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58
제158화 – 어디 있는 줄 알고?
재수 없는 늙은이는 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밤새 여섯 차례나 더 선기를 천공으로 쏘아 올렸지만 날이 새고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오지 못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늙은이가 전날 내게 허풍을 떨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늙은이를 기다리며 그를 욕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독고를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용력을 쓰면 어찌어찌 두개골에 박힌 벌레를 끄집어낼 수 있을 듯싶었지만 그다음 수순을 잇기 어려웠다. 아니, 그 자체가 위험했다. 벌레가 자기를 건드렸다고 성질을 부릴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었다.
좁쌀만 했지만 벌레는 내 뇌를 터뜨리기에 충분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함부로 자극할 수 없었다.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으나 참아야 했다.
내가 독고와 씨름하는 동안 나우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는 파리나의 수장 자격으로 특급 지령을 내려 대륙 전역에 안진과 양천, 즉 검룡의 초상화를 뿌리며 수배령을 내렸다. 나우는 그들이 서역 내에만 있다면 아무리 으슥한 곳에 은신해 있더라도 결국은 걸리게 될 거라 호언장담했다. 그녀에 따르면 파리나는 중원의 대표적 정보조직인 상운과 흑문을 합친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촘촘한 그물망을 가진 집단이었다.
나는 이번에 십자무련에 가면 문상을 만나 안진과 양천(검룡)을 찾아달라고 청할 참이었다. 그녀가 힘을 쓰면 나우와 같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검룡은 중원 어디에 있든, 있기만 한다면 문상의 이목을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나우는 내가 애초에 부여했던 임무도 충실히 수행했다.
그녀는 서역의 내로라하는 악당들을 추렸고 그들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이들을 파악했다. 이를테면 중원의 십대악인을 찾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었다.
공교롭게도 일차적인 조사를 마친 나우는 내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되는 사냥감이 열 명 어림이고 그들의 피와 살과 뼈를 원하는 이들의 수는 수만 명에 달할 거라 했다.
절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우가 점찍은 월척들을 다 낚아 올린다면 천지조화지경에 이를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중원으로 출발하기 전에 하나라도 잡기로 마음먹었다. 일천 명이 선사할 청화와 적화는 나를 개세팔천 위로 올려줄 것이었다. 그들보다 강해져봤자 무후에겐 무용지물이 될 터이나 그래도 최악의 경우 전생을 결행하기 전에 그녀를 뭉개버릴 힘을 갖추고 싶었다.
***
나우가 총력을 기울이며 준비에 박차를 가했지만 무대가 마련되는데 닷새나 소요되었다.
무후와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호원까지는 팔천 리에 가까운 장도였으나 쉼 없이 경신을 전개하면 열 시진 안에 당도할 수는 있었다. 만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도원에 들려 재수 없는 늙은이에게 안진의 납치 건을 알리고 대책을 의논해야 할 터이기에 반나절 가량의 여유는 두어야 했다.
그 밖에도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사냥터는 고르에서 남서로 일천사백 리쯤 떨어진 ‘아자’란 곳이었다.
아자는 일종의 소국이었다. 십사왕국에 속해있지는 않으나 나름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고 했다.
아자의 통치자는 ‘러프’라는 이름의 오십 대 중년인이었다. 하지만 나우가 건네준 용모화에 든 얼굴은 마치 해맑은 미소년 같았다. 십수 년 전에 그린 것이라 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었다.
러프는 잔인무도한 폭군은 아니었다. 물론 성군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풍부한 물산 덕분에 그가 다스리는 땅의 백성들은 서역의 다른 지역의 민초들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러프가 내 사냥감으로 선정된 건 그의 기벽 때문이었다.
러프는 이따금 제 나라의 여러 도시들을 돌며 시찰을 나갔는데 그때마다 아무나 골라 반역자로 지목하고는 중인환시리에 친히 문초했다. 잔인한 고문을 당한 이는 모반의 의도를 품고 있음을 실토하고서야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대상은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그저 운 나쁜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식이었다.
고통을 면하기 위해 미리 죄를 시인할 수도 없었다. 그런 경우엔 죽이지도 않고 전신의 힘줄을 자른 후 두고두고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가족까지 한통속으로 얽으려 들었기에 러프에게 찍힌 이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까지 지옥 같은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여하간 러프가 시중에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고 그는 그들의 반응을 노골적으로 즐겼다. 러프가 십팔 년 전 부친에게서 아자의 군주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 지금까지 그의 악취미에 희생된 이들의 수는 이천 명이 넘었다. 매년 일백 명 이상 횡액을 당한 셈이었다.
***
사냥은 싱거우리만치 간단했다.
나우를 안고 으리으리한 대궐 위로 비행한 나는 곧장 러프의 거처라는 황금 궁전으로 쳐들어갔다. 그러고는 경호성을 지르며 나를 막아서는 친위대 호위무사들의 마혈을 짚어 그들을 통나무로 만들고는 해 뜬 지 한참 지났음에도 침실에서 네 명의 미녀와 뒹굴고 있던 사내를 붙잡았다.
사내는 용모화에서 본 것처럼 십 대의 소년이라 해도 믿을 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그의 면상엔 두려움보다는 당혹감이 깃들어있었다. 나는 그를 끌고서 대궐의 광장으로 나갔다.
곧 수많은 이들이 몰려나왔다. 그들의 절대다수는 병사들이었다. 못해도 일천 명은 될 듯싶었다. 하지만 모두들 내게 창을 겨눌 뿐 달려들지는 못했다. 내가 그들 주군의 목을 틀어쥐고 있어서였다.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기를 기다린 나우가 무어라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나는 ‘두나 까만’이라는 단어만 알아들었다. 짧은 연설을 마친 나우가 내게 눈짓을 했다.
나는 사전에 언질을 받은 대로 자유로운 오른손을 들어 보인 후 손가락을 쫙 폈다. 내 오지(五指)에서 발출된 지공들이 광장 주위에 늘어선 거대한 석상들을 박살 냈다. 경악성들이 터져 나오며 광장은 혼돈의 도가니로 화했다.
상황을 수습한 이는 준수한 용모에 탄탄한 체구를 가진 중년인이었다.
그가 사자후를 발하며 전면으로 나서자 악머구리 끓듯 했던 장내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중년인은 나우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또한 사전에 합의된 행사였다.
중년인은 ‘러프’의 사촌 동생이자 아자 최고의 무장이었다. 나우는 그의 진정한 장점은 용맹이 아니라 덕망이라고 했다. 그는 러프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었다.
나우와 중년인의 대화를 듣고 있던 러프가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는 악다구니를 썼다. 나는 그의 아혈을 찍어 입을 봉했다.
그다음엔 일사천리였다.
중년인이 미리 조치를 취해둔 덕분에 대궐 밖에 대기하고 있던 러프에게 원한을 품은 이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정오 무렵엔 그들이 물러간 병사들을 대체하고 광장을 가득 채웠다. 족히 사오천 명은 되어 보였다.
군중은 그들의 원수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중년인의 제지에 순응했다. 중년인은 이미 왕이 된 듯한 권위를 과시하고 있었다.
군중을 진정시킨 중년인이 그들에게 원사를 풀어내도록 지시했다. 수천 개의 입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기실 약간 걱정을 했더랬다.
고객들이 이방의 언어로 쏟아낼 피맺힌 언사들이 청화로 전환되지 않으면 어쩌나. 그러면 헛수고가 될 터인데.
다행히 기우였다. 내 상단전엔 어김없이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전쟁터에 못지않은 강도와 크기였다.
하지만 내가 말한 기이한 경험은 그게 아니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임에도 나는 그들이 토해내는 절규에 담긴 분노와 살의와 회한을 그림을 보듯 잡아낼 수 있었다. 특히 러프에게 아이들을 잃은 이들이 발하는 원독이 선명했다.
나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렸다.
누이가 납치된 것만으로도 이토록 불안하고 쓰라린데, 소중한 가족이 눈앞에서 비명횡사하는 참극을 겪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력함과 죄책감은 그들의 심혼을 파괴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것은 원수를 처단한다고 아물 상처가 아니었다. 남은 자들은 죽는 날까지 치유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적화의 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결과는 불만족스러웠다. 적화에 비해 군중이 피워올린 청화가 너무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오 분의 일도 안 될 듯싶었다.
러프는 뼈도 추리지 못할 만큼 갈가리 찢겼다. 그에게서 뜯어낸 살점들을 먹어 치우는 광기를 분출한 군중은 중년인의 명에 따라 내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내가 아니라 중년인을 향한 것이었다.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의 본의도 아니거니와 이 손해는 기본적으로 내 불찰의 소치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차후엔 보다 정교한 판을 짜기로 했다. 그러려면 조력자를 보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
고르로 돌아온 나는 파리나 본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곤장과 함께 중원으로 출발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를 안고 달릴까도 고려해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무후와 약속했던 날짜까지는 아직 나흘이나 남아있었기에 그의 경공으로 가도 시한 내에 호원에 당도하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도중에 재수 없는 늙은이를 봐야 해서 건곤장에게 전속력으로 달려줄 것을 주문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건곤장은 천벽까지 한달음에 주파했다. 나는 사막에 면한 지점에서 그에게 휴식을 권했다. 그는 기꺼이 내 배려를 받아들였다.
건곤장이 쉬는 동안 나는 도원 방면으로 선기를 발출하며 늙은이를 다시 한번 시험했다. 반 시진 가까이 지났지만 늙은이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빌어먹을 허풍선이 같으니.
속으로 늙은이에게 욕설을 한 나는 운기조식을 마친 건곤장을 사막으로 이끌었다. 늙은이가 오지 않으니 내가 도원으로 가야 했다.
서쪽 지평선에 걸쳐있던 해가 감나무의 홍시처럼 뚝 떨어졌다. 나는 갑자기 암흑에 잠긴 모래 바다 한가운데 건곤장을 남겨 두고 홀로 북상했다.
한 식경쯤 달리자 멀리 실지렁이 꼴을 하고서 밤하늘로 올라가는 회오리바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선기를 발산하며 도원의 파수꾼 노릇을 하는 용권풍에 접근하자 재수 없는 늙은이가 난데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여긴 웬일이냐? 진아는 왜 같이 오지 않았더냐? 마령을 전부 회수한 게냐?”
나는 늙은이가 마지막 질문에 방점을 찍었음을 알았다. 새삼스레 의구심이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마령에 집착하는 걸까.
늙은이의 관심사를 무시하고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묶어서 한 번에 답을 주었다.
“내 누이 때문에 왔소. 며칠 전 납치됐소.”
상상도 못 했던 답변이었던지 늙은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납치라니? 누구한테? 네놈은 뭘 하고 있었던 게냐?”
나는 선력을 끌어올려 늙은이가 발산하는 가공스러운 도기에 대항했다.
“진정하시구려. 나한테 화를 낸다고 진이가 돌아오는 건 아니잖소.”
“닥쳐라, 이놈! 만약 그 아이에게 불상사가 생기면 결코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진이는 무사할 게요. 납치범이 원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나니까.”
늙은이의 반반한 면상이 우그러졌다.
“네놈 때문에 진아가 당했다는 소리구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변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잠시 떨어진 동안 사달이 났던 거요.”
“그래서 네놈 책임이 아니란 말이냐?”
“내 책임이 맞소. 잘못이 아닐 뿐.”
“뭐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따지는 건 나중에 합시다. 지금은 진이를 구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소?”
“네놈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 나 혼자 진아를 찾아올 것이다.”
“어디 있는 줄 알고?”
말문이 막힌 늙은이가 나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