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3
62화 뭔가 오해가 생기는 기분이 드는데……
“조심하세요! 저자가 정말 백마검(白魔劍)이라면 함께하는 자가 있을 겁니다!”
내 별호를 듣고 놀라는 이들이 다수인 가운데, 적의 정체를 알아차린 청성파 소저가 다급히 외쳤다.
안 그래도 기척 하나를 더 느끼는 중이다.
기습할 생각이었는지 시야의 사각에서 은밀하게 파고드는 기척이 있었다.
‘빠른데?’
상황 자체의 유리함을 살려 기습을 가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백마검의 검은 사납고 맹렬한 쪽에 가까웠다.
‘이자는 음습해.’
청성파 소저가 다급해진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백마검과 함께하는 이가 누구인지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자는 기습에 능한 자인 것 같다.
그 예측대로 순간 소리 없이 뻗어오는 검이 보였다.
오감의 감각은 이자의 움직임과 검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눈으로 볼 때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마치 허깨비처럼 순간적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느낌이랄까.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있어 이런 공격에 대해서는 완벽에 가까운 대처가 가능하기에 태연할 수 있는 것이지,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고수도 낭패를 봤을 거다.
파캉!
“흠!”
기습이 실패하는 즉시 몸을 뒤로 물리는 상대가 허공에 검을 그었다.
파라락!
홰를 치는 소리와 함께 예리한 기운이 검 끝에서 뻗어 나와 쇄도해 왔다.
검에 맺힌 기운을 날려 먼 거리의 적을 공격하는 수법이다.
노골적으로 정면충돌을 피한다.
‘살수들이 쓰는 무공이 이런 느낌이려나?’
어둠에 숨어 기습한다면 더욱 위협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대는 아니지만.
‘밤이든, 낮이든 내 감각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야.’
중토신공의 무거움.
땅의 신력이 지닌 굳건함.
쇠의 신력을 통한 단단함.
이 모든 것이 합쳐진 내 주먹이 날아드는 검기를 가차 없이 후려쳤다.
카라랑! 카캉!
강철도 진흙처럼 자른다는 검기가 살얼음처럼 부서졌다.
‘차갑다?’
그런데 그 과정이 특이했다.
깨부순 검기가 정말로 얼음처럼 차가웠다.
“음한지기?”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검기를 깨부순 내 손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흑마검(黑魔劍)……. 흑백쌍마(黑白雙魔)!”
청성파 소저의 비명이 상대의 정체를 확신시켰다.
흑마검이 검기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 내 양팔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이 산채를 노리고 구파 놈들이 올 거라 예상했지. 적당히 몇 놈 목을 베어 놓으면 사천 바닥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꼴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너 같은 놈이 걸릴 줄은 몰랐군.”
혓바닥이 길다. 여유가 있는 태도다.
‘음한지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음한지기는 닿는 것만으로 상대를 쇠하게 만드는 기운이다. 그걸 거침없이 후려쳤으니 내가 큰 피해를 보았으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착각이 심하네.”
한산월 아주머니의 음한지기는 눈길이 닿는 곳 전체를 한겨울로 만들어버릴 정도였다고.
그런 음한지기도 겪어 본 내가 이딴 허접한 수법에 당할까.
[그러게 말이다.]작게 중얼거린 내 말을 들으셨는지 달마 사부가 맞장구를 치셨다.
[헌데 재미있는 부분이 있구나. 흑마검이란 녀석이 검기를 날릴 때 그린 검로는 백마검이란 녀석의 검법과 결이 맞더구나. 이 사부가 볼 때 저 둘이 익힌 무공의 근간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그러고 보니…….’
두 검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유사한 점이 많았다.
동전의 양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서로 호환하는 부분이 있다.
‘……맞물린다?’
[아마 본래는 하나의 무공이었을 게다. 음양이기를 다루며 좌우쌍검을 펼치는 수법이겠지. 제대로 펼칠 수 있다면 위력만큼은 대단하겠으나 보통 자질로 이뤄낼 무공은 아니었을 게다.]확실히 흑마검은 좌수검(左手劍)이고, 백마검은 우수검(右手劍)이다.
쌍검술이라는 달마 사부의 말에 머릿속으로 두 검의 궤적을 합쳐보았다. 그러자 놀라우리만큼 각각의 궤적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다.
지금도 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하지만, 만약 제대로 익혔다면 천하에 명성을 떨쳤을 만한 고수가 되었을 거란 의미다.
‘하지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을 무공이기에 저렇게 나눠 가진 거겠지.’
저 무공을 창안한 사람은 분명 특이한 체질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둘은 결국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슬슬 음한지기가 기혈을 좀먹어 가고 있겠군. 몸속에 퍼져 가는 음한지기의 무서움이 느껴지는가?”
“하아?!”
본질이 보이니 그나마 있던 긴장감도 잦아드는 판국에 웃기지도 않은 말로 사람을 웃기려 한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것들이다.
“침습은 얼어 죽을. 반쪽짜리들 주제에 말이 많다.”
“뭐?”
나를 덫에 걸린 사냥감 보듯 하던 흑마검의 표정이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삽시간에 굳어졌다. 뒤늦게 얼굴에 힘을 주며 속내를 감추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카라랑!
손에 맺힌 서리를 간단하게 털어내는 내 모습에 입을 떡 하니 벌렸다.
“마, 말도 안 돼!”
바위에 잠깐 서리가 꼈다고 바위가 얼었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동상은커녕 붉게 상기된 기미조차 없을 만큼 깨끗한 내 손의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흑마검이 절규하듯 외쳤다.
“믿을 수 없다! 기십 년간 내공을 수련한 자도 내 음한지기와 맞닿는 것을 꺼리거늘! 대체 얼마나 내공이 심후하기에!”
충격이 어지간히 큰 모양이다.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리고 있다.
“사술…… 사술인가?”
얼마나 놀랐는지 사파 인사가 사술을 논하기까지 한다.
“큽! 큭…… 크하하하!”
가만히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던 백무호가 끝내 참지 못하고 폭소했다.
‘그냥 내 기운이 음한지기와 상극인 건데.’
사부님들의 배려로 받게 된 신력은 자연의 힘을 극한으로 가다듬은 기운이다. 평생을 무에 바친 이가 천상에 오를 즘이 되어서야 접할 만한 힘이라는 거다. 실제로 그 힘을 접한 금모후가 천상에 오르기도 했고.
그런 기운이기에 적은 양으로도 놀라울 만한 힘을 끌어내는 것이다.
하물며 상극이기까지 하니 통할 리가 없다.
어지간한 음한지기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당연히 상식적인 시선에서는 사술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흑마검의 음한지기에 전혀 영향이 없을 정도의 내공이라면…… 거의 장로님들 수준 아닌가?”
“말도 안 돼. 저 녀석이 장로님들 정도로 내공이 강하다고?”
“굉장해…….”
내가 괴물로 보이겠지.
청성파 제자들이 지금 날 보듯이.
‘뭔가 오해가 생기는 기분이 드는데…….’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
구파 장로급이라니.
잘못하면 내 무위가 무슨 구파 장로들도 찜 쪄 먹는 수준으로 알려질 것 같다.
화산파에서 자부도인의 검을 직접 피부로 느껴본 적이 있기에 저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잘 알고 있다.
승부는 고사하고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피하는 것에만 전념해서 간신히 살아남았을 정도인데 어딜 비벼?
“그러고 보니 화산파 장로를 거의 농락하다시피 했다고 들었어! 소천룡의 무위에 대한 소문이 너무 지나치게 부풀려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사실이었다니…….”
엥? 저기요? 그게 뭔 소리?
내가 언제 화산파 장로를 농락했다고?
‘야! 백무호! 너 왜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지 마! 화산파가 듣보잡 취급받잖아!’
흑백쌍마와 대치 중만 아니었다면 차근차근 오해를 풀어야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후방에서 손 놓고 구경 중인 백무호라도 대신해줘야 할 텐데, 이놈은 뭔 생각인지 히죽거리고 있다.
[뭐, 자부라는 아해의 검을 모두 피해버리지 않았느냐. 너야 간신히 피한 거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예?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는 거다. 능운금광보가 하계 아이들에게는 좀…… 대단한 무공으로 보일 만도 하고.]‘그야 그렇겠죠. 장삼풍 사부랑 달마 사부도 감탄했을 정도니…… 이런 시부렐?’
제삼자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달마 사부의 말을 들어보니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감이 잡힌다.
‘다른 사람들 눈엔 그게 그렇게 보였다고?’
어처구니없는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사이 청성파 제자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흑백쌍마의 얼굴도 천천히 썩어들어갔다.
특히 흑마검이.
“흥! 음한지기가 안 된다면 검으로 벨 뿐이다!”
흑마검과 달리 백마검은 투지를 불태웠다.
내 무위가 구파 장로급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기색이다.
직접 손속을 나눴으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했겠지.
“그래! 어디 확인해 보자꾸나!”
백마검이 저돌맹진으로 달려들자, 머뭇거리던 흑마검도 따라붙었다.
“방심하지 마세요! 흑백쌍마의 합격술은 사천에서 악명이 높아요!”
‘그렇겠지.’
청성파 소저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마 사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본래 하나의 무공이었을 테니까.
[본래 하나의 무공이었을 테니, 모르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합격술로 보일 법도 하지.]어느 정도 본래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다.
어느 정도는.
[허나, 쌍검으로 펼치는 검과 두 사람이 펼치는 검의 궤적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사람의 손에 쥐어진 검에는 가동 범위의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호흡을 맞춘다고 해도 두 사람의 사고가 동일시될 수는 없으니 이 또한 빈틈이 되겠지.]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 공격의 시작은 어깨에서부터다. 한 사람이 쌍검을 쓸 때의 어깨 위치와 두 사람이 나란히 합격술을 펼칠 때의 어깨 위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맞물려 보려 해도 필연적으로 궤적에 차이가 생긴다.
무공의 연원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차이지만, 내게는 아니다.
흑백쌍마의 검이 교차하는 사이, 맞물림의 사이에 있는 미세한 빈틈이 태극선을 통해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점인 호흡.
‘흑백쌍마의 합격술이 무섭다는 말이 생긴 건, 합격술의 정교함보다는 무공의 특성이 지니는 위력 때문인 것 같네. 역시 투로가 완벽하지 않아.’
결국, 흑백쌍마의 강점은 무공의 현묘함보단, 특유의 기운을 잘 활용하는 점 같다. 그 특유의 기운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리 무서운 상대는 아니다.
나는 눈에 뻔히 보이는 흑백쌍마의 틈새로 몸을 날렸다.
한 손에는 쇠의 신력이, 다른 한 손에는 땅의 신력이 자리를 잡는다.
그 중심에 중토신공이 있다.
‘백마검은 쇠의 신력으로.’
카앙!
‘흑마검은 땅의 신력으로.’
따앙!
양손으로 두 개의 검을 튕겨낸다.
보통 이쯤에서 흑마검의 음한지기에 당해 기혈이 굳어지는 사이 강맹한 백마검이 상대를 부쉈겠지만.
따다당!
“크흑!”
“컥! 어, 어린놈이!”
나는 오히려 밀어붙였다.
금방이라도 쪼개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흑백쌍마가 전력을 다해 검을 찔렀다.
정면으로 찔러 오는 검 끝에 검고 하얀 기운이 한 점으로 묶이는 순간.
‘극강격!’
솟은 못을 찌그러트리는 둔기처럼 묵직한 힘이 내 손에 어렸다.
운용 중이던 중토신공 삼단공과 쇠의 신력, 땅의 신력을 모아 극강격의 수법으로 뻗는다!
쩌어어엉!
고작 흑백쌍마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두 개의 검을 살얼음처럼 깨트렸다.
“커헉!”
“쿨럭! 컥!”
내공을 담은 검이 깨지자 그 반동이 돌아간 듯 흑백쌍마가 각혈을 했다.
내상을 입은 듯 크게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흑마검은 품에서 꺼낸 구체를 던져 터트렸다.
펑!
보랏빛 운무가 빠른 속도로 뿜어졌다.
연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야를 가렸지만, 내 감각을 흐리게 할 정도는 아니다. 빠르게 파고들어 후려쳤다.
퍼억!!
“끄억!”
누구인지 모르지만, 주먹에 뭔가 박살 나는 감각이 선명하게 감돌았다.
“미친놈! 이건 극독을 담은 독무다! 겁도 없이 이 속으로 뛰어들다니!”
“어, 그래?”
박살 난 놈은 백마검이었던 모양이다.
흑마검이 독 운운하는 협박질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쯧쯧. 독무라면 오행의 순행을 흩트리는 것으로 몸을 망가트리는 것일 진데, 오행신력을 둘이나 가진 내 제자에게 통할 리가 있나.]음한지기와 마찬가지로 이런 계열의 독은 내게 위협이 안 된다는 거다. 무려 달마 사부의 보증이시다.
독무라는 말에 내가 겁먹고 물러서길 바란 것 같았기에, 오히려 더욱 자신감 있게 파고들었다.
퍼석!
“컥!”
귀에 들려오는 소리와 느껴지는 감각을 쫓아 후려치자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들려온 소리나 타격이 가해진 느낌으로 미뤄볼 때 이 독무가 사라진 뒤의 광경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은 못 될 것 같다.
“깊은 산 속이니 시체들이야 산이 알아서 처리를…….”
“으윽!”
“아악!”
“쿨럭! 쿨럭!!”
흉물스러운 것들의 뒤처리는 자연의 자정 활동에 맡기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청성파 제자들이 갑작스럽게 뻗어나간 독무에 휩쓸린 것이다.
백무호도 그 범위 안에 있었지만 나와 함께 땅의 신력을 나눠 먹은 놈답게 멀쩡했다.
눈곱만큼도 영향이 없어 독무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자지러지고 있는 청성파 제자들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
“얘네 왜 이래?”
“독무(毒霧)라잖아.”
“그래? 별거 없는데?”
백무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청성파 제자들이 봤다면 한껏 재수 없다고 성토할 모습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도 한 대 갈겨 주고 싶긴 했지만.
“구하긴 해야겠지.”
일단 살려 놓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재수탱이는 그렇다 쳐도, 이도천이나 청성파 소저를 매정하게 대하긴 뭐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