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
마탄의 사수 (1)
6서클의 수준급 범위 마법이 숲 속에 작렬, 숨어 이동하던 공격대의 발이 단박에 묶였다.
“끄아아아아, 힐, 힐!”
“소리 지르지 말고 버텨! 괜히 날뛰다 걸린다!”
“빌어먹을! 이러다가 시작도 못하고 죽겠네!”
길드 전쟁의 승기를 잡기 위한 최정예 공격대 다섯 명.
마법 범위 안에 들었던 그들의 시야가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HP 바는 없지만 시야가 붉게 변했으니 이대로 있다간 곧 사망하고 만다.
“아, 젠장! 힐러! 뭐라도 좀 해 보쇼! 이대로 죽을 거요?”
벌써 저 뒤의 피통 작은 마법사는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광역 마법이 사라지기 전, 5초만 지나도 분명히 죽을 것이다.
“제발 좀! 서둘러 줘요!”
그 순간, 하늘에서 검이 내리꽂혔다.
수호성인의 검!
녹광을 뿜어대는 위풍당당한 반투명의 검. 그러나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따뜻하고 상쾌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오, 시스터! 젠장, 다음부터 빨리 좀 써달란 말요.”
“죄송해요. 광역 힐링은 캐스팅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됐어, 됐어. 아무도 안 죽었으니까. 어쨌든 고맙수다.”
하얀 면사포를 쓴 여성이 당황하자 쌍검을 든 남성이 되레 손사래를 쳤다. 시스터를 울려 봐야 좋을 거 없으니까. 무엇보다 죽은 인원이 없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이 숲만 나가면 뒤를 잡을 수 있어. 그러면 이번 전쟁, 그대로 끝낸다.”
“걸린 건 아닐까요?”
범위 마법의 지속시간이 끝나고,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자 걱정이 자라난다.
“걸렸으면 벌써 달려들었겠지. 무작위로 갈기던 마법에 얻어 걸린 것뿐이야. 작전 속행이다.”
방패를 든 남성은 자신 있게 말했다. 촉이 상당히 좋긴 하지만 그게 전부일 터. 이제 막 숲을 빠져나오는 위치의 자신들이 보일 리가 없다.
“스태미너는?”
“회복 완료입니다.”
“다시 가자. 다른 길드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반드시 뒤를 잡아야 해.”
방패를 든 남성이 이를 악물었다.
길드전이 한참 진행되는 중요한 시점에 정예멤버 다섯을 뺐다. 크게 티 나는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실력자들. 그들이 없는 공백은 길드 전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기습을 제안한 것은 자신이다.
만약 실패를 하면 길드 마스터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아니, 그전에 다른 길드원들의 희생을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럼 이제 가 볼― 윽!”
휘익, 보주(寶珠)를 들고 몸을 일으켰던 마법사 한 명이 뒤로 날아갔다.
“응?”
뭐지? 이상한 몸놀림이다.
백스텝? 마법사가 뒤로 점프하는 스킬이 있나?
그러나 점프가 아니다. 뒤로 날아간 마법사의 몸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 버렸다. 정예 공격대는 어리둥절, 서로를 바라봤다.
“야, 뭐해? 장난칠 시간 없― 펏.”
마법사에게 다가가던 남성의 뒤통수가 터졌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는 증거들은 위험을 말하고 있었다.
흐르는 피, 잿빛으로 변하는 신체.
사망 판정이다.
“뭐야! 적?”
“어디서? 시스터! 감지 좀 해 봐요!”
“못해요! 워록과 레인저가 당했으니……. 일단 매스 프로텍션을 캐스팅 할게요. 제 뒤로 오세―”
말은 즉각적으로 끊겼다.
하얀 면사포가 피로 물들기 무섭게, 전신이 잿빛으로 변한다.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듯 여성의 신체가 뒤로 쿠웅, 넘어갔다.
그러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다. 동료의 시체를 본 살아남은 자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한 거지?
“빠, 빨리 내 뒤로! 조심해, 뭔가 있다!”
사내가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간 얼마나 고되게 탱커의 길을 걸어왔던가? 이해가 안 되더라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적어도 쓰러진 방향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갑작스레 뒤에서 공격이 튀어나오진 않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감지 스킬이나 방어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들부터? 아니면 체력이 비교적 낮은 직업부터 노린 건가?’
방패를 들고 전방을 주시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대, 대장! 소리! 소리가 들렸어요.”
방패를 든 별동대장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는 이도류 검사.
“소리라니?”
“저쪽, 저쪽 방향에서 ㅊ―”
까앙―! 뭔가가 방패를 때렸다. 이도류 검사의 뒤통수부터 이마까지 뚫고 나온 뭔가가.
그로테스크하게 폭발하는 그의 머리는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하더니 사라졌다.
“욱.”
꿈에 나올까 두려운 장면이지만 잿빛으로 변하는 시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도류 검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별동대장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타아앙―――.
‘총?’
방패에 난 자국, 그리고 소리. 별동대장은 더 이상 생각을 지속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고개를 들기 무섭게 그의 시야가 툭 꺼졌다.
숲의 가장자리에는 잿빛으로 변한 사체 다섯 구만이 썰렁하게 놓여 있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발사!
“발사!”
준비된 사수나마나 사격장에서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시작은 눈.’
표적에 집중하는 이하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다음은 손가락.’
이하는 방아쇠에 걸칠 듯 말 듯, 검지의 끝마디만을 겨우 걸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우우…….”
숨을 참으면 느껴지는 이 순간의 고요함, 입안으로 느껴지는 긴장의 맛. 부드럽게 달라붙은 입천장과 혓바닥이 마음을 안정시킨다.
천천히 고조되어 가는 심장의 박동.
해군 잠수부대를 제외하고 가장 숨을 많이 참는 군인은 저격수가 아닐까.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손가락 끝마디가 꿈틀.
타아앙―――!
탄환이 쏘아지며 청각, 화약 냄새가 후각, 묵직한 반동이 온몸을 뒤흔들며 뇌세포를 일깨웠다.
‘이 느낌이 좋단 말이지.’
이하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아들에게 많은 경험을 해 주고픈 아버지 덕에 안 해 본 게 없었다. 승마나 골프, 피아노, 낚시, 주구장창 해 봤지만 어린 이하를 가장 매혹시켰던 것은 사격이었다.
처음엔 그저 집중하는 순간의 고요함과 긴장, 그리고 발사된 탄이 정확히 목적물에 꽂히는 쾌감이 즐거웠을 뿐이었다.
표적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격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반대로 쾌감은 커졌다. 그 재미가 실탄 사격까지 옮겨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권총도 좋았지, 작은 주제에 손맛이 아주 그냥. 아! 미국에서 쏴 본 볼트액션 총도 기가 막혔는데.’
아르바이트로 한 푼, 두 푼 돈을 모은 대학 시절, 미국까지 건너가 사격을 할 정도로 빠져 있었으니.
오죽하면 친구들이 그만 좀 하라고 했을까?
“야, 인마! 차라리 군대를 가라고!”
그 말이 정답이었다.
총기의 개인 소지가 불가능한 대한민국에서, 총 덕후가 갈 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자, 이제…… 마지막 한 발.’
타아앙―――!
스무 발의 사격이 모두 끝났다.
그 짜릿함을 뒤로하고, 사격 종료 신호와 힘께 조정 간 안전을 복창하며 이하는 총을 세웠다.
정일곤 대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하 중사, 이 미친놈아. 또 만발인 거 알아?”
“중사 하이하! 쏘면서 알았습니다. 만발이나마나 맨날 쏘는 건데……. 만발 아닌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히죽거리는 이하를 보며 정 대위는 혀를 내둘렀다.
병으로 입대한 이하는 부사관이 되어 대대 저격수에 편입되기까지, 그 이전에도 이후로도 만발을 놓친 적이 없었다.
애초에 부사관을 권유한 것도 말도 안 되는 사격실력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통 틀어 몇 발이나 놓쳐 봤을까? 아니, 놓치긴 놓쳐 봤을까?
적어도 정 대위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일반 사대에서 20발을 쏴 20발을 맞추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멀가중 멀가중 멀중가중].고정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표적은 갓 입대한 이등병들도 가끔 보여줄 정도로 종종 나오는 점수다.
그러나 200발을 쏴 200발을 맞추는 것은?
2,000발을 쏴 2,000발을 맞추는 것은?
해서 요즘은 아예 500m, 700m의 저격도 하지만, 그때에도 마찬가지.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이제 사격을 잘하냐 못하냐가 아니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들 지경.
그러나 정 대위가 놀라건 말건, 이하는 가벼운 미소를 띨 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공기총을 처음 쥐던 어릴 적부터 말이다.
“아유, 정말 질린다, 질려.”
“큭큭. 감사합니다.”
“결과 뽑아 줄 테니까, 탄도학 교보재랑 같이 정리해서 보고서 작성하고.”
“네, 중대장님.”
“그래도 이하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조만간 특전사 애들이랑 해병대 애들이랑 저격수 무슨 전투능력평가 한다는데, 꿀리진 않겠지?”
이하와 함께 사격장의 계단을 내려가던 정 대위가 슬쩍 말을 건넸다.
이하는 자신의 중대 소속.
이하가 좋은 성과, 좋은 실력을 낼수록 자신의 위치도 같이 빛난다.
“모르죠. 그쪽은 총기도 그렇고 교재도 그렇고…… 애초에 저격수 운용을 수십 년 동안 해 온 곳이잖아요.”
“야, 모르긴 왜 몰라, 무조건 이겨야지.”
“중사 하이하, 최선을 다하겠슴닷!”
낄낄거리며 사격장을 내려와 탄피와 여분의 탄약을 챙기는 두 사람, 저격수의 사격훈련이었기에 따라붙는 병사라고는 운전병 한 명뿐이었다.
“이따 퇴근하고 맥주나 한잔 조질까?”
“중대장님이 사시는 거면 가지 말입니다.”
“너, 나보다 수당 많이 받잖아! 나 저번 달 시간 외 수당 다 못 채웠거든!”
“에이, 벼룩의 간을 잡수시지, 중사 봉급을 빼드십니까? 것도 올해 진급했는데?”
사격장을 몇 백 번이나 왔을까.
둘은 허물없는 태도로 탄통을 주고받으며 뒷정리를 시작했다. 이는 너무도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허, 참. 중대장 두어 번 더 하면 거덜 나겠네. 아 맞다. 너 진급 턱도 아직 안 쏜 거 알지?”
“아, 그거 아직도 안 잊고 계셨습니까? 큭큭, 그러면 오늘은 제가―”
그리고 사고는 언제나 일상에서 터지는 법이다.
콰아아아앙―――!
정 대위가 던진 탄통을 이하가 받아들기 무섭게, 폭발이 일어났다.
“카학――!”
화염은 크지 않았지만 폭압은 강하다.
밀려난 정 대위는 땅을 구르고, 밀쳐진 이하는 구형 지프에 허리를 부딪쳤다.
이하는 강력한 충격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 * *
‘꿈인가?’
눈꺼풀이 붙어버린 기분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러나 생각은 고통에 의해 끊어진다.
“프하악―. 캬아앗.”
비명조차 제대로 지를 수 없을 고통, 격통에 횡격막이 쪼그라들며 숨쉬기가 힘들다. 아니, 숨쉬기가 힘든 것은 코와 입에 가득히 삽입된 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숨을 쉴 수 없는 허파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기계들 덕분에 이하는 죽지 않았다. 반대로 그 기계들이 주는 고통에 죽을 것 같았지만.
‘뭐, 뭐야? 왜 이래? 살려줘! 살려주세요!’
말이 나오질 않는다.
몸부림이라고 해 봐야 손톱이나 움직였을까? 엄청나게 발버둥을 쳤다고 생각했건만 침상 위에 뉘어 있는 자신의 몸은 고요하기만 하다.
고추에 이어진 관에서는 소변이 쪼로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이하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침대 옆에 둔 통에 노란 물이 차오르는 걸 보고서야 알았을 뿐.
‘이게 대체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된 걸까? 고개를 양옆 10도 이상 돌릴 수가 없다.
목을 움직이느니 북한과의 통일을 기다리는 게 빠를 것 같았다.
허리를 세우는 일은 애초에 그런 개념조차 없던 것처럼, 이하의 의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손가락이 겨우겨우 꾸물거리는 정도? 그러나 방아쇠를 당길 때처럼 의도한 움직임이 아니라, 온몸을 뒤흔들 정도로 힘을 주어야 겨우 꼼지락거릴 뿐.
‘내 몸이…… 아, 병원? 수술?’
그제야 사고의 기억이 떠올랐다.
정 대위가 탄통을 던졌지. 폐기처분하기 직전의 탄이 가득 차 있던. 그리고 자신이 그걸 받았다.
받는 순간 어떻게 됐었지?
‘터졌다. 그래, 분명히…… 터졌어.’
그런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구시대의 흑색화약도, 니트로글리세린도 아니고 현대의 탄약이 노후로 폭발을 하다니.
아니, 현대라고 하긴 좀 무리인가?
1990년대에 만들어 진 탄이니 벌써 40년이 지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으. 마.”
이하는 억지로 입을 벌렸다.
그러나 이하가 성대를 걸레 짜듯 비틀어도 목소리는 크게 나오지 않았다.
심장박동과 혈압을 체크하는 기계에서 주기적이고 단조로운 비프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
‘말도 안 돼.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겨우 뜬 눈꺼풀이 다시 무거워졌다.
이하의 정신과는 상관없이 그의 육체가 회복을 위한 취침을 강요하고 있었다.
‘잠들기 싫은― 안 ㄷ.’
중환자실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의식이 날아가기 직전까지도 이하는 꿈이길, 제발 꿈이길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