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97
396화 목표
“다들 잘 지내셨나 보네요.”
옷들이 조금씩 해져있다.
수뇌부 급만 모여 있는 자리인데도 이 정도면, 밑쪽이야 뻔한 상황이다.
내공을 쌓은 무인의 몸뚱이는 강철보다 단단해질 수 있다지만, 옷은 그저 천에 불과했다.
물론, 고수들이야 내력으로 보호할 수도 있지만, 무척이나 비효율적이고 이를 무한히 유지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보급이 문제다.
어떻게든 보급선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험한 화산까지 보급선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물품들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비꼬는 거 아니지?”
뭐가 그리 심통이 났는지 아직도 눈가에 푸른 기색이 남아있는 당천기 가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그 말을 나는 순박하게 웃으며 받아넘겼다.
“무를 단련하는 일에 충실하신 것 같아서 한 말입니다. 무인에게 그 이상의 일상이 있던가요?”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 면모는 무와 협에 충실한 기재로 되어있다.
여기에 순박한 웃음이 섞이면 그 효과는 몇 배로 뻥튀기된다.
당장 저기 공동파의 오문도장만 하더라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공명정대, 정심하기로 이름 높은 무종 연청운이 설마 그리 속이 꼬여있겠냐는 반응이다.
[우와! 환영 인사를 암기 투척으로 했다고 돌려 까는 거냐?] [그거 말고도 쌓인 게 제법 있나 보지. 당천기라는 놈 말하는 꼬라지가 좀 험하긴 하잖아?] [이런 거 보면 쟤도 은근히 뒤끝 있어.] [그러게. 누가 삼풍이 제자 아니랄까 봐. 쯧쯧쯧.]이름 모를 신선분들이 수군거렸지만, 나는 익숙하게 한 귀로 흘렸다.
“이야, 대놓고 멕이는데 뭐라 따질 수가 없네. 너, 맹주질 잘하겠다. 아주 싹수가 있어.”
“오해라니까요.”
당천기 가주의 마지막 발악까지도 나는 웃음을 머금은 채 흘려냈다.
제갈신무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가셨던 일은 잘 해결이 되었습니까?”
“예. 이제 황제는 우리 편입니다.”
“오오!”
황제가 분명하게 노선을 정했다는 말에 다들 환호했다.
아무래도 황제가 가진 힘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후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 사람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최선의 결과였다고 자평했다.
사실 황도로 가기 전까지 걱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제갈신무에게 받은 조언대로라면 폭군이 될 자질을 훌륭하게 갖춘 반미치광이였기 때문이다.
그 평가가 이곳에도 그대로 퍼져있을 것을 가정한다면, 내가 엄청난 활약으로 황제의 마음을 돌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틀리진 않다.
황제 자체의 성향이 폭군과 거리가 멀긴 했지만, 상황이 좋아 언제라도 폭주할 수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할 것도 아니다.
당장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파와 소림은 어떻습니까?”
황도로 출발하기 전, 남궁세가에 모여 있던 전 녹림연합과 표국연합을 무당으로 집결시킬 것을 지시해놓았다.
그리고 제갈신무를 통해 무림맹 깃발 아래 소림과 무당파를 포함한 전력을 집결시키는 것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소림과 무당파의 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제갈 가주가 송구스럽다는 듯 어렵게 대답했다.
“당장은 어렵겠다는 답신이 왔습니다.”
“그런가요?”
“소림과 무당의 판단도 무리가 아닌 것이, 요 근래 섬서와 하남, 호북은 군이 동원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소란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림과 무당의 정예를 이쪽으로 집중시킨다면…….”
“소림과 무당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겠군요.”
북숭 소림과 남존 무당은 정파 무림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각각 하남과 호북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대에서는 무림세력인 소림과 무당을 관보다 더 믿고 따르며 신뢰할 정도다.
그런 그들이 섬서와 하남 호북이 미쳐 돌아가는 지금, 앞마당을 비워둔 채 이곳으로 전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렵다.
문제는 무림의 싸움이 민간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그 여파가 크다.
자칫 나라에서 민란에 준하는 상태로 간주하고 군을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솔직히 관 또한 그 이상으로 개판이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으으으음…… 나쁘게만 생각할 일이 아닌가? 정확히는 멸천회주라는 존재에 겁을 먹고 각개격파를 염려했기에 취한 조치였으니까. 하지만 저쪽도 생각보다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나쁘지 않아.’
극악사도의 움직임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무림은 물론이요, 민생까지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눈앞의 일에 전념을 해도 벅찬 상황에서 은밀하게 시야 아래의 음지를 누비는 작자들이 있다.
소림과 무당파가 가진 폭넓은 영향력이라면 극악사도를 비롯한 저들의 암수를 억제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니, 이 경우는 오히려 소림과 무당파의 전력을 집중하는 것은 민간의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머리 아프네.’
단번에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그 경우의 수들이 파생시킬 상황들까지 짜맞추자니 수천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냥 닥치고 돌격해서 흑룡회와 대흑련을 털어버려?’
머리가 복잡해지자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떠올랐다.
황도에서 완성한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청명심법의 청량한 호흡이 머리를 씻어내자 그 판단은 자체 기각되었다.
멸천회주가 숨겨놓은 수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어설픈 행보는 결정적인 패착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 삼양현에서 멸천회주와 격돌했을 당시 멸천회주는 내가 가진 막대한 인과 때문에 나를 죽이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말 그대로 반죽음 상태로 박살이 났다.
황도에서도 청조를 반죽음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를 고려한다면 멸천회주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손을 쓰지 못할 뿐, 개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멸천회주는 인과까지 세밀하게 주시하며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지금 나 못지않게 머리가 아플지도 모른다.
아니, 아파야 한다.
그래야 덜 억울하지.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판을 짜온 작자야. 무작정 치고 들어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돌이킬 수 없어.’
바둑이라면 지더라도 복기를 해보고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이건 현실이다.
생각 없이 움직이기엔 걸려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가깝게는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고, 멀게는 무림맹을 통해 만들어나갈 미래의 청사진이 달려있다.
분명 멸천회주는 넘어야 할 산이고, 내 인생 최대의 적수라 할 수 있겠지만, 그를 치우는 것만이 나의 사명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비틀어진 무림을 재정립하여 선도에 이를 이들을 육성하는 것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사부님들께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이를 팽개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얼마 전 선계의 신선 중 한 분이 설아 누나의 일을 두고 천 년간 바가지 긁힐 일이라 평하셨는데, 이건 잘못되는 순간 천 년 이상 사부님들께 갈굼 당할 일이다.
그런 이유들로 나는 막 떠올렸던 성급한 판단을 고이 접었다.
“맹주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심각한 얼굴로 내 기색을 살피는 제갈 가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민이 많은 표정으로 입을 꾸욱 다물고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것이라도 있는지 걱정하는 표정이다.
제갈 가주를 비롯한 모두가 다들 얼굴을 굳힌 채 나를 주목하고 있다.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나 혼자가 아니야…….’
이 자리에는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들이 있다.
군사이자 지낭(智囊)인 제갈 가주 또한 전체적인 상황을 알아야 그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
일단 극악사도와 사파에 집중하기로 했다.
“화산에 오면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특히 극악사도에서 전혀 다른 개념의 강시들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수뇌부들이 다른 의미로 굳어졌다.
“내공을 구사할 수 있는 강시라…… 그거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거 아냐?”
“터무니없는 이야기긴 한데, 맹주가 직접 본 것을 터무니없다고 치부할 수도 없지.”
“그러고 보니 그 멸천회라는 놈들이 무림삼불기를 만들어낸 주축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흐음…… 확실히 무림삼불기를 만들어낼 정도의 역량이라면 가능할지도.”
“게다가 무림삼불기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의 역사는 구파에 준하는 수준으로 봐야 할 테니…… 이거 무시할 수 없겠는걸.”
“어쩌면 무림삼불기가 행해온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다양한 추측들과 예상이 오갔다.
나름 날카로운 분석인 것이 그 강시를 제작하는 바탕 중에는 혈교의 수법이 가미되어 있다는 천상의 평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소림과 무당파의 판단은 옳다고 봐야겠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제갈 가주의 결론에 나 역시 동의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문의했다.
“저들이 하나로 힘을 모으는 정황이 보이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저들 또한 한 지역의 패자(覇者)를 자처하는 무리입니다. 전력을 끌어모으겠다면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겁니다.”
제갈신무는 답을 하면서도 깊은 고민에 잠겼다.
“……어쩌면 저들이 힘을 다 모으기 전에 각개격파를 노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군요.”
제갈 가주는 나와 다른 방향으로 판단을 하는 모습이다.
“만약 그리할 것이라면 소림과 무당이 함께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조율하는 것도 시일을 잡아먹을 터이니 미리 준비를 해둬야겠습니다.”
제갈 가주는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일단 그것으로 회의가 파했다.
***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빠르게 임시로 만들어진 회의실에서 빠져나왔다.
입천신마존이나 삼악도 쪽에서 달라붙으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탈주에 성공해 조용한 곳으로 몸을 빼자 뜻밖의 광경이 보였다.
“어이구, 답답아.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아니, 그게…….”
백무호가 설아 누나를 갈구고 있다?
뭐지, 이거?
실화냐?
백무호는 답답한지 자기 가슴을 쿵쿵 소리 나게 내려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설아 누나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아 나서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이화가 나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많은데, 참고 있는 모습이다.
살짝 한숨이 섞여 있는 느낌인데…… 착각이겠지?
***
뭔가 확실히 화산은 수맥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이래저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역시나 골치 아픈 소식이 날아들었다.
“맹주, 확인하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아침이라기엔 빠르고, 새벽이라기엔 늦은 시각.
다짜고짜 찾아온 제갈 가주가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사천에서 날아온 서신입니다.”
“사천이요?”
이곳에 머물고 있는 무림맹 전력의 영향력이 가장 짙은 곳이 사천이다.
사천당가를 비롯해 아미파, 청성파, 흑애무천의 근거지가 바로 사천이기 때문이다.
나는 곧장 서신을 받아 읽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전서구로 전해진 것인지 서신의 내용은 길지 않았다.
南蠻野獸宮 侵
남만야수궁 침입
點蒼派 協
점창파 협력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정보가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