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85
84화 너네 사부 지옥 갔어
뜨거운 기운이 몸을 타고 흐른다. 마치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증기가 자욱한 열탕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다.
주변의 거대한 불덩어리에서 발생한 열기의 일부가 ‘열려 있는’ 머리의 구멍 틈새를 타고 흘러들어오고 있다.
그 뜨거운 기운이 어리자 영강수의 수법도 조금 전과 사뭇 다르게 움직였다.
화악!
격렬하다.
사방에 불똥을 튀기며 작렬하는 불꽃처럼 사납게 움직인다.
콰콰쾅!!
“큭!”
손을 부딪쳐 온 상대도 그 격렬함이 놀라웠는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모습이다.
“……읍?!”
‘저 정도로 놀랄 일인가?’
의외다. 이 고대의 숲을 뭉개면서 등장한 것 치곤 어딘가 볼품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겉으로 보이는 무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저리 놀라는 건 뭔가 이상하다.
‘무공에 놀랐다기보단, 내가 보인 기운에 놀란 것 같달까?’
게다가 내 몸에 어리고 있는 이 뜨거운 기운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이거, 뭔가 신력 느낌이 나는데…….”
[신력 맞다.]“예에?”
장삼풍 사부의 확답에 내가 놀랄 정도였다.
이게 신력이 맞다면 불의 신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신력은 어디서 온 거래?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째 장삼풍 사부 목소리도 뭔가 빡친 느낌이 드는데?’
신력임을 확언해 주신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에는 열 받은 사람 특유의 화끈한 열기가 감도는 느낌이다.
착각인가?
[이런 썩을! 천마 이 작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나 했더니…….]착각이 아니었다.
갑자기 천마 사부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우으!”
그렇게 상황을 가늠하는 사이, 나를 노려보며 마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마인이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말이 아니다. 그저 감정이 담긴 소리에 불과한 것을 토해낼 뿐이다.
“아자(啞者: 벙어리)?”
“마교의 아위장(啞位將)입니다. 마교 신위군(信位軍)에 속해 있는 자들로 고위 인사들이 가까이 두고 은밀한 일을 시키기에 무공을 익힐 때부터 혀가 잘린 사람들이에요.”
“아하.”
‘고위 인사들이 가까이 두고 은밀한 일을 시킨다는 걸 알고 있는 그쪽은 또 뭐 하는 인물이쇼?’
장삼풍 사부가 방금 빡쳐서 천마 사부를 언급한 것이 여기 이 소녀가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 너무 나간 생각일까?
“아! 아아!!”
하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눈앞의 상대는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처음 등장할 당시 보여 주던 강한 마기가 그의 몸에서 소용돌이치며 일어났다.
허나 이미 한 번 받아냈던 무공이다.
한 번 했던 걸 두 번 못 할 거 없다.
영강수를 펼친다.
팔 전체가 채찍처럼 휘며 뻗어오는 편타(鞭打)에 대응해 일장을 내지른다.
퍼엉!
힘이 최대한으로 실려 있는 손끝을 일장으로 쳐내자, 순간 채찍처럼 날렵하게 휘어 있던 상대의 팔이 접히며 팔꿈치가 치고 들어온다.
치고 찌른다.
부딪치고 파고든다.
쾅! 콰쾅!
‘큭! 격렬해!’
영강수는 상대의 수에 대응하는 무공이다. 첫수의 공방이 격렬했다는 것은 상대의 초식 역시 격렬하고 사납다는 의미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들이 틈새를 파고든다.
허나.
‘봤던 거라고!’
첫수를 교환할 때 상대의 무공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충분히 봤다.
낯설었을 때도 대응했던 영강수다.
상대의 움직임이 아무리 격렬하더라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게다가.
‘힘으로 밀리지 않아.’
상대가 보여 주는 파괴력. 이 고대의 숲을 뭉갤 때 뿜어내던 마기를 생각하면 비켜 쳐내는 쪽으로 가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면에서 받아내는 중이다.
그 이유는 몸에 감도는 불의 신력에 있었다.
태생부터가 마기 위에 군림하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마치 그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 오만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 기질이 어딘가 익숙하다.
‘천마 사부?’
천마 사부의 기질이다.
이것도 너무 나간 생각인가 싶지만.
“아!! 아우악!!”
나와 손을 부딪칠 때마다 상대가 놀라 소리 지른다.
혼란과 이유 모를 분노가 목소리에 담겨 있다.
왜 저리 화를 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틈을 열어 준다면 거리낄 게 없지!’
이번엔 이쪽이 치고 들어간다.
달마 사부의 극강격.
바위처럼 단단하게 뭉쳐지는 힘이 저돌적으로 뻗어나갔다.
쾅!
사람의 살과 근육이 부딪쳐 낸 소리로 들리지 않는 짧고 강한 굉음.
뒤늦게 두 팔을 모아 방어하려 하지만 소용없다.
“크어어어!”
열려진 두 팔 너머로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한 상대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 망막을 꿰뚫을 기세로 뻗어나가는 일권.
내 주먹에, 극강격의 수로 한 점에 뭉쳐 담겨 있던 힘이 폭발한다.
극심뢰!
극강격의 대척점에 있는 무공이 극심뢰다.
달마 사부의 극강격이 힘을 한 점에 모아 치는 것이라면, 장삼풍 사부의 극심뢰는 한 점에 모은 힘을 터트리는 거다.
극강격으로 뭉개고, 극심뢰로 뚫는다.
두 개의 극을 연격한다.
‘여기에 불의 신력을 담으면!’
불은 주변으로 확산하는 기운을 지녔다.
벼락이 되어 종심부를 파고든 힘이 들불처럼 활개 치며 번진다.
콰아앙!
폭음이 작렬한다.
매캐한 탄 냄새와 함께 시체 조각 하나 남기지 못한 육신이 붉은 피안개가 되어 나부꼈다.
“휘유!”
내가 만들어낸 일격이지만, 진짜 장난 아닌 파괴력이다.
‘여파가 만만치 않으니 주의해서 써야 할 것 같긴 하지만.’
극강격만 해도 보통의 힘이 아닌데, 연거푸 극심뢰를 펼치자 적지 않은 반동이 생겨났다. 거기에 불의 신력까지 가미되니 오른팔이 거의 걸레짝에 가까웠다.
이만한 마인을 일격에 쓰러트린 결과를 보면 충분히 감수할 만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극강격과 극심뢰의 조합이 좋아.’
극강격은 굳건하다. 강하고 단단하여 막는 것을 뭉개기 좋다.
극심뢰는 날카롭다. 허를 찔러 꿰뚫는 위력이 발군이다.
영강수로 받아내 버티고, 극강격으로 방어를 무너트린 다음, 극심뢰로 뚫는다.
제대로 연결할 수 있다면, 나보다 기량이 높은 상대라도 잡아먹을 수 있다.
‘어떻게 보셨으려나?’
나는 장삼풍 사부가 이 무공들의 연계에 어떤 평점을 주실지를 기다렸다.
“…….”
그런데 대답이 없으시다.
“……사부?”
장삼풍 사부 성격이라면 벌써 한마디 해야 했을 건데.
뭔 일이 있으신 건가?
[너네 사부 지옥 갔어.]“……예?”
화타 선생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천마 찾으러 지옥에 갔다고. 저 계집아이 보자마자 바로 튀어가던데?]“아……? 아, 예.”
이렇게 들으니 이해가 간다.
‘어째 어감이 좀.’
하지만 동시에 기분이 꽁해졌다.
나름 강자와 싸우고 있는데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자리를 뜨셨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살짝 기운이 빠졌다.
내 기량을 믿어 주신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째 좀 섭섭하기도 한 기분이다.
‘그나저나, 얘가 뭐라고 장삼풍 사부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신 거지?’
마인에게 쫓기던 것을 보면 마교와 적대적인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마교 내부 구조에 해박한 점이나 장삼풍 사부의 반응을 보면 천마 사부와 연관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슬그머니 드는 의문에 자문자답을 하며 뒤를 돌아보니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일생의 우상이라도 본 것처럼 감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몸가짐을 바르게 하더니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화라고 합니다. 위대한 분을 만나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어? 어어…….”
근래 들어 제법 치켜세워진 적은 있지만, 이 정도로 과하게 떠받들어지는 건 또 처음이다.
그것도 나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신을 영접한 무녀라도 되는 것처럼 숭배받는 수준으로 떠받들어지니 오히려 기분이 묘해진다.
“내가 그 정도로 위대한 사람은 아닌데…….”
“겸손하시군요.”
자신을 이화라고 소개한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내가 무슨 지시를 내려도 기꺼이 헌신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두 손으로 공손히 내 손을 잡은 이화라는 소녀가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내 손을 자기 머리 위에 얹은 소녀는 신성한 존재를 눈앞에 둔 무녀처럼 환희를 내비쳤다.
“‘신녀’ 이화가 진정한 ‘천마의 계승자’에게 영원한 종속의 예를 바칩니다.”
“…….”
뭔가 기묘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뭐라고?
“……신녀?”
“예, 천마님.”
천마님?
천마니임?
천마니이임!?
“……나?”
“예, 천마님.”
“…….”
이 예쁘장한 소녀가 갑자기 심지에 불붙은 벽력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뭐야. 너 그런 취향이었냐?”
전투 중에 일어난 소리와 파장을 감지하고 달려온 백무호와 당사연 소저가 이 광경을 보았다.
이화가 말한 천마라는 언급은 듣지 못한 것 같지만, 예쁘장한 소녀가 머리에 손을 얹고 무릎을 꿇고 있는 이질적인 광경을 꽤나 독특한 어법으로 평가했다.
특히 당사연 소저는 마치 먹잇감을 뺏긴 육식동물 같은 눈빛을 했다.
‘돌겠네…….’
여러 가지 의미로 이 이화라는 소녀는 날벼락이 맞았다.
***
“기시감 드네, 이거.”
지옥을 주파하며 내려가는 장삼풍은 얼마 전 천마와 치고받고 싸우며 풍도지옥을 뒤집어 버렸을 때를 떠올렸다.
천마를 추궁하러 지옥을 주파하는 꼴이 딱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물론 그때처럼 난장판을 피울 생각은 없었지만, 어떤 대화가 오가느냐에 따라 다시 한 판 붙을 용의가 있긴 했다.
그렇게 지옥 깊숙한 곳에 당도한 장삼풍은 자오경을 비추는 기물을 손에 든 천마를 볼 수 있었다.
“빨리도 내려왔군.”
“댁이 한 짓을 봤으니 당연하지.”
“뭐, 대수림의 규모를 생각하면 엇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잘 만나긴 했더군.”
필경 자신과 같은 것을 보았을 그 천마가 웃음을 흘렸다.
많은 것을 확인시켜 주는 웃음이다.
“목적이 그거였나? 청운이를 천마위(天魔位)에 올리시겠다?”
“불공평했던 것도 사실이지 않나. 나 역시 녀석의 사부다. 하지만 내 제자의 삶에서 내 지분은 적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다. 정작 그 녀석이 이룬 무공 중 가장 높은 성취를 보인 것은 내 무공인데도 말이지.”
“하아…….”
천마의 말은 정론이었다.
장삼풍은 그 말에 쉬이 반박하지 못했다.
물론 제자의 소속이나 위치를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천마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볼 수도 있는 문제다.
“걱정하지 마라. 나도 내 몫을 챙긴 이상 이제 더는 무리하지 않을 테니. 오히려 다른 쪽을 신경 써야 할 상황이지 않나?”
“무슨 소…….”
지금은 자신을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천마의 언급에 장삼풍이 눈을 찌푸리며 소리 지르려다가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천마는 대수림이라 했다.
“흑목림이라더니 대수림을 말하는 거였네요?”
“몇백 년은 그렇게 부르긴 했지만……. 뭐, 요즘이라면 요즘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정말 화타의 진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천마는 흑목림을 현 지상에서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다.
그 대수림으로 신녀를 보냈다.
그럼 연청운을 대수림으로 이끈 사람은?
“하아…….”
편작이다.
그렇다면 편작은 무슨 연유로 이 판에 발을 올렸을까?
장삼풍은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당가의 가주…….”
경지에 다다른 독인이 한계를 넘은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 목숨 줄을 움켜쥐고 버티는 중이다.
독을 수련하는 독인(毒人)이 한계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으니 그 경지가 지속적으로 높아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것을 제대로 해결해 주기만 한다면?
“그래, 의선(醫仙)이다.”
사천당가의 뿌리는 의(醫)에 있다. 여러 무맥(武脈)이 섞이긴 했으나 근본은 의가(醫家)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 의가에서 선(仙)의 경지에 다다른 이가 나올지도 모른다.
“편작은 거기에 판돈을 건 모양이더군. 그 도박이 성공을 한다면 지금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우리 제자를 주목하겠지.”
“흐음…….”
지상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듯, 천상도 연청운을 주목하는 지극한 존재들의 관심 아래 뭔가 판이 짜이고 있었다.
한때 장삼풍은 천마가 진심으로 제자 연청운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기꺼워하기도 했었다.
그 천마가 정말 미친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관심이 부담으로 변하긴 했지만.
그렇기에 장삼풍은 지금 돌아가는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