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00
제100화 – 그들을 물리칠 수 있겠느냐?
나는 운공을 마치자마자 노인네부터 불러냈다.
노인네가 내 속에 심은 선령은 노인네와의 소통 수단이기도 했다. 선령에 떠오르는 노인네는 진짜가 아니라 내가 아는 노인네를 그럴듯하게 재구성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선령엔 노인네의 편린이 깃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구 단계 진입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나는 노인네와의 만남을 제일 먼저 시도했다. 처음엔 흐릿한 잔영만 나타났으나 집중하자 차츰 형태가 뚜렷해졌다.
추하기 이를 데 없는 면상의 꼽추 노인이 나를 보더니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무치게 그리웠던 미소였다.
노인네는 오랫동안 응답이 없었다. 진짜 노인네 같았다.
아무리 말을 건네도 노인네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러다 노인네가 사라질까 봐 걱정하던 차에 걱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가슴이 뭉클했다. 노인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큼 자상하고 다정한 소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짐짓 투덜거렸다. 늘 그랬듯.
이렇게 해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부모를 보게 되었다.
***
나는 망연자실했다.
내 부모가 노인네와 재수 없는 늙은이에게 몰리는 광경을 보아서가 아니었다. 늙은이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아버지가 자진을 결하는 장면에 가슴이 쓰리고 울분이 치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머니 쪽이 백배는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어머니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판박이였다. 깃발처럼 길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얼굴을 덮은 피만 지운다면 영락없는 ‘그녀’였다.
날카로움과 온순함이 공존하는 묘한 눈매, 오뚝한 콧날, 작고 도톰한 입술. 무엇보다 인상을 쓰고 있음에도 양쪽 뺨에 선명하게 팬 두 보조개.
나는 노인네가 사라지는 것도 몰랐다.
어째서 어머니가 안진의 용모를 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 어떻게 안진이 내 어머니를 빼닮았단 말인가.
설마 그녀는 내 누이였던가. 그래서 성가시면서도 정감이 갔고, 헤어진 후 노인네만큼이나 그리웠던 건가. 그러면서도 연정은 일지 않았던 건가.
안진과 내가 남매라면 아버지도 같을까.
그럴 가능성은 전무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그날 불귀의 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숨이 붙어있었다면 노인네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는 쌍둥이였을까.
이것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역시 노인네가 부정의 증거였다. 설령 내가 먼저 세상에 나왔고 안진이 아직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있었다고 해도 노인네의 기감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러므로 안진은 나와는 씨가 다르다고 보아야 했다.
누가 그녀의 부친일까. 안진은 모를 것이었다. 스스로를 천애고아라고 했으니.
하지만 참으로 이상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리다고 한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지의 인물은 참회동에 갇혀 있는 어머니와 관계를 맺어 그녀를 잉태하게 했다는 뜻이었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 나는 소스라쳤다.
설마. 설마 그럴 리는 없었다. 없어야 했다.
***
꿈에 그리던 구 단계 진입에 성공했음에도 나는 침중해졌다.
잔뜩 흥분한 채 동굴에 들었다가 죽상이 되어 밖으로 나가자 영문을 모르는 털보가 덩달아 면상을 일그러뜨렸다.
“부상이 도졌더냐? 이번엔 유독 길게 운공하던데.”
그제야 나는 바깥의 어둠이 새벽이 아니라 심야의 암흑임을 깨달았다. 진종일 운공에 든 것이었다.
“괜찮소. 그만 갑시다.”
“어디로 말이냐? 장관은 더 이상 아는 마전이 없다던데.”
“한산으로 돌아가잔 말이오. 현마를 만나야겠소.”
“노야는 왜?”
나는 이번에 거둔 전과에 적잖은 기여를 한 털보에게 선선히 답을 주었다.
“현마를 통해 그를 포함한 칠마류의 수장들을 소집할 작정이오.”
털보가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떴다. 놀랍다기보다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달 만에 재회한 현마도 미심쩍어했다.
“며칠 전에 이곳에 왔을 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고 하던데.”
“다 나았소.”
“그렇더라도 그들 전부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필히 네게 마종의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려 들 터인데.”
“노인장과 비교했을 때 육마의 무위는 어느 정도요?”
“그들과는 오랫동안 손을 섞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그들이 얼마만큼 강한지 알지 못한다. 더욱이 검마와 기마, 그리고 장마(掌魔)는 새로운 자들로 교체되었다고 들었다. 전마(前魔)들을 꺾고 그 자리에 올라섰으니 다들 보통내기들은 아닐 게다.”
얌전히 듣고 있던 털보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감히 노야께 견줄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도마(刀魔)만이 노야와 자웅을 결할 수…….”
현마가 털보의 말을 잘랐다.
“속단하지 마라. 나는 내리막길이고 신참들은 이제 절정기에 접어들었을 게 아니더냐? 설령 내가 아직 체면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적벽에 오르려면 그들이 나 못지않은 수준이라 전제하고 나서야 한다.”
지당한 말이었기에 털보는 반박하지 못했다.
털보를 침묵시킨 현마가 내게 준엄한 안광을 발했다.
“너는 전날 일 년 이내에 나 같은 자 열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무위에 이를 거라 호언장담했다. 도저히 믿기 어려웠으나 나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살아생전 마종을 넘어 천마를 영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헌데 너는 일 년이 아니라 고작 한 달 이틀 만에 돌아왔다. 그것도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그러고는 육마를 소집하라니. 내가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느냐? 만용? 아니면 자포자기? 그도 아니면 놀림?
나를 기만하자는 게 아니라면 너는 좀 전에 내가 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육마 전원과 붙었을 때 그들을 물리칠 수 있겠느냐?”
***
이미 결론을 내려두었으나 나는 다시 한번 검토했다.
육마가 현마와 비등한 수준이라고 한다면 건곤장과도 비슷할 터였다. 그렇다면 나는 여섯 명의 건곤장을 상대해야 하는 셈이었다.
면밀하게 분석할 것도 없이 절대열세였다. 구 단계의 영역에 진입했지만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상태이니 건곤장 같은 고수 여섯을 대적하는 건 역불급이었다. 기껏해야 넷이 한계일 터였다.
정상적인 대결로는 승산이 희박했다.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거사를 유예하지 않고 즉각적인 정면승부를 결행하기로 한 건 나름의 비책이 있어서였다. 그 비장의 패가 통할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시도해 볼 가치가 있었다. 설사 그것이 무용지물이 될지라도 내 몸 하나는 어떻게든 건사할 수 있을 터였다.
솔직히 실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나는 천지조화지경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부모의 유지를 받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분들의 원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싶었다.
노인네의 기억을 통해 부친의 마지막 모습을 목도한 뒤로 그 바람은 결심이 되었고 그 결심은 나 자신조차도 어쩌지 못할 만큼 단단해졌다. 이 결심의 실행을 보류하고 떠난다면 마음속에 무거운 돌을 지니고 다니게 될 것이었다.
***
현마는 당연히 사전 점검을 하고자 했다.
나는 그를 압도했다. 그가 전력을 다해 퍼붓는 장공을 기방만으로 막아냈고 그때마다 그는 자기가 쏟은 힘만큼 충격을 받아서는 뒤로 튕겨 나갔다.
보고 있던 털보가 그에게 가세했지만 전세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 나는 일절 반격하지 않고 그들의 합공을 몸으로 받아주었다. 나를 치면 칠수록 그들만 점점 더 깨졌다.
두 사람은 탈진지경이 되고서야 손을 내렸다.
그 일전 이후로 나를 보는 털보의 눈이 완전히 바뀌었다. 벌써부터 나를 마종이라고 부르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낌새였다.
현마의 눈빛에서도 의심과 우려 대신 기대와 열망이 자리 잡았다. 그는 내 소집령을 전하기 위해 나와의 일전에서 입은 내상을 치료하지도 않고 한산을 나갔다.
나흘간 ‘비장의 패’를 마련한 나는 유월의 마지막 날 천마고원에 올랐다.
고원의 높이는 일천 장에 달했다. 웬만한 고산은 발아래 두는 엄청난 고지대였다. 면적도 상당했다. 현마에게 듣기로는 팔백만 평이 넘는다고 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지만 칠마류의 마인들은 이 고원을 차지하기 위해 거의 매년 사투를 벌였다. 고원의 주인이 마도의 패자(霸者)라는 인식을 공유한 탓이었다.
나는 현마가 알려준 길을 따라 전날 내 부모가 출현했다는 적벽으로 갔다. 수장들이 미리 지시를 내려두었던지 현재 천마고원을 장악하고 있다는 도마류와 요마류의 마인들은 그 길 주변에 얼쩡거리지 않았다.
적벽은 이름과는 달리 붉은 빛이 아니라 누리끼리한 색깔의 황토로 이루어진 소담한 둔덕이었다. 일견 범박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풍광이었으나 그곳은 마인들의 성지였다. 천마의 발원지라는 신화가 깃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언덕 아래엔 이미 현마를 포함한 칠마가 나와 있었다. 호흡으로 보건대 다들 적잖이 긴장한 듯했다. 현마의 전언을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전력이 있는 데다 그가 지닌 위상이 너무 컸을 터였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칠마류의 수장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십 장의 거리를 격하고 날아온 일곱 쌍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그중 여섯 쌍은 살벌한 마기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자극하기엔 다들 조금씩 모자랐다.
나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나를 주시하는 눈이 또 있음을. 재수 없는 늙은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