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7
386화 짓밟아 뭉갠다
황궁에서 혈겁을 일으키는 자들을 쳐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창 당역들은 내공을 익힌 무인들이었지만, 그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조악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전부일 리는 없다.
황궁의 무력을 담당하는 것이 금의위라면, 황궁의 암부를 담당하는 것은 동창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들은 멸천회주의 손길이 닿은 세력이기도 하다.
분명 비장의 한 수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에 있어도 알 수 있을 만큼 단합된 기운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개 개인의 무력이 아니라, 다수가 단합하여 만들어내는 군기다.
역시라는 생각과 함께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머릿수를 무기로 세운다……라. 황궁답네. 생각하는 게 달라.”
하나가 모자라면 둘로, 둘이 모자라면 넷으로, 넷으로도 안 되면 여덟을 동원한다.
백이든, 만이든, 십만이든 필요한 대로 숫자를 늘려 쏟아붓는다.
일반적인 무림문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방법이다.
무인이란 생산성과 거리가 먼 족속들이다. 때문에 어지간히 규모가 있는 문파라 할지라도 그 구성원의 숫자는 백을 넘기기 어렵다.
돈을 까먹는 것도 그냥 까먹는 수준이 아니기에, 그 규모가 기십 명 단위가 되면 일대에서 부호 소리를 듣는 사람일지라도 매달 지출되는 비용을 보면 한숨을 흘리게 된다.
그야말로 황궁이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그렇게 군기로써 움직이는 고수들이 싸우는 방법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군(軍)이구만.]“그러네요.”
강기를 뽑아낼 수 있는 고수가 군대처럼 오와 열을 갖춘 채 싸우고 있다.
얼핏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나 장점만큼 단점도 명확했다.
무림인의 싸움은 작은 변수 하나, 보법의 반보 간격 하나에 생사가 갈려 나간다.
그렇기에 전신전력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고, 본연의 무공을 온전하게 펼치기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무림문파에서 쓰는 합격진이 보통 셋에서 일곱으로 인원이 구성되는 이유는 각자의 무공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간적 제약 때문이다.
그 이상이 되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고 단순해진다.
사실상 개개인의 온전한 무공을 펼치는 것에 제약이 걸린다는 소리다.
극히 예외가 있다면 제갈세가와 소림의 백팔나한진이 있다.
제갈세가는 아예 가문의 무공 자체가 합격진을 전제로 구성되어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무위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백팔나한진은 개개인의 무위도 대단하지만, 나한승들이 형성한 합격진은 소림을 넘어 정파 무림을 대표하며 지금도 불패의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대신, 그 수련에 상당한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눈앞의 저들이 펼치는 군기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개인의 기량을 죽이는 대신 집단의 힘을 키웠다.
어떤 고수이건 저 군진에서는 그저 소모품일 뿐이다.
사실상 저들 하나하나가 그저 한 자루의 창에 불과할 뿐이다.
[쯧! 낭만이 없어, 낭만이.]점잖게 이야기하고 계시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진다.
“거 X같이 싸우네!”
할아버지와 황제로 보이는 중년인을 지키는 것에 사력을 다하는 천진패 어르신의 악다구니가 가장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그놈 말 잘했다!] [X같네, 진짜!] [하늘에서 X같음이 빗발친다아아아아아!]천상의 여론은 명확했다.
그런 가운데 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어떠냐?]천마 사부의 준엄한 물음에, 나는 솔직한 본심을 드러냈다.
“짓밟아버리고 싶네요.”
[하하하하하!]무척이나 마음에 드신 듯하다.
[그래, 하고 싶으면 해야지.]그리고 등을 떠밀며 부추기신다.
[무(武)가 뭔지 보여줘라.]그 말에 힘입어 하늘을 밟아 나아가며 힘을 끌어올린다.
‘상화야.’
피부 아래, 신경 하나하나가 맥동하며 잡아낸 감각이 주변의 모든 것을 휘어 감는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화살들 역시 그 안에 포함됐다.
그것들 전부와 감응한다.
뚝!
수백의 화살이 허공에 멈춰 선다.
“…….”
“…….”
그리고 침묵이 이어진다.
순수한 경악이 지배하는 공간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이제야 마음에 드는군.]동감이다.
나는 허공에 멈춰선 화살 하나에 몸을 올리며 감상을 표했다.
“진짜 X같이 싸운다. 니들.”
***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개 짖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방에서 화살이 빗발치는 곳이라면 전투에 익숙한 노련한 병사라도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화살 하나하나에는 치명적인 독이 발려 있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롭다.
어지간한 담덩이일지라도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는 그 공간에서 황제는 연자염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벌벌 떨었다.
사실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황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연자염은 황제의 등을 토닥이며 준엄하게 타일렀다.
“허리를 세우십시오, 폐하.”
“짐은… 짐은 두렵다. 무섭단 말이다.”
“믿으십시오. 제 친우들이 지킬 것입니다. 그 어떤 화살도 폐하를 해하지 못할 겁니다.”
“믿으……라?”
불신 속에서 살아온 황제다.
연자염의 요구는 황제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믿음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허리를 숙이고 있는 이를 따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과 달리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연자염의 모습에 황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한 모습이다.
“후우…… 후…… 후우…….”
숨을 고르며 황제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단번에 두려움을 떨쳐내기란 어려웠기에 여전히 오금은 떨렸고, 허리는 끝내 올곧게 서지 못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스스로의 심약함을 인식했는지 황제가 구차한 변명을 내놨다.
하지만 연자염은 이를 탓하지 않았다.
“그렇지요. 죽음과 고통이 두려움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두렵다 하여 몸을 숙이시면 중한 것을 잃게 됩니다.”
“짐의 목숨보다 중한 것이 있더란 말이냐?”
“폐하가 지켜야 할 위엄(威嚴)이 사라지게 됩니다.”
황제로서 갖춰야 할 위엄이 현 황제에겐 없었다.
목숨보다 중요한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이 없었기에 지 학사를 잃었고, 관중연을 잃을 뻔하지 않았던가!
“……안 된다. ……무리다.”
황제는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며 떨고 있는 몸을 세워보려 했지만, 결국 심약함을 이겨내지 못했다.
“헉!”
그때였다.
세상이 정지된 것처럼 조금 전까지 황제를 두렵게 하던 화살이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선인(仙人)처럼 등장한 존재가 보였다.
만물 위에 올라 군림하는 절대자의 모습이 느껴졌다.
황제는 반색하는 연자염의 표정에서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연청운.
황사 연자염의 손자이자 용신이라 불리는 존재.
황제에게 연청운이란 강함이라는 단어가 물질적인 형태를 갖춘 모습처럼 보였다.
황제는 하늘에서 오롯이 서 있는 연청운을 보며 다른 의미로 몸을 떨었다.
“무리다…….”
저 존재가 황제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연청운이 명을 내린다면 당장에라도 따라야 할 것만 같았다.
“짐은 저처럼 강하지 못해…….”
황제는 연청운을 보며 두려움과 동경을 동시에 느꼈다.
눈앞에 보이는 저 전율적인 힘을 동경했고, 저 힘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연자염이 그런 황제를 다시 한번 보듬었다.
“폐하께서는 마음이 강해지셔야 합니다. 육신은 나약할 수 있을지언정 마음은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
“마음은 무애(無㝵)하니까요. 육신과 달리 마음은 스스로 꺾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습니다.”
황제를 가르치는 스승, 황사(皇師).
연자염은 황제를 가르치며 이끌었다.
그 가르침을 따라 황제가 연청운의 등을 바라보았다.
홀린 듯 연청운을 바라보는 황제의 등이 천천히 곧게 펴졌다.
그렇게 두려움이 사라져가는 황제의 마음에 새로운 것이 영역을 넓혀갔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것은 괜찮을까?”
홀로 서지 못하던 심약한 황제다.
길을 잃고 표류하던 무능한 황제다.
하지만 달라지고자 하는 마음만은 아직 남아있다.
“홀로 서실 수 없으시다면 그것도 좋겠지요. 저 등을 이정표로 삼으소서.”
연자염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적인 자부심을 드러냈다.
“분명 저 등은 천하제일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
‘저게…… 황제?’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좀 더 신경질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들어보면 전혀 아니다.
아버지뻘인 어른(?)에게 할법한 평가는 아니지만, 눈앞에 보이는 황제의 모습은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니라.]아니, 뭐 딱히 반론할 만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
문제는 뒤이은 대화들이다.
듣고 있자니 절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쩝! 그럼 기대에 보답해볼까.’
나는 허공에 떠 있는 화살 십여 개를 따로 떼어냈다.
그리고 본래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퍼퍼퍼퍽!
가볍게 날린 수준이지만 반응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는지 거의 무방비 수준으로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퍼퍼퍼퍽!
이번에도 막아내는 자가 없었다.
순식간에 궁수 중 일각이 허물어지자 누군가가 얼굴을 벌겋게 달구며 소리쳤다.
“쏴라! 쏴! 저놈도 인간인 이상 화살을 잡아두는 데는 한계가……!?!!”
하지만 그 말이 그치기도 전에 허공에 떠 있는 모든 화살이 방향을 돌렸다.
상화의 제어도 이전과는 다른 수준이 되었다.
지휘를 내리던 자, 장인태감이라는 작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바, 방패! 방패를 들어라!!”
그 외침에 방금까지 화살을 쏘던 이들이 빠르게 활을 버리고 방패를 집어 들었다.
이걸로 성가신 저격이 사라졌다.
조금은 편하게 날뛸 판이 만들어졌다.
‘어휴! 어르신들마저 넋 놓고 있음 어쩝니까?’
다만, 얼굴색이 변한 건 저 장인태감이라는 작자만이 아니다.
“……격공섭물 아냐?”
“아니, 격공섭물이라도 저건 좀…….”
허공에 떠 있는 화살의 실체를 깨달은 고수들, 할아버지의 친우분들도 넋 놓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먼저 움직입니다.”
허공에서 몸을 날리자 순식간에 방패를 든 고수들의 진형에 닿았다.
평범한 앞차기.
하지만 지금 속도를 그대로 살려 후려 찼다간 방패를 관통할 것이 뻔했다.
해서 무거움을 담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내 발이 닿은 곳을 기점으로 부채꼴의 여파가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치솟았다.
방패째로 사람을 찢어버리는 힘이 진형의 일각을 부쉈다.
그렇게 무너진 일각으로 파고든다.
표적은 이곳에 있는 모든 적.
사방이 적인 곳에서 손발이 단순하게 움직인다.
우직! 콰앙! 콰직!
부수고, 짖고, 으깬다.
그 누구도 일수를 받아내지 못한다.
움직일 때마다 파괴적인 소리가 연이어지며 생명이 사그라든다.
그야말로 일방적.
전투라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사치다.
“하찮고 하찮다.”
이래서야 허공에 주먹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루하다는 평이 잔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치 줄지어 늘어선 개미를 짓밟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침 딱 알맞은 무공이 있다.
천마군림보!
의지와 함께 내력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형태를 갖춘다.
천마사부의 무(武)가 내 몸 안에 깃들고.
콰아아아아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축이 뒤틀린다.
천지가 요동친다.
그 힘의 여파가 형태를 갖추며 적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커허허헉!?!!”
힘으로 찍어 누른다.
짓밟아 뭉갠다.
하찮은 버러지들이 바닥에 팽개쳐진 썩은 과일마냥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