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4
383화 빛을 가져오는 자(3)
이러다 사이비종교 하나 뚝딱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긴 했다.
장강용왕의 현신이니, 용신이니 하며 떠받들어진 적도 있고, 어딘가에선 나를 모시는 사당 같은 것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몇몇 소문이 단지 소문이 아닌 곳도 있었지만, 그래 봐야 실체가 없는 민간신앙에 얹어진 수준에 불과했다.
“대일여래시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건 좀 미친 수준이다.
황도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나온 것 같다.
지금 있는 사람들로도 길거리가 미어터질 것 같은 상황인데, 어디선가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이 죄다 오체투지하며 불경을 외고 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진짜로 미쳐 돌아갔다.
‘아니, 이건 좀…….’
늘어나는 숫자 좀 살피겠다고 둘러봤더니 즉각 반응이 튀어나오는 것이 사지가 오그라들다 못해 비틀리는 느낌이다.
진짜 신도 아닌 내가 이런 분위기를 태연하게 받아들이기엔 내 낯짝이 너무도 얇다.
[좋게 생각해라. 좋게. 나중에 이런 것들이 다 도움이 된다.]장삼풍 사부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핀잔이 섞인 것 같다.
은근히 부러워하시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그 도움이 되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그 전에 제 얼굴 가죽이 죄다 닳아 없어질 것 같은데요.”
[그럼 이번 기회에 그 상판 좀 갈고닦든가.]아무래도 착각이 아닌 것 같다.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가 한층 서늘해졌다.
[제자야.]“예, 사부님.”
[돈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뭐라 하겠냐?]“그야…….”
계도(죽빵)를 시작으로 수많은 단어와 욕설들이 떠올랐지만, 왠지 지금 이 말을 썼다간 크게 낭패를 볼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 들었다.
“……있을 때 잘해라?”
[……그래, 우리 제자 참 현명하기도 하지.]기분 탓일까?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에서 흐릿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쯧! 잘하자.]“옙!”
그러고 보니 천마 사부를 광신하는 자들이 많아, 천마 사부는 지금도 꾸준히 인과를 얻고 계신다고 했다.
사람들의 신앙심 역시 인과를 얻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역사의 흐름을 논할 때 종교와 신앙 역시 빠질 수 없는 분야이긴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
‘나의 뜻을 남기는 것.’
작은 개미가 죽어라 일해도 사람 한 명이 땀 흘리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수가 일만이 되고, 백만이 되며, 그 이상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내가 남길 말은 신의 위명을 빌리는 것이다.
일개 사람이 하는 말과는 무게가 다르다.
“선(善)을 행하라.”
내가 입을 열자 사위가 조용해지며 오체투지한 이들이 귀를 연다.
내 말 한마디가 여기 모인 사람들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것이 보인다.
“작은 것이라도 좋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마음에 떳떳한 일을 행하라.”
무림맹을 만들고자 마음먹었을 때, 노력과 도전이 존중받는 곳을 꿈꿨다.
“옳은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닌즉.”
그 이상(理想)이 무(武)를 이루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이는 세상 모든 곳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말이다.
“그럼 빛이 너희와 함께하리라.”
마지막 말과 함께 나는 광륜으로 화한 오행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화아아아아악!!
늦은 밤 새벽빛이 찾아온 듯, 내게서 흘러나오는 빛이 사방을 밝혔다.
그리고 높게 치솟아 올랐다.
구름 너머까지.
“승천…….”
멀어지는 내 귓가에 마지막으로 들린 단어는 그것이었다.
“자, 그럼 연출은 여기서 끝내고.”
구름 너머로 오른 뒤 몸에서 발산하는 힘의 흔적을 지우고 허공답보로 자리를 옮겼다.
형부상서의 장원은 박살 났고, 의도치 못한 행동이긴 했으나 황도의 모든 주목이 모였으니 목적은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남은 것은 황궁의 일뿐.
“할아버지가 황제를 잘 설득하셨으려나.”
솔직히 회의적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천적을 상대로 이빨을 드러낼 만큼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선 뭔 미친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황궁 위에 다다랐을 때 보이는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건 또 뭔 미친 짓이라냐?”
형부상서의 장원을 습격한 이유는 적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함이었다.
내가 시선을 끌며 겸사겸사 간신배 목을 날려버리면, 할아버지가 황궁으로 잠입해 황제와 독대를 한다.
이것이 계획의 기본 골조였다.
그런데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역모를 때린다고?”
황궁 내부에서 피바람이 일고 있었다.
아무리 계획에는 수정이 필수라지만, 이건 좀 정도를 벗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내가 구축하고 있던 근간을 뒤집어엎은 상황이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멸천회주가 그린 구상은 이게 아닐 텐데?”
멸천회주가 노리는 주요 목표는 황제다.
황제가 실정을 저지르고, 국가 단위의 거대한 과율이 만들어졌을 때 멸천회주가 황제를 죽여 인과를 먹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면 황제의 실정은 발생하지 않는다.
황제가 국가 단위의 거대한 과율을 일으키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아주 사소한 정도에 불과해진다.
[니가 푼 쥐약을 잘못 처먹고 돌아버린 놈이 있나 보다.]“그런가 보네요.”
장삼풍 사부의 말을 들어보니,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연유가 짐작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불신감이 컸나 본데요.”
멸천회주는 직접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이끌 수 없다.
그랬다간 곧장 주체자로 몰려 과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멸천회주의 위치는 어디까지나 ‘힘을 만들어주는 자’에 불과하다.
반대로 그 힘을 휘두르는 자는 그렇게 받은 힘을 통해 야심을 드러내는 자다.
그 야심가가 역모를 일으켰다.
이는 황궁 내의 야심가가 멸천회주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내가 흑살대인 척 저들의 내부를 흔든 영향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 이상으로 쌓여온 것이 많기에 일거에 터져 나온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멸천회주 입장에서야 순리(?)를 따르는 것이겠지만, 야심가의 관점에서는 간단하게 갈 길을 자꾸 돌아서 가게 만드는 멸천회주에게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참고 참아서 쌓여온 감정과 불신이 내가 만든 사건으로 갈라져 버렸다고 한다면 설명이 된다.
그렇다고 그 야심가의 행동이 섣불렀다고 혹평할 수도 없는 것이, 멸천회주의 구상대로라면 저들은 황제가 미쳐 날뛰게 만들기 위한 제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재빠른 판단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멸천회주 입장에서는 끔찍한 사태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다.
“멸천회주 복장이 뒤집어지겠네요.”
[풉!] [푸흐흐. 그야 그렇겠지. 직접 나서서 힘을 쓴다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간단한 일을 한발 물러서서 망가지는 꼴을 관망해야 할 테니까.]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고 했다.
하물며 직접 개입하지도 않고 뜻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이다.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지?]“당연하죠.”
역모를 일으킨 잡것들을 내 손으로 지워버린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황제가 쌓았을 과율이 역모를 일으킨 자들에게 몰렸을 것이다.
물론 멸천회주가 그린 판에 비하면 보잘것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멸천회주에게 유리한 판은 지워버리는 것이 좋다.
‘찌끄레기나 다름없는 걸 주워 먹겠다고 나설 것 같진 않지만…….’
덕분에 일은 간단해졌다.
힘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판단을 내린 나는 즉시 허공에서 뛰어내렸다.
땅으로 낙하하는 도중 힘을 손에 담는다.
내공의 운용이나 신력의 조율 같은 걸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절로 의(意)가 형(形)이 되어 드러났다.
어떤 무공을 펼칠지, 초식이나 투로의 흐름을 생각하며 움직인 힘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힘이다.
표적은 환관의 복장을 하고 칼을 든 자다.
막 누군가에게 칼질을 하려는 환관의 머리 위로 내려선다.
콰직!
내게 깔린 자의 몸이 무른 과일처럼 터지고 찢긴다.
“으헛!”
“누, 누구냐!”
화들짝 놀란 자들이 소리치며 칼을 겨눈다.
그야말로 도산검림(刀山劍林)이라 하겠지만, 전혀 긴장되진 않았다.
그보다는 내 상태를 관조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몸에 돌아온 반동은 생각 이상으로 적었다.
그저 의(意)가 ‘결과’만을 남겼다.
내공을 어찌 움직이고, 몸을 어찌 보호하고, 균형은 어떻게 잡고.
힘을 쓰기 위해 고려하던 과정이 모두 생략된 느낌이다.
이것이 신선의 영역에서 힘을 쓰는 법!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무극으로만 돌아간다.
“무시하는 거냐!”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측면에서 옆구리를 노리고 검이 뻗어온다.
“조심하시오!”
환관으로 보이는 이가 도검을 휘두르자 그 표적이었던 이들이 나를 향해 소리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 못 봤나?’
창졸간이라 판단력이 제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걱정은 왜 하는지.
나는 지척까지 다가온 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콰가가가가가!
보통 쇠는 단단한 것과 부딪쳤을 때 반발하여 요동친다.
내 손바닥과 닿은 검신은 전혀 달랐다.
마치 갈려 나가는 것처럼 으스러졌다.
연약하디 연약한 사람의 손바닥에 닿았는데, 꿰뚫기는커녕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무, 무슨……!”
검을 찌른 자도 어이가 없는지 자루만 남은 검을 멍하니 보며 그대로 멈춰 선다.
나는 그 자의 머리를 향해 손짓했다.
퍼걱!
검신을 갈아버린 힘이 닿자 사람의 육신이 붉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가 멈춰선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중 환관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을 주목했다.
황궁을 뒤집은 주역들.
이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겠다.
“동창인가?”
“으으으…….”
“사, 살려…… 살려…….”
그저 그들이 누구인지 인식하며 말 한마디 꺼냈을 뿐인데, 무기를 소지한 환관들, 동창의 당역들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인 사람처럼 벌벌 떨었다.
지금 상황에선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같았다.
번거롭더라도 이건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잘못하면 일상생활이 무척 불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힘 드러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천마무겁수는 내 영역 안에서 신이 되는 힘이라 하셨다.’
문뜩 궁금해졌다.
최초에는 그저 그 힘을 살짝 접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웠던 무공.
권능에 가까웠던 그 힘을 불러내 봤다.
“부서져라.”
쩌정! 쩡! 쩌어엉!
동창의 당역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향해 의지와 말을 드러내자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것도 내 주변에 깔린 자들 전원의 무기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좋은데?”
[좋기는! 몸으로 해결해, 몸으로. 손발 멀쩡한 놈이 쓸데없는 데 낭비하지 말고.]내 감상과 달리 천상에선 타박이 내려왔다.
낭비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지금 내가 힘을 쓰는 방식은 조건이 따르는 모양이다.
확실히 이런 힘에 제한이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렇기는 한데…….
‘아니, 쓰라고 가르쳐놓으시고 타박은 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슬쩍 서운함이 고개를 든다.
반대로 주변은 뒤집어졌다.
“이, 이런 무공이라니…….”
“사람의 무공이 아니다…….”
목숨을 구원받은 자도, 칼을 들고 있는 동창 당역들도 기경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일여래라 불릴 때처럼 광륜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저들에겐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