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 아야!
당장 낙일쾌검을 응징하고 싶었으나 출수를 자제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왜 온 거요? 총수의 결정으로 나와 십자무련과의 문제는 종결된 것으로 아는데.”
낙일쾌검이 등장이 무후와 관련되었는지를 알아야 했다. 만약 그가 그녀의 명으로 온 거라면 가급적 평화로운 방식으로 풀어야 했다.
내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낙일쾌검이 내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네놈이 현 장주와 한판 할 거라는 소문을 듣고 잠깐 들렀다.”
옳거니! 무후가 무관하다면 구태여 정중하게 대할 필요가 없었다.
“왔으면 구경이나 하고 갈 것이지 어째서 격전 중인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암수를 쓴 거요? 뒷골목의 잡배들 중에서도 잡것들이나 할 짓이 아니오?”
내 언사에 군자도와 구룡장 인사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낙일쾌검은 모욕감을 표출하기는커녕 파안대소했다.
“크하하핫. 귀여운 놈이로구나. 잡배라. 그래 내가 좀 잡스럽긴 하지.”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서 낙일쾌검이 느물거렸다.
“잡배를 위해 변명을 하자면, 전날 총수가 보양에서 당했다는 망신이 작당의 결과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웠느니라. 하여 비무를 지켜보며 진위 여부를 알아보고자 했으나 현 장주의 허접한 솜씨로는 네 진신무력을 끄집어내기 어려울 것 같은지라 가볍게 장난 좀 쳤다.”
장난? 이게 장난하나.
낙일쾌검이 쏘아낸 무형검기는 살상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내가 선령까지 동원해가며 피했기에 망정이지 하나라도 허용했다면 중상을 입었을 터였다.
“그렇게 의심스러웠으면 남한테 맡길 게 아니고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뇨? 지저분한 짓거리를 하는 대신.”
낙일쾌검의 면상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간덩이가 붓다 못해 숫제 터진 놈이로구나. 노는 꼴이 가소로워 한 번 받아주었더니 두 번도 될 줄 알았더냐? 총수를 꺾었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 원래는 주둥이를 함부로 놀린 죄로 천참만륙해야 마땅하나 모처럼 강호에 나온 쓸 만한 핏덩이를 뭉개는 건 선배의 도리가 아니니 특별히 아량을 베풀어주마.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하고 이마를 열 번 박아라. 그러면 사죄를 받아주고 방면해주겠느니라.”
개소리였다.
어떻게 아느냐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낙일쾌검이 전음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군자도에게.
상황은 급전직하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차례대로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아직도 칼을 쥐고 있던 군자도는 낙일쾌검의 전음을 받자마자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내 등짝에 검처럼 칼을 찔러 넣었다. 그와의 거리가 지척인데다 예고 없는 암습이었기에 전음을 엿듣지 않았다면 속절없이 당했을 터였다.
나는 낙일쾌검의 명에 응한 군자도를 상대하지 않고 낙일쾌검에게 짓쳐들었다. 내 신속한 대응에 놀란 낙일쾌검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발검해서는 내가 그에게 쇄도하며 쏘아낸 지풍들을 번개처럼 쳐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반격까지 가해왔다.
낙일쾌검의 탄검은 전광석화를 방불케 했다.
선령은 회피할 여지가 없음을 알렸다. 하여 나는 상체를 틀며 어깨로 비스듬히 받아냈다. 기방을 두른 데다 직격을 모면한 덕분에 팔이 떨어지는 참사는 면했으나 좌견에 깊고 기다란 검상이 생겼다. 검기에 실린 경력이 내부를 침탈해 심장도 욱신거렸다. 찰나지간 전신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낙일쾌검은 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내가 열 손가락에서 최대치의 선력을 실은 지풍을 한꺼번에 날려 보냈기 때문이었다. 길이가 한 자에 불과한 단검에서 우산처럼 펼쳐진 검막으로 지풍의 소낙비를 방어했으나 선력의 총합을 감당치 못한 낙일쾌검이 뒤로 밀렸다. 나는 그를 쫓아가 명치에 주먹을 꽂고 싶었으나 보류했다. 내 어깻죽지에 떨어진 군자도의 칼부터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왼 무릎을 구부려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칼을 흘려낸 나는 그대로 군자도를 들이받았다. 그를 튕겨내기도 전에 선령이 경보를 울렸다. 나는 군자도와 부딪친 순간 위로 비상했다. 내가 아래에 남긴 잔영을 낙일쾌검이 날린 탄검들이 빛살처럼 지나갔다.
이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공방이었다.
두 번째 장면에선 전권이 확대되었다.
사오 초의 교환을 통해 내 무력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낙일쾌검이 느닷없이 멀리 선 양천과 안진을 겨냥해 검기를 쏘아냈다. 나는 낙일쾌검을 공격해야 할 지풍의 태반을 동료들을 보호하는 데 할애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검기를 다 차단할 수는 없었기에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낙일쾌검과의 거리가 상당한 데다 양천이 아주 하수는 아니었기에 내 방어막을 뚫고 두 사람에게 이른 검기들은 그들을 해치지 못했다. 부채로 검기들을 막아낸 양천은 강풍을 맞은 갈대처럼 휘청거리긴 했으나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일렀다. 나에게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던 군자도가 낙일쾌검의 명을 받고는 양천에게 달려갔다. 낙일쾌검을 상대해야 했기에 나는 양천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경이 분산된 탓에 나 또한 양천 못지않은 비세에 처했다.
선령은 완벽한 타개책이 없음을 알리고 있었다.
난국을 벗어날 유일한 방도는 안진이었다. 그녀가 깬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가세한다면 단번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터였다.
하여 나는 군자도가 양천에게 육박하기 전에, 낙일쾌검의 탄검들을 쳐내는 와중에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안진!”
효과가 있었느냐고?
전혀.
괜한 짓을 했다가 하마터면 탄검에 허벅지를 내 줄 뻔했을 뿐이었다. 다행히 간신히 빗겨냈으나 그 여파로 주도권을 낙일쾌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
나와 낙일쾌검의 무력은 거의 비등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약간이라도 우위일 테지만 누란지위에 처한 동료들을 의식하느라 집중력이 저하된 탓인지 실제로는 박빙열세였다. 살얼음의 두께는 실전에서는 생사를 갈라놓을 차이였다. 이대로 가다간 목이 떨어질 터였다.
나는 비장의 패를 꺼냈다. 선정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뜬 배 위에서 평정심을 견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미친 말처럼 날뛰는 파도가 갑자기 가라앉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상황을 침착하게 관조할 수는 있었다. 그러면 길이 열릴 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선정에 들지 못했다.
전날 안진과의 대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구게 해 준 보도(寶刀)는 이번에는 나오기를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현재의 조건으로 승부에 임해야 했다.
격전 중에 선정을 시도한 대가는 컸다. 찰나를 백 분의 일로 나눈 짧은 순간이었으나 워낙 낙일쾌검의 탄검이 빨랐던지라 나는 연달아 두 개를 옆구리와 하복부에 얻어맞았다. 선령의 공능으로 최대한 빗겨내긴 했지만 기방이 아니었으면 그걸로 승부가 종결되었을 터였다.
이래서는 이대로 밀리다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을 공산이 컸다. 전생이냐 마정의 봉인 해제냐.
초조함과 암담함이 심상을 물들이는 중에 뜻밖의 곳에서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정신없이 몰아치던 낙일쾌검의 공세에 극미한 지연이 생겼다.
그에게서 일시지간의 지체를 이끌어낸 건 양천이 날려 보낸 탄강이었다. 낙일쾌검에게 위해를 가하기엔 어림도 없었으나 그에게서 한두 개의 탄검을 발출할 시간을 빼앗는 데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었다. 나는 양천이 목숨을 걸고 벌어준 틈을 파고들었다. 살과 뼈를 내주더라도 최단 시간 내에 끝을 볼 참이었다. 그래야 양천을 살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내가 탄검에 꽂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생결단의 기세로 나가자 낙일쾌검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면서 탄검들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이 발광은 그가 겁을 먹었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낙일쾌검이 발을 뺄 요량임을 알아차렸다.
절호의 기회였다. 만약 그가 정면충돌을 고수했다면 여전히 비관적인 국면이었다. 어찌어찌 그를 잡을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는 동안에 양천은 불귀의 객이 될 공산이 컸기 때문이었다. 안진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어떻게든 낙일쾌검에게 한 방 먹이거나 최소한 그를 쫓아내고 양천을 구할 작심이었던 나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시도하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선정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정지하고 사방의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선령이 극대화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허공에 점점이 놓인 낙일쾌검의 탄검들과 오뉴월 더위에 늘어난 엿가락 같은 내 지풍들을 보았다. 그리고 양천을 양단하기 직전인 군자도의 칼과 죽음을 각오한 양천의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음에도.
느긋하게 상황을 관조할 여유가 없었기에 서둘렀다. 좌수의 손가락 두 개를 구부려 군자도에게 지풍을 발출하는 한편 나머지 팔지(八指)로는 낙일쾌검의 하반신을 집중 공략했다. 그 순간 시간이 풀렸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저쪽부터 말하자면 내 지풍은 군자도를 처치하지 못했다. 그도 나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고수였기에 군자도는 두 줄기의 지풍을 어렵지 않게 쳐냈다. 나는 다만 그의 칼을 돌리게 함으로써 양천이 몸뚱이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참사를 잠시 연기시켰을 뿐이었다.
이쪽의 사정은 그쪽보다는 나았다. 낙일쾌검 역시 내가 추가로 날린 지풍들을 모조리 방어해냈으나 도주를 결행하려다 얻어맞은 탓에 자세가 흐트러졌다. 나는 중심을 잃은 그에게 맹폭을 가했다. 내 열 손가락에서 폭사된 지풍들이 해일처럼 그를 덮쳤다.
신형을 추스르기 전에 집중포화를 맞은 낙일쾌검은 맞불을 놓지 못하고 검막으로 버텼다. 나는 선령의 도움으로 검막의 조문을 찾아 십지를 거기에 몰아넣었다.
“크악!”
검막과 호신강기를 송곳처럼 뚫고 들어간 지풍에 늑골을 찍힌 낙일쾌검이 요란한 기성을 내지르며 나뒹굴었다.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그가 내지른 비명은 양천을 구원했다.
양천의 부채와 철봉을 날려버리고 그를 짓이기기 직전이었던 군자도는 이쪽의 전황을 일별하더니 칼을 거두고 물러섰다.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때까지도 멍하니 서 있던 구룡보의 인사들이 허둥지둥 그를 따라 장내를 벗어났다.
바닥에 쓰러진 양천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승기를 잡은 김에 낙일쾌검부터 제압했다. 굴욕적인 뇌려타곤을 시전하는 그의 동체에 지풍을 퍼붓자 그에게서 다급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잠깐!”
나는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참았다면 모를까 이미 항문 밖으로 나온 똥은 마저 싸야 했다.
세 바퀴째를 구르다 종아리에 두 번째 일격을 맞은 낙일쾌검이 ‘으아악’ 괴성을 내질렀다. 악명이 무색하게 엄살이 심한 위인이었다.
“내 뒤에…….”
낙일쾌검은 무후를 들먹이지 못했다. 지풍들을 앞세우고 그에게 달려든 내가 그의 턱을 주먹으로 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후의 발악을 하려 드는 그의 복부에도 수도(手刀)를 꽂아 넣었다. 단전이 터진 낙일쾌검이 단발마의 비명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는 명줄이 끊어지지 않았고 의식도 있었다.
낙일쾌검이 망가진 턱을 움직여 말을 뱉으려 애썼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는 몰랐으나 나를 보는 그의 눈에 깃든 건 원독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그렇다면 살려달라고 애원하려던 걸까. 이 지경이 되고도?
안 들어줄 까닭이 없었다. 아니, 반드시 들어주어야 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래도 단전만 폐하는 정도로는 뭔가 미진한 듯싶어 낙일쾌검의 팔다리를 일일이 부러뜨린 나는 양천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일어나려고 기를 쓰고 있는 그를 지나쳐 안진에게 다가갔다. 내가 가까이 가자 뭐가 좋은지 안진이 방실방실 웃었다.
나는 토실토실한 그녀의 양쪽 뺨을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집고는 살점이 뜯겨나갈 만큼 세게 잡아당겼다.
“아야!”
안진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톱이 내 살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를 놔 주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