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1
제11화 – 그럼 시작해 봅시다.
마당에 들어서자 뭔지 알 법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일남이녀가 와옥 입구 근처에 몰려있었다. 사내는 곱상했고 여자들은 예뻤다. 한 여자는 사내에게 머리채를 잡혀있었고 다른 여자는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머리를 잡혀 목이 꺾인 여자는 다름 아닌 주근깨였다.
사내에게 질질 끌려 나오던 주근깨가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공자님!”
나는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소동이 벌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주근깨의 머리를 쥔 채 사내가 내게 탐색의 시선을 꽂았다.
“너는 이제 큰일났어!”
내 등장에 기가 산 주근깨가 사내를 을렀다.
사내가 거친 손속으로 그녀의 혈도를 찍었다. 그러고는 몸과 혀가 마비된 그녀를 옆으로 던졌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울고 있던 여자가 통나무처럼 쓰러진 주근깨를 챙겼다.
주근깨를 치운 사내가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냐?”
“그 여인의 친인이오만.”
“……낯짝이나 보자.”
나는 순순히 사내의 요구에 응했다. 내가 죽립을 벗자 사내의 입술이 비틀렸다. 조소를 지은 건가.
“이제 보니 기생오라비였군.”
나는 사내의 틀린 판단을 수정해주지 않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오?”
사내가 동문서답했다.
“낯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량을 베풀 테니 썩 꺼져라. 괜한 일에 참견했다가 피똥 싸지 말고.”
돌이켜보건대 사내의 제안을 수용해야 했다. 하지만 뻣뻣이 굳은 와중에도 눈알을 굴려 나를 곁눈질하는 주근깨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쓸데없는 시비를 피하려 내 딴에는 신경을 썼다.
“그녀를 놔주면 그냥 가겠소.”
사내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바로 내가 제시한 조건을 뭉갰다.
“허튼소리.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자청하다니. 지금부터 네놈에게 닥칠 변고는 네놈이 자청한 것이니 나를 원망치 마라.”
누가 할 소릴.
허리에 단창(短槍)을 차고 있었음에도 사내는 창을 빼 들지 않고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적수공권으로도 능히 나를 때려눕힐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양이었다. 왠지 찝찝했지만 이제 와서 물러서는 것도 꼴사나웠기에 사내의 착각을 깨뜨려주기로 했다.
나는 마주 걸어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사내는 풋내기가 아니었다. 나를 경시하고 있었을 터임에도 자세에 빈틈이 없었다. 십 보 전면에 이르러서는 내게로 쇄도하는 대신 발을 멈추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최초의 질문을 반복했다.
“너는 누구냐?”
“말했잖소? 저 여인의 친인이라고.”
“…….”
사내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더니 주근깨와의 관계가 아니라 성명과 출신을 대라고 재차 요구할 줄 알았는데 별안간 공격을 택했다. 그의 동체가 이삼 장의 거리를 단숨에 지우며 내게로 육박했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구임에도 사내의 기세는 마치 성난 황소를 방불케 했다.
황소가 열 받게 만든 대상을 뿔로 받아버리듯 어깨로 내 가슴팍을 으깨버리려는 사내에게 주먹으로 맞불을 놓을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주르륵 밀려나던 나는 돌부리에 걸려 중심을 잃었다. 사내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슬격(膝擊)을 시도했다.
상체를 바짝 뒤로 젖히며 사내의 무릎 공격을 흘려낸 나는 내 위로 지나가는 그의 사타구니에 짧은 주먹을 내질렀다. 이 한 방으로 끝날 거라 여겼는데 오산이었다.
허공에서 몸을 비트는 절묘한 신법을 선보이며 내 일격을 피해낸 사내는 외발로 착지한 동시에 몸을 회전하며 강력한 돌려차기를 날렸다. 사내의 발뒤꿈치가 내 머리통을 박살 내려는 찰나 팔꿈치로 그의 정강이를 찍었다.
빡.
뼈가 부러지는 기음과 함께 예정에 없었던 대결은 종료되었다.
나는 가일수를 하지 않고 사내에게서 떨어졌다.
왼 다리가 심하게 꺾였음에도 벌떡 일어선 사내가 허리춤의 단창에 손을 뻗었다. 나는 그에게 경고했다.
“그걸 쓰면 나머지 팔다리도 온전치 못할 거요. 기어서 가고 싶소?”
사내가 주춤했다. 그러더니 예상과 달리 한 자 반 길이의 창을 뽑았다. 그러나 나에게 달려드는 대신 부러진 다리를 맞추고는 거기에 단창을 부목처럼 갖다 댔다. 남색 무복 상의를 벗어 골절 부위를 단단히 동여맨 사내가 물었다.
“너는 누구냐?”
이 질문만 벌써 세 번째였다. 어차피 알게 될 터이므로 사내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나는 공공문의 문주이자 정의단의 단주인 오선이오.”
청광이 서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사내가 잠자코 몸을 돌렸다.
흠, 번번이 예상을 거스르는군. ‘두고 보자.’나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같은 상투적인 위협조차 남기지 않고 그냥 가다니.
절뚝거리며 솔숲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주근깨에게로 갔다.
***
“진짜 끝내줬어요. 역시 공자님이 최고예요. 하지만 좀 더 따끔한 교훈을 내려주시지 그랬어요. 저런 골통들은 대가리가 깨져봐야 제 주제를 깨닫는다니까요.”
아혈을 풀어주자마자 상소리를 섞어가며 주근깨가 호들갑을 떨었다.
머릿속에 든 두 가지 질문 중 어느 것을 먼저 꺼낼까 저울질하다 급한 것부터 내보냈다.
“그자는 누구요?”
“저도 몰라요.”
엥? 이 무슨 무책임한 답변이지?
사내는 단순한 무뢰배가 아니었다. 오절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초승달 눈썹의 원수였던 창진무관의 수석교두보다는 확실한 상수였다. 약관 전후의 나이에 그 정도 무위라면 상당한 명문의 후예임에 틀림없었다.
주근깨가 내 질문을 동료에게 옮겼다.
“그 발정 난 개자식이 누구니, 초선아?”
“나도 몰라. 먼 곳에서 왔다고만 했어.”
“뭐? 근데 어째서 봉야를 했어?”
나이답지 않게 육덕진 몸매를 가진 여인이 나를 힐끔거리며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잘생겼잖아.”
주근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그렇게 빤질빤질한 것들만 밝히다 언젠간 경을 치를 거라고 했어, 안 했어? 최소한 어디에서 굴러먹던 놈팡이인지는 알고 끌어들였어야지.”
육덕 여인이 발끈했다.
“너만 안 나타났으면 아무 일도 없었어. 얼마나 끝내줬는데. 간밤에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고. 몸집은 야리야리해도 거기는…….”
뒷말을 얼버무리며 육덕 여인이 토실토실한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흠, 보기보단 순진하군. 아니면 이것도 사내를 꼬이는 기술인가?
헛기침을 함으로써 주근깨의 주의를 내게로 돌린 나는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예월 소저하고 그자하고는 어떻게 얽히게 된 거요?”
내 호칭에 주근깨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냥 예월이라고 부르세요, 공자님. 말도 놓으시고요.”
“…….”
나는 침묵으로써 묻는 말에나 답할 것을 압박했다.
“그냥 재수가 없었어요. 밤새 늙다리 졸부들에게 시달리다가 겨우 떨궈놓고는 방해 없이 푹 자려고 별채에 왔는데 하필 이년의 배웅을 받으며 문을 나서는 그 개자식과 마주쳤지 뭐예요.”
주근깨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뜸을 들였다. 하는 수 없이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그래서?”
“한눈에 저한테 반했는지 개자식이 대뜸 자기를 모시라고 하지 뭐예요. 짜증이 났지만 부드러운 말로 거절했어요. 나는 웃음을 팔지 몸은 안 판다고요.”
현명한 처신은 아니었다. 모름지기 사내란 튕기는 여자에게 더 욕구가 동하는 족속이 아니던가.
육덕 여인이 끼어들었다.
“거짓말하지 마. 네가 언제부터…….”
주근깨가 육덕 여인의 말을 초장에 잘랐다.
“어제부터다, 왜? 그리고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하랬다고, 나는 전에도 너처럼 아무나 받아들이지…….”
“뭐가 어째? 너 정말 이러기야? 너야말로 개나 소나 화대만 많이 주면…….”
“닥쳐, 이 돼지야! 계속 그렇게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면…….”
“어쩔 건데? 내 목이라도 비틀게? 네년의 그 앙상한 손으로는 지렁이 한 마리도, 꺅!”
나는 서로의 말꼬리를 잡는 입씨름을 멈추고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 시작한 두 여인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주근깨가 육덕 여인을 뿌리치고 나를 쫓아왔다.
“어디 가세요, 공자님? 저를 보러 오신 거 아니에요?”
나는 그녀의 기대에 초를 쳤다.
“양 관주를 보러 왔소.”
주근깨의 얼굴에 짙은 실망감이 배어났다.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육덕 여인이 내가 헛걸음을 했음을 알렸다.
“관주님은 출타 중이세요. 일러야 이틀 후에나 돌아오신다고 하셨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여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음에 오겠소.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구려들.”
독이 오른 눈들을 보아하니 그럴 성싶지는 않았지만 내 알 바가 아니었기에 여인들을 두고 마당을 벗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솔숲에 들어서기도 전에 육두문자와 비명성이 날아왔다.
***
사내와의 격돌보다 두 여자의 언쟁에 귀를 시달렸던 게 열 배는 피곤했다.
나는 가볍게 뺨을 두드리며 기분을 환기했다. 사내의 정체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잊기로 했다. 대사를 앞두고 그런 일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인파로 붐비는 거리를 이리저리 배회하며 시간을 때우다 거미줄처럼 달라붙는 감시의 눈길을 인지했다. 살막의 주구들일 터였다. 붙잡고서 문초해봤자 뒤를 캐낼 수는 없을 터이기에 그냥 방치했다.
그러다 보니 굼벵이 짓을 하며 얄밉게 굴던 태양이 어느새 중천으로 올라갔다. 나는 주태의 석조 건물로 향했다.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벌써부터 거친 숨소리들이 악머구리 끓듯 요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십 쌍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달라붙었다.
죽립을 벗으며 내 앞에 학익진을 펼치고 늘어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사내들은 열 명도 안 될 듯싶었다.
나는 주태에게 만족감을 담은 미소를 보냈다. 따로 언질을 주지 않았음에도 내 구미에 맞는 의뢰인들을 선별한 것이었다.
불안과 열망이 혼재된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 남녀들은 하나같이 행색과 몰골이 추레했다. 다들 천민임에 분명했지만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고객들이었다.
뒤뚱거리며 내게로 달려온 주태가 경과를 보고했다.
“총 쉰아홉 명입니다. 새벽에 드렸던 명단에서 다섯이 빠진 건 그들 전원이 거동이 불편할뿐더러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지시를 완료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오, 수고 많았소.”
주태를 치하한 나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럼 시작해 봅시다.”
원사의 청취는 순조로웠다. 주태가 미리 의뢰인들에게 순서와 방식을 주지시킨 덕분이었다.
모인 인원의 절반에 가까운 스물여덟 명은 원수가 동일했다. 흑사파의 행동대장인 ‘애꾸’에게 그들이 쏟아내는 원한의 집중은 뜻밖의 현상을 일으켰다. 그들의 원독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내 상단전에는 불꽃이 아니라 숫제 불길이 일었다.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흥분을 주체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하루에 반년 치의 적공을 이룰 터인데 어찌 침착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며칠 내에 새로운 단계에 들어설 것 같은 예감에 희희낙락하던 찰나 내 솜털들이 곤두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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