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 으어어 어으어.
자세를 바로 한 직후 내 몸이 앞으로 쏠렸다.
주태가 갑자기 마차를 멈춰 세웠기 때문이었다. 하마터면 마차 벽에 코를 박을 뻔한 나는 가까스로 충돌을 모면했다.
주태에게 급정거의 이유를 묻지 않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과연 주태의 와옥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의 공터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삼인이 보였다. 내 청각을 자극한 자들일 터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의외의 조합이었다. 셋 다 누군지 알 듯했지만 그들이 어째서 한 데 있는지는 도무지 추측할 수 없었다.
한 명은 머리가 훤히 벗겨진 초로의 중년인이었다.
인상이 너무 험악해 흉한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자였다. 나는 보자마자 대머리의 정체를 알았다. 그는 어젯밤 양 관주에게 들었던 광풍혈사대의 주요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광살부(狂殺斧) 백주(白柱).
누가 그 두목에 그 졸개 아니랄까 봐 대머리는 제 우두머리인 광마도와 별호의 광(狂)을 공유하는 미친개였다. 졸개라고 했지만 광풍혈사대 무력 서열 삼위의 강자이기도 했다.
양 관주에 따르면 그의 무위는 초절정 초입이었다. 오절도나 쌍둥이 노인들보다 한 수 위라는 뜻이었다.
광살도의 왼편에 선 이들은 검사(劍士)들이었다.
족히 사십 대로 보이는 그들은 잘 벼린 검이 서 있는 것 같은 예기를 발산했다. 이마에 소속을 써 붙이고 있지는 않았으나 나는 그들이 정검문(正劍門)의 인사들이리라 추정했다. 둘 모두 삿된 기운은 한 줌도 배어 나오지 않았고 안광도 정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검문은 보양에 가장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방파였다. 거리가 삼백이삼십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헷갈렸다.
같은 십자무련 중추십삼파에 들어있지만 정검문은 정파를 자처하는 반면 광풍혈사대는 사파로 분류되었다. 정파의 표범들이 어째서 사막의 흉포한 이리와 함께 있단 말인가. 견원지간보다 더 사이가 나쁠 터인데.
의문을 해소하려면 질문을 던져야 했지만 광살부는 그럴 기회를 허락지 않았다.
그는 내 신분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절차마저 생략하고 시뻘건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먼저 닿은 건 그가 아니었다. 풀숲에서 튀어나온 시퍼런 뱀이 그의 도끼에 앞서 나를 휘감았다.
뱀은 뱀이 아니라 기다란 채찍이었다.
이미 풀숲에 도사린 자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던 나는 어렵지 않게 그의 암습을 피해냈다. 채찍의 궤적을 벗어난 내게 도끼가 따라붙었다. 찍히는 순간 몸뚱이가 장작처럼 쪼개질 터이기에 나는 부리나케 거리를 벌렸다.
채찍을 부리는 자가 내 퇴로를 차단했다. 그의 낯짝을 볼 경황이 없었지만 나는 채찍의 주인이 청사편(靑蛇鞭) 조굉(趙宏)임을 알고 있었다. 크고 넓다는 뜻을 담은 이름과는 달리 조굉은 왜소한 체구의 난쟁이였다. 그러나 그는 절정 극상으로 평가받는 강호였다.
날에 맹독이 발려있을 채찍으로 인해 퇴로가 막힌 나는 하는 수 없이 도끼를 상대해야 했다.
병기의 특성상 육박전에 장기를 가진 광살부가 나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나는 회피에 급급했다. 그나마 그와 어우러져 근접전을 벌인 덕분에 잠시나마 청사편의 채찍은 경계하지 않아도 되었다.
핑, 핑, 핑.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도끼가 일으킨 기음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짜증을 부릴 계제가 아니었다. 도끼날이 몇 번이나 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깊었으면 끔찍한 부상을 입었을 터였다.
아찔한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서서히 광살부의 수법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반격이자 결정타를 날릴 작심을 한 찰나 나는 소스라쳤다. 다섯 치가량의 간격으로 넉넉하게 빗겨낸 도끼가 돌연 쭉 잡아당긴 엿가락처럼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설마 강기(剛氣)를 구사할 수 있었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광살부에게 나를 맡기고 관망하던 청사편이 그가 비장의 패를 꺼낼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그를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청사편이 날린 건 채찍이 아니라 암기였다. 무엇인지는 살필 겨를이 없었으나 소리의 느낌상 쇠구슬 종류였다.
내 투석 솜씨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정교함을 과시하며 청사편이 쏘아낸 예닐곱 발의 철구(鐵球)는 내 퇴로를 원천 봉쇄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가만히 있자니 강기를 머금은 도끼에 걸릴 터이고 물러나자니 쇠구슬에 적중당할 판이었다. 어느 쪽도 일어나서는 곤란했다. 으깨지거나 구멍이 뚫리거나 뒤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여 나는 비상수단을 강구했다.
내 속에 깃든 선령(仙靈)이 나를 둘러싼 시공간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다. 찰나를 백 분의 일로 나눈 극미한 시간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그동안 여섯 군데의 활로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택해서는 자연지기에 내맡겼던 동체를 의식적으로 조종했다.
팟.
시간이 풀리며 결과가 드러났다.
도끼가 내 왼쪽 귓불을 핥고 지나갔다. 쇠구슬들도 허공만 갈랐을 뿐이었다. 다만 두 개는 내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뚫었다.
나는 적들의 합공을 빗겨냄과 동시에 반격을 가했다. 내 발뒤꿈치가 햇빛을 반사해 반들거리는 광살부의 이마를 찍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힘 조절을 했다. 자칫 잘못해서 두개골이 박살 나면 큰일이지 않은가.
청사편에겐 세 줄기의 지풍을 선사했다. 거리가 상당했음에도 내 반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 청사편은 속절없이 양어깨와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일시에 전세를 역전시켰으나 승부를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광살부를 가격하고는 중심이 흐트러져 땅바닥에 처박힌 내게로 네 줄기의 검기가 엄습했다.
둘은 내 팔들을 노렸고 나머지 둘은 다리로 날아왔다. 한마디로 내 사지를 자르려는 심산들이었다.
검기를 쏘아낸 자들이 누군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비를 하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지면에 왼 어깨가 닿자마자 몸을 비틀어 검기들을 흘려냈다. 그러고는 나를 기습한 검사들에게 돌진했다. 내 회피와 신속한 대응에 놀란 검사들이 다급한 음성을 토해냈다.
“잠깐!”
나는 그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검사들이 허둥지둥 검을 들어 방비에 나섰으나 기세를 탄 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하나는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다른 하나는 주먹으로 면상을 후려갈겼다. 급소를 맞은 자는 거품을 물었고 턱이 깨진 자는 비명을 내질렀다.
둘 다 말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표정으로 의사를 알렸다. 나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냈다.
나는 속으로 반문했다.
검사들을 쓰러뜨리기 무섭게 몸을 돌린 나는 내 지풍에 단전이 뚫려 경신을 전개하지 못하고 달음박질로 달아나는 청사편에게 땅에서 집어 든 돌멩이를 날렸다.
생각 같아서는 뒤통수에 때려 박고 싶었지만 행여 불상사가 생길까 싶어 아래쪽을 겨냥했다.
피융.
“컥!”
밤톨만 한 돌멩이에 발목을 얻어맞은 청사편이 엎어졌다. 나는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누구든 도망치다 걸리면 안 봐줄 테요. 하지만 얌전히 굴면 목숨은 살려주겠소.”
효과가 있었다.
깨진 머리를 안고 튀려던 광살부가 움찔거렸다. 그러면서 내 눈치를 봤다. 미친개니 뭐니 해도 제 목숨은 아까운 법이었다.
***
나는 패잔병들의 혈도를 제압한 후 하나씩 처리했다.
먼저 광살부.
아혈을 풀어주자 그가 예상치도 못한 언사를 쏟아냈다.
“나를 풀어주시오, 소협. 아무래도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대주께 잘 말씀드려 잘 매듭짓도록 하겠소.”
어이가 없었다. 이런 얼뜨기가 광풍혈사대의 삼인자라니.
“그런 말은 싸우기 전에 했어야지. 깨지고 나서야 내뱉다니, 너무 뻔뻔한 거 아뇨?”
“그때는 소협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그랬소이다. 부디 내 과오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구려. 대주껜 정말 잘 말씀드리겠소.”
나는 사막의 햇볕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대머리의 면상을 내려다보며 자문했다. 광살부라는 별호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을 남겼을까.
아쉬웠다. 최고의 제물이 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실망하기엔 일렀다. 누가 알겠는가. 나중에 대머리에 대한 내 처분을 들은 이들이 뒤늦게라도 감사를 표할지. 그러려면 소문이 나야 했다.
결정을 내린 나는 가차 없이 광살부의 아랫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단전이 파열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한 광살부 대신 나머지 셋이 사색이 되었다.
광살부의 사지도 부러뜨린 나는 청사편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미 지풍으로 뚫어버렸기에 단전은 따로 손 볼 필요가 없었다.
무기력하게 누워 내 처치를 지켜보던 정검문 검사들의 동공이 공포로 물들었다. 나는 턱이 깨져 말을 할 수 없는 자는 내버려 두고 고환이 터진 자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그자는 예상과는 달리 고자세로 나왔다.
“우리는 정검문 십위(十衛) 중 사위와 오위이다. 우리를 건드리면 정검문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터, 안위를 생각한다면 현명한 처신을 하도록.”
나는 호가호위하는 검사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정검문의 인사들이 어째서 사막의 이리떼와 어울리는 거요?”
“답할 수 없다.”
“그러면 아까 나를 왜 공격했소? 이것도 비밀이오?”
“너를 물러서게 하여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하아. 이제 보니 광살부보다 더 뻔뻔한 종자가 아닌가.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지. 내가 넘어진 틈을 타 기습한 주제에. 거기에 노골적으로 팔과 다리를 자르려 들지 않았소?”
“억측이다. 설사 내 동료가 그랬다손 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만!”
“뭐?”
“주둥이 다물라고. 더 씨부리면 저놈들하고 같은 꼴로 만들어주지.”
설마 했는데 협박이 먹혔다. 이런 쫄보 같으니.
내 머릿속에서 상반된 내용을 담은 두 개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나는 양 관주의 애원이었다.
다른 하나는 내 심혼에 봉인된 본성의 부추김이었다.
나는 둘 다 묵살했다. 그러고는 검사들의 손목을 차례로 비틀었다. 철저히 망가뜨렸으니 그들은 다시는 검을 쥐지 못할 터였다.
지나친 처사라고? 내공을 폐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가. 검사들은 마땅히 내게 감사해야 했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그럴 성싶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내 심기를 거슬려 더 큰 화를 자초할까 봐 두려운지 감히 나를 노려보지는 못했다.
나는 사인(四人)을 마차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얼이 빠진 채 내 행사를 지켜보고 있던 주태에게 출발을 명했다.
“갑시다.”
나를 귀신 보듯 하고 있던 주태가 느닷없이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어라? 발작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러면 곤란한데.
“괜찮소?”
“으어어 어으어.”
어럽쇼? 이젠 벙어리가 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