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20
419화 시공을 넘은 싸움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사람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러나 땅 위,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있는 이들의 전투는 인간의 영역이다.
“개진! 검망(劍網)!”
제갈신무가 무림맹 군사로서 임명된 이후, 제갈세가 무인들은 소가주인 제갈윤재가 지휘했다.
검진으로 무림제일을 논한다는 제갈세가가 중군의 방패가 되어 극악사도의 강시들과 맞섰다.
이름 모를 자.
과거 천하에서 손에 꼽혔을 망령이 제갈세가의 검진을 향해 검을 내려그었다.
콰아아앙!
다발의 검기와 검강이 촘촘하게 일어나 불기둥처럼 치솟은 거대한 강기에 맞섰다.
“크윽!”
“큽!”
다수의 힘으로 받아냈음에도 제갈세가 무인들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전열 교대! 입(立)! 물러나지 마라!”
제갈윤재가 소가주로서 목이 터져라 외친다.
“태산으로의 길을 연다!”
경천의 힘이 난무하는 자리다.
무림맹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예라고는 하지만, 극악사도가 불러일으킨 자들은 과거 천하의 정점에서 군림하던 이들이다.
특별한 자들조차도 평범(平凡)으로 전락시킨다.
자부심이 고개를 숙이고, 자존심이 허물어진다.
하지만 뜨거운 피를 가진 이들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적의 수장은 그야말로 사람 같지 않은 무위를 보였고, 맹주 역시 그런 강자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활로를 연다!
“우리가 전황을 바꾼다!”
제갈윤재의 외침이 피를 뜨겁게 달군다.
그 젊은 피가 눈에 띈 것일까.
심유한 눈을 한 귀왕급 강시가 제갈윤재를 주시했다.
“젊음은 언제나 무모하고 어리석지. 힘없는 자의 무의미한 외침은 그쯤에서 그치는 것이 좋으리라.”
“그딴 골방 노인네 같은 이야기는 내가 댁 나이쯤 되면 생각해보마!”
제갈윤재는 지혜롭고 냉철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문의 소가주답지 않게 뜨겁게 날뛰었다.
그런 제갈윤재를 향해 과거의 강자가 검을 흔들었다.
안 그래도 불기둥이 치솟는 것 같았던 검에 기세가 붙었다.
“멸절검 아래 고혼이 되어라, 어린 영걸아.”
말세를 불러오는 듯한 검격이 제갈윤재를 노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제갈윤재를 중심으로 한 제갈세가의 검진이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맞섰다.
그 격돌의 순간.
“어쩌다 이리 피가 뜨거운 녀석이 되었는지 원.”
제갈신무가 혀를 차며 개입했다.
대천성신공(大天星神功).
제갈세가의 진수가 담긴 검이 제갈세가 검진의 지원을 받으며 무형의 검기를 뿌렸다.
“피는 뜨거워도 좋다. 허나 머리는 언제나 차갑게 유지해라. 앞으로 나아감은 중요하나,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모든 것을 활용해 승리로의 길을 여는 것이 제갈세가의 방식이다.”
천기미리보(天機迷離步)로 방위를 점하고 칠현무형검(七絃無形劍)의 절초가 튀어나온다.
팍! 사악!
무림맹의 군사(軍師)직을 맡고 있다고는 하나, 제갈신무 역시 오대세가의 일좌인 제갈세가의 가주다.
그가 지휘하는 제갈세가의 검진은 제갈윤재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천하를 멸절(滅絶)하려는 일격을 선보이던 강시에게 기어이 상흔을 남겼다.
“제갈세가…….”
“그래, 우리가 제갈세가다!”
검을 고쳐잡는 제갈신무의 눈에 불길이 튀었다.
“감히 내 앞에서 누굴 고혼(孤魂)으로 만들겠다고?”
제갈신무도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서문대성.”
친우의 최후를 직감한 백진성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정확하게 알진 못하나, 사람 같지 않던 멸천회주라는 자가 당황했을 만큼 중요한 일을 해냈음이 분명했다.
그 씁쓸한 감정을 검에 담아 휘둘렀다.
쩌엉!
차가운 기운이 음유한 기운과 부딪쳐 살갗이 에이는 기파를 사방으로 뿌렸다.
화산의 검공에 소수신마의 후예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검을 섞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백진성이 귀장급 강시를 시종일관 몰아붙이다 목을 날렸다.
“마라구천공인가.”
방금 쓰러트린 강시는 분명 살아생전 흑사신의 무공을 익혔던 자다.
초식을 교환하는 순간 검을 타고 올라오는 기질은 분명 그쪽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격돌 중인 강시들은 무림삼불기 출신들이 많았다.
“우연은… 아니겠군.”
과거 강자들의 시신을 모아 강시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쉽게 시신을 모을 수 있는 그쪽 계통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뭐, 상관없겠지.”
가볍게 숨을 돌린 뒤 다음 적을 찾던 백진성은 시선을 멈췄다.
아내 한산월이 막강한 기세를 드러내는 강적과 격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강시 역시 흑사신의 후예였던 자다.
허나, 그가 펼치는 무도의 깊이는 방금 백진성이 쓰러트린 자와는 격이 다르다.
적어도 한 시대의 종주였을 고수.
한산월과 싸우는 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형과 투로는 내가 아는 것이지만, 기질이 다르군. 소수신마의 후예가 맞는가?”
“그러는 너는 흑사신의 잡놈이구나!”
“맞는 모양이군.”
빠르게 오행신력을 수습했던 백설아와 달리 한산월은 달라진 기질을 수습하는 데 애를 먹었다.
아직 완벽하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맞상대하는 적은 과거 흑사신의 종주로 추정되는 무도는 간직하였으나, 펼치는 기운은 한 수 질이 떨어졌다.
그 결과 어느 한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한 채 대치가 이어졌다.
“나약해졌구나, 당대 소수신마여. 과거 내가 목을 분질렀던 적수는 이렇지 않았거늘. 당대 흑사신의 종주라는 후배도 꽤나 한심한 놈인 모양이로다.”
“닥쳐!”
“호오?”
의외라는 듯 과거 흑사신의 종주였던 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그 분노는 선조의 죽음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당대 흑사신의 종주를 위한 것인가?”
“닥치라고 했다!”
한산월은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분노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깨달았다.
서문대성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사라져있었다는 걸.
그렇게 두텁게 세웠던 벽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풋풋한 시절의 추억들이다.
“한심한 연놈들이로다.”
“한심한 건 네놈들이지. 죽음 이후에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는 네놈들!”
감정이 움직이자 그에 호응하듯 한산월의 기운이 포말을 일으키는 격랑처럼 거칠게 일어났다.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개척한 친우를 사후까지 저당 잡힌 네놈들과 같은 선상에 두지 마라!”
물의 신력으로 화한 기운이 명옥공의 구결을 따라 거침없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상대가 그 공격을 흘렸다.
마라구천공의 기운은 그 자체가 위험한 흉기.
그 기운을 상대에게 욱여넣는 것만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기에, 상대의 빈틈을 치고 들어가는 기법에 능숙하다.
강맹하지만 단순해진 한산월의 틈새로 적이 파고들었다.
그 옛날 소수신마의 목을 꺾어 부러트렸다는 과거가 재현되려는 순간!
콰득!
굵은 나무의 뿌리처럼 굳건한 과거 흑사신 종주의 팔이 뜯겨 허공에 나부꼈다.
아무리 기습이었다지만, 두 강자의 싸움에 개입해 이런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고수는 흔치 않다.
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인 백설아가 주변을 모두 얼려버릴 것 같은 차가운 눈으로 흑사신 종주 출신 강시를 노려보았다.
“선조님의 목을 꺾었다 했나요?”
연청운의 예상대로 백설아는 이미 오행신력을 수습했다.
익숙한 한빙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백설아가 상대를 몰아쳤다.
쾅! 콰쾅!
권각을 특기로 하는 이가 팔 하나를 잃었다.
비슷한 실력이라고 해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사실상 공방 모두에서 한쪽이 뻥 뚫려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퍼엉!
상대의 초식을 흩트려낸 백설아의 일장이 그대로 측면을 후려친다.
부족한 부분은 보법으로 어떻게든 보완하려 했지만, 백설아의 공세는 보법의 임기응변으로 흘려낼 정도로 허술하지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요?”
“으음…….”
과거 흑사신의 종주가 체내를 굳히는 한기에 입을 열지 못했다.
백설아가 피식 웃었다.
“휘하의 모든 자를 동원해 차륜전이라도 했나 보네요.”
“기습이나 하는 년이!”
“어머나. 옛 무림은 정말 온화하고 낭만적이었나 보네요. 전장에서 그런 소리나 하는 걸 보면?”
변명은 추할 뿐이다.
애초에 심계를 흔들어 한산월의 틈을 찌르려 했던 것이 사실이다.
“뭐, 기습을 안 했어도 댁 정도라면 백 초식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요.”
으득!
과거 흑사신의 종주가 이를 갈았다.
당한 입장에선 그저 도발에 불과할 뿐이다.
백설아가 서늘한 미소와 함께 기운을 개방했다.
연청운이 시할아버지가 계신 장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대 고수들을 찍어 누를 때처럼.
쿠우우우우우우!!
격동하는 힘이 격전이 피워낸 먼지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그 요동치는 힘의 중심에서 백설아는 모든 반론을 찍어 눌렀다.
방금 한 말에 추호의 거짓이 없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보여줄 생각이었다.
“선조의 목을 꺾으셨다고 하니, 저는 사지를 찢어드리죠.”
자신이 역대 소수신마 중 최강임을!
***
무림맹이 절세고수들로 이뤄진 극악사도의 강시들과 격돌하는 중 무당파와 함께 남궁세가, 표국, 녹림 연합세력이 전장에 합류했다.
그들은 곧바로 남쪽에서 올라오는 사파연합의 측면을 들이받았다.
첫 일격으로 대흑련 무인 하나를 베어낸 남궁한이 소리쳤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한이 여기 있다!!”
남궁세가의 어린 직계혈족. 얼마 전 가문 모두의 수긍 아래 가주위에 오른 남궁한이 검을 치켜세우며 남궁세가의 존재를 알렸다.
현 무림에서 오대세가는 이미 그 이름이 무너졌다.
하북팽가는 북방요새가 무너지며 큰 손해를 봤고, 남궁세가는 도적연합에 본가를 빼앗겼으며, 모용세가는 멸문했다.
멀쩡한 세를 유지하는 세가는 사천당가와 제갈세가 단 둘뿐이다.
“아직 오대세가의 이름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마!”
오대세가라는 위명이 힘을 잃어가는 시기다.
남궁한의 외침은 황혼의 끝자락에서 있는 마지막 빛과 같았다.
“와하하하하! 말 잘했다!”
강시들과의 싸움에서는 제힘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사파와의 싸움으로 뛰어든 당천기 가주가 시작부터 만천화우를 펼치며 기세를 높였다.
“시답잖다!”
흑룡회주가 용형의 불길을 토해내며 그 암기의 비에 맞섰다.
이어 빠른 속도로 당천기 가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흥! 넌 이놈하고나 놀아라!”
당천기 가주가 코웃음을 치며 얄미울 정도로 절묘하게 몸을 뺐다.
그런 당천기 가주의 뒤편에서 흉악한 근육을 자랑하는 한 무리의 무인들이 소떼처럼 달려들었다.
“사나이이이이이이이!!”
불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호한들!
콰아아아앙!!
삼악도의 무인들을 이끌고 들이박는 경태세가 흑룡회주와 정면으로 격돌했다.
“배신자가아아아아!!”
“사나이 망신시키는 지렁이 새끼들이이이이이!!”
동황정련공(動荒精鍊功) 대 대력용왕공(大力龍王功).
사파의 하늘이라는 제육천의 수장들이 부딪쳐 힘을 겨룬다.
다른 한쪽에서는 공동파가 사파연합과 함께하는 점창파에 검을 겨눴다.
“구파의 명예를 저버린 것들!”
“멍청하기는. 얌전히 숨죽이고 있었으면 명맥만은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을. 쯧쯧쯧.”
과거의 찬란한 위세가 사라진 두 세력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서로에게 검을 겨눴다.
반면, 다른 곳과는 달리 치열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전장도 있었다.
“……그걸 버티고 있는 건가? 어떻게?”
사파연합에 합류해 조용히 뒤를 따르던 남만야수궁의 궁주는 앞을 막아선 이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슴에 검은 고치가 수천 갈래의 잔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물.
포달랍궁의 대라마가 남만야수궁 궁주의 물음에 대답했다.
“나무(南無).”
번뇌와 속진을 버리고 신명을 던져 돌아간다.
범어의 진언을 말하는 대라마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좋다 할 수 없었다.
전투를 벌이지 않았음에도 안색이 파리하다.
옷에는 말라붙은 땀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 자체가 의아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남만야수궁의 궁주는 부끄러움과 태생의 호전성을 동시에 느꼈다.
“편히 쉬도록 돕겠다, 전사여.”
“좋은 분을 안 좋은 자리에서 만났구려.”
남만야수궁의 궁주가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대라마 역시 서장 절학 대수인의 일장을 금빛 광채와 함께 뻗었다.
적으로, 아군으로 연청운과 인연이 닿았던 모든 것들.
무림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뒤엉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