.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뒤라 심적으로 후유증이 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런 기색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몸만큼이나 마음도 단단한 사람이다.
멸천회주 같은 자가 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손도 발도 내지 못할 정도로 격차를 느끼게 된다면, 마음이 꺾여서 도주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경태세를 비롯한 삼악도 호걸들은 몸이 회복되자마자 곧바로 단련을 시작했다.
든든했다.
그렇게 경태세가 단단히 자리 잡아준 사이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찾아오고 공기가 습해지며 차가운 달이 떠올랐다.
그렇게 몇 번이고 해와 달이 뜨고 지기를 거듭하던 중 달과 태양이 공존하는 시간, 습하던 공기가 청명하게 느껴지는 새벽이 되었을 때 당사연 소저가 연단실을 박차고 나왔다.
표정에는 피로감이 가득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완벽했나 보네요.”
“그 이상!”
완벽을 넘어섰다고 자신한다.
장삼풍 사부의 말처럼 연단 중에 얻은 것이 적지 않은지 탈진에 가까운 몸 상태와는 달리 그녀의 전신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사연 소저가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가요. 언니를 치료해야죠.”
“같이 가려고요?”
“내가 만든 약이잖아요. 끝까지 봐야 할 의무가 있어요.”
문제가 생길 경우 본인이 있는 쪽이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제대로 만들었다면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신의(神醫) 편작이 만든 제조법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여기서 거부할 명분도 없긴 했다.
“그래요, 그럼.”
당사연 소저가 낀다고 특별하게 문제 될 부분도 아니다.
나는 당사연 소저에게서 나무상자를 받아들고 설아 누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니 설아 누나와 백진성 아저씨, 한산월 아주머니가 각각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멸천회주와 필사적으로 싸우며 모든 힘을 폭발시킨 후유증이다.
특히 한산월 아주머니는 다시 떠올리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악귀처럼 싸웠다.
이들을 간호하는 것은 이화였다.
언제 설아 누나와 한산월 아주머니의 기운이 폭주할지 몰라 무림인이 아닌 의원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의 신력을 쓰지 말라고 당부한 것 때문인지 직접 몸을 움직이며 세 사람의 간병을 하고 있던 이화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고생했어.”
“아니요…… 그다지…….”
“쉬어. 눈 좀 붙이고.”
“끝까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화치곤 드물게 고집을 부렸다.
굳이 고집을 꺾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 나도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알았다.”
결정적으로 내게는 이들을 만류할 만한 자격이 없었다.
당사연 소저와 이화 모두 헌신을 보여 주었다.
둘에게는 늘 고맙고도 미안했다.
그런 마음을 지우지 않은 채 나는 설아 누나가 누워있는 침상 옆에 앉았다.
당사연 소저에게서 받은 상자를 열자 순식간에 방 안이 향기로 가득 찼다.
신기루가 발생한 듯 주변의 풍경이 변모하는 것 같았다.
사방에 도화(桃花)가 만개하는 광경이다.
충만한 나무의 신력이 느껴진다.
“제대로 만들었다고 했지요?”
당사연 소저가 자신만만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절대 오만도 자만도 아니었다.
“잘 쓰겠습니다.”
나는 상자에서 영약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네가 저 아해를 고쳐 보려 한 적이 있었지?]미숙하고 부족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얼마나 모자랐는지 몰랐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한지 알겠느냐?]“예.”
상생상극(相生相剋)을 이룰 기운.
삼재일기공을 넘어선 영역의 힘 대라조화심결.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극(武極).’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관철하는 힘.
지금이라면 한 치의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시작해라.]“예.”
“지금 누구랑 대화하는…….”
당사연 소저가 홀로 대답하는 나를 보고 의아해했지만, 더 이상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지금 내 모든 신경은 영약을 입에 넣은 설아 누나에게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엄청나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여실히 느끼고 있다.
설아 누나의 입에 들어간 영단은 순식간에 형태를 바꿔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의 신력이 엄청난 기세로 설아 누나의 사지로 뻗어나갔다.
설아 누나의 몸에 잠재되어 있는 한빙(寒氷)의 기운은 순수한 물의 신력이 아니다.
거칠고 날카로우며 사나운 기운이다.
상극의 힘이라 하여 순순히 고개를 숙일 얌전한 녀석이 아니다.
‘중재해야 해.’
시작부터 화끈하게 기운이 뒤엉키려는 찰나!
나는 불의 신력을 끌어올려 양극의 힘을 중재했다.
화활수(火活水).
목생화(木生火).
한빙(寒氷)의 기운을 불(火)로 녹여 물(水)의 기운으로 살려내고, 나무의 기운을 불로써 다스려 목줄을 채운다.
불의 신력으로 양측을 중재한다.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극수(火剋水).
불의 신력이 완충 작용을 하며 물과 나무의 신력이 부드럽게 맞물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흐읏!”
설아 누나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꿈틀거린다.
화합을 시작했다 하나 아직 세 기운은 서로 융합되지 않았다.
세 가지 기운만으로 이룰 수 있는 상생상극에는 한계가 있다.
[순환을 이뤄라. 단숨에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해의 몸이 못 버텨!]모든 부분에서 상생상극을 이루기 위해선 다섯 가지 기운이 모두 필요하다.
다행히 물의 기운을 제외한 다른 기운들은 모두 내 안에 담겨 있었다.
‘단숨에…….’
간이로나마 오행의 순환을 이뤄냈던 경험이 도움이 된다.
설아 누나와의 기운을 연결했다.
그 길을 따라 기억하고 있던 힘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내 안의 기운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 순환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스스로 의식이 있는 것마냥 완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 달라붙어 완성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하여 만들어지는 오행의 순환.
장강에서 설아 누나와 한순간 힘을 합했을 때 느꼈던 거대한 힘이 수레를 돌리기 시작한다.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진 힘이 고개를 든다.
‘아…….’
천마신교에서 이뤘던 불완전한 오행신력과는 달랐다.
진정한 의미의 오행신력이 순환을 이룬다.
내 의식보다 더 거대해진 것 같은 그 힘이 내 의식을 잡아당겼다.
집어삼켜졌다.
그리고 내 눈이 현세를 떠나 다른 세계를 비췄다.
생전 처음 보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