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5
제5화 –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오.
어김없이 자시(子時)가 왔다.
해시(亥時:오후 9시~11시) 말에 자하옥관을 나와 보양 외곽의 인적 없는 야산에서 적당한 동굴을 찾아 들어갔던 나는 몸에서 신호가 오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내 혈류가 빨라지며 익숙한 통증이 전신을 휘돌기 시작했다. 고통을 참기 위해 턱이 부서져라 어금니를 악물었다.
내 체내를 장악한 건곤기(乾坤氣)는 마구잡이로 나를 파괴했다. 혈맥이 터지고 힘줄이 찢어졌다. 그러고도 어떻게 무사하냐고?
파열 후엔 치유가 이어지는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병 주고 약 주는 셈이었다.
혼절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며 나는 오늘 얻은 성과를 점검했다. 병아리 눈물만큼이었지만 그래도 분명한 증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뿌듯했다.
노인네는 천지조화지경에 이르는 데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백년면벽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일백 년 동안 벽만 바라보며 오만 잡념을 끊고 선정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엄청난 인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방식이었다. 범인은 꿈도 못 꿀 일이었거니와 선인(仙人)이라고 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 수법으로 천지조화지경에 들어 우화등선에 성공한 선사들은 반만 년 동안 단 두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노인네도 근처까지 갔다. 팔십팔 년을 버티던 그가 나머지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것은 나 때문이었다. 노인네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지만 조금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노인네는 세 번째 신선(神仙)이 되었을 터였다.
각설하고 나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방식이었다.
백 년이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인네도 일찌감치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그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을 간파하고는 또 다른 방도를 제시했다. 바로 일만의 원기(冤氣)를 풀어주고 그만큼의 감은(感恩)을 받아 건곤기를 증강하고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기실 타고난 선인이 아닌 나한테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그걸로 천지조화지경에 들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나에게 노인네는 동천일출만큼이나 확실하다며 호언장담했다. 달리 대안이 없으니 믿을밖에.
어쨌거나 이쪽이 백년면벽보다는 백 배쯤 나았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적합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한 건씩 해결한다면 산술적으로 삼십 년가량 걸릴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너무 길었다.
내 목표는 십 년이었다. 잘하면 그보다 앞당길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예컨대 일백 명을 모아놓고 그들의 원사를 한꺼번에 처리하면 사나흘에 석 달 치 과제를 해치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진도를 빼면 일이 년 내로도 가능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십만의 인구를 품은 보양에서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볼 참이었다.
***
건곤기의 마지막 대주천이 끝나자 여느 때처럼 녹초가 되었다.
몸을 일으키는데 돌 무렵의 아이처럼 제대로 서지 못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배불뚝이에게 받았던 의복도 비를 맞은 듯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동굴을 나온 나는 달의 위치를 보고는 두 시진쯤 지났음을 알았다. 소득을 체화하느라 운공 시간이 평소보다 배 이상 소요되었다. 바람직한 징조가 아니었다.
아직 일출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서둘렀다. 초행길이니 중간에 헤맬 가능성이 상당했다. 어떻게든 해가 뜨기 전에 창진무관을 찾아 관주인 오절도와 담판을 지어야 했다.
창진무관이 자리한 석곡은 보양에서 남서 방면으로 이백이십 리가량 떨어져 있었다.
행로는 다소 복잡했지만 중년 미부가 꼼꼼하게 알려준 덕분에 별로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당도했다. 전력으로 질주할 시 나는 준마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다.
동쪽 하늘에 떠오른 샛별을 보며 석곡 뒤편으로 올랐다. 사만여 평의 면적을 가졌다는 무관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삼십 장 높이의 절벽에 둘러싸인 무관은 마치 거대한 뇌옥 같았다. 중년 미부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무동(武童)들이 오로지 무공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런 오지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나는 단애 위에 서서 무관 전역을 훑었다.
대문 쪽에 경비무사들로 짐작되는 그림자들이 아른거렸으나 경내를 순찰하는 자들은 없는 듯했다.
오절도의 처소인 숭무각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그리로 간 후 낭떠러지를 내려갔다.
팔각 전각은 으리으리한 신축 건물이었다.
나는 벽호공을 시전해 기둥을 타고 올랐다. 꼭대기인 육 층에 이르러서는 창문으로 수평 이동했다. 창을 살짝 밀어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걸어 잠근 모양이었다.
전각 내부로 잠입해 문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보류했다. 일단 창부터 공략해보자.
창은 안에 걸쇠를 둔 간단한 구조였다. 나는 내기를 끌어올렸다. 무형지기로 화한 건곤기가 창을 관통해 걸쇠에 감겼다. 신중하게 강도를 조절해가며 걸쇠를 들어 올렸다.
덜컥. 탁.
걸쇠가 풀리며 소리가 났다. 오절도가 깨기라도 하면 모든 게 헛수고였다. 그리되면 영락없이 침입자로 몰려 담판이고 뭐고 개싸움을 해야 할 판이었다.
반각쯤 기다렸으나 오절도가 움직이는 기미는 없었다. 깊은 들숨으로 허파에 공기를 채운 나는 호흡을 닫고 창문을 천천히 밀었다.
***
소박한 방이었다.
침실로만 사용하는 듯 침상 외엔 가구가 없었다. 수려한 산들의 사시사철을 담은 병풍이 보초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널찍한 침대 위에 불룩한 덩어리가 보였다. 일견 서너 명이 이불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한 사람이었다. 중년 미부에게 듣기로 창진무관의 주인은 칠 척 장신에 체구도 우람하다고 했다.
오절도가 애첩을 끼고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와 엉켜있는 그녀의 수혈을 짚다가 그의 기감을 자극할 우려가 있어서였다.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침대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이윽고 오절도의 머리맡에 이른 후 호흡을 개방했다. 잠시 후 거인이 경기를 일으키듯 요란스럽게 튀어 올랐다. 그가 출수하기 전에 창가로 물러서며 준비했던 말을 쏟아냈다.
“진정하구려. 나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찾아온 사람이 아니오.”
침대 옆에 두었던 칼을 쥐고는 안정감을 되찾았는지 오절도가 의외로 침착한 음성을 토해냈다.
“너는 누구냐?”
괜찮은 출발이었다.
기껏 물어놓고는 내가 응답하기도 전에 오절도가 내기를 쏘아냈다. 내 무력을 가늠하려는 수작이었다. 그 제자에 그 사부였다.
“나는 공공문의 문주이자 정의단의 단주인 오선이오.”
맹수처럼 나를 응시하는 오절도의 눈길에 당혹감이 서렸다. 공공문과 정의단이 기억에 들어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탐기로 내 수준을 파악하는 데 실패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가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동안 나도 그를 관찰했다. 환갑을 넘었다고 들었는데 일견으로는 마흔 어림으로 보였다.
어둠이 일으킨 착시일 테지. 창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이 아니라 백일하에서는 주름들이 숨김없이 드러날 터였다.
오절도가 실제 나이보다 이십 년 이상 어려 보이는 데는 체구도 한몫했다. 일반적으로 노인이 그런 거구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노인네를 따라 천하를 주유하며 수많은 거한들을 만나보았지만 목전의 노인처럼 우람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체구에 걸맞지 않게 단춧구멍처럼 작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오절도가 대화로 풀기로 결정했는지 굳게 다물었던 입을 뗐다.
“나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더냐?”
“당신 제자의 일로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소.”
“내 제자라니?”
“수석교두 말이오. 이름이 정찬이라던가.”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데?”
“죽었소. 어젯밤.”
고비였다. 나는 오절도가 불문곡직 칼을 휘두를 경우에 대비해 진기를 모았다. 일순지간 살벌한 기운을 발출했으나 거인은 이내 살기를 갈무리했다.
예상대로였다.
중년 미부가 들려준 정보에 따르면 오절도는 곰 같은 덩치와 달리 여우 과였다.
그가 다른 유형이었다면 나도 그에 적합한 방법을 모색했을 터였다. 예컨대 앞뒤를 재지 않고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단순무식한 성정이라면 일단 제압부터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잔머리를 굴리는 부류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의 기감에 걸리지 않고 지척에 이르렀음을 과시하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오절도는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그를 암살할 수 있었음을 알 터였다.
충격을 추스른 오절도가 수순을 이었다.
“누가 그랬는가?”
“숨통을 끊은 이는 따로 있지만 내가 크게 일조했으니 나라고 봐도 무방하오.”
“…….”
“왜 그랬는지 안 물어보오?”
옆구리를 찔렀으니 응당 절을 해야 하건만 오절도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그 사실을 내게 알려주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 전에 그자를 죽여야 했던 이유를 듣는 게 먼저일 듯싶소만.”
“…….”
나는 오절도가 표정으로 발하는 무언의 항의를 무시하고 내 고집대로 했다.
“당신 제자는 십이 년 전 팔월 초 의주 진량에서 잔인무도한 악행을 저질렀소. 부상을 입은 자기를 돌봐주던 의숙(義叔) 부부를 살해 및 간살하고 집을 불태운 후 그들의 여식을 흉악한 놈들에게 팔아버렸지.”
“…….”
“조사해 보면 당신 제자가 그 시기에 최소한 한 달 이상 진량에 머물고 있었음을 알게 될 거요. 그곳에서 인술을 베푸는 명의로 존경받았던 의원 일가가 흉수불명의 참화를 당한 것도. 다 당신 제자 짓이오.”
오절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네 가지 중 하나일 터였다. 진즉 알고 있었거나,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내 말이 거짓이라고 여겼거나, 혹은 이 상황에서 내 언설의 진위 여부는 중요치 않다고 판단했거나.
오절도가 침묵하는 동안 나는 초승달 눈썹을 떠올렸다.
그녀를 노출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야 내게 명분이 서지 않겠는가. 게다가 어차피 오절도가 전후 사정을 알아보면 그녀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초승달 눈썹의 안전에 관해서는 이미 조치를 취해두었다.
그녀는 어젯밤 오랫동안 그녀에게 구애하던 호연장의 호위무사와 함께 보양을 떠났다. 지금쯤 족히 오륙백 리는 멀어졌을 터였다. 그녀를 보위한 무사가 진국인데다 중년 미부가 여비를 두둑이 챙겨주었다니 어디든 가서 정착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었다.
기실 초승달 눈썹은 떠나기 직전까지 자기를 몸종으로라도 써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녀는 그녀가 내 주위에 얼쩡거리면 나에게 부담만 될 거라는 중년 미부의 설득에 못 이겨 결국 마차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기특한지고!
초승달 눈썹을 떠올리고 있는데 오절도가 은근슬쩍 칼을 들어 올렸다.
“너는 청부 살수였던가?”
“천만에! 우연히 한 여인의 한 맺힌 사연을 알게 되어 그녀의 정당한 복수를 거들었을 뿐이오. 정의감의 발로였다고나 할까.”
“…….”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선택권은 오절도에게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얌전히 그의 처분에 맡기지 않고 압박을 가했다.
“아까 어째서 당신 제자를 죽인 사실을 알려주러 왔느냐고 물었소? 우연히 얽히게 된 악연을 여기서 마무리 짓기 위함이오. 나는 불쌍한 여인이 악종을 처단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을 뿐 그 이상의 의도는 없었소. 불필요한 전투를 원치 않는다는 말이오. 하지만 당신이 그러고자 한다면 기꺼이 상대해 주리다. 물론 그 경우 일어날 불상사는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오.”
어둠 속에서 오절도의 면상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러나 그는 내 도발적인 언사에 칼로써 반발하지 못했다. 그의 기를 꺾은 나는 쐐기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