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182
마탄의 사수 (1182)
이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방으로 달렸다.
모친이 없을 시간임을 뻔히 알았음에도 도저히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쳤어. 미친, 미쳤어! 아무리 분위기에 휩쓸렸어도!’
그저 밝은 방청객들의 웃음과 돌고래처럼 톤이 올라간 환호, 이 정도의 답변까지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시청률이 대박날 것을 예감했다는 듯, 기뻐하는 아나운서, 뻣뻣하게 굳어서 카메라만 바라보는 자신, 그리고 그 와중에 “저, 저도 좋아합니다, 보배 씨!” 하며 2차 스캔들을 만들어 버리는 기정까지!
밝고 경쾌한 일련의 소동과 같은 일은 몇 분간 방송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장내를 뒤집어 놓았음은 물론이었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또 황당하다는 생각이 마구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하에게 떳떳함은 있었다.
‘실제로……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다.
람화연의 마음이 어떤지도 알고 있다.
람화연이 무슨 뜻으로 그것을 만들었는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곳은 ‘집’이고, 두 사람은 ‘함께 사는 상태’였다.
‘화연이가 직접 만들었을 거야.’
당연히 그래픽 디자이너가 함부로 사진을 가져다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발되었을 때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당할지도 모르는 일을 함부로 할 리가 없다.
당연히 람화연이 이 일에 관여되어 있다는 의미이고, 결국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뜻은…….
부우우우웅─────!
때마침 울린 진동에 이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까지 오며 벌써 수없이 많은 진동이 울렸다.
누가, 어떤 메시지를 보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만약 그중 하나라도, 람화연이 자신을 질책하거나 실망했다는 표현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기분.
다소 소심한 생각이었지만 이하는 자신이 방송에서 한 말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단순한 게임 채널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 아니야. 아마도…….’
녹화된 화면은 매스컴의 여러 채널로 전파될 것이고 당연히 재계에도 전달될 것이다.
람롱 그룹의 후계 구도가 완전히 확정된 것도 아니건만, 가장 유력한 후계로 지목되는 람화연이, 재계나 정계의 인물이 아니라 그저 일개 게이머와 열애설이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을 테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하는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별초의 유저들에게서 온 메시지가 많았다.
같은 한국 사람이므로 빨리 연락할 수 있는 혜인이나 징겅겅, 보배 등이 보낸 메시지가 각기 몇 개씩, 거기에 더해진 건 신나라의 메시지였다.
[멋지던데요? ㅋㅋ 보배는 람화연 씨를 향한 고백이랑 기정 씨가 한 얘기 때문에 정신이 없긴 한데, 저는 그보다 뒤에 했던 연설이 더 좋았어요. 아마 이하 씨 덕분에 〈신성 연합〉 쪽 준비도 빠르게 끝날 것 같으니, 미들 어스에서 봐요!]“아…… 맞다. 그런 말도 했구나.”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이하는 충분한 말을 하고 왔다.
미들 어스 시간으로 앞으로 100일.
마왕이 깨어난다는 사실과, 그것을 막기 위해 ‘이미 알아낸’ 시티 페클로를 습격, 점령하는 군세가 갖춰지고 있다는 점.
미들 어스 시간으로 만 하루가량이 더 지나는 시점에 총공세가 펼쳐질 예정이며, 따라서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임을 이하는 강력하게 호소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하의 짧은 선언은 마왕군 소속 유저들에 대한 완벽한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으으……. 근데 구체적으로 뭐라 말했지?”
다만 당사자는 다른 사건(?)에 대해 떠올리느라 다른 사건이 워낙 커 정확한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제목: 야, 근데 하이하 말 잘하더라〉
〈제목: └re: 프롬프터 읽은 거겠지〉
〈제목: └re:└re: ㄴㄴ 나 방청객이었는데 카메라 옆에 그런 거 없었음〉
〈제목: └re:└re:└re: 인 이어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건가〉
〈제목: 몇 초 전까지 얼굴 새빨갛던 사람이 ㄹㅇ 순식간에 바뀌던데〉
〈제목: └re: 나돜ㅋㅋ 그거보고 무슨 연기하는 줄〉
그러나 그것은 어떤 방향이 되었든 미들 어스를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말이었고.
〈제목: 근데 뭔가 끓긴 끓는다 ㅋㅋㅋ 아 접속해야지〉
〈제목: └re: ㅇㅈ 은근 자극됨 ㅋㅋ〉
〈제목: 〈백룡 전투〉때보다 훨씬 꿀이고 보상은 좋을 듯〉
〈제목: 저렙도 할 일이 있다니까 나도 이번엔 간다 ㅅㅂ〉
어떤 방향이 되었든 미들 어스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자극시키는 말이었다.
이하가 방송을 끝내고 집으로 복귀하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미들 어스는 오랜만에 최다 동시 접속자 수를 갱신했다.
* * *
“어, 연예인! 연예인 왔다아아아!”
“이하 씨!”
“우하하핫! 인터뷰는 도대체 그게 뭡니까? 나, 진짜 번역이 뭐 잘못된 건 줄 알고 나라 씨한테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봤다니까? 키야~ 증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 그만들 놀려요. 하아아…….”
시티 페클로의 위치를 듣고 이하가 마지막으로 로그아웃했던 장소는 〈신성 연합〉의 요새였다.
신나라와 라르크가 있는 곳에서, 이하를 발견하자마자 온갖 유저들이 몰려와 그에게 한마디씩 건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하는 몰려든 유저들에게 겨우 인사치레를 한 뒤에야 두 사람과 대화할 수 있었다.
“낄낄, 마스터케이 씨도 엄청 나던데!? 두 형제가 아주 그냥 그렇게 공격적인 연애를 할 줄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요, 나라 씨?”
“킥! 보배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어떻게든 그 얘기를 안 꺼내려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두 사람을 보며 이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변명할 여지도 없는 본인의 갑작 고백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어느새 요새로 들어온 루비니도 이하를 보며 가볍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 루비니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터뷰 잘하시던데요.”
“으으, 너무 부끄러우니까 그 얘기는 그만해 주세요.”
“아뇨, 그게 아니라…… 그 인터뷰를 보고 이토록 많은 유저들이 왔으니까요.”
과장된 행동을 하는 이하를 보면서도 루비니는 미소를 풀지 않았다.
홀로그램 지도를 가리키는 그녀의 손을 보며 이하는 루비니가 다른 생각으로 웃었음을 깨달았다.
“아! 아아아, 그쪽 말씀이시구나. 흐흐, 운이 좋았죠. 사실 제가 무슨 얘기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확실히 뭐, 이번 시티 페클로 공략은 생각보다 쉬울 것 같기도 하고. 굳이 제가 아니었더라도 유저들이 많이 참가하는 게 당연한 일일 겁니다.”
이하는 루비니의 지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언제나 안대를 착용하고 있어 눈을 볼 수는 없지만, 지금 루비니의 시선은 분명히 이하에게 꽂혀 있었다.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항행에서 처음 만나, 이렇게 시간이 지날 동안 별다른 말도 해 보지 못했던 사람.
“후훗. 람화연 님께서는 별말씀 없으셨나요?”
“아, 크으으…… 이제부터, 아마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칼라미티 레기온을 데리러 가려면 어차피 화연이네 요새로 가야 하니까.”
“그렇죠. 전부 빨치산 요새에 두셨잖아요?”
“네. 거기가 주차 공간이 넓거든요. 아, 주차 공간이라고 말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다. 헤헤.”
어색하게 웃는 이하를 보며 그녀는 그가 람화연과 진심으로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더 이상 자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보배 네도 이미 신대륙 중앙으로 가 있대요. 유저들도 여기서 보급받아서 전부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하이하 씨도 바로 그쪽으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신나라가 말했다. 이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방 합류하겠습니다. 후우우우…….”
이하는 수정구를 꺼내어 들고는 심호흡을 했다. 미들 어스에 접속하며 이하가 걱정했던 것은 마왕군과 관련된 게 아니었다.
칼라미티 레기온을 데리고 신대륙 중앙에서 만나, 그대로 시티 페클로의 좌표를 향해 진격하면 된다.
마왕군의 반격은 거세지 않을 것이다. 문제라면 하나뿐이었다.
바로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 만한 유저들이 이하를 흘끗흘끗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보랏빛과 함께 이하는 마침내 람화연의 요새에 도착했다.
“하이하 님, 오셨습니까.”
“블라우그룬 씨, 오늘도 열일하시네요.”
“시티 페클로의 좌표를 알았으니 당연합니다. 해당 좌표 주변의 하우스하우스들과 특히 접촉 감도를 높여 수색 중이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규모는 다소 축소되었으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화면을 관찰하는 유저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음, 역시. 잘한다니까. 크흠, 그리고―.”
이하는 헛기침을 했다.
블라우그룬의 옆에서 붉은 머리를 휘날리는 여성이 억지로 이하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본부장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쉬, 쉿. 가만히, 그냥, 저기, 일해요. 일.”
“네, 넵.”
할 말도 없으면서 굳이 유저 한 명의 옆에서 지시를 내리는 척하고 있는 람화연을 보며 이하는 은근슬쩍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저기…….”
“으, 응!”
람화연은 화들짝 놀라 답했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이하는 목청을 다시 가다듬었다.
블라우그룬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으나, 이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람화연을 만나면,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괜히, 그…… 미안해.”
보지 않았다는 가정 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이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람화연의 행동이 우뚝 멈춰 섰다.
“……할 말이 그게 전부야?”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가라앉았다.
람롱 그룹 내에서는 제왕학을 배운 여장부라지만, 그녀는 여전히 20대 중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나이다.
기정보다도 어린 그녀가 이하에게 기대하는 게 무엇인가.
자신이 그토록 행동했음에도,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는 따위의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인가.
어쩐지 화가 날 것만 같은 이하의 발언이었다. 당연히 이하도 람화연의 성격을 알고 있다.
애당초 그 말만 준비한 건 아니었다.
“응. 네가 말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뭐?”
이하는 스윽 몸을 돌렸다.
“이 일이 다 끝나면, 크흠, 내가 말하러 갈게. 기다려 줘.”
그리고 속삭이듯 람화연에게 한마디 건넨 후,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우, 자! 일합시다, 일!”
“자, 잠깐. 뭐― 그게 무슨 뜻이야?”
람화연은 이하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하는 람화연의 물음에 특별히 답하지 않고 곧장 블라우그룬의 곁으로 다가갔다.
“블라우그룬 씨, 뭐 특별한 놈들은 없었죠?”
“목적 좌표 인근에서 몇 사람이 갑작스레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하우스하우스를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놈들이 마지막으로 출몰한 장소가 바로 시티 페클로의 정확한 지형일 텐데, 차마 거기까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뭐, 탈영이라도 하려나 보지. 칼라미티 레기온까지 끌고 갈 거예요. 블라우그룬 씨도 준비해 주세요.”
“네. 로드께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람화연은 이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스치며 말했다지만 못 들은 게 아니다. 하물며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한 번 더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 것인지.
그러나 그녀는 묻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전투를 준비 중인 게 무슨 뜻인가. 이하는 ‘이번 일’을 빠르게 끝내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자신에게 오기 위해서…….
“하여튼…….”
람화연이 작은 미소를 지을 때, 신대륙 동부로의 진격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신성 연합〉의 이름으로 시티 페클로 정복에 나서기까지 미들 어스 시간으로 3시간 남짓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