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95
제195화 – 존명!
아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에 쥔 서찰을 내밀었다.
전서구에 묶여 와 꾸깃꾸깃 접힌 종이에는 확인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 담겨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빠르게 훑고 있는데 초장에 뜻밖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창제는 그렇다 쳐도 검제가 어째서 거기에…….”
아르가 내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 어른은 오 공자에게 봉문의 금제를 받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창제를 위로하겠다며 북원에 갔던 거예요. 둘이 힘을 합쳤음에도 괴물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다니,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에요.”
서신에는 혹 달린 문어 형상을 한 괴물과 두 무제(武帝) 간의 대결이 간략하게 묘사돼 있었다. 기실 간략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끝나버렸기 때문이었다. 괴물은 창제와 검제의 합공에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반면 그들은 괴물의 일격에 속절없이 머리통이 터져버렸다고 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이들이 얼마나 대경실색했을지는 불문가지였다.
문제는 창제와 검제의 변사가 아니었다. 그 바로 뒷줄에 둘을 처치한 괴물이 닥치는 대로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괴물이 난동을 부린지 반각도 안 되어 수천, 어쩌면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나는 차마 더 읽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죠?”
아르의 질문이 망연자실해 있던 나를 일깨웠다.
“우선 괴물의 동태부터 파악해야겠소.”
당장 북원으로 갈까도 고민했으나 헛걸음이 될 공산이 컸기에 접었다. 괴물이 아직도 그곳에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그러니 그의 경로를 추적한 연후 다음 행선지로 추정되는 장소로 직행하는 편이 나을성싶었다.
나와 아르는 집보각(輯報閣)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급임을 알리는 붉은 실을 다리에 매단 전서구들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전부 북원의 참극에 대한 후속 보고였다. 나는 다시금 갈등했다. 내 고민을 알아챈 아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첩지 아래에 기록된 시각을 보면 벌써 네 시진 전의 일이에요. 북원이 넓다 하나 이 속도라면 이미 끝났을 거예요.”
나도 아르의 판단에 동의했다. 그래서 즉시 북원으로 날아가고픈 충동을 억눌렀다. 그러면서 문득 물었다.
“왜 북원이었을 것 같소?”
아르는 현명한 여인이었지만 괴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가 봐야겠소.”
뜬금없는 출발 선언에 아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았다.
아르는 에두르지 않았다.
“괴물을 상대할 수 있나요?”
“……최선을 다할 뿐이오.”
약한 소리를 하긴 싫었으나 허풍을 떨 수도 없었다. 참회동에서 비장의 패를 얻었으되 그게 통하리란 보장이 없으니 빤한 대답이 불가피했다.
내 결의에 감응한 아르가 덩달아 비장한 눈빛을 드리웠다.
“어디로 가나요?”
“호원에 갈 작정이오.”
“아버지가 오시는 대로 우리도…….”
“아니, 그러지 말구려. 여기 있다가 만약 내가 괴물을 막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리거든 지체 없이 그 어른과 용궁으로 돌아갔으면 하오. 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주오. 부탁이오.”
“…….”
“이제 떠나야겠소.”
“……알겠어요. 무운을 빌어요, 오 공자.”
나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문 아르를 껴안았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포옹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
나는 짐작이 틀리지 않기를 기원했다.
괴물이 북원을 첫 번째 방문지로 택한 것은 그곳에 창제가 있기 때문일 터였다. 양천의 머릿속에 든 정보를 참조했을 괴물은 그가 중원의 일인자라 여기고는 그부터 처리하려 들었을 듯싶었다. 그렇다면 괴물이 두 번째로 염두에 둔 사냥감은 무후일 가능성이 상당했다. 그래서 나는 괴물이 호원으로 향했으리라 추측한 것이었다.
만에 하나 잘못 짚었더라도 하동에서 간만 졸이고 있는 것보단 십자무련에 가 있는 게 나았다. 중원의 중심에 자리해있으니 괴물의 다음 출현지에 날아가는 데 시간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최상의 정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십자무련에 있으면 괴물이 어디에서 나타나건 바로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암흑으로 물든 대지 끝자락에 빛무리가 일렁거렸다.
수백 리나 떨어져 있음에도 천하제일도의 위용을 과시하는 호원으로 빛살같이 날아가며 나는 추측이 들어맞았기를, 그리고 늦지 않았기를 빌었다. 하늘은 두 가지 기도 중 하나만 들어주었다.
호원이 가까워짐에 따라 나는 괴물이 나보다 선착했음을 알았다. 고막을 핥는 모깃소리 같은 미음은 그가 이미 파괴와 살육에 착수했다는 신호였다.
단숨에 이십여 리의 거리를 지운 나는 호원 상공을 지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괴물은 아직 저자에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십자무련을 덜 정리한 것이었다.
북문(北門)을 통과하자마자 목불인견의 참상이 나를 맞았다.
산산이 부서진 전각들과 무참히 터진 시신들이 처처에 널려있었다. 나는 폐허 위를 날며 괴물을 찾았다. 십자무련 전역에서 이는 아비규환의 울부짖음이 수색을 방해했다.
나는 비행을 멈추고 집중했다. 십자무련의 면적은 일백만 평 이상이었다. 무작정 헤매는 것보단 정확한 위치를 포착하는 게 오히려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잠시 후 돌과 나무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으깨지며 나는 기음이 귀에 잡혔다. 나는 속도와 방향을 가늠했다. 그러고는 소리가 휘도는 곳으로 날아갔다.
마치 창호지를 뚫는 황소 같았다.
괴물에게 부딪친 전각은 찰나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거침없는 파괴를 일삼는 와중에도 괴물은 사람들도 보이는 족족 팔을 휘둘렀다. 괴물의 수족에 걸린 이들은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횡액을 면치 못했다.
나는 파괴와 학살에 여념이 없는 괴물에게 지공을 쏘아냄으로써 내 도래를 알렸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좌충우돌하던 괴물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그러더니 삼십여 장이나 떨어진 나에게 단숨에 쇄도해왔다.
괴물과의 거리가 일이 장 남았을 때 나는 천공으로 비상했다. 괴물의 팔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내 발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나를 놓친 괴물이 공중으로 방향을 틀더니 나를 추격해왔다. 축공이신을 발하지 않는 한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빠르기였다. 나는 더 달아나지 않고 필생의 승부수를 오른손 검지에 담은 채 괴물이 오기를 기다렸다.
***
어떤 의미로는 천운이었다.
참회동에서 극적으로 천마의 마령은 물론이고 선사들의 선령까지 흡수하는 데 성공했으나 나는 그 미증유의 힘을 동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선사들이 나와 일체가 되기를 거부해서가 아니었다. 그이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선력과의 융합을 피한 것이었다. 만약 무리하게 체화하려 했다면 내 육신은 그 힘을 감당치 못하고 폭발했을 터였다.
기실 마령과 선령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태위태했다. 아르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숨쉬기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게 확실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괴물을 만나야 했다.
놀랍게도 괴물과 조우한 순간 나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무것도 못 해보고 비장의 패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욕심을 부리다 폭사했을 것이었다.
최소한 여기까지는 하늘은 내 편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까지 그러리라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이제는 내 손에 달려있었다.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만인의 운명이. 나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어떻게든 한 방에 끝내야 했다.
선정의 투시안으로 괴물의 몸뚱이 안에 깃든 검붉은 덩어리를 찾아낸 나는 검지에 몰아두었던 천마의 마령과 선사들의 선령을 그리로 쏘아냈다.
직격은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준비한 패가 막강하더라도 그 방식으로는 일지관천지에 끄떡도 하지 않던 괴물의 동체를 완벽하게 파괴할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하여 나는 전날 다라 제국에서 초현한 신수를 구사했다. 그것이 괴물의 껍데기를 격하고 들어가 심장을 터뜨려주기를 염원하면서.
내 손가락에서 빠져나간 건 마령과 선령만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발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력이 필요했다. 선력을 상실할 우려가 매우 컸으나 나는 아낌없이 내 진력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괴물을 처치할 수 있다면 내 한 몸은 어떻게 되건 상관없었다. 그 대가로 목숨을 요구할지라도 기꺼이 내놓을 작정이었다.
내 심혼이 마령-선령을 따라 통째로 육신을 빠져나간 것 같은 기이한 느낌과 함께 일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고는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이게 죽음일까. 나는 생사의 경계를 넘어 저승에 온 걸까. 괴물은 어떻게 됐을까. 설마 나만 끝난 건가.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의문들은 곧 답을 찾았다. 갑자기 온몸이 바스러질 듯한 극통이 일더니 무언가 뭉근한 감촉이 얼굴과 가슴, 그리고 배 위에 전해졌다. 나는 한순간에 모든 걸 알아차렸다.
내 필사의 일격이 괴물의 심장에 적중했음을. 심장이 파열된 괴물은 가루 신세는 모면했으나 갈기갈기 찢어졌음을. 그리고 먼저 지상으로 추락한 내 몸 위에 떨어졌음을.
나는 살고 괴물은 죽었다!
이 환상적인 결과에 환성을 내지르려는 찰나 나는 소스라쳤다. 섬뜩한 기음이 고막을 찔러왔기 때문이었다. 새의 지저귐 같았으나 나는 그것이 괴물의 유언임을 알았다.
“∞∴** ☆§∝∧∥∂∵¢ ∬∈∇≫.”
그 기괴한 언어의 의미를 이해한 나는 절망의 늪에 빠졌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발버둥이라도 쳐야 했다. 그런들 괴물이 남긴 저주를 해소할 길이 있을까 싶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나를 덮은 괴물의 조각들을 털어내며 일어선 나는 걸음을 옮기려다 휘청거렸다. 그제야 몸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깨닫고는 서둘러 내부를 관조했다. 그러고는 암울함에 젖었다. 근골이 상하고 혈맥이 터진 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선력이 소실된 것에 비하면.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건곤기를 운용한 나는 선력의 구 할 이상이 봄눈 녹듯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올해 초봄 할아버지의 주검을 뒤로하고 절곡을 떠날 무렵의 수준보다도 낮을 듯싶었다.
그러나 내가 암담해진 이유는 무력이 급감해서가 아니었다. 이 몸으로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막막했다.
***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의 고요함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마치 허허벌판에 홀로 선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멀리서 지켜보다가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는 안면이 있는 자였다.
삐쩍 마른 체구에 기형적으로 큰 머리통. 그는 내 위명을 만천하에 알린 일등공신이라 할 무영도수였다.
공포를 누르며 주춤주춤 접근하다가 괴물의 사체를 보고는 안도했는지 돌연 비호같은 몸놀림으로 날아온 무영도수가 내 앞에 넙죽 엎드렸다.
“저희를 구해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마선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나는 궁금했다. 내가 그의 일초도 받을 수 없는 약자로 전락했음을 알면 무영도수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그때도 이처럼 극도의 공경을 표할까.
구태여 내 상태를 알려줄 까닭이 없었기에 나는 바닥에 이마를 박은 대두노인에게 긴급한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하동에 전서구를 날려 용왕을 오라고 해주시오. 최대한 빨리.”
무영도수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명을 받드옵니다.”
쭈뼛쭈뼛 일어서더니 허리를 구부린 채로 돌아서서 경신을 전개하려던 무영도수가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있음을 알았다.
“무슨 일이오?”
“저기…… 보원대전 근처에서 십전공자, 아니 검룡을 잡았사옵니다. 웬일인지 기식이 엄엄하긴 하지만 숨은 붙어있습니다. 그 악적을 어떻게 할지…….”
나는 무영도수의 말을 끊었다.
“총사는 일단 방금 전에 말한 급전 건부터 처리하시구려. 그자는 다른 이를 시켜 이리로 데려오시오. 그리고 내가 그자를 문초하는 동안 아무도 이 주위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시오.”
“존명!”
내가 마치 제 주군이라도 되는 양 무영도수가 공손하면서도 우렁차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