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3
제3화 – 어째서?
사내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면서도 즉각 내 무위를 가늠했다. 그가 쏘아낸 기운이 의복을 뚫고 내 살갗을 간질였다.
사내와 나의 거리는 오륙 장에 달했다. 그 거리를 격하고 탐기를 발한다는 건 그의 내력이 상당하다는 방증이었다.
흠, 절정의 고수라더니 사실이었군.
내게서 별다른 반탄기를 느끼지 못했는지 사내가 금세 여유를 찾았다. 그러고는 내가 누군지 묻지 않고 방금 전 내가 창을 나오면서 던졌던 말의 의미부터 확인했다.
“어떻게 알다니? 무슨 소리냐?”
“그 소저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바로 그 길인데,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말이오. 설마 내가 여기 잠복한 걸 감지한 거요?”
사내가 가뜩이나 부리부리한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네놈이 어떻게 이년을 살린단 말이냐?”
“그야 당신을 때려눕히고……, 잠깐, 그 전에 왜 초면에 반말이오? 보아하니 나와 연배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데.”
“개소리 마라. 네놈은 누구냐? 이년의 기둥서방이라도 되냐?”
나는 사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면서 내 신분을 밝혔다.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공문의 당대 문주이자 정의단, 아니 정의사였나? 아무튼 강호의 정의를 구현코자 하는…….”
아직 소개가 끝나지 않았는데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인내심이 부족한 위인이었다.
“갈(喝)! 거기 서라.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이년의 목을 부러뜨릴 테다.”
나는 사내의 엄포를 무시하고 내쳐 걸었다.
사내는 찰나지간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초승달 눈썹을 내팽개치고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을 겁을 먹었다는 신호로 해석했는지 사내가 득의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더니 그의 십이삼 보 전면에 이르렀던 내게로 고양이를 본 개처럼 달려들었다.
달리는 속도를 활용하며 도약한 사내가 공중에서 칼을 내리쳤다.
나를 일도양단하겠다는 기세였다. 나는 슬쩍 회보(回步)를 밟아 내 정수리 위로 떨어진 칼을 빗겨냈다. 그러면서 반 바퀴 돌며 사내의 뺨을 손등으로 후려갈겼다.
빡!
뼈와 뼈가 부딪치는 기음과 함께 사내가 나뒹굴었다. 하지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지 바로 튕겨 올라왔다.
흠, 이 정도의 강도로는 기절시키기 어렵군.
수준의 차이를 보여줬음에도 열세를 인정하기 싫은지 사내가 재차 덤볐다. 이번에는 칼이 불필요하게 큰 궤적을 그리지 않고 나름 날카롭게 떨어졌다. 나는 어깨를 비틀어 칼을 흘려낸 후 사내와 나란히 서며 그의 명치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컥!”
사내가 다시 고꾸라졌다. 제법 타격이 컸는지 사내는 쉬이 일어서지 못하고 뒤집어놓은 거북이처럼 버둥거렸다. 그러더니 기립과 동시에 내가 아니라 왼편에 쓰러져있던 초승달 눈썹에게로 붙었다. 그녀를 인질로 삼으려는 요량이었다.
사내를 쫓은 나는 그가 초승달 눈썹을 손에 넣기 직전에 발목을 걷어찼다. 사내의 몸이 공중제비를 돌았다. 떨어지는 그의 등짝에 다시 일권(一拳)을 먹였다. 사내는 이삼 장이나 날아간 후 개구리처럼 엎어졌다.
척추가 상했을 터이니 전투 불능에 처했으리라 여겼는데 틀린 판단이었다. 벌떡 일어선 사내가 칼을 고쳐 잡았다. 그의 칼에서 아지랑이 같은 도기(刀氣)가 흘렀다. 내력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모았으리라.
선천지기까지 쥐어짰으니 결사항전을 하리라 예상했는데 잘못 짚었다. 사내는 단지 내 접근을 경계하려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목청껏 소리쳐 구조를 청하려는 심산임에 분명했다. 그가 방수를 부르면 귀찮아질 터이기에 나는 예방조치를 취했다.
딱.
내가 던진 돌멩이가 사내의 목울대를 때렸다.
휘청거리는 그에게로 전진한 나는 싸대기로 마무리 지었다.
“짝!”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사내가 허물어졌다. 손바닥에 전해진 감촉은 그의 턱뼈가 부서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일순 조마조마했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사내에게서 신음성이 새어 나오자 비로소 안도했다. 하마터면 힘 조절을 잘못해 평생의 적공이 날아갈 뻔했다.
“아, 아, 아어 우이오(살려 주시오).”
턱이 깨져 불명료한 발음으로 사내가 구명을 청했다.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내가 당신을 왜 죽이겠소?”
처참하게 깨진 와중에도 사내의 눈알에 희망의 빛이 번들거렸다. 내 뒷말이 그의 희망을 짓밟았다.
“당신의 목숨엔 임자가 따로 있는데.”
나는 사내의 마혈을 점하고는 초승달 눈썹에게로 가서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녀는 감사 인사도 잊고 품에서 비수를 빼 들더니 사내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그의 복부에 사정없이 푹푹 찔러 넣었다.
“죽어라, 이 악적!”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초승달 눈썹은 단번에 절명시킬 수 있는 목이나 심장은 내버려 두고 배와 허벅지 등만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독한 여자였다.
그녀의 무자비한 처형식을 감상하고 있는데 내 뒤에서 옥음이 들렸다.
“공자님은 누구신가요?”
고개를 돌리니 만면에 심각한 표정을 담은 중년 미부가 서 있었다. 나는 떨떠름하게 이름을 밝혔다.
“오선이오.”
재수가 옴 붙거나 말거나 그냥 확 바꿔버릴까.
***
초승달 눈썹의 난도질은 사내의 숨이 끊어진 후에도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보다 못한 중년 미부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이제 그만 해도 된다, 소향아. 그자는 이미 지옥에 갔어.”
초승달 눈썹이 중년 미부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좀 치사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 뭐 잊은 것 없소?”
하나는 오열하고 다른 하나는 다독이던 두 여인이 일시에 나를 올려다보았다. 중년 미부는 의아해할 뿐이었으나 초승달 눈썹은 화들짝 놀란 기색이었다.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뜻이었다.
황급히 중년 미부에게서 떨어진 초승달 눈썹이 내 앞에 엎드렸다.
“평생을 두고도 갚지 못할 크나큰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오. 상단전에서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나는 참았던 오줌을 갈기는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맛이었다니.
나에게 별미를 음미할 겨를을 주지 않고 중년 미부가 초를 쳤다.
“인사는 나중에 드리고 이제 수습하자꾸나. 이대로 있다간 우리 모두 큰 곤경에 처할 게야.”
중년 미부가 휘파람을 불자 솔숲에서 두 명의 여인이 달려왔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을 호화나찰들이었다. 나와 사내의 싸움을 지켜보았는지 그녀들은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연신 힐끔거렸다.
중년 미부의 지시에 따라 호화나찰들은 십 년 묵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사내의 시체를 와옥으로 옮겼다. 초승달 눈썹에게 목욕을 하고 사내의 피로 범벅이 된 의복을 갈아입으라고 명한 후 중년 미부가 내게 독대를 청했다. 바라는 바였기에 나는 그녀를 따라 다실(茶室)에 들어갔다.
“구주 특산의 유설이에요. 맛도 훌륭하지만 특히 다향이 일품이죠. 마시기도 전에 머릿속이 맑아질 거예요. 그렇죠?”
우유처럼 하얀 빛깔이 감도는 차를 따르며 중년 미부가 말했다.
누굴 약 올리나? 나는 후각이 형편없었다. 대신 청각이 고도로 발달했다.
“이런 거 말고 요깃거리는 없소? 종일 굶었더니 뱃가죽이 등딱지에 달라붙을 지경이구려.”
중년 미부가 실소했다.
“어떤 음식을 준비할까요?”
“고기가 들어있다면 아무거나 괜찮소. 아니, 이왕이면 닭고기가 좋겠소.”
“그러면 계룡탕(鷄龍燙)을 가져오라고 이를게요.”
다실을 나간 중년 미부는 반각 후에야 돌아왔다. 필히 초승달 눈썹에게 나와의 인연에 대해 캐묻고 왔으리라.
다시 내 맞은편에 착석한 중년 미부는 말을 트기 위한 가벼운 잡담을 생략하고 바로 취조에 들어갔다.
“실례가 아니라면 공자님의 내력을 알 수 있을까요?”
“나는 공공문의 문주이자 정의단의 단주요.”
중년 미부가 아미를 찡그렸다.
“과문한 탓인지 둘 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로군요.”
“겸손이 지나치시군. 상운(商雲)의 문통(門通)이 과문하다면 보통 사람들은 죄다 천치(天癡)들이겠구려?”
중년 미부의 갈색 동공에 이채가 서렸다.
***
상인들이 주축이 된 상운은 중원은 물론이고 새외까지 망라하는 정보망을 가진 거대한 조직이었다.
강호에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집단은 수백 개에 달하지만 상운에 필적하는 곳은 흑문(黑門)뿐이었다. 취합하는 정보의 방대함에서는 흑문에 미치지 못하지만 질적 측면에서는 상운이 한 수 위라는 게 정평이었다.
나는 현판 한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새겨진 좁쌀 크기의 별들을 보고 이곳이 상운의 지부임을 알아차렸다. 오성(五星)은 자하옥관이 특급이라는 징표였다.
말이 나온 김에 궁금한 점을 물었다.
“기루는 보통 흑문에 속해있는 걸로 아는데 어째서 상운의 표식을 달고 있는 거요?”
중년 미부는 동문서답했다.
“주 총관에게 듣기로는 대처에 갓 나온 촌뜨기라고 했는데, 그이가 완전히 속은 거네요.”
“속인 적 없소. 그가 일방적으로 착각한 거지.”
“그렇군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소만.”
“그러면 오 공자도 내 질문들에 답을 주실 건가요?”
“뭐, 그럽시다.”
“좋아요. 본 옥관이 흑문이 아니라 상운의 일속이 된 건 본업이 상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에요.”
“본업?”
“그래요. 우리는 서책을 거래해요.”
“어떤 서적?”
“뭐랄까, 찾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아무도 대놓고 찾지는 못하는 귀서(貴書)라고나 할까요?”
“음서(淫書)들을 취급한단 말이오?”
“역시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그런 거라면 야시(夜市)나 암장(暗場)에 가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소?”
“그렇긴 하지만 본관에서 다루는 서책들은 그런 잡서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야말로 명품이죠. 최고의 필진과 화공들이 심혈을 기울여……, 백 번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이해가 빠를 거예요. 나중에 보여드리죠.”
“뭐, 그럴 것까지는 없소. 그런데 그게 돈이 되오?”
“그럼요. 만금을 주고도 사겠다는 이들이 수두룩해요. 특히 여러 권으로 된 서적들은 뒤로 갈수록 가격이 몇 배로 뛰어요. 마지막 권은 부르는 게 값이에요. 아무리 재미없는 야설이라도 결말을 보지 못하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법이죠.”
“바보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라, 땅 짚고 헤엄치기군.”
내 비평에 중년 미부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재물이 썩어나는 바보들은 도처에 있으니 불황을 겪을 위험성이 없는 사업이죠.”
“거기에 더해 바보들의 약점까지 쥐게 될 테고.”
“설마요. 고객들의 취향을 이용해 먹는 기미가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보이고, 그게 소문이 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해요. 구매자의 신분보장은 이 사업의 처음이자 끝이에요. 그래서 쉬워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죠.”
나는 납득했다.
중년 미부가 사업기밀을 토설한 대가를 요구했다.
“이제 내가 물어봐도 될까요? 우선 오 공자의 사문에 대해 보다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아까 마당에서 오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했나요? 내가 알기로는 무림에서 가장 오래된 방파인 정검문(正劍門)과 철권방(鐵拳幇)도 연력이 팔백 년을 넘지 않는데 오천 년이라니, 믿기 어려운 일이네요.”
“거짓말이 아니오. 공공문은 무림이 태동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소.”
“그러면 무림문파가 아닌가요?”
“그렇소.”
“하지만 공자님의 무공은…….”
“엄밀히 말하자면 무공이 아니오. 그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몸놀림일 뿐이오.”
“…….”
질문 공세를 멈추고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중년 미부의 눈에 불신이 그득했다. 구태여 그녀에게 공공일맥에 관해 시시콜콜히 알려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나는 그녀가 가하는 침묵의 압박을 무시했다.
“식사는 언제 오오?”
중년 미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공공문은 그렇다 치고 정의단은 뭔가요?”
나는 중년 미부의 말을 바로잡았다.
“정의단이 아니라 정의사요.”
기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나 자신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전자의 어감이 더 나은 듯했다. 이참에 그걸로 변경할까.
“뭐, 정의단이라 해도 무방하오.”
내 성의 없는 말에 중년 미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정색했다.
“오 공자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건 시급히 피신할 것을 권고하고 싶어요.”
“나더러 도망치란 말이오?”
“그래요.”
“어째서?”
중년 미부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고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