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 알아서 찾아오구려.
여자와 나는 서로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었기에 누구라도 선공을 하면 바로 육탄전이 벌어질 판이었다.
여자가 뒤로 물러서지 않았기에 나도 오기로 버텼다. 그녀가 코를 찡그렸다.
“뭐해? 덤비지 않고?”
누가 할 소릴.
나는 응답을 주지 않고 검지를 까딱거렸다. 여자의 유순한 눈매가 쌍심지를 켰다.
“그렇게 까불다 다친다, 너.”
“혓바닥으로 싸울 거요?”
“뭐?”
당장 달려들 줄 알았더니 여자는 오히려 뒷짐을 졌다.
“뭐 하는 거요?”
“보면 몰라?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어디 재주를 부려봐. 나를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떨어지게 하면……, 어맛!”
경악성은 여자가 질렀지만 고통은 내 몫이었다.
얼토당토않은 겉멋을 부리는 게 같잖아 기습적으로 주먹을 뻗었던 나는 그녀의 이마를 때리자마자 오른팔의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극통에 하마터면 비명을 토할 뻔했다.
“비겁한 자식, 말도 안 끝났는데. 아무튼 꼴좋다. 이제 이 누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자의 잡설을 더 들어줄 인내심이 없는지라 나는 충격을 추스르지도 않고 재차 일권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선력을 담아서.
여자와 내가 동시에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녀 쪽이 두 배는 멀리 날아갔다. 복숭아 색깔이었던 여자의 뺨이 대춧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녀를 놀렸다.
“흠, 한 발짝이 오륙 장이나 되는군. 어쨌거나 발이 떨어졌으니 내가 이긴 거요?”
“무슨 소리. 나를 움직이게 하면 그때부터 제대로 싸워준다는 말을 할 참이었어. 이제 안 봐줄 테니까 각오해.”
여자가 파리를 쫓듯 허공에 손사래를 쳤다. 뭐 하는 짓이지?
의문은 곧 풀렸다. 별안간 가공한 압력이 내 전신을 옥죄자 나는 여자가 무형지기를 부렸음을 알았다. 일순 등줄기에 오한이 일었다. 압기를 발할 정도의 도력이었단 말인가.
나는 긴장했다. 여자는 나보다 하수가 아니었다.
선령의 운용은 불가피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압기에 짓눌려 여자의 후속 공격에 속절없이 어깨를 내주어야 했을 터였다. 선령을 끌어올리자 일시적으로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공간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들도 낱낱이 보였다.
선령의 통찰안에 힘입어 나는 여자가 던진 그물의 약한 고리를 찾아냈다. 그리로 빠져나가자 여자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에게 지공을 쏘아냈다. 여자는 회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내 지공은 그녀의 허벅지에 적중했지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내 기방과 비슷한 방어막을 두르고 있음을 알았다.
여자가 팔을 어지러이 휘두르며 공격을 재개했다. 난데없이 일어난 기의 소용돌이가 나를 덮쳤다. 선령을 십분 활용한 나는 회오리바람의 결을 따라 몸을 날리며 지풍을 연사했다.
지풍의 강도가 다름을 파악하지 못한 여자는 세 번째 지풍을 옆구리에 얻어맞고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대경실색한 여자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그러나 여자는 아슬아슬하게 최대치에 준하는 선력을 담은 지공을 피해냈다. 환상적인 몸놀림이었다.
동작만 환상적인 게 아니었다.
그녀는 실제로 환상을 일으켰다. 그녀의 동체가 두 개로 분리되는 걸 본 나는 눈알을 쏟아낼 뻔했다. 설마 도술까지 가능한 수준이었다니.
어느 쪽이 실체이고 어느 쪽이 허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양쪽 모두에 지공을 난사했다. 각기 다른 회피술을 선보이며 여자들이 합공에 나섰다. 소름이 돋았다. 내 좌우에서 짓쳐 드는 기의 격랑들은 둘 다 진짜였다.
피할 방위는 세 군데였다. 앞과 뒤, 그리고 위.
나는 전진을 택했다. 내가 우측의 여인을 택해 돌진해가자 그녀도 맞달려왔다. 그녀와 충돌하기 직전 극심한 위화감이 든 나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몸을 돌렸다.
쾅!
왼편에 있던 여자가 내뻗은 손바닥과 내 주먹이 부딪치며 굉천뢰가 터진 듯한 폭음이 일었다.
쌍방 전력을 발한 일합의 승자는 여자였다. 나는 손목이 부러진 반면 여자는 코만 찡그렸을 뿐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종이 한 장의 차이나마 그녀의 도력은 내 선력보다 우월했다.
약세를 노출하기 싫어 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내가 이판사판으로 나오자 여자가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맞불을 놓았다간 양패구상이 필연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허락한 삼사 보의 간격을 지공으로 메웠다. 여자는 또다시 후퇴했다.
잠시 우위를 점했지만 자존심이 상한 여자가 맹렬히 반격해오자 나는 주도권을 내주어야 했다. 선령을 최고조로 유지했음에도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기의 폭풍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열세에 처했으나 나는 투지를 잃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필승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길 테다. 반드시 꺾어버릴 테다.
***
선맥과 도가는 미묘한 관계였다.
쌍둥이처럼 흡사한 집단이고 사이좋은 이웃처럼 친하게 지내면서도 서로에 대해 은연중 강력한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도가의 핵심 도인들은 선맥을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중원이 아니라 동방의 이인(異人)들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들보다 이천 년이나 앞선 선맥의 역사도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라 일축했다.
사실 규모로 보나 대대로 배출한 선사들의 면면을 보나 도가 쪽이 월등했다. 그럼에도 도가는 내심 선맥에 뿌리 깊은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우화등선의 기적을 두 번이나 실현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그들은 세 번째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나로 인해!
***
격전의 와중에도 나는 선정을 시도했다.
천 개의 벼락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있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선인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노인네에게나 해당되는 기준이었지만 그의 모든 가르침을 체득한 내가 충족하지 못할 게 무언가.
투지도 좋지만 흥분은 실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에게 결정타를 날릴 빌미만 제공할 뿐이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그것이 마정을 깨뜨려 마력을 일으키는 것 말고 유일한 승리의 길이기 때문이었다.
노인네는 버림으로써 채울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먼저 채워야 버릴 게 생기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뇌리에서 만사를 지우는 대신 일념으로 물들이면 결국 같은 효과를 가지지 않겠느냐는 내 주장을 망상으로 치부했던 노인네는 내가 실제로 그 방식으로 완전무결한 선정에 들자 기절초풍했다.
물론 매번 성공하지는 못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뭄에 콩 나듯 적었다. 확률로 따지면 반 푼에도 못 미쳤다. 백 번 시도하면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하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아주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결정적인 순간 성공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나는 절박한 상황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설명은 길었지만 선정을 타개책으로 떠올린 순간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고 단숨에 성공했다.
선정에 들자 선령과 무관하게 시공간이 훤히 열렸다.
여자가 부린 기의 칼날들이 무려 열여덟 개나 내 동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 곧 나는 난도질당할 터였다. 그 전에 끝을 보아야 했다.
한 번.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일격에 여자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내 패배는 확정적이었다.
나는 선령에 힘입어 나를 포위한 압기의 엷은 부분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열 손가락 전부에서 지공을 발출했다.
열 손가락에서 빛살이 솟은 찰나 나는 쪼그려 앉으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선령이 알려 준 세 곳의 활로 중 부상의 위험성이 가장 적은 경로였다. 설사 그녀에게 지공을 작렬시킨다고 해도 나도 당하면 무슨 소용인가.
무승부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움직였음에도 왼 발목이 걸리고 말았다. 기방 덕분에 절단은 모면했으나 모골이 송연했다.
여자 쪽은 나보다 형편이 나빴다. 열 줄기의 지공 중 네 개나 몸 이곳저곳에 허용한 그녀는 미소년 같은 얼굴을 흉한처럼 구기고 있었다. 옆구리 등을 지공에 관통당한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는 것이었다. 내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음을.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면 그녀의 두부와 목과 심장을 뚫어버릴 수도 있었음을.
나는 우그러뜨린 면상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체한 여자에게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설마 저 지경이 되어서 죽자 살자 달려들지는 않겠지?
그러면 곤란했다. 선령을 갈무리하자마자 눈앞의 세상이 빙빙 돌았다. 다시 불러낼 엄두가 나지 않을뿐더러 후유증도 크게 염려스러웠다.
나는 여자가 패배를 인정하기를 빌었다.
헉!
크게 당황했다. 여자가 별안간 펑펑 울었기 때문이었다.
하도 서럽게 울어대는 통에 나도 모르게 위로의 언사를 뱉을 뻔했다. 그 말을 간신히 목구멍에 가둔 나는 대신 여자를 타박했다.
“어린애요? 싸움에 졌다고 질질 짜기는.”
울음을 뚝 그친 여자가 나를 사납게 쏘아보았다. 나는 그 눈빛에 담긴 부정의 심사를 이해했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울 터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자는 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무인으로 치면 공력, 초식, 그리고 실전경험에 이르기까지 죄다 나를 능가했다. 그럼에도 패한 건 승부를 마무리하려 했을 때 터져 나온 내 승부수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싸운다면 승패가 바뀔 가능성이 팔구 할이었다. 그러니 어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여자가 입술을 깨물며 억눌린 음성을 뱉었다.
“다시 싸워.”
누구 맘대로.
즉각적인 거절의 의사를 밝히지 않기를 잘했다. 여자가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기 때문이었다.
“한 달 후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든지.”
여자는 꿈에도 모를 터였다. 한 달 후면 내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리라는 걸. 십대악인 중 둘만 잡아도 무인의 공력으로 환산하면 일 갑자 이상의 선력을 취득하게 될 터였다.
독기를 발산하던 여자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정말 놀랐어. 사부에게 네 선기가 칠단에 이르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믿기 어려웠는데 그보다 높다니. 사부가 잘못 봤을 리는 없으니 지난 열흘 간 벽을 넘었다는 뜻이겠지? 그렇더라도 천지인(天地人)의 도경에 든 내가 지다니,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 같아.”
짐작했던 대로였지만 나는 새삼스레 놀랐다.
여자가 말한 천지인의 도경은 도가십경 중 세 번째 경지였다.
그들은 선맥과 동일하게 총 열 개의 단계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선맥과는 반대로 숫자가 낮아질수록 궁극에 가까웠다.
십방, 구궁, 팔괘, 칠성, 육합, 오행, 사상, 삼재, 음양, 그리고 일원(一元).
이론적으로는 마지막 일원이 천지조화지경을 일컫는 선맥의 십 단계에 해당되었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었다. 도가 역사상 최초로 일원에 도달했다고 알려진 태청진인이 삼라만상에 통달한 신선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인네 말로는 일원 너머에 무극(無極)이라는 영역을 새로이 상정했다고 했다. 그럴싸하나 내가 보기엔 열패감을 가리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했다. 도가의 역량으로는 일원이 극점이자 한계일 게 뻔했다.
어쨌거나 여자가 선맥의 팔 단계와 맞먹는 삼재에 이르렀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나 같은 천재가 또 있었다니.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지금 몇 살이오?”
내 질문의 의미를 곡해한 여자가 발끈했다.
“왜? 내가 반말하는 게 불만이야? 그럼 너도 말 놔. 도원에선 위아래로 다섯 살까지는 또래로 쳐. 너하고 나는 고작 두 살 차이니…….”
나는 여자의 뒷말을 흘려들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열아홉 살이라니. 대체 무슨 수로 저 나이에 상(上)근기를 타고난 선재들이 백 년을 한눈팔지 않고 수행해도 깨치기 어렵다는 천지인의 도를 얻은 거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묻는다고 비결을 털어놓을 리 만무하기에 나는 여자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한 달 뒤에 봅시다. 내가 여기 없으면 알아서 찾아오구려.”
여자의 말이 나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