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21
420화 구파의 죄
전장은 혼전으로 치달았다.
무림맹 절세고수들이 극악사도의 강시들과 격돌하고.
합류한 남궁세가, 표국, 녹림의 연합세력에 사천당가가 가세하여 사파연합과 부딪쳤다.
무림맹이 유리한 곳도 있지만, 불리하게 세가 돌아가는 곳도 있었다.
“헛배운 놈들이 많아. 회주의 방식이 제대로 통한 모양이야.”
신승 공료는 눈앞에서 이죽이는 자의 말에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구파의 피해가 컸다.
파훼식을 알고 있는 적의 공세에 구파 고수들은 당황했다.
강시를 파괴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살아있는 자의 목숨이 사라지는 소리가 더 많았다.
허점을 정확하게 찔러오는 파훼식에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속절없이 죽어갔다.
신승 공료는 문득 멸천회주라는 자가 외친 말 중 하나를 떠올렸다.
천리(天理).
함부로 말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하지만, 신승 공료는 이 자리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며 그 두 글자의 존재를 선명하게 느꼈다.
마치 모두에게 짝이 있다는 듯 맞물려 격전을 치르고 있다.
오랫동안 쌓여온 무림의 역사.
은원과 대립을 거듭하며 축적해온 그 장대한 세월이 형태를 갖춰 격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의 끝을 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신승 공료가 느끼기에 천리는 구파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구파의 죄가 크구나.’
보다 쉽게.
보다 빠르게.
힘들고 어려운 정도(正道)를 기피하고, 편한 길로 무력을 쌓고자 하는 생각을 품은 순간, 구파의 무공은 변질되고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멸천회의 수작이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단기간에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 같았다.
“뭐, 너는 좀 달라 보이네.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내 시대에도 이만큼 나와 겨룬 중대가리는 없었으니까.”
신승 공료의 앞에서 이죽이는 자는 가벼워 보이는 성품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분명 오래된 자일 텐데 젊은 청년처럼 군다.
강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표정이 자유롭다.
피부색 역시 사람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저 낯짝에 죽빵(계도)을 갈기면 메마른 검은 피가 아니라 산 사람의 붉은 피가 튀어 오를 것 같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강시다.
시대 운운하는 것을 보면 최소로 잡아도 백 년 이전의 전대 고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혈교의 교주였는가?”
“영리하군.”
킥킥대는 고대의 혈마가 자신의 손을 쓰윽 핥았다.
“늙은이 주제에 피 맛이 괜찮네. 묵었지만 맑고 정순해. 멍청할 정도로 정통파였구나?”
고대 혈마의 손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있었다.
반대로 신승 공료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신승 공료의 손은 금강석에 견줄 정도였지만, 고대 혈마는 이를 간단하게 깨부쉈다.
“금강파쇄공(金剛破碎功)이라 하지. 너처럼 우직하게 단련한 몸을 부수기 위해 만든 무공이야. 그분은 소림을 매우 싫어하셨거든. 무당도 싫어하셨지만. 어쨌든 윗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아랫사람의 당연한 소양이니 열심히 했다고.”
소림이 자랑하는 금강불괴를 깨기 위한 무공을 전문적으로 익혔다.
스스로의 몸을 무기로 하여 무공을 펼치는 소림 무승에게는 천적이라 해도 무방했다.
신승 공료가 현 소림 무공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소림 무승 중 이자를 상대할 자는 없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전투가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온 인과의 결판이 만들어지는 자리라면 이보다 더 어울리는 상대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막아야 한다.’
이자가 자유롭게 날뛰기 시작하면 얼마나 죽어 나갈지 짐작할 수 없다.
신승 공료는 성한 곳이 없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의 절초가 상대를 부수려 한다.
“안 통한대도?”
쾅! 콰쾅! 쾅! 쾅!
고대 혈마의 주먹이 굳건한 소림권에 정면으로 맞선다.
주먹이 격돌할 때마다 신승 공료의 상처가 벌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하얀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반면 고대 혈마의 기운은 갈수록 붉은빛이 짙어졌다.
혈맥을 온전히 수복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우직한 것도 매력적이긴 한데, 슬슬 질린다?”
고대 혈마의 기세가 강해졌다.
조금 전까지 망치였다면, 지금은 철퇴의 철추처럼 파괴력이 넘친다.
그런 고대 혈마를 향해 신승 공료의 우직한 두 손이 혼신의 일격을 뻗었다.
대력금강장.
소림을 대표하는 무공 중 하나를 쌍장으로 뻗어내 고대 혈마의 심장을 노렸다.
퍼걱!
생살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애석하게도 그 근원지는 고대 혈마의 가슴팍이 아니었다.
신승 공료의 두 손이었다.
고대 혈마의 손가락이 신승 공료의 손바닥을 꿰뚫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을 갈고리처럼 세워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우득!
“크윽!”
손의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쥐어짜인다.
손가락이 찢어진 천 조각처럼 대롱거리며 흔들렸다.
신승 공료의 손은 더 이상 손이라 부를 수 없는 살덩이가 되었다.
“만찬이구나!”
알 수 없는 힘이 고대 혈마의 손을 통해 신승 공료의 두 팔에 뿌리를 내렸다.
피가 상처를 통해 혈마에게 빨렸다.
“정말 고맙구나. 널 통째로 잡아먹으면 생전의 무위를 복구할 수 있겠어. 답례로 여기 있는 중대가리들을 모조리 죽여 네 시신을 장식해주마. 기대해도 좋아. 아주 예쁘게 장식해줄게.”
고대 혈마는 기쁘게 웃었다.
빠악!
신승 공료가 그런 혈마의 인중을 머리로 들이박았다.
완전히 일그러진 혈마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하하하! 그래, 그러고 보니 소림은 머리를 잘 썼지. 앞으론 잊지 않을게.”
우득!
고대 혈마가 움켜쥐고 있는 신승 공료의 두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쿠릉!
그때 뭔가가 움직였다.
땅 밑이 크게 꿈틀거렸다.
마치 땅 아래에 잠들어있던 거대한 생명체가 몸을 일으키는 듯했다.
용맥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지진을 일으키며 그 힘의 편린을 드러낸 용맥의 움직임이 지면을 뜯어내며 힘차게 분출되었다.
“대계가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었나 보네. 하하하! 이거 회주께서 좋아하시겠는…….”
“……주마.”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신승 공료가 입을 열었다.
“응?”
“……두 팔쯤이야 내주마!”
우득! 우드득!
신승 공료의 두 어깨에서 강렬한 파열음이 일었다.
부욱!
살이 찢기며 고대 혈마와 연결되어있던 신승 공료의 두 팔이 뜯겨나갔다.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지만, 신승 공료는 신음을 내지 않았다.
정공법으론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신승 공료는 이런 상황을 가정해두고 있었다.
그랬기에 곧바로 준비하고 있던 몸 안의 모든 기운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중토신공.
신승 공료가 얻은 중토신공은 연청운이 달마에게서 직접 전수받은 것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달마의 유진인 것은 분명했다.
그 힘이 신승 공료의 단전을 가득 채웠다.
그와 함께 돋아나는 여섯 개의 팔.
팔비신.
신승 공료의 무극.
등에서 네 개의 팔이 솟아나고, 팔이 뜯겨나간 자리에도 두 팔이 금색 빛을 발하며 돋아났다.
피와 살이 흐르는 두 팔이 뜯겨나갔기에 팔비신이란 이름도 무색해졌으나, 여섯 개의 주먹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 굳건한 힘을 담았다.
근접해있는 고대 혈마를 향해 신승 공료가 몸을 앞으로 뻗었다.
“이건 본 적이 없을 거다!”
신승 공료는 고대 혈마가 알지 못하는 무공을 펼쳤다.
연청운을 통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소림에 전해진 달마의 절기.
극강격.
피할 수 없는 근접거리에서 펼쳐진 공격이 산을 꿰뚫을 기세로 뻗었다!
퍼걱!
이번에야말로 고대 혈마의 가슴에서 뼈와 살이 뭉개지는 소리가 났다.
퍼걱! 퍼억! 푸욱! 퍼걱! 퍽!
다른 주먹들도 빈틈없이 고대 혈마의 몸을 꿰뚫었다.
“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게 이런 거…….”
퍼억! 퍽! 퍽!
뚫린 몸에서 검은 피를 쏟아내는 고대 혈마의 몸 위에 올라탄 신승 공료가 여섯 개의 주먹을 무차별적으로 내려쳤다.
다시는 회생하여 살아 돌아오지 못하도록 온몸을 뭉개버렸다.
소림을 위해서.
무림맹을 위해서.
“뒤를 부탁…….”
신승 공료의 의식도 거기까지였다.
모든 것을 쏟아낸 신승 공료가 뭉개진 고대 혈마의 흔적 위로 쓰러졌다.
***
땅이 갈라지고 속살을 드러낼 정도의 지진이다.
전장을 가로지르는 지진의 여파는 그 위에서 싸우는 이들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전장에 새로운 혼란이 얹어졌다.
힘은 하체에서 나온다.
무공을 펼치기 위한 모든 동작은 그를 지탱하는 하체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 기반을 받쳐줄 땅이 흔들리니 전투를 벌이던 전장의 흐름이 부산스러워졌다.
대흑련주는 흔들리는 상황에서 눈을 반짝였다.
‘기회다!’
대흑련주는 애초부터 극악사도를 경계했었다.
불안감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며 확신이 되었다.
아니, 확신을 넘어 공포심이 되어 마음을 잠식했다.
‘이것들은 미쳤어!’
머리 위에는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펼쳤고, 땅에서는 강시 같은 마물들이 날뛰고 있었다.
무림맹과 결전을 치르는 강시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대사도의 호언장담대로 무림맹과 자웅을 겨뤄볼 만한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흑련주는 공포에 오금이 저려왔다.
‘여기 있으면 죽어!’
대흑련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패한다면 무림맹 놈들의 손에 죽을 것이다.
설령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강시들의 밥이 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극악사도에 의해 저 같은 강시가 되거나.
어느 쪽이든 행복한 결말은 없었다.
‘개똥밭이라도 이승이 낫지.’
대흑련주는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도망칠 결심을 굳혔다.
미리 빼돌린 재물을 챙겨 새외 먼 곳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흑련주의 계획은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일그러졌다.
“컥!”
배후에서 목을 움켜쥔 손이 대흑련주를 단번에 제압했다.
“이래서 눈치 빠른 놈은 귀찮다니까.”
대흑련주는 목으로 서늘한 기운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서늘한 기운은 곧 칼날처럼 예리하게 대흑련주의 목 안쪽을 훑었다.
동시에 무언가 내부에서 뚝! 하고 잘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뒤늦게 대사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대흑련주는 목이 매달린 사람처럼 축 늘어진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 신겨…ㅇ……,”
뇌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신경들이 모조리 끊어졌다.
몸을 통제할 수 있는 선이 모조리 사라진 이상 대흑련주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혼전 중이라 다행이야. 흑룡회주가 보았다면 분명 귀찮아졌을 거거든.”
대사도는 먼 곳을 보며 이죽였다.
흑룡회주는 삼악도의 대장 경태세와 누구 머리가 더 단단한지 알아보려는 듯 무식한 싸움에 정신이 없었다.
저항할 수 없는 대흑련주의 몸을 챙긴 대사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가 대흑련을 참 좋아한다네. 자네들은 편하게 영약으로 내공을 증진시킨 경우가 많아서 핏속에 영양분이 참 많거든.”
“너… 너ㅇ…ㅓ…….”
이이 대흑련의 무인으로 뭔가 수작을 벌여본 적이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대흑련주는 대사도의 그런 말과 행동에서 바로 알아차렸다.
이자들에게 이런 짓은 밥 먹듯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것을.
목이 제압당해 한마디 말을 꺼내는 것도 힘든 와중에 대흑련주는 모든 힘을 모아 대사도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너도… 이용… 죽게… 되…ㄹ…….”
“대사도인 내게 태산부군의 화신이 내리는 명은 곧 복음이며, 신을 따르는 죽음은 곧 안식일지니.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세.”
최후의 배려라는 듯 차분히 말하는 대사도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
“자네의 피라면 내 최고 역작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네. 기대하게.”
대사도가 전장에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