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96
95화 새 보패를 얻다
사실 은연중에 고민하고 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마교, 천마신교에 대한 처우였다.
천마사부의 무공을 익히고, 신녀인 이화까지 떠맡게 된 이상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미친놈들의 편을 들어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천마 사부가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다.
천마 사부가 남긴 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제 꼴리는 대로 날뛰기 위해 천마 사부의 이름을 파는 버러지들이니 다 죽여 없애라.
‘깔끔하네.’
이화의 설명에 따르면 마교는 크게 네 파벌로 나뉘었다고 했다. 그중 사이한 수법에 손을 댄 파벌이라면 얼마든지 박살 내도 문제가 없게 됐다.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천마 사부의 제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언젠가 내 무위가 충분한 경지에 이르면 마교를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
문제가 되는 놈들을 싹 다 정리하고 나면 나머지는 천마 사부의 힘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따를 테니.
이화가 보여 주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내가 진짜 천마 사부의 계승자라는 것만 증명하면 어떻게든 반은 먹고 들어갈 거다.
그렇게 싹 다 찍어 눌러 버리면 적어도 백 년은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갈 거고.
아무래도 그렇게 되려면 최종적으론 내가 진짜 천마의 위를 이어 받아야겠…….
“헛?!”
‘노, 노리신 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생각의 흐름에 화들짝 놀란 나는 슬그머니 하늘을 흘겨봤다.
‘뭐, 차후의 일이니까 일단 그런 건 뒤로 미뤄두고.’
우선은 선화문이다.
저들의 목적이 정사 합의를 결렬되게 만드는 것이니만큼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정보의 출처를 밝히기 어려운 만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기는 힘들겠고.’
돌아가는 정황상 혼자 움직이는 게 최선이겠지만, 백무호나 이화는 동행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화? 아!”
정보의 출처를 가리고 독자적으로 움직일 만한 이유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화의 이름을 상기하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이화와 입을 맞춰 봐야겠네.”
이화의 성향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을 거다.
***
“선화문?”
“예. 친족 중 한 분이 그쪽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고 하는데, 가문이 공격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한번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흐음…….”
만독신군 당천기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이 난다. 규모는 작은 곳이라 별로 신경 쓸 만한 곳은 아니지만……. 사천에 자리 잡은 무림문파치곤 꽤나 올곧은 곳이었지.”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무려 만독신군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대단한 것이다.
‘왜 놈들이 거길 노렸는지도 알 것 같네.’
뒤에 붙은 선화문에 대한 평가. 당천기가 선화문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올곧은 문파이기에, 좋은 평판이 있는 곳이기에 노림을 받았다.
평생 올곧게 살아가고자 했던 이들이 산 채로 얼굴 가죽을 뜯기며 얼마나 억울했을까.
명계에서 목 놓아 울부짖었다는 그들의 외침이, 굴욕이, 고통이 어떤 것이었을지 귀에 울리는 듯했다.
“거두기로 한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갸륵하다만…….”
내 얼굴을 훑듯이 살피던 당천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지금?”
“예.”
“정사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려는 상황에?”
갑자기 잔소리 심한 시부모님이라도 된 것처럼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
‘그러니까 가는 거죠.’
이유야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제대로 사정 설명을 하려면 그를 뒷받침할 정보의 근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출처가 천상에 계신 사부님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유를 둘러대야 하는 나로서는 이 대답이 최선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제가 할 일이 없잖습니까.”
“할 일은 없지. 대신 얻을 건 많고. 청성파가 사천당가를 찾은 이유가 뭐였는가. 허도진인이 무엇 때문에 아미파를 설득하러 갔는가. 나를 고친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 외에도 있지만, 당천기는 본인이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만을 언급했다.
저게 일부라니.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을 해내긴 했다.
“사천 정파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결실이 빛을 발하는 자리에 빠지겠다고?”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정사 합의가 이뤄지는 자리에서 내 행적이 밝혀지면 꽤나 소란이 일어날 것 같긴 하다.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떠받들어지려나?
……뭔가 낯간지럽다.
“알아주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
“여기 앞에도 한 분 계시고.”
“얀마!”
“모르는 사람이 백날 칭송하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하아…….”
“뭐, 그렇다는 겁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털어내는 것처럼 나는 자리에서 껑충 일어나서 손을 모았다.
“무운을.”
“쯧!”
만독신군이 혀를 차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쨌거나 더는 잡지 않을 모습이다.
다만.
“받아라.”
대신 당청기는 물건 하나를 던졌다.
당(唐)이라는 글씨가 쓰인 녹색 옥패다.
“신병이기를 준다고 약속한 게 있으니 주마. 창고로 가면 쓸 만한 것들이 있을 터이니 뭐든 챙겨가라. 쯧! 네 친구 녀석처럼 알아서 주워 먹었으면 귀찮게 이러지 않아도 되잖냐.”
“아…… 하하하…….”
백무호가 당가 비전암기를 이것저것 주워 먹긴 했나 보다. 그걸 알면서도 방관했고.
“감사합니다.”
멋쩍게 웃은 나는 다시 한번 포권을 쥔 뒤 방에서 물러났다.
***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감탄스럽다 해야 할지…….”
당천기는 가슴을 문질렀다.
젊은 혈기가 보여 주는 푸른 의기가 가슴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아직 늙지 않았다는 듯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영웅이라…… 영웅이란 말이지…….”
더 이상 뛰는 심장을 억지로 누르지 않으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꿈틀거리는 그것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질주했다.
“좋다, 맘대로 날뛰어 봐라. 뒤는 봐주마.”
흘리는 것이 있으면 뒤에서 주워 담아주면 된다.
그것이 올바른 어른의 역할이다.
당천기의 얼굴에 열기가 피어오르는 웃음이 걸렸다.
***
당천기의 지시대로 창고로 향했다.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이것저것 챙겨 주는 당천기의 행동에 왠지 미안해졌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눈치였죠?”
[뭘?]“저분은 제가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명성이 높아지면 좋은 것이 맞다.
다만,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닐 뿐이다.
“전 이미 충분히 욕심쟁이인데 말이죠.”
바라던 것이라면 이미 넘치게 받았다.
너무 가득 받아서 주체를 못 할 지경이다.
“저는 이번 사천행에서 정말 많은 걸 얻고 받았는데.”
[흥! 퍽이나.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낯간지러운 것들뿐이라 듣기가 고역이었다.]이건 천마 사부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취하지 않는 것도 괜찮겠지.] [사랑스런 아이로고.]어째 좋게 봐주시는 분이 저 혈관성애자님뿐인지 모르겠다.
창고에 도착해 만독신군에게 받은 패를 내미니 곧바로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우와!”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꾸준히 관리가 이루어져서인지 날 선 병장기들이 뿜어내는 예기가 서늘하게 닿아 왔다.
“어?”
그래서인지 그 날 선 무기들이 가득한 장소에서 홀로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저게 왜 여기 있어?]순간 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거.]내가 보고 있던 것이 맞나 보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 천마 사부가 주목할 만큼?’
그저 눈길이 갔던 물건이다. 왜냐고 하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별 볼 일 없는 외견에 낡았다는 느낌이 감도는 거무죽죽한 권갑(拳鉀)일 뿐이다.
[한 번 착용해 봐라.]천마 사부의 적극적인 권유에 나는 냉큼 권갑을 손에 끼워 보았다.
철컥.
쇠 울음소리가 울리며 완벽하게 고정이 되었다.
“뭔가…… 부드럽네요.”
손을 움직이는데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단단한 쇠로 이루어진 물건인데, 착용감은 착 달라붙는 가죽장갑을 낀 느낌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방어구로 그 정도면 훌륭하다 하겠지만, 천마 사부가 저리 호들갑을 떨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천마무겁수를 운용해 봐라.]“어?”
그 순간 나는 천마 사부가 왜 이 권갑을 보고 놀라셨는지 알 수 있었다.
“기운이…….”
[순환하지?]천마무겁수의 기운이 순환하자 권갑에도 그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마치 내 신체의 일부처럼, 이 쇳덩이 속에 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천마무겁수의 기운을 머금는다.
충실하게 내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나눠 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게 하나 더 있었다.
지잉!
가슴에 내단처럼 자리 잡은 신진철.
달마사부가 생전에 썼다는 보패로, 나 대신 천마무겁수의 기운을 감당하다 끝내 부서진 잔해.
쇠의 신력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 거라 해서 삼켰던 그것이 꿈틀거린다. 그와 함께 쇠의 신력이 새로운 혈관이라도 만든 듯 권갑과 이어졌다.
“이거…… 좋은데요?”
천마무겁수를 펼칠 때 따라오는 부담을 덜어 줄 뿐 아니라, 기운을 주고받으며 일으키는 순환으로 보다 큰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
여기에 쇠의 신력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힘을 증폭시키기까지 한다.
[허! 그 물건, 보패였나?]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신의 숨결이 닿은 물건.
보패다.
[내가 미숙하던 시절에 썼던 물건이다. 경지에 이르고 나서는 큰 의미가 없기에 어딘가에 처박혀있으려니 했는데, 이런 곳에서 보는군.]“아…….”
천마 사부가 사용했다는 것이라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그런 물건이 왜 사천당가 창고에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운이 좋구나. 내 무공이나 신력에 감응하는 물건이라 주인을 가리지만, 사용할 수만 있다면 천하에서 손에 꼽힐 만한 무구다.]“그래서 이런 곳에 처박혀 있었던 거겠네요.”
현 지상에 신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고, 천마 사부의 무공을 제대로 이은 사람은 나 빼고는 없다 해도 무방하다.
좋은 물건이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그저 흔한 권갑일 뿐이다.
[챙길 거냐?]“당연하죠!”
명성 같은 거라면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지만, 이런 보물엔 욕심을 내야 한다.
나는 희희낙락하며 권갑을 챙겼다.
[호호호.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혈관성애자 아줌마가 유쾌하게 웃으셨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나도 웃으며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속물 같죠?”
[속물이란 표현을 쓰는 건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는 것 같구나. 자신이 바라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존재하는 자의 의무이니라.]존재하는 자의 의무. 듣고 나서 한 번쯤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꺼낸 말에 깊이가 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절대 혈관성애자 같은 식의 명칭을 붙이지 않았을 거다.
‘누굴까? 사부님들도 은연중에 이분을 존대하는 느낌이긴 한데.’
내가 알아도 되는 이름이라면 사부님들이 먼저 소개라도 해줬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쳐서인지 선뜻 이름을 묻기가 꺼려졌다.
[어쨌거나 잘되었구나. 여가 네게 부탁할 일이 있느니라. 여와 연관이 있던 죽은 선화문 아이들의 복수를 해준다면 좋은 것을 주마.]“아, 예.”
[그래, 다시 보자꾸나. 사랑스러운 아이야.]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이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운이 좋구나.]대신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음! 몇 놈 올려보냈다고 쌓인 게 힘을 좀 발휘하는 건가?]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
“흐음!”
악사도왕 곽대평은 방금 던진 주사위의 숫자를 바라보며 묘한 신음 소리를 냈다.
“재밌네.”
곽대평이 보고 있는 주사위의 숫자는 오.
홀수다.
곽대평은 무언가 선택할 일이 있을 때마다 주사위를 튕긴다. 그런 곽대평에게 눈앞의 결과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운이 정말 좋아.”
도박에도 종류가 있다. 정말 모든 것을 운에 맡기는 도박과 원하는 숫자를 만들어내는 도박.
곽대평은 연청운과 두 번의 주사위를 던졌다. 그리고 그중 한 번은 분명 원하는 숫자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곽대평에게 있어서는 백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희귀한 일이었다.
“일단 뒤통수치는 선택지는 날아갔네. 원하는 대로 해 줘야겠어.”
주사위를 손에 쥔 곽대평은 그것을 손 안에서 굴리다 품 안에 소중히 넣었다.
“주사위의 뜻은 절대적이니까.”
곽대평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명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