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66
제66화 – 그저 희망 사항이 될 수도 있소.
그래서 정확히 몇 명이나 잡아두었는지 물으려는 찰나 정청이 선수를 쳤다.
“헌데 솔직히 의외외다. 나는 절대천룡이 우장평으로 갔을 줄 알았소.”
“우장평? 거기가 어디요? 아니, 그보다 내가 거기엔 왜 갔을 거라 생각했소?”
“아, 역시 몰랐구려. 하긴 나도 어젯밤 늦게야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하지만 기 방주도 참 굼뜨구려. 그 친구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전서응을 갖춰놓으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헌데 상재에서 바로 여기로 오신 게요? 언제 출발하셨소?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 그리고 내가 서신을 받은 시각을 고려하면 아무리 일러야 그곳을 떠난 지 열 시진이 넘지 않을 터인데 참으로 놀랍소이다. 마차로는 불가능하니 경공으로 왔을 터, 과연 대단하구려.”
변죽을 울리는 정청에게 부아가 치밀었지만 나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우장평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내 정신 좀 보게. 미안하오. 아직 노망이 나기엔 이른 나이인데 요새 자주 깜박깜박한다오. 주위에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오.”
인내심이 바닥난 순간 정청이 약 올리듯 본론을 꺼냈다.
“하여간 이 말을 하려고 했소. 지난 사오 년간 소문만 무성하더니 마침내 검룡(劍龍)과 도봉(刀鳳)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고 하오.”
귀가 솔깃해지면서 짜증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들이 우장평이란 곳에서 붙기라도 한다는 거요?”
“그렇다오. 사흘 후 정오라고 들었소. 공개 비무이니 누구라도 관전할 수 있다고 하오.”
황달기가 있는 정청의 눈이 일순지간 샛별처럼 파랗게 반짝거렸다. 나는 그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우장평으로 가야겠군. 그런데 거기가 어디요?”
대답은 안 하고 정청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시 짜증이 일었지만 나도 히죽 웃었다. 이건 예상외의 횡재나 마찬가지였다. 개똥을 밟았는데 그 속에 박혀있던 금강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
개세팔천은 중원과 새외의 여덟 절대자를 통칭했다.
그들 가운데 제자를 둔 이들은 도제와 검제뿐이었다. 물론 아주 확실한 건 아니었다. 예컨대 새외사왕 중 서역의 밀왕(密王)과 남해의 용왕(龍王)에겐 후계자가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금역(禁域)의 속사정을 알지 못하기에 일단 논외로 쳤다.
각설하고 먼저 후인을 알린 이는 검제였다.
오 년 전 만검(萬劍)의 제왕이 공식적인 후인을 발표했을 때 온 대륙이 들썩거렸다. 이름이 한상중(漢相仲)이라 했는데 당시 십육 세였다. 무력도 검증되지 않았고 나이로도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했으나 한상중은 단박에 검룡이란 별호를 부여받으며 일약 무림 최고의 신성에 등극했다. 당연히 검제의 후광이었다.
비록 이름과 나이뿐이지만 검림(劍林)이 작은 주인을 내세우자마자 경쟁하듯 도산도 도제에게 후예가 있음을 공표했다. 그러나 달랑 모용초혜라는 이름만 밝혔을 뿐이었다. 나이는 물론이고 무위도 불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룡과 같은 이유로 모용초혜는 도봉이란 별호를 취함과 동시에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상에 올라섰다. 그렇게 두 용봉은 단 한 번의 검증도 없이 무림의 수십만 후기지수들을 발아래 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순전히 배경에 힘입어 획득한 그들의 위엄은 채 반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검룡과 도봉을 머쓱하게 만든 이는 근래 성세를 구가하고 있던 공주 양가에서 배출한 천재 양천이었다.
소싯적부터 무재를 널리 알렸던 양천은 강호에 나오자마자 전날 무후와 창제가 그랬듯 제(諸) 무림대회를 석권함으로써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그의 성취가 워낙 출중했기에 검룡과 도봉을 두고 미래의 지배자라고 떠들어대던 이들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세인들은 검도용봉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이 양천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강호에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양천과 조우해 그와 무공을 견주어야 할 터인데 그를 꺾을 자신이 없어서 출행을 망설인다는 것이었다.
항간에 그런 발칙한 풍문이 돌아다니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터임에도 몇 년이 지나도록 검림과 도산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연유로 억측은 공론으로 굳어졌고 근자에 와서는 검룡-도봉을 일러 최고의 신성 운운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참고로 내가 등장한 이후엔 완전히 사라졌다.
***
내가 검룡과 도봉의 비무 소식에 혹한 건 장막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진신무력을 알게 될 기회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경쟁심도 없었고 그들이 얼마나 강할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단지 그들이 만든 판을 내 선력 증강의 도약대로 삼을 작정이었다. 우장평(盂長平)이란 지명은 금시초문이지만 이름이 드러내듯 필히 너른 들판일 터이니 수많은 이들이 관전을 위해 몰려들 것이었다. 그들이 발산하는 열기를 흡수해 청화로 전환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이 될 터였다.
뇌리에 저절로 수순이 그려졌다.
우선 용봉의 대결을 지켜본 후 적당한 시점에 내 정체를 밝히고 그들과의 일전을 청하면 군중은 용광로로 변할 게 틀림없었다. 그들이 내 비무 청을 거절할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성사시킬 참이었다. 경우에 따라선 반(半)강제로 그들로 하여금 칼과 검을 부리도록 만들 터였다. 수순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
정청은 뿔난 아이처럼 볼이 탱탱 부었다.
내가 장릉의 행사를 보류하지 않고 과제를 완수한 후 우장평으로 떠날 거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비무를 친관하려면 지금 출발해야 했다. 우장평이 장릉에서 북으로 삼천삼백 리나 떨어져 있어서였다.
내 과업을 보조하느라 하루를 날리면 정청은 제때 우장평에 당도하지 못할 공산이 컸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우장평으로 직행할 듯 반응하자 희희낙락했다가 그가 모아놓은 이들의 원사를 청취하겠다고 하자 낙담하고 분개한 것이었다.
물론 볼따구니만 부풀렸을 뿐 그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지는 못했다.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 검룡과 도봉을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묵직한 이름값을 가진 나에게.
원사 청취에 오전을 홀랑 바쳐야 했지만 사냥감들이 많지 않았기에 작업은 오후에 종결되었다.
나는 역사적인 대결을 직관하러 가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정청의 숨통을 터주었다. 내가 완료를 알리며 수고에 대한 감사를 표하자 그는 의례적인 인사도 대충 때우고 바로 우장평으로 출발했다.
그가 떠난 후 나도 안진과 함께 몸을 날렸다. 가면서 안진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치들은 얼마나 셀까?”
“글쎄.”
“너보다 셀까?”
“글쎄.”
“그러지 말고 말해봐, 선. 넌 잔머리가 좋잖아.”
이 여자가 말을 해도.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정말 모르오. 하지만 몇 년이나 뜸을 들이다 내놓았으니 허접한 실력들은 아닐 거요. 나는 몰라도 최소한 양천, 그 친구는 이길 수 있으리라 자신했을 공산이 크오.”
안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양천과 손을 섞은 적은 없지만 자신과 호적수임을 아는 탓이었다. 검룡과 도봉의 무력이 그런 양천을 능가한다면 자기보다 강자라는 뜻이니 그녀로서는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딱히 위로해주고픈 마음은 아니었으나 나는 안진을 달랬다.
“그렇게 지레 풀 죽을 필요 없소. 섣부른 예단일 수 있지만 그들의 자신감은 오산의 결과일 가능성도 상당하니.”
“무슨 말이야?”
“양천, 그 친구의 무위는 강호에 알려진 것보다 최소한 두 뼘은 높소. 만약 도봉과 검룡이 황산일마를 꺾었을 때의 그를 상정하고 기준을 정했다면 나중에 만났을 때 낭패를 면치 못할 거요.”
안진이 반색했다.
“그렇겠지? 그럴 거야. 틀림없어. 그치들이 우리보다 셀 리가 없어. 그렇지, 선?”
얼렁뚱땅 나를 자기와 한 묶음으로 두는 안진의 수작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야 모르지. 검제나 도제나 내 할아버지와 당신 사부조차도 한 수 접어줘야 할 괴물들이니 그들의 후예들도 보통내기들은 아닐 거요. 더군다나 오랜 준비 끝에 나왔으니 좀 전의 내 추측은 그저 희망 사항이 될 수도 있소.”
안진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나는 이번엔 그녀를 위로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여기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봐야 무의미했다. 그들의 칼과 검을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곧 알게 될 터였다.
***
우장평은 십자무력의 북단과 신창문(神槍門)이 다스리는 영토의 경계선에 위치한 평야였다. 일종의 중립지대였지만 평소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불모지였다. 그러나 검룡과 도봉의 대결이 발표된 다음 날부터 몰려든 인파로 인해 대처의 장터처럼 북적북적했다.
거리는 멀었지만 시간적으로는 다소 여유가 있었기에 전날 밤 일찌감치 우장평에 들었던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군중을 보고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림잡아 오륙십만은 될 듯싶었다. 저들이 뿜어낼 열기를 청화로 전환할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행사를 보류한 아홉 도시엔 원사를 들려줄 이들을 계속 확보해두라고 일러두었다. 우장평에서 취득할 청화에 맞출 적화를 얻기 위함이었다.
일대일 조응을 하지 않으면 건곤기의 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일단은 배가 터지도록 먹어둘 참이었다. 소화는 나중 문제였다.
너른 벌판을 입추의 여지도 없이 메운 군중은 중앙의 공간을 비워놓고 자신들의 지위와 신분에 따라 자리를 정했다. 다소 시비가 일고 소동도 있었지만 오전이 끝나갈 무렵엔 그럭저럭 질서가 잡혔다.
나는 안진과 함께 별 볼 일 없는 이들이 몰린 뒷부분에 머물러 있었다. 죽립을 쓰긴 했으나 무림의 인사들이 차지한 앞쪽에선 나를 알아볼 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왔음이 알려지면 난리가 날 터였다.
안진에게도 혹시 몰라 정청에게 청해 전에 받았던 가발을 씌워두었다. 머리카락 길이만 달라졌을 뿐인데 그녀는 완전히 딴 사람처럼 보였다. 안진이 답답해했지만 나는 썩 잘 어울린다는 빈말로 그녀를 구슬렸다.
해가 중천으로 오르자 군중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일순지간 소요가 일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둘 중 하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먼저 도착한 이는 도봉 모용초혜였다. 그녀는 경신을 전개해 군중을 뛰어넘지 않고 좌우에 거느린 네 도호(刀豪)와 함께 걸어서 사람들의 장벽을 관통했다. 그들에게 길을 터주며 군중은 숨을 죽였다.
마침 그들이 지나가는 통로 근처에 있었기에 나는 도봉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먼저 본 군중이 얼어붙은 이유를 알았다.
도봉은, 인세의 인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