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75
374화 황도에서(1)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밤 여행을 떠나게 되었지만, 일반적인 여행이 아닌 만큼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청조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밤이 더 나았다.
설아 누나가 고생하는 청조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얘도 타다 보니 적응이 되네.”
“그러게요.”
설아 누나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처음 청조에게 매달렸을 때는 솔직히 다리 사이로 묘한 감각이 올라와 기분이 이상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이제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중간중간 짜릿함이 느껴지는 자극이 일어날 때가 있다.
가령 지금 같은 경우다.
퍼럭!
평안하게 날아가던 중 갑자기 땅으로 하강해서 늑대 한 마리를 낚아챈 청조가 그걸 머리 위로 휙 던지더니 한입에 집어삼켰다.
삐이!
송아지만 한 늑대 한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아! 짜릿했어!!”
설아 누나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웃었다.
급강하 후, 상승!
다리 사이에서 올라오는 묘한 감각이 쾌감처럼 온몸으로 번졌다.
누군가는 무섭다며 고개를 젓겠지만, 누군가는 천금을 주고서라도 느껴보고 싶은 경험이 아닐까 싶었다.
삐리릭!
식사 후라서 그런지 청조가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
설아 누나가 그런 청조의 목덜미를 쓰담쓰담 어루만졌다.
“귀여워라.”
“……???”
설아 누나의 말에 굳이 토를 달고 싶진 않지만, 청조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귀여운 쪽과는 거리가 있지 싶다.
여자들의 감각은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조언에 의하면 솔직한 것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삐이익!
내 괴리감이야 어쨌든 청조는 목덜미를 쓰다듬는 설아 누나의 손길에 기분 좋은 골골 소리를 냈다.
[좋단다. 천년이나 넘게 묵은 놈이…… 어이구!]장삼풍 사부가 그런 청조를 씹어대셨다.
평화롭다.
그 간극 사이에서 나는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
청조를 타고 움직이는 것은 엄청나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제약도 있었다.
세간에 대놓고 드러낼 수 없기에 황도에 직접 내려갈 수는 없다.
황도 상공을 지나가다가 뛰어내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유동인구가 많은 황궁이기에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어 자체 기각했다.
결국, 황도 근처에 내려서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황도로 향하니.
“닫혔네?”
“닫혔네요?”
“……뭐, 그렇겠지.”
성벽으로 둘러싸인 황도의 성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이 있고, 황궁에서 근무하는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몰려있는 곳이다.
당연히 그 어떤 도시보다 치안 유지가 잘되고 있을 터.
아무나 드나들게 하지 않을 가능성은 애초에 컸다.
하물며 지금은 한밤중이다.
어지간한 도시도 한밤중에는 문을 닫아걸기 마련이다.
“뭐, 어차피 정문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그랬어?”
호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내 이름이 알려져 있다면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에 나에 대해 언급해뒀을지도 모른다.
내 개인 명성은 그렇다고 쳐도 할아버지의 이름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설아 누나가 무척이나 흥이 나서 물었다.
“그럼 담 넘을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요.”
처음에는 설아 누나의 말대로 담을 넘을 생각이었다.
“생각해둔 게 있어요.”
하지만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방도가 떠올랐다.
“보여줄게요.”
나는 궁금해하는 설아 누나를 뒤로하고 성벽의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성벽에 손을 올린 뒤 내 안에서 두 개의 신력을 끌어냈다.
하나는 땅의 신력이고, 다른 하나는 쇠의 신력이다.
쇠의 신력은 변형.
내가 원하는 형태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
과거 오행순환이 완전하지 않을 때도 보조적인 용도로 곧잘 써먹었다.
오행의 순환을 이룬 지금은 오행신력 각각의 장점을 섞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성벽은 땅에서 난 돌들로 쌓아올린 것이다.
땅의 신력이 성벽의 돌에 간섭을 하고, 쇠의 신력이 변형을 시킨다.
의지를 실어 성벽이 내가 원하는 형태로 바뀌기를 바라자 내 손이 닿아있는 곳을 중심으로 돌들이 모양을 바꿔나갔다.
불에 닿은 오징어처럼 일정 부분이 말리고, 구부러지며, 벌어진다.
그 변화가 끝났을 땐 사람 하나가 지나가고도 남을 구멍이 만들어졌다.
“와아…….”
설아 누나가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뭔가 주술 같아.”
동감이다.
내가 한 것이지만, 나도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공의 영역으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그런 구분조차 이젠 고정관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각을 유연하게 가지고, 발상을 자유롭게 한다면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할 터.
고정관념으로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린다면 오히려 장점을 퇴색시킬 우려가 크다.
“이거 누나도 오행신력에 익숙해지면 할 수 있을걸요?”
“정말?”
설아 누나는 뭔가를 떠올려보려는지 눈동자가 이리저리 맴돌았다.
[이거 암살에 최적화된 수법 아니냐?]지켜보던 장삼풍 사부가 혀를 찼다.
확실히 조용히 잠입할 때 쓰면 괜찮을 것 같다.
길을 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냥 열고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능숙해지면, 소리 없이 손을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당장만 하더라도 성벽에 구멍을 냈는데도 소음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사위가 조용한 한밤중임을 생각하면 사실상 소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리 없이 들어가서 표적만 쓱싹하고 나올 수 있다.
한동안 흑살대 살수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꽤나 유용할 것이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라며 정문으로 치고 들어가 모조리 몰살하는, 세간에 알려진 흑살대의 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긴 하지만 괜히 살행 장면이 발각되어 쫓기는 것보단 낫다.
“일단 움직이죠.”
성벽에 만들었던 구멍을 다시 틀어막은 뒤 도시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황도 외곽의 후미진 곳에서 나올 때까지는 사람의 통행이 없다시피 해서 통금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나라의 수도인데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움직이다 보니 북적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밤거리의 유흥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그들 사이로 뒤섞이자 설아 누나가 물었다.
“운이는 황도에 와본 적 있어?”
초행치곤 너무 거침없었나 보다.
“없죠. 하지만 뭘 찾아야 할지는 분명하니까요.”
“으음……. 개방이나 하오문?”
정답이다.
좀 더 정확히는 개방을 찾아갈 생각이다.
하오문도 정보조직으론 유능하지만, 아무래도 사파에 발을 걸치고 있는 곳이다 보니 이번에는 접촉하기가 꺼려졌다.
흑살대 살수 노릇을 해야 할 상황인지라 함부로 얼굴이 팔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오문에서 정보를 사는 것 그 자체도 누군가에게 팔아먹을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부 정보가 취약하더라도 개방 쪽이 낫다.
개방이라고 무조건 믿을 순 없겠지만, 최소한 하오문보다는 신뢰할 수 있다.
어쨌거나 현지에서 써먹을 정보통은 필수다.
“정확해요. 잘 아네요.”
“당연하지! 누난데!”
두 손을 옆구리에 올린 설아 누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으스댔다.
나는 그런 설아 누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 천천히 걸을까요?”
밤 시간이다.
주변은 유흥을 즐기는 남녀가 대부분인 거리다.
여기에서 손을 잡고 걸으면 주변에서 어떻게 볼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다.
“으으으…… 즈끄 브급흐게 그를끄으?”
설아 누나가 이를 악물며 귀엽게 노려보았다.
내가 자꾸 누나로서의 위엄을 해치려 한다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망설이던 설아 누나는 곧 내 손위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황도의 밤거리를 거닐었다.
“히이이이익!!”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기겁을 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청수한 인상에 한 손에는 고아한 부채를 든 말끔한 복식의 도인이다.
겉모습만 보면 수양이 깊은 선도의 대가를 보는 듯했다.
허나 그런 외견과 달리 꼬리를 다리 사이에 넣고 오줌을 지린 하룻강아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벌벌 떨었다.
‘누구지?’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만약 나를 알아본 것이라면 입을 막기 위해 거친 손속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짓을 생각하면 연청운이라는 이름 석 자를 쓰는 사람이 황도에 들어왔다는 정보는 가급적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격이 높아 보이는 외견을 보면 잠깐 마주쳤어도 기억에 남아있을 법한데 전혀 기억에 없다.
“흐아아아아악!”
청수한 인상의 도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무슨 술법이라도 썼는지 경공을 펼치는 무림인마냥 훅훅 거리가 멀어졌다.
‘일단 쫓아가야 할 것 같긴 한데…….’
쫓아가 뒷덜미를 낚아채면 심장마비라도 일으킬 것 같은 모습이라 왠지 꺼려졌다.
그때 이화가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오라버니께 살(煞)을 날렸던 술사입니다.”
“내게?”
“예.”
‘이것 봐라?’
딱히 주술적인 공격을 받은 기억은 없지만, 내게 살을 날렸다면 일단 잡아서 족쳐도 마음에 걸릴 것이 없다.
“구악도인……이란 이름을 썼던 자로 기억합니다.”
“아! 종인걸이 고용했었다는?”
도명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중신상회의 주인이었던 종인걸이 고용했었다는 술사의 이름이 분명 구악도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의뢰주였던 종인걸을 역으로 고발하는 격문(檄文)을 써 붙여 이득을 본 기억이 있다.
그자라면 딱히 손을 쓰는 데 거리낌을 느낄 필요가 없겠다.
“술사라…… 차림새도 꽤나 번듯했지?”
“예.”
“저놈이 물가 높은 황도에서 어떻게 저리 번듯하게 지낼 수 있을까?”
“늘 하던 짓이겠지요.”
“역시 그렇지?”
운이 좋다고 해야겠다.
“굳이 개방을 찾아갈 필요가 없겠네. 잘 됐어.”
황도의 사정을 아주 잘 알 것 같은 정보통이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본 것만으로 비명을 지르고 오금이 저린 듯 주저앉을 만큼 겁을 먹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조건도 찾기 힘들다.
“으드득! 저 작자를 잡으면 되는 거야?”
“응? 어, 글쵸.”
“내가 잡아 올게.”
황도의 밤거리를 거닐던 오붓한 시간이 깨진 것 때문일까?
설아 누나가 무척이나 화가 난 얼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구악도인이란 자도 뭔가 한 수가 있는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지만, 그래 봐야 설아 누나의 손아귀를 벗어나진 못할 거다.
나는 주변의 시선을 피해 천천히 설아 누나가 향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제가 도움이 되었습니까?”
불쑥 이화가 물었다.
이런 식으로 확답을 원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기에 조금 신기했다.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 마음을 담아 답했다.
“언제나처럼. 정말이지 널 만나서 다행이야.”
그러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 취급 받는 걸 은근히 싫어하지만, 이번에는 칭찬이라 여겼는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비스듬히 위를 올리는 것이 으스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