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
5화 집으로 가는 길
무당파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산했으니, 기분이야 당연히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를 탓하고, 그 탓하는 것에 발목이 잡혀 뒤만 바라보고 살아 봐야 남는 것은 없다.
무당파에 대한 원망으로 낭비할 시간은 눈곱만큼도 없다.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무당파에서 자신을 쫓아낸 걸 후회할 만큼 성장한다.
당장 눈앞의 목표를 정한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라.’
계속 무당파의 속가제자로 남아 있었다면 여러 가지 제약과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배우는 무공만 해도 속가제자라는 위치상 가려야 할 게 많았는데,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간다면 지금 이상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 만약 상급무공 배운 것을 누군가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어디에서 이걸 배웠나?’
‘장삼풍 조사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미친놈이구나!’
말 그대로 난리가 나는 거다.
허나 지금은 무당파에서 쫓겨난 몸이다. 더 이상 무공을 배우는 데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이제 잘 받아먹기만 하면 되겠는데.’
무공이야 장삼풍 사부가 알아서 잘 가르쳐 줄 것이니 자신은 예쁘게 받아먹기만 해도 쭉쭉 성장할 수 있을 거다.
그 예쁘게 받아먹는 걸 못해서 빌빌거리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과연 장삼풍 사부의 가르침을 받아먹을 재능이 있는가.
요 얼마간은 잘 배운 것 같기는 하지만, 무작정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기에는 무당파에서 빌빌대던 모습이 발목을 잡는다. 장삼풍 사부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해 실망을 안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음?”
돌연 단전에서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위로 올라가며 심장과 머릿속을 감돌았다.
청명심법의 호흡이 마음을 다독였다.
신묘한 공능이었다.
장삼풍 사부가 지나가듯 이야기한 ‘상천지극력’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공능 하나만 봐도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신선의 경지에 오른 이가 전한 무공답다고 할까.
다음 가르쳐 줄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무공일지 기대감이 생길 정도다.
그런 가운데.
[청명심법이라. 게다가 근골을 보아하니, 도제비공(道製秘功)을 바탕으로 역근(易筋)을 섞고, 천축유가술(天竺柔加術)을 더했는가……. 참으로 무식하게 때려 박았도다. 어떤 재목이기에 이만큼 광대한 기초를 다지는고.]갑자기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도다? 고?’
어째 들려오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평소의 것이 아닌데?
좀 더 근엄한 느낌이랄까?
‘집에 돌아가면 제대로 가르치신다더니, 이제 근엄한 언행으로 나가시려는 건가? 그보다, 귀향하는 사이에는 잠시 볼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울 것 같다더니 빨리 오셨네?’
“말투가 너무 달라지신 것 같은데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들리니까 대화를 하고 있는 거겠죠?”
[오호?]뭐지, 이 기시감은?
이전에도 저런 반응을 보이시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오는 반응을 듣고 있자니 처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놀리시나?’
“얼마 전에 무당파에서 쫓겨난 상황인 거 잘 아시면서 자꾸 그러시면…….”
[오호!]신선들도 치매가 오나?
뭡니까, 그 심 봤다는 반응은?
“놀리시는 거 맞네.”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무당파에서 쫓겨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좋지 못한 결과를 가족들에게 전하러 가야 하는 것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이다. 사부가 되어주시겠다는 분이 그런 걸 두고 놀리듯 말씀하시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럼 내가 무공 하나 가르쳐 주랴?]“사부님의 큰 뜻을 제가 몰라봤습니다.”
놀리셔도 됩니다. 아무렴요.
청명심법 같은 무공을 하나 더 가르쳐 준다고 하면, 이 정도야 뭐.
따지고 보면 이 정도 놀림이야 무당파 속가제자 시절 윤시후 그 개자식에게 당하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도당주 그 양반에 비하면 더 더 더 아무것도 아니고.
[사부라 불러 주니 나도 참 좋구나.]어째 반응이나 목소리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사부에게 이런 마음을 품는 것도 불경일 거다.
아무렴 사부님이신데.
[한 번에 다 외우지 못하더라도 여러 번 들려줄 것이니 천천히 듣거라.]무당파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 상황이다. 당연히 현재 위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다. 뜬금없는 무공 강의에 당황했지만, 가르침을 받는데 장소가 어디든 무슨 상관일까.
일단 길 밖에 있는 그럴싸한 큰 바위 하나를 찾아 올라갔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어 앉을 때쯤 나직한 목소리의 구결이 이어졌다.
구결을 듣고 그 구결에 맞춰 호흡을 다스리자 청명심법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그 호흡이 일으키는 몸 안의 변화를 느꼈다.
욱씬!
‘윽!’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리 한가운데, 정수리 부근에서 잠깐 두통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두통은 금방 사라졌다.
나는 순간 지나가는 두통보다 그다음 이어지는 변화에 주목했다.
몸 가운데를 중심으로 뻗어나는 어떤 변화가 감각에 잡혔다.
‘묘하다.’
구결은 글자가 아닌 것 같았다. 들려오는 소리가 몸에 닿았을 때 그것은 물에 녹는 소금처럼 몸 안에서 피와 살이 되어 녹아들었다.
소리라는 글자가 피와 살에 녹아들어 뼈에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아가는 호흡의 기운이 온몸의 뼈를 중심으로 뻗어나갔다.
뼈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혈맥의 흐름 속에 그 구결이 존재했다.
그 구결이 기둥을 세우고 기틀을 틀었다.
세상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굳건한 대지의 기초처럼!
토정. 땅의 정수.
청명심법이 물처럼 청량하게 마음을 맑게 씻어 주었다면, 토정공은 몸 안에 단단하고 굳건한 중심을 세워 주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힘껏 뛰어놀아도 투정 없이 다 받아주는 대지처럼.
“어울리는 무공이네요.”
[그러하냐?]“예. 뭔가 몸 안에 단단한 중심이 세워지는 것 같았거든요.”
[호오?]아까 놀릴 때 ‘오호?’, ‘오호!’ 거리더니 이번에는 ‘호오?’다.
사부에게 잠깐 사이 묘한 말버릇이 생긴 것 같다.
[단번에 본질을 알아본다? 과연 머리가 열려 있는 재목답구나. 왜 이만한 기초를 다지고 있는지 알겠다.]“예?”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반문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지?”
이상하다 싶은 걸 넘어 이제는 뜻 모를 말을 던지고 가신다.
머리가 열려 있다니?
자신도 모르게 손이 머리를 매만졌다.
“벗겨졌단 말은 분명 아닌데?”
아직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민감한 내용이다.
풍성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만져보다 일어서니 다리에 제법 힘이 들어갔다.
걸음을 계속할 시간이다.
아직 집이 멀다.
***
고향인 삼양현은 도시라 할 만큼 큰 곳이 아니다.
마을이라 하긴 크고, 도시라 부르기엔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는 정도.
그런 곳에서도 연청운의 집안은 현에서 제일가는 가문도 아니었다.
출사한 할아버지가 입신양명하여 가문의 격을 높이긴 했으나 탐욕스러운 성정이 아니라 재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적당히 가지고 있는 재산을 까먹지 않는 수준에서 자급자족하는 정도. 출사했던 할아버지가 만든 여러 인맥들을 빼면 그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적당한 가문.
그 정도가 우리 가문이 지닌 위치였다.
당연히.
“저 왔어요.”
“아이고! 이 녀석아!”
삼양현에서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귀향을 반겨 줄 사람은 가족들 정도였다.
내 귀향은 가문에서는 시끄럽게, 하지만 삼양현 자체에서는 싱겁고 조용하게 끝났다.
우리 가문이 가난하다는 건 아니다. 나름 벼슬을 지낸 집안이고, 가문에 매여 있는 땅도 제법 있어서 손에 흙 안 묻히고 살아도 배고플 일 없는 그런 집안 정도는 된다.
당연히 가문에 매여 있는 십여 명 정도의 식솔들도 있다.
그런 식솔들을 제외하고 가문 내에 있는 가족들을 살펴보자면 크게 네 사람이 있었다.
“뭐, 무인이 되겠다고 나선 녀석이 사지 멀쩡히 돌아왔으니. 그 정도면 잘 돌아왔다.”
아버지 연경응. 약간 무뚝뚝하면서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계신 분. 보통 가문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어른.
……인 척하시는 분이다.
어디 나간다고 하면 무심하고 간략하게 알았다고 하면서 슬쩍 용돈을 넣어 주시는 분이다.
앞으로는 있는 무게, 없는 무게 다 잡으면서 신경 안 쓰는 척하지만, 눈동자는 열심히 움직이면서 내 온몸을 훑고 계시다. 눈 건강이 심각하게 염려됐다.
“면목 없습니다, 아버지.”
“됐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무당파가 모자란 것뿐이지.”
덤덤하게 말씀하시지만 말아 쥔 주먹을 부르르 떨고 계신다. 성정을 고려하면 조만간 혼자 독작으로 술 좀 찾으실 것 같다.
“이 녀석아! 아이고! 이 녀석아!”
그리고 대면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주기적으로 등짝을 후려갈기고 계신 이분은 어머니시다.
어머니 한숙희.
보다시피 전형적인 어머니셨다.
자신 걱정보다 자식 걱정을 더 많이 하시는.
밥 먹을 때도 야채 좀 많이 챙겨 먹으라고 하면서도 고기반찬이 있으면 자기보다 자식 앞에 내미시는.
지금도 자꾸 내 등을 두들기며 속상해하신다.
“하하.”
그런 어머니를 향해 나는 서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형아아아아.”
슬슬 어머니가 등짝을 때리던 손을 멈출 때쯤 작은 체구의 아이가 도도거리는 발걸음으로 달려와 폭 안겼다.
폴짝 뛰어 내 몸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부비 비비는 게 퍽 귀여워 보이는 어린 소년.
“여덟 살이나 된 녀석이, 여전히 혀가 짧구나.”
“에헤.”
그제야 내 몸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위로 들고는 헤프게 웃었다. 크고 동그란 눈이 부드럽게 휘며 한층 더 귀엽게 웃는다.
동생 연청우.
유독 큰 눈과 눈동자만큼이나 맑은 아이다. 너무 맑은 아이라 장래가 걱정부터 될 정도다.
아이가 천진한 구석이 있는 거야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 녀석은 유난히 맑다.
형제라도 나이 차이가 여덟 살이나 나면 서먹서먹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동생은 그런 거리감 따윈 모른다는 듯 달라붙었다.
마음의 온도가 느껴질 만큼 무조건적인 애정에 나는 두 팔로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런 연청우를 다시 떼어내기 위해서는 서른 번이 넘게 꼭 안아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 했다.
그렇게 차례로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가보거라.”
아버지가 그런 내게 말했다.
마지막 남은 가족의 구성원.
할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 뗀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기억하는 길을 따라 움직였다. 어색했던 길이 어느새 익숙해질 무렵, 그 걸음이 별채에 이르렀을 때 나는 힘차게 고했다.
“저 왔습니다, 할아버지.”
“들어 오거라.”
오랜만에 들려온 손자의 목소리에 바로 화답이 돌아왔다.
나 역시 오랜만에 들은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마음을 다잡았다.
‘착한 분이라기보단, 좋은 분이라고 하는 게 어울리는 분이시니까.’
그 둘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기에 나는 한층 더 마음을 다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거처에는 차분한 인상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창가를 등에 진 노인.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어깨에 걸친 채 느긋하게 웃는 웃음을 보고 있자면 그 주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할아버지 연자염.
내가 무인이라는 존재에 동경을 가지게 한 이유에 가장 가까운 사람.
“문제없이 수행을 이어나가는 중이라면 아직 돌아올 때가 아닐 테고. 쫓겨나기라도 한 게냐?”
“그렇게 됐습니다.”
딱히 거짓말할 생각이 없기에 그 물음에 순순히 인정했다.
“네가 잘못한 거고?”
“한 일은 있지만, 제 잘못은 아닙니다.”
“그래?”
흡족한 대답이라는 듯, 염자염의 눈매가 긴 호선을 그렸다.
“그렇다면 됐다.”
할아버지 연자염은 그것으로 족하다는 듯 따로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말만 확실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마저 할 말을 전했다.
“한동안은 집에 있을까 합니다.”
“흐음?”
무당파에서 쫓겨난 지금, 다른 곳을 찾아가지 않겠다고 말한 거나 다름없다.
“무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포기하는 게냐?”
처음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그리고 느긋하게 묻는 물음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물음이나 나는 그 짙은 무게감을 느꼈다.
주름진 눈가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그 무게감의 중심에 있었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맑은, 하지만 그 중심은 깊은 눈동자가 나를 향해 곧게 뻗었다.
오랜만에 보는 할아버지의 본질. 그 편린을 엿보며 나는 조용히 웃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많이 아꼈다. 그렇기에 자주 옆에 끼고 다녔고, 그때마다 가르침이 있었다.
남자는 주관이 있어야 한다. 거창한 삶을 살지 않아도 좋다. 그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손에 붓이 아니라 칼을 쥐어도 응원하겠다.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라.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나를 가르쳤고,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오셨다.
그 증거가 저 눈이다.
맑고 깊은, 곧고 곧아 강직함 그 자체인 것 같은 눈.
출사했을 때부터 저 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특히 상급자들 중에 할아버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자신이 믿는 바를 관철하는 그의 말과 행동을 집약해 놓은 것 같은 눈은 마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자신의 추한 부분을 비춰내는 거울과 같았다고. 그래서 부패한 관리들은 조부와 눈 마주치는 것을 싫어했다.
반면 청렴한 관리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무림인들에게까지 폭넓게 좋은 교분을 두루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저 강직한 눈에 이끌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뜻한 바가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돌아서 가게 됐지만, 계속할 겁니다.”
“흠.”
묘한 압박감마저 느껴지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마주 보며 말한 나의 모습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햇살을 등지고 있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한층 짙어졌다.
“우리 손자 언제 이리 컸누.”
만족할 만한 대답이었나 보다.
대견해하는 할아버지의 미소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맑게, 그저 맑고 밝게 햇살 속에 번져 갔다.
***
“자아, 큰일들은 끝냈고.”
할아버지의 거처에서 나오자 따끈한 햇살이 몸을 쬐어 왔다.
따뜻함이 느껴진다.
햇살이 따뜻한 거야 원래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 지금에 와서야 다시 느낀다. 실없는 생각인 것 같지만, 애초에 그런 실없는 생각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다.
이제야 이런 기분이 드는 걸 보면 무당파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산해 집에 돌아온다는 것이 역시나 은연중에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초라하게 돌아온 것을 두고 가족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삼풍 사부님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어 뛰어난 장래성이 생겼다곤 하지만 당장의 현실만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새로 모시는 사부님이 장삼풍이라고 할 수도 없고.
무당파에 있을 당시 너무 위축되어 지내 온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비판적인 관점이 있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게 자기비하와 이어질 수 있을 정도라면 문제가 된다.
비판적인 관점은 자신의 단점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지만, 자기비하는 그 자신 자체를 단점으로 만든다.
털어내 버려야 할 부분들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털어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격(格)을 높이는 것.
집에 돌아온 당일이지만 당장 수련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뗐다.
[뭐냐, 왜 네 몸에서 중대가리 놈들 냄새가 나?]한동안 잠잠했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