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80
제80화 – 대체 정체가 뭔가요?
해가 질 무렵 건곤장과 나는 군포에 당도했다.
건곤장은 거기서부터 마차를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나와의 비무를 위해 삼천 리를 달려왔더니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었다. 통증이나 불편함은 거의 없었지만 다리의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탓에 나는 경공을 펼칠 시 착지에 주의를 기울였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건곤장은 그 미묘한 동작의 이유를 간파하고는 나를 배려하려 한 것이었다.
마방은 규모가 상당했다.
거래를 해야 할 터인데 말을 다루는 거친 사내들은 우리 노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는 조그맣게 내 별호를 동료에게 수군거렸다. 그러자 은밀한 소란이 일더니 마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초로의 배불뚝이가 달려왔다.
“혹시 공자님께선 절대천룡이 아니신지요?”
“맞소.”
대번에 난리가 났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들 앞다투어 오체투지하며 과도한 예를 보였다. 마방 주인도 바닥에 엎드렸다.
“절대천룡을 뵙다니, 만대의 영광이옵니다. 실은 어제 제 친지들을 모두 이끌고 공주에 갔다가 위대하신 분들의 비무를 관전할 자격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는 쫓겨났사옵니다. 아! 그렇다면 여기 이분은 십자무련의 태상봉공이신 건곤장……, 아이고 죄송하옵니다. 감히 저 같은 놈이 존귀하신 어르신의 별호를 입에 담다니……. 저희 마방을 찾아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차린 건 없지만, 아니 누추하지만……, 그게 아니라…….”
나는 횡설수설하는 마방 주인을 구해주었다.
“마차를 빌리고 싶소. 값은 무련에서 치러줄 거요.”
“아이고, 값이라니, 천부당만부당하십니다. 무상으로 내어드리겠사옵니다. 비록 보잘것없지만 강호의 대(大)협객이신 절대천룡께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고 싶은 충심으로……, 그런데 죄송하오나 본 마방은 특급마차가 없사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하더라도 구비했어야 하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오시면 꼭…….”
나는 다시 마방 주인의 말을 끊어야 했다. 내버려 두면 끝도 없이 이어질 터였다.
“굴러가기만 하면 아무 마차나 괜찮소. 그보다 서둘러주었으면 하오만. 갈 길이 머오.”
“명을 받드옵니다.”
튕기듯 일어난 마방 주인이 의외로 요령 있게 필요한 준비를 지시했다. 그리고 반각도 지나지 않아 우리 앞에 그럴듯한 마차와 듬직해 보이는 마부를 대령했다.
***
호원까지는 십이처(十二處)를 경유해야 했다.
들르는 마방마다 군포에서와 비슷한 소동이 벌어졌다. 건곤장은 내 위상이 자기를 훌쩍 넘어섰다며 짐짓 언짢아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영웅시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흐뭇해하는 본심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가 왜 나에게 그토록 우호적인지 의아했다. 그는 나를 마치 친손자 대하듯 했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일세.”
“……?”
“오래 살아남는 걸세.”
“……!”
“자네는 민중의 영웅일세. 당금 무림에 네 개의 하늘이 존재하나 내 주군을 포함해 그들 중 누구도 백성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지는 못했네. 그들은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절대자일 뿐이네. 개중 가장 정파에 가까운 창제조차도 평생 단 한 번도 악인 징치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네. 그나마 그와 검제는 폭군이 아니니 다행일세. 둘 다 성군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후와 도제는 폭군이라는 말씀이오.”
“유감스럽지만, 그렇다네.”
“그러면 노인장은 어째서 무후의 밑으로 들어간 거요?”
나는 알면서도 짓궂게 물었다. 건곤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글쎄 말일세.’라고 답을 얼버무렸다.
필생의 호적수인 창제가 자신의 별칭을 따 흑창문을 신창문으로 개명하고 대륙의 북방을 제패하기 시작하자 무후도 그에 맞서 십자무련을 창립했다. 그때 정파 무림의 좌장이던 건곤장이 그녀의 수하가 되기를 자처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십자무련이 사파 일색이 되어 천하에 해악을 끼칠까 봐 균형추 노릇을 하고자 한 것이었다.
건곤장은 그러한 의도를 실제로 관철했다. 그의 결단에 동조한 정파 성향의 문파들이 대거 십자무련에 가입했고 무자비한 살업으로 악명을 떨치던 낙일쾌검 같은 마두들도 그의 눈치를 보며 악행을 자중하게 되었다.
머쓱해하던 건곤장이 낯빛을 바로 했다.
“처음 얘기로 돌아가자면 자네는 자네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만백성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남아야 하네. 그런 연후 하늘들이 저물면 이 대륙에 자네 세상을 펼쳐야 하네. 악인들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세상 말일세.”
좀, 아니 많이 찔렸다.
“하지만 걱정이구먼. 주군에겐 기가 막힌 묘수가 통했다 하나 삼제는 자네가 자기들에게 근접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터이니.”
나는 문상이 건곤장에게 내가 무슨 수단으로 무후를 꼬드겼는지 알려주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천지쌍고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을 터였다.
“셋 다 위험하지만 도제를 특히 조심하게나. 무공은 심후하나 인품은 얄팍하기 이를 데 없는 자일세. 만약 오늘 창제나 검제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불문곡직 자네에게 손을 썼을지도 모르네.”
나는 이미 그 상황을 겪었음을 실토하려다 참았다.
“창제도 안심할 수 있는 위인은 아닐세. 그 역시 언제든 자네에게 창을 겨눌 수 있네. 그나마 검제는 덜 위협적이구먼. 창제처럼 호승심이 하늘을 찌르는 성정은 아니니 자네에 대한 경계심도 가장 적을 걸세.”
나는 이 부분에서 건곤장과 생각이 달랐다.
***
삼제와 용왕이라는 초(超) 거물들이 총집결했지만 오늘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이는 검룡이었다.
겉보기와 달리 그는 결코 허당이 아니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지만 속에 든 걸 감추기 위해 일부러 경망스러운 언행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검룡이 그런 부류였다.
도봉을 보며 그녀의 미모에 눈이 멀 것 같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검룡의 눈빛은 시종일관 차가웠다. 그녀의 미모에 혹하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심지어 창제와 검제조차도 도봉이 발산하는 염기에 의식적으로 대항했다는 걸 감안하면 경이롭기까지 한 평정심이었다.
그런 평정심을 지닌 이가 속 빈 강정일 리가 없었다.
그의 안목도 대단했다.
검룡이 건곤장의 패배 선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했던 발언은 그가 나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임을 암시했다. 어쩌면 나보다 상수일지도 몰랐다. 나는 당사자이니 내 지공이 건곤장의 삼순을 완벽하게 돌파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지만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그가 그 사실을 파악한 건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검룡의 진신무력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양천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나나 세인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터였다.
***
말을 아낄까 하다가 충동적으로 토설했다.
“내가 보기엔 검제가 가장 음험했소. 검룡의 귀를 잡아끌며 날아오르기 직전 나를 흘낏 바라보는데 눈에 살의가 담겨 있습디다. 아마 마지막까지 갈등했을 거요.”
건곤장이 백미를 찌푸렸다.
“자네가 자기 제자의 앞길을 가로막을 거라 여긴 게로군. 허어, 그렇다면 큰일이 아닌가. 검제가 그렇다면 도제는 더할 터이니. 아무래도 안 되겠네. 이번에 무련에 들면 나가지 말게나. 설마 그들이 거기까지 쳐들어오지는 못할 테지. 무련에서 주군과 함께 수련하며 힘을 기르게나. 삼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위에 이를 때까지 말일세.”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언이었다.
“그럴 순 없소. 할 일이 태산이오.”
“꼭 그리해야겠는가?”
“그렇소.”
“…….”
건곤장은 오래도록 침묵했다.
어느새 자정이 오고 나는 마차 안에서 운공에 들었다.
그러면서 귀를 열어둘까 하다가 건곤장을 믿기로 했다. 바로 옆에 붙어있으니 그가 암습하고자 한다면 운공과 무관하게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운공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는 날이 환하게 밝아있었다. 걱정기가 서린 음성이 왼쪽 귀로 흘러들어왔다.
“괜찮은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구먼. 네 시진이나 운공하다니.”
“나는 멀쩡하오. 그런 의미에서 호원에 가면 정식으로 겨뤄봅시다.”
“나야 자네와의 승부를 바라마지 않지만 자네가 완치될 때까진 응할 수 없네.”
“이르면 사흘, 길어도 닷새 후면 완벽한 상태가 될 거요.”
“정말인가?”
“그렇소.”
“그러면 그때 함세. 준비가 되면 알려주게나.”
“알겠소.”
건곤장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울컥했다. 마치 노인네의 눈길 같았다. 나이가 무지하게 많다는 것만 빼면 둘이 닮은 구석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데.
“문상에게서 자네가 주군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들었을 때 솔직히 몹시 당혹스러웠다네. 일 년 만에 주군에게 필적하는 무위에 이를 거라니. 이는 마치 갓 돌이 지난 아이가 다음 해에 도검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경신도 전개할 거라는 말과 동일하지 않은가. 물론 자네가 보통 아이는 아니지만 그 짧은 기간에 주군과 견줄 만큼 성장할 거라니 도무지 믿기 어려웠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납득했네. 주군이 제대로 본 게야. 나는 소경이나 진배없었고.
자네가 전날 무력을 속인 게 아니라면 자네는 고작 한 달 만에 한 단계 이상 무위를 끌어올렸네. 무재가 출중한 이들이라도 최소한 십 년은 걸릴 터인데. 그것도 운이 좋을 경우에나 말일세. 아무리 분투하더라도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분루를 삼키는 이들도 허다하지 않은가.
나는 자네가 꼭 개세팔천과 대등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네. 아니, 그들을 능가하는 절대무존(絶對武尊)이 되기를 바라네. 살아서 그날을 보고 싶구먼. 그러려면 먼저 자네부터 살아야 하네.”
“그렇게 될 거요.”
“약속하겠는가?”
약속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나는 건곤장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겠소.”
“고맙네.”
내가 할 소리였다. 이제 며칠 후면 이 노인은 내게 수십 년 치의 적공에 해당하는 선력을 선사하게 될 터였다.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공주에서의 행사를 연기한 게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하여 나는 내 행운에도 감사했다.
***
군포의 마방을 출발한 지 이틀 후 우리는 천하제일도 호원에 당도했다.
오는 동안 건곤장에 대한 신뢰가 더 굳건해졌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나는 그에게 탄복했다. 그는 노인네가 말한 일 할의 타고난 선인(善人) 중에서도 진국이었다. 만약 안진이 전날 그를 만났을 때 심안을 열었다면 순백의 본성을 보았을 것이었다.
십자무련의 영토에 속하는 진명에서부터는 최고위직의 인사가 들어있음을 알리는 황금 깃발을 꽂고 달렸기에 우리가 탄 마차는 호원에 깔린 특별도로를 질주하며 순식간에 남문에 이르렀다.
십자무련에 든 후 건곤장은 도중에 나와 갈라져 그의 처소인 오죽채로 갔다. 나는 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고월서각으로 향했다.
사오천 평 넓이의 원형 화원 중앙에 자리한 단층 목조건물에서 벌써부터 짙은 서권기가 풍겼다. 물론 코가 막힌 탓에 나는 그 책 향기를 맡지는 못했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
서고에 들어간 나는 빙판처럼 미끄러운 복도를 끝까지 나아갔다. 문상은 전날처럼 연실에 들어있었다.
그날과 마찬가지로 앉아서 나를 맞이한 문상이 내가 그녀 맞은편의 의자에 착석하기도 전에 기습적인 질문을 면사 밖으로 쏘아냈다.
“오 공자는 대체 정체가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