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4
43화 또라이가 검을 들면 사고가 터지는 법이다
사부님들이 시키는 길로 가 보니 시작부터 가파른, 그냥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이 있었다.
여길 올라가라는 건가?
[올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밟을 만한 곳이 많다.]“아, 예.”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왜 화산파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인지 이해가 되었다.
사람이 다닐 길이 아니다.
[능운금광보라면 문제없다.] [제대로 펼치기만 한다면야 천하 어디든 제 앞마당처럼 다닐 수 있는 경신법이니라.] [뚝딱 만든 것치곤 끝내주게 잘 나왔지. 이야, 그런 대박이 툭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어서 펼쳐 보거라.]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부님들이지만 막상 이 절벽을 보니 뭔가 암담함이 밀려온다.
괜히 내기를 걸었나.
“응?”
속는 셈 치고 일단 저질러 보자는 생각으로 절벽에 올라서는 순간, 기묘한 감각이 하체에 감도는 것을 느꼈다.
능운금광보의 구결을 통해 내기를 운용하니 발이 살짝 가라앉는 느낌이다. 단단한 바위를 밟았는데, 질퍽한 진흙을 밟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발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화산 바위 특유의 특성이 아니라, 발에 닿아오는 감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라?”
질퍽하다는 것은 발을 디딘 힘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시험해 보듯 절벽을 향해 발을 굴렀다.
몸이 위쪽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이게?”
분명 발을 박차고 나가는 방향은 비스듬한 사선이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타고 올라가니 몸은 절벽과 점차 멀어져야 옳다. 당연히 튕겨 나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절벽을 평지처럼 뛰어 올라가고 있다.
황당한 현실에 나는 잠시 두 발을 멈췄다.
당연히 그대로 떨어져야 한다.
“뭐예요, 이거?”
[말했잖느냐. 제대로 만들었다고.]“경공이란 게 제대로 만들면 발바닥에 빨판 같은 것도 생겨요?”
하지만 나는 절벽에 수평으로 서 있다. 누군가가 옆으로 누운 채 본다면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스스로 펼치고 있는 무공임에도 어이가 가출할 것 같았다.
[빨판은 무슨. 동화(同化)라고 해라. 말을 해도 참.]“동화요?”
서로 다른 것이 닮아 같게 된다.
피가 흐르는 살덩이가 갑자기 돌로 변하기라도 했다는 소린가?
이해가 안 된다.
내 속내를 헤아리셨는지 달마 사부가 설명해 주셨다.
[경신법의 하수는 단순한 각력에 치중한다. 다리의 힘만으로 박차는 것이지. 중수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몸을 가볍게 만든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몸을 올릴 수 있을 만큼 가볍게 만들어 강한 각력을 구사해 움직인다.]“이거는요?”
[그게 상수지. 동화의 법이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 법을 깨우치는 게 그 경지의 시작이라 할 수 있지. 바람이 있으면 바람의 도움을 받고, 발 디딜 곳이 여의치 않으면 공기와 하나 되어 박차고 나갈 기반을 빌린다. 세상에 존재하는 기운에 자신을 싣는 것이다.]“그게 배우자마자 되는 거예요?”
[보통은 안 되는 게 당연하지. 그게 배우자마자 되는 거면 개나 소나 다 날아다니게? 너니까 되는 거다. 궁금하다고 남들에게 그런 거 물어보지 마라. 칼침 맞는다.]장삼풍 사부가 어이없다는 듯 말씀하셨다.
하긴, 이게 배우자마자 되는 거면 다들 편하게 하늘을 날아다녔겠지. 뭐 하러 힘들게 땅을 달리겠어…….
응?
“……날아요?”
[경신법의 경지가 높은 놈이 날아다니는 게 이상한 일이냐?]“사람이 날아다닌다고 하면 이상한 게 맞겠죠?”
[그거야 일반 사람들 이야기고. 애초에 무림인은 일반 사람들에게 괴력난신이나 다름없다. 일반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그렇게 말하니 또 맞는 말 같다. 뭔가 상식이란 것이 갈려 나가는 기분이다.
[천지간의 기운이 한데 묶여 있지 않고 거대한 흐름을 이루고 움직인다는 것을 깨우치면 언젠가 그 흐름에도 몸을 싣는 법을 깨우치게 될 게다. 거기에 다다르면 진정한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의 경지에 이르렀다 볼 수 있단다.] [능공천상제는 무슨. 그냥 허공답보(虛空踏步)라고 해. 헷갈리니까 소림에서만 쓰는 말은 하지 말라고.] [허허.]그냥 그러려니 해야겠다.
상식은 저 멀리 박아 놨다가 입 심심할 때 쌈이나 싸 먹는 거로 하고.
어쨌거나 당장 눈앞에 현실(내기)이 우선이다.
나는 이 절벽을 오를 수 있다.
“핫하하!”
발을 박차고 나갈 때마다, 몸이 수직으로 쭉쭉 뻗어 오른다. 평지를 달리는 것 같다. 아니, 더 빠르다.
능운금광보. 무공 이름 속에 빛 광자가 들어 있는 이유가 괜한 것이 아니다.
[빠르지? 성취를 올리면 십 장 간격이 코앞처럼 느껴질 거다.] [기본적으로 제운종과 금강부동신법은 정중동(靜中動)의 묘리가 있느니라. 고요함 가운데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쓰고자 한다면 보법으로도 쓸 수 있으니, 능운금광보가 경지에 다다르면 너를 상대하는 적들은 허깨비를 대하는 느낌일 게다. 갑자기 눈앞으로 소리 없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니.]사부님들의 설명이 줄줄이 이어진다.
말이 이어질수록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헌데 거기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후아!”
숨이 차갑다. 갑자기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흥에 겨워 절벽을 빠르게 뛰어올랐더니 어느새 구름 속으로 들어섰다. 이미 바닥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곳에서 정신이 흐트러졌다.
[무림인이라도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시체도 온전히 남지 않을 거다. 낙사로 죽으면 충격으로 뼈란 뼈가 다 부서져 몸 밖으로 튀어나온다지?]예! 제자의 상식을 넓혀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장삼풍 사부!
‘다만 꼭대기까지 다 올라간 다음에 말씀해 주셨으면 더 감사했을 텐데 말이죠!’
정신이 번쩍 든다.
잠깐이라도 정신줄을 놓아 떨어지면, 그날이 천상의 사부님들께 문안 인사하러 가는 날일 거다.
아, 부모님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질렀으니 지옥에서 천마 사부부터 뵙게 되려나?
“흡!”
그 꼴은 못 보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정신을 다잡고 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오늘따라 자욱하게 끼어 있는 구름을 찢고 올라가는 순간 나는 보았다.
“악! 뭐냐? 귀신이냐?”
화산파 제자로 보이는 분을.
나이가 꽤나 지긋해 보이는 분인데 나를 보고 굉장히 놀라는 중이다.
나 역시도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다.
[쟤는 왜 이런 곳에서 바지 끈에 손이 가 있냐?] [그러고 보니 우리 제자 머리가 좀 축축해 보이…… 아니다. 구름을 뚫고 와서 그런 거겠지. 허허.]“……사족이란 말 아십니까, 사부님들?”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저게 전인가, 후인가 같은 건.
그런데 보통 이런 곳에서 자연적인 생리 행위 같은 건 안 하지 않나?
나이도 지긋해 보이시는 분이 체면 떨어지게.
“흐음.”
내가 발을 편히 디딜 수 있는 곳에 올라섰을 즘 저쪽에서 바지 끈을 추스르시는 나이 지긋한 노도인도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상황 파악에 들어갔는지 머리 굴리는 소리를 입으로 내신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침음을 흘리며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시간이 길더라니. 뭔가 많이 초현실적인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가 아니라, 있겠구나. 사부님들을 생각하면 있긴 있겠어.
그렇다 하더라도 산 사람보고 귀신이냐니.
“보다시피 엄연한 사람입니다만.”
“사람 새끼가 왜 그런 곳으로 기어 올라와?”
“그럼 귀신은 저쪽에서 자주 올라옵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이런 건 처음 봤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이 노도인 역시 처음 본다는 것 같다.
“흐음…….”
그렇게 노도인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채앵.
검을 뽑으셨다.
“약관도 안 되어 보이는 게 저기에서 올라온 거면 사람은 아니겠지.”
“저기요?”
“찔러 봐서 피가 안 나오면 귀신. 나오면 사람.”
뭘 찔러?
“저 사람이라니까요?”
“걱정하지 마라. 살살 찔러 줄게.”
저거 불한당들이 하는 ‘살살 털어 줄게’랑 비슷한 말로 들리는데.
“살살 찔러도 위험한 곳에 찔리면 죽지 않겠습니까?”
“응?”
타당한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노도인이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그리곤 다시 고민하곤.
“피가 안 나오면 귀신. 안 나오면 귀신.”
“피 나오면 사람, 얻다 팔아먹었어!”
“걱정 말래도. 살살 찌른다니까.”
“내 얘길 듣지 않는군요.”
할아버지 덕에 노인 공경 사상이 투철한 나지만 이 노도인은 선을 넘었다.
그렇다고 해도.
‘못 이겨.’
저 노도인이 검을 드는 순간 알았다.
이건 안 된다.
사지를 찍어 누르며 덮쳐오는 압박감. 평생 화산에서 검을 닦아 온 자의 기세는 그 자체로 흉기나 다름이 없었다.
장삼풍 사부에게 배운 청경을 통해서, 그리고 천마 사부에게 배운 공과 허의 이치를 통해 읽혀지는 감각이 보다 분명하게 그 본질을 파고들어 적나라하게 읽어냈다.
평생 화산에서 정진했을 노도인의 검은 아직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제자가 이렇게 사부님들 뵈러 갑니다.”
[오긴 뭘 와. 정신 안 차릴래?]“예?”
[네가 지금 필요한 게 저 얼간이를 때려눕히는 거냐? 아니면 일단 저 검을 피하는 거냐?]싸워 이긴다?
무리다.
하지만 피하는 거라면?
[다 가르쳐 줬잖아. 이 사부가 말했을 텐데? 무척 잘 만들었다고. 나나 달마 이놈이 잘 만들었다고 한 무공이 어느 정도일 것 같냐?]끝장나게 완벽한 무공이란 뜻이다. 달마 사부의 경우 그 무지막지한 무공인 극강격조차 미진하다며 일천 번을 다듬었다고 하셨다.
나는 바로 사지를 짓눌러 오는 압박감에 흐트러졌던 정신을 다잡았다.
‘집중!’
장삼풍 사부의 청경으로 읽고.
천마 사부의 공(空)으로 살핀다.
달마 사부의 중토신공. 단련된 육신이 반응하여 움직인다.
그 사이를 덮쳐오는 일검.
사악!
피했다.
가까스로. 종이 한 장 차이로.
정말 간신히 피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증명은 됐다.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튀엇!”
“하하하하! 이 자부가 다 늙은 말년에 귀신을 베어 물리쳤다는 명성을 사해무림에 떨칠 수 있겠구나!”
찌른다며!
바로 딴죽을 걸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무조건 튀고 피하자는 내 뒤를, 스스로를 자부라 밝힌 한 노도인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
“내기는 네가 이긴 것 같구나.”
“제가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였죠.”
내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허진인의 말에 백무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하지만 백무호는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녀석이 언제 어디서 어떤 짓으로든 판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녀석이라는 점이거든요. 내기까지 걸려 있으면 더 할 녀석이고.”
그래서 누가 먼저 화산파에 당도하느냐는 내기를 했을 때, 백무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최단 경로로 움직였다.
자허진인을 비롯한 화산파 제자들이 오르는 길이다.
경공에 능한 사람들이나 갈 수 있는 길이라 발 디딜 곳이 적다 보니 한 사람씩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에 대기하고 있던 화산파 제자들을 새치기까지 하며 올랐다. 이미 승자는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무호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응?”
“뭔가 소란이…….”
그런 백무호와 자허진인 그리고 화산파 제자들은 화산파에 가까워질 때쯤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허어…….”
알 수 없는 기기묘묘한 움직임으로 화산파 장로의 검을 피하고 있는, 모든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농락하는(그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내기의 승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