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96
395화 하하하, 개판이군
점점 힘을 손에 넣어감에 따라 묘한 책임감도 커져가는 느낌이다.
내가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다.
이전에도 몇 번씩 느낄 때마다 의식적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아직 다 밀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무일, 청수, 현백.
그런 와중에 그 세 사람과의 대화는 내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 싸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렇기에 부담이 적지 않다.
만약 처음 무림행을 나섰을 당시의 나라면 이 중압감에 짓눌렸을 것이다.
‘반드시 이긴다. 모두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다시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체감하는 가운데, 볼에 부드러운 것이 닿는 것을 느꼈다.
등에 업혀있는 설아 누나다.
“갑자기?”
“갑자기 아닌데?”
“어?”
“운이가 근사한 표정을 지어서야. 그러니까 운이 탓이야.”
요즘 들어 부끄러운 소리를 서슴없이 하는 설아 누나다.
누나와 동생이라는 관계가 흐릿해지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선계가 시끄러워졌다.
응원을 하려는 건지, 방해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노선을 확실히 잡아줬으면 좋겠다.
이래서야 뭘 해도 욕을 먹는 느낌이다.
다양성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지금은 다양을 넘어 혼란으로 가는 분위기에 가깝다.
그만큼 자오경이라는 기물 앞을 점거하고(?) 있는 신선들이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서왕모 님이 나서서 정리해주시는 편이라 선을 넘는 경우는 없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할아버지가 일하시던 관청을 보면, 일 잘한다고 평가받는 말단이 어떻게 굴려지는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껏 달리는 사이 어느덧 눈에 익은 지형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화산.
돌고 돌아 다시 도착했다.
그런 내 앞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백무호였다.
검은 옷을 입은 화산파 제자들과 함께 다가온 백무호가 혀를 찼다.
“씁! 간만에 손맛 좀 보나 했더니.”
이전에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화산 앞문을 지키며 적지 않은 실전을 겪은 듯 백무호의 기도가 확실히 눈에 띄게 달라졌다.
대동한 검은 옷의 화산파 제자들도 상당한 기도를 뿜어냈지만, 백무호는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이라 할 만했다.
검을 다루는 재능이 만개하고, 내공이 충만한 데다, 신력까지 갖췄다.
그런 기반 아래 실전을 거듭하니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한데, 백무호의 언급이 미묘했다.
이전 화산에 방문했을 땐 하루가 멀다 하고 전투를 벌이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뜸한 모양이다.
“요즘은 공격이 뜸하냐?”
“어. 갑자기 뚝 끊기더라.”
“그래?”
백무호의 말에 장삼풍 사부와 상황을 복기했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여유가 없어진 멸천회주가 서두르고 있다.
내가 뿌린 흑살대 암살의뢰명부로 인해 대흑련이 다급해졌다.
이를 종합해보면 최근의 대치상태는 폭풍 전의 고요다.
백무호 역시 이를 인식하는지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그나저나…….”
백무호가 내 쪽을 기웃거리며 살피더니 물었다.
“그 근수 많이 나가 보이던 새는 튀겨먹었냐?”
청조 부리에 찍혀서 뚝배기 깨질 소리 하고 있다.
청조가 들으면 발광할 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다쳐서 못 오는 거다, 인마.”
“까비, 나도 한입 먹어보고 싶었는데.”
입맛을 다시며 백무호가 옆구리를 찔러왔다.
“내단은 있디?”
“이상한 유도신문 하지 말라고. 안 먹었다고. 다쳐서 못 오는 거라고.”
“강한 부정은 긍정이…… 아니다. 뭐, 네가 그리 말하면 그런 거겠지.”
킥킥거리며 웃는 것이 놀릴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다.
“심심했나 보다?”
“심심은 개뿔이. 이상한 거나 보내놓고.”
“이상한 거? 아? 아아.”
그러고 보니 이쪽으로 보낸 사람들이 있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 어머니를 그렇게 말하는 건 좀…….”
“미친노마! 울 엄니 말고!!”
그럼 삼악도 무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확실히 좀 많이 이상한 사람들이긴 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 요소들의 집합체랄까.
여기서도 그 존재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 모양이다.
다만 그걸로 이놈이랑 대화를 해봐야 세가 불리해지기만 할 뿐이다.
좀 치사하더라도 이럴 땐 강한 패를 꺼내 일거에 제압하는 것이 최고다.
“누나, 다 들었죠?”
“그래.”
등 뒤에 있던 설아 누나의 시선이 서늘해진다.
백무호가 기겁을 하며 펄쩍 뛰었다.
“야! 야야, 이건 아니지!”
패자의 변명은 추한 법이다.
나는 그 항변을 가뿐히 씹었다.
설아 누나가 나선 이상 백무호에게는 일말의 여력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안, 동생아.”
“왜! 뭐! 왜왜, 뭐, 왜 불길하게 시작부터 사관데!”
세상에는 듣자마자 기분 나빠지는 말이 있다.
대표적으로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는 말이 있다.
설아 누나가 한 말 역시 그에 버금가는 말이다.
“누나가 요즘 힘 조절이 잘 안 돼.”
“죽이겠다는 소릴 잘도 돌려 지껄이네!!”
“우리 동생, 간덩이가 많이 커졌구나.”
건들거리는 설아 누나가 색다르게 보인다.
내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다.
이게 친남매의 정이라는 것인가보다.
“무호야.”
“어? 어어!”
“힘내라.”
“개소리 말고 살려줘, 미친놈아!!”
요즘 선계의 신선분들 덕분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재주가 많이 늘었다.
그 덕에 나는 백무호의 비명을 한 귀로 흘리며 이화와 함께 화산에 오를 수 있었다.
***
화산에 오르며 대충 위쪽의 분위기를 예상했다.
백무호조차 지금이 폭풍 전의 고요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마 수뇌부는 좀 더 심각한 분위기일 것이다.
쾅! 쿠웅! 콰쾅! 콰직!!
“……뭔가 좀 시끄럽지 않니?”
“예. 뭔가 잔뜩 부서지는 소리입니다.”
살짝 현실 부정을 담은 나와 달리 이화는 이 소음의 본질을 담담히 정의했다.
적이 쳐들어온 것은 아닐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는 세 글자가 떠올랐다.
삼악도.
아니나 다를까.
“이것밖에 안 되냐!”
“흐랴!!”
“하하하하! 좋구나. 아주 좋아!”
“사나이!!”
“그래, 그게 사나이지!”
“쏴나이이이이이이잇!”
기억에 있는 목소리들이 뒤엉켜있다.
한쪽은 예상했던 대로 삼악도 무인들이다.
다만, 반대쪽은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튼튼해서 좋구나! 가지고 놀 맛이 나!”
“……입천신마존 저 양반 너무 신났는데.”
흥에 겨워서 삼악도 무인들과 어울려있다.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물들었어?] [물들었네?] [천마야, 너네 애들 소림에 물들었다?] [……뭐라는 거요, 짜증 나게.]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입천신마존 저 양반, 선계에 올라가면 다짜고짜 멱살부터 잡힐지 모르겠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나이를 먹으면 현명해진다는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선계에 오르면 찾아가 멱살을 잡으며 진지하게 따져 물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게 만천화우라는 거다, 새꺄!”
“야, 피해! 저 늙은이 또 발광한다!”
저 판에 끼어있는 것은 입천신마존과 삼악도만이 아니다.
사천당가 가주 당천기가 만천화우를 펼치며 날뛴다.
“후훗! 좋구나.”
역시나 무도에 진심인 양반, 장문경 선배도 끼어있다.
“공동파가 간다!!”
한 수 배우겠다는 느낌으로 오문도장과 공동파 제자들도 날뛰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고수라고 불릴 만한 이들은 죄다 뒤엉켜있다.
그중에는 뜻밖의 사람도 있었다.
“흐읍!!”
장문경 선배에게 뒤지지 않는 무위를 드러내며 백진성 아저씨가 판을 뒤흔든다!
“울 낭군 잘한다!”
‘……한산월 아주머니?’
뭔가 확 달라진 느낌이다.
가문의 저주가 풀어졌다곤 하지만, 뭔가 다른 방향으로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다.
‘이 동네가 수맥이 안 좋나?’
다들 뭔가 하나씩 내려놓은 느낌이다.
정파, 사파, 천마신교가 한데 어우러지는 것은 좋은데…… 좋긴 한데…… 뭔가 개판이다?
세상에 풀어놔선 안 될 걸 풀어놓은 기분이다.
진짜 이래도 되는 거였나?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랑 달라도 너무 달라 혼란이 일었다.
얼마나 몰두하고 있는지 내가 올라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신무가 알아차리고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맹주.”
“예에…….”
왜일까?
제갈가주에게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탈속하여 득도의 경지에 도달한 수도자의 냄새가 났다.
“그런데 이건…….”
“뭐, 무겁게 축 처진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하하… 하… 후우…….”
자세히 보니 흰머리가 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화타 어르신이나, 편작 어르신께 부탁해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줘야 할 것 같다.
그런 내 염려가 무색하게도.
“아! 맹주님 왔다!”
“맹주!”
나라는 존재가 새롭게 불을 댕겨버린 모양이다.
이를테면 그런 거다.
한창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쌓이고 쌓인 것이 무언가의 계기로 폭발하는 순간이랄까.
당연히 나는 이다음 이어질 것을 예상했다.
“사나이!”
사람보다 큰 쇳덩이가 다짜고짜 날아들었다.
“그러니까! 인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성벽도 부술 기세로 날아오는 거대한 쇳덩이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쩌엉!
둥근 구체가 굉음을 일으키며 찌그러진 떡이 되어 튕겼다.
그 뒤를 잇는 건 성질을 부리며 날뛰는 당천기 가주다.
“이 새끼들 니가 데려왔지!!”
뭔가 불합리한 항의다.
삼악도의 가세는 수뇌부 전체가 모인 회의에서 결정한 결과다.
당천기 가주의 눈가 부근에 퍼런 멍이 언뜻 보인다.
누구에게 제대로 처맞은 모양이다.
그 분노가 담긴 암기 세례가 날아들었다.
‘상화야?’
날아드는 암기가 모조리 허공에 멈춰섰다.
그 뒤를 잇는 건 장문경 선배의 절정검도다.
천의무봉이라는 평가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인간의 몸으로 펼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검로가 내 사각을 노린다.
한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보이던 그 웅장한 검로가 우거진 수풀처럼 쇄도해온다.
그럼 헤집으면 그만이다.
나는 그 빈틈없는 벽 같은 검로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따다당!
무당권과 소림권.
부드러움과 강함이 합쳐진 투로가 완벽하던 검로를 비튼다.
“호오?”
감탄하는 장문경 선배의 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삼악도의 대장 경태세가 육탄돌격을 해온다.
휘릭! 쿠웅!
우직하게 덮쳐오는 기세를 되돌려 던져버렸다.
“좋구나!”
그리고 최후의 끝판왕이라는 것처럼 덮쳐오는 자.
존재 자체가 무(武)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이 손발을 뻗어온다.
벽파접무(劈破摺武).
쪼개고 부수고 접어 꺾는다.
지극히 패도적이고 사나운, 오로지 사람을 찢어발기기 위한 무공이다.
너무 의도가 극명해서 유치한 협박처럼 들리는 초식명이지만, 거기에 입천신마존의 의념이 담기면 그 이름을 현실에 구현하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나는 거기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콰콰콰콰콰!
밀리지 않고 맞서는 나와 입천신마존 사이에서 일진광풍이 불었다.
충격의 여파가 화산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거세다.
입천신마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말했죠, 이 년 안 걸릴 거라고.”
히죽이며 온몸의 힘을 한 점에 모았다.
내가 배운 무공들이 한 점에 수렴하는 순간!
콰아아아앙!!
거침없이 뻗은 일격이 입천신마존을 밀어냈다.
그 광경에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화려하게 타오르던 기세가 정적에 파묻혔다.
“분명히 말해두겠는데요, 선빵 치는 건 인사가 아닙니다.”
무림맹 규율의 가장 높은 곳에 쓰이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첫 페이지에는 꼭 넣을 거다.
뭐, 어쨌거나.
나는 모두를 향해 포권을 쥐었다.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