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59
58화 별호가 생겼다?
이번 한산월 아주머니와의 비무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결과가 좋았다.
냉기에 자극을 받은 땅의 힘들이 각성했고, 그 결과 중토신공이 삼단공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가 충분한 준비를 갖춰 놓았기도 했지만, 그 결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격발의 계기는 한산월 아주머니의 음한지기였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어렵네요.”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고 했던가.
복이 와서 좋아라 했더니, 당연하다는 듯 화도 따라붙었다.
중토신공 삼단공을 이루며 큰 약진을 거두었으나, 덕분에 삼재일기공은 더욱 난해해졌다.
다양한 힘을 하나로 혼합해야 하는 난해한 무공이다. 헌데 크게 성장한 중토신공으로 인해 과할 정도로 기운이 불균형해져 가뜩이나 난해한 난이도를 한층 더 높여 놓았다.
요 며칠 고생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세상만사가 다 잘 풀릴 수만 있겠느냐. 마음을 너무 조급하게 먹지 말거라.]달마 사부가 다독이듯 말씀하셨다.
다만.
[쳇.]장삼풍 사부는 노골적으로 투덜거리시는 중이시다. 완전히 삐치셨다.
달마 사부가 가르친 무공은 막힘없이 쭉쭉 성장하고 있는데, 장삼풍 사부가 내려준 회심의 무공은 성취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니 저러시는 것도 이해는 된다. 되기는 한데.
‘쳇이라니. 애도 아니시고.’
[그래도 너, 그 계집아이랑 붙을 때 마지막엔 꽤 잘 써먹었잖아.]“그러긴…… 했죠?”
장삼풍 사부가 계집아이라고 하는 말에서 잠깐이지만 누굴 말하는 건지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괜한 생각 하나가 들긴 하지만 고이 접어 둔 나는 장삼풍 사부의 닦달에 다시 한번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으음…….”
장삼풍 사부 말대로 한산월 아주머니랑 격돌하는 순간에 분명 나는 삼재일기공을 펼쳤다. 그렇게 모은 힘으로 단번에 중토신공 삼단공까지 성취를 끌어올렸다.
사실 요 며칠 이렇게 쌩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그때 느꼈던 감각을 잘 살려 보면 삼재일기공의 성취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때 성공했던 감각을 재현하려 한 탓에 더욱 꼬여 버린 느낌이다.
[땅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진 탓이면, 목기를 충당시키는 것으로 눌러 보면 되려나?] [목기(木氣)라……. 불리는 거야 신진철로 쇠의 신력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벽조목(霹棗木)으로 키울 수 있을 것 같네만, 근간이 되어 줄 만한 신력이 지금 지상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구먼.] [적당히 팽후나 도올 새끼 놈 찾아서 던져 주면 되지 않겠어? 아니면 남해용왕 자식 놈 중 하나 꺼내와 볼까? 아무래도 저놈 저거 목숨이 경각에 다다르면 한계를 뛰어넘는 체질 같은데.]중간중간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오갔다. 산해경에 나오는 괴물들 이야기에, 용왕이라니. 이 무슨…….
다른 사람들이 한 이야기라면 허무맹랑한 농담으로 취급했겠지만, 신선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보니 현실성이 넘쳐났다.
게다가 나는 이미 신의 영역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영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본 적이 있다.
‘숭산에서 마주쳤던 금모후 같은 녀석이 적으로 나온다고 한다면…….’
순식간에 끔살이다.
“……혹여 지상의 영물들에게 소식 같은 걸 전할 수 있다면 말 좀 전해 주십쇼. 저 같은 거 배 속에 넣었다간 배탈 나기 십상이니 식욕이 당기더라도 다른 거 먹으라고요.”
[쳇.]“…….”
‘거기서 왜 쳇이 나옵니까?’
역시 제대로 삐치셨다. 한시라도 빨리 장삼풍 사부의 기분을 풀어드릴 방법을 찾아야겠다.
제일 좋은 방법은 삼재일기공의 성취를 보이는 것인데…….
‘그게 잘 풀리는 거였으면 애초에 문제가 없었지.’
문제의 원인과 해결이 동일하다.
제일 암담한 상황이다.
“집에 틀어박혀서 수련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문제가 아닌 건가. 흐음…….”
시간을 들여 계속 매달리다 보면 언젠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대략 몇 년 뒤쯤?
사실 삼재일기공 정도 되는 무공을 수년 만에 터득한다면 느리다 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만히 처박혀 있는 모습만 보여 드린다면 어떨까?
‘지루해하시겠지.’
아마도 특별한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손을 떼실지도 모른다.
사부님들도 나름 천상에서 바쁘신 분들인데 그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나와 함께해 주시는 거니까.
너무 나간 생각이긴 하지만, 나름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사부님들 입장에서도 이 연결은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하셨다.
과연 이 연결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으음……. 음?”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가운데,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숙이고 있던 고개를 곧게 세웠다.
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인기척이었기 때문이다.
“한숨 소리가 깊구나. 무슨 일이 있느냐?”
“하하……. 아뇨. 한동안 밖을 돌아다니다 돌아와서 그런지 방안에만 있는 게 좀 답답해서요.”
할아버지의 물음에 적당한 이유를 붙여 둘러댔다.
그런데 방안으로 들어온 할아버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래? 하기야, 어려 몸집은 작아도 하늘을 누비는 천룡이 좁은 방안에만 머물고 있으니 답답하게 느낄 만도 하겠지.”
“예?”
‘뭔 소리?’
할아버지 감성이 이런 쪽이셨나 싶을 정도다.
천룡이 좁은 방안에 머물고 있다니?
[아하.] [하늘(天)에 용(龍)이라……. 그만큼 무림이 네 존재에 대해 꽤 깊은 주목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사부님들은 뭔가 이해한 듯 이야기를 주고받으셨다.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먼저 말을 꺼내셨다.
“숭산과 화산에서 활약한 후기지수가 너라 하지 않았더냐.”
“예, 그렇긴 한데…….”
“사람들이 너를 소천룡(小天龍)이라 부르는 모양이구나.”
사부님들이 바로 해설을 해 주셨다.
[원래 후기지수 중 좀 뛰어나다 싶은 녀석 별호에는 용(龍)자가 들어가. 남자는 용이고, 여자는 봉(鳳)이지.] [천(天)은 정점,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이다. 아마 그 별호를 만들어 퍼트린 이는 네가 또래 후기지수 중 으뜸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겠지. 그렇다고 천룡이라 하면 너무 지나친 무게가 생기니 후기지수에 맞게 소(小) 자가 들어간 것이고.]무림에서 불리는 별호 중 몇몇 개의 글자는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왕(王), 제(帝), 황(皇) 같은 단어들이 그것들이다.
마찬가지로 용(龍), 봉(鳳)이나 천(天) 자 역시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내 별호가 소천룡이 됐다는 거다.
어린 하늘의 용이 언젠가 다 자랐을 때 하늘 위에서 땅을 오시하며 신령한 위엄과 눈으로 온 세상을 굽어볼 것이란 의미로.
“뭔가 되게 유치하게 들리는데요.”
“가장 좋다는 건, 어찌 보면 가장 치우쳐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테니. 네가 유치하다고 느끼는 일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구나.”
언제나처럼 할아버지의 말에는 깊이가 있었다.
거창한 칭호에 낯부끄러워하던 내 감정의 동요도 그 앞에서 천천히 잦아들었다.
그런 나를 향해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부탁할 게 하나 있었는데, 네 마음이 그렇다니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차분해진 내 감정만큼이나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곧은 눈에, 허리를 펴며 진지한 자세를 취했다.
‘중요한 일이구나.’
할아버지가 나를 대할 때는 보통 따스한 감정을 담으신다. 그럴 땐 딱딱할 때라도 일말의 온기가 느껴진다.
허나 그저 곧고 곧게 느껴질 때는 다르다.
관리일 때의 할아버지다.
허나 할아버지는 이미 예전에 관직에서 내려오신 분이시다.
‘가족의 일이 아니라는 거지.’
첫 무림행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할아버지는 세상 밖의 소문에 귀를 열어두고 계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즉, 무언가 세상과 연결된 연결고리가 있다는 의미다.
아마도 그 부분에 대해서 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내게 할아버지가 한 사람에 대해 물으셨다.
“취죽 선생을 기억하느냐?”
***
할아버지가 맡기신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서신 하나를 취죽 선생에게 전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다만, 전달해야 하는 양반이 보통이 아니랄까.
“지금도 꼬장꼬장하겠지?”
[골치 아픈 사람이냐?]“좀…… 그렇죠?”
[그래? 어느 정도이길래?]장삼풍 사부가 관심을 보이셨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자 곧 그 양반의 일화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워낙 대쪽 같은 사람이라 대나무에 비유해서 본래는 청죽 선생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나무는 비취색인데 왜 대나무를 푸른색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며 아는 사람들 모두를 설득해서 청죽 선생이 아니라 취죽 선생이라 부르게 했다고 했다더군요.”
[……그거참 신박한 또라이 새낀데?] [허허.]어느 의미로 감탄한 장삼풍 사부가 그렇게 말하셨다. 달마 사부도 사연을 듣고 재미있는지 웃음을 지으셨다.
일화 그대로 대쪽 같은 사람이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지방으로 좌천되긴 했으나 할아버지와는 달리 아직 관직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표국이나 관아의 연통을 거치지 않고 전해야 하는 서신이라…….”
생각보다 큰일일지도 모르겠다.
내용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내용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당부를 하실 분은 아니니 그 말에 충실히 따르고는 있지만, 그래서 더욱 이 서신이 무겁게 느껴졌다.
잠깐 꺼내든 그 서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다시 품에 넣고 뒤를 돌아봤다.
“청우와 아버지,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다독여 주기로 했으니 맡겨 둔다 치고.”
조용히 갔다 올 생각이라 굳이 인사를 올리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이놈을 데려가야 하나?”
혼자 떠날까 싶다가 백무호에게 생각이 미친 나는 잠시 고민을 해 봐야 했다.
한산월 아주머니는 내가 무호와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아직 온전하게 신뢰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생각하냐?”
그러자 길옆에서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데려가야지, 망할 자식아.”
기다렸다는 듯 길옆 수풀에서 백무호가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여행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 차림이다.
“어떻게 알고 그걸 다 준비했냐?”
“뭔가 느낌이 팍! 와서?”
“구라는 그만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요 며칠 삼재일기공을 터득해 보겠다고 가족과도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이 녀석도 그걸 신경 써서 한동안 우리 집에 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뭔 느낌이 어떻게 와야 이렇게 완벽하게 여행 준비를 하고 대기할 수 있겠는가.
“넌 역시 날 잘 알아.”
내 취조에 백무호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 의뢰하셨어.”
“할아버지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표국이나 관아의 연통을 거치지 않기 위해 내게 부탁하셨다. 그런데 백가표국에 의뢰를 하셨다고?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백무호가 바로 답했다.
“비공식 안내 의뢰야.”
“뭔 소리야, 그건?”
“즉, 내가 할 일은 네가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지. 네가 옮기는 물품에 대해서는 관여하지도 못하고, 책임도 없어.”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젊은 놈 둘이서 다시 무림행을 떠나는 모습일 뿐이다.
한 번 무림행을 했다지만 그래도 아직 여행이 초보인 나를 위해 할아버지가 배려해 주신 것이다. 정말 대단한 수완이시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주머니가 싫어하지 않으시던?”
“어머니들이 다 그렇지 뭘.”
내 걱정에 백무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감당해야 할 사람이 나니까 문제지, 이 자식아.’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울컥한 마음에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지만 이 말 역시 입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백무호가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 보기보다 엄청 감정이 풍부하셔. 외가 쪽이 좀 사연이 깊은 곳이라 그런지 맺고 끊는 것도 잘 못 하시고. 누나도 그런 기질이 있긴 하지만, 너랑 어울린 게 있어서 좀 덜한 편이야. 어머니는 좀 더 심하다고 할까. 아마 어머니 뜻대로만 하다간 환갑이 될 때까지도 애지중지 길러지는 꼴을 보게 될걸?”
“속 썩이는 아들놈의 전형이 여기 있구만.”
“뭐, 적어도 이번 일에 대한 감당은 아버지가 해주실 테니까.”
백무호가 낄낄거리며 답했다.
그렇다면 그 배려를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다.
“……나도 혼자 가는 건 별로였으니까.”
“응? 뭐 말했냐?”
“못 들었으면 됐다,”
생각 없이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못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백무호가 나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재차 물어왔다.
“솔직히 말해 봐. 내 욕했지? 방금 중얼거린 거 나 씹은 거지?”
“이제 알았냐? 하하하!”
그런 백무호를 보며 나는 시원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