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622
마탄의 사수 외전 (271)
로보는 휘둥그런 눈으로 이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군왕’의 상태에 따라 반응하듯, 주변의 영령 늑대들은 낮게 울음소리를 내며 경계하던 것조차 잊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이하 형, 3차 승직됐던 게―.”
“취소됐었지. 알렉산더가 첫 번째 3차 승직자로 알려진 것 또한 하이하 씨의 3차 승직이 취소되었던 것에서 비롯된 점이니…….”
“맞아요! 나도 기억해! 원래 이하 씨 ‘캐삭’되어서 사라지는 건데, 나라가 구해 준 거잖아요? 그쵸?”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입을 연 건 기정과 혜인 그리고 보배 등 〈별초〉의 인원들.
〈제3차 인마대전〉의 마지막 순간에 이하의 곁에 있던 자들은 이하가 어떤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러한 점이라면 ‘이하 덕후’인 카르카노도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역시 ‘직접 겪은 사람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일이었다.
“《마탄의 사수》라면 나 또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많이 알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내가 양보해 줘서 그렇게 된 거였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은 오히려 추하게 들립니다, 루거.”
“추, 추하기는 뭘! 너도 마찬가지 아냐? 애당초 아카데미 시절에서부터 《마탄의 사수》에 제일 근접한 건 나였고! 그다음이 키드 네 녀석이었고!”
“물론 나는 양보해 준 게 맞습니다. 내가 물려받은 〈크림슨 게코즈〉는 《마탄》의 성질에 맞지 않으니―.”
“미친 놈, 하여튼 꼭 지를 껴 줘야 인정하는 건 변함이 없어서―.”
키드와 루거, 두 사람은 이하의 동료이기 이전에 라이벌이자 경쟁자였다.
마탄의 사수라는, 단 한 명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이자 능력을 누가 먼저 손에 넣는가.
한때 카즈토르의 연구소에 관한 비밀을 서로 공유하지 않고 숨기기 위해 그토록 애쓰던 사이가 아니었나.
《마탄》의 이야기가 나오자 두 사람이 슬쩍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대화를 이하는 여유롭게 듣고 있었다.
《마탄》에 대해서라면 어떤 의미로 가장 잘 아는 자가 바로 로보일 테니까.
“마탄으로 죽은 자는 애초에 영계로도 갈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일곱 번째 마탄에 의하여, 저는 제 스스로를 소멸시켰죠. 그러나 보배 씨의 말처럼, 저는 주신 아흘로 님의 배려 덕에 〈하얀 장미〉에 의한 보호를 받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뿐입니다.”
영계라는 단어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층계Layer’가 나뉠 수 있다는 단서를 제시한 게 결국 로보라는 뜻이다.
굳이 일곱 번째 마탄에 대해 운운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마탄》에 의한 사망자가 영계로 갈 수 없다는 건 당연히 로보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
“그럼 저는 망각의 강을 건널 수 있는 자격 요건은 갖춰진 거죠. 인정하십니까, 로보 님?”
이하는 재차 물었다.
얼어 버린 듯 움직이지 않던 로보의 눈이 가까스로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 그러나…… 하이하 너의 존재는 분명 이곳에 있다. 그것을 망각이라기엔―.]“네. 말씀드렸듯 저는 주신 아흘로 님의 보호 아래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탄의 사수》였던 ‘저’는 죽었죠.”
시스템적으로 3차 승직의 취소. 미들 어스 내부의 방식으로는 소멸이자 망각.
[그……렇다. 하이하, 현재의 네 육신은 결국 마魔와 신神이 한순간에 오롯이 부딪쳐야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의 증거. 망각했으나 망각하지 않은 자. 망각을 경험하고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 나는 하이하, 그대를…….]결국 로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인정한다.]빠밤―!
로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하의 머릿속에서 또 다른 팡파르가 울렸다.
영계의 출입권한 업적을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영계의 출입권한(U+)〉
당신은 죽음을 겪었으나 죽지 않은 자가 아닙니다. 죽음을 겪었고 망각했으나, 다시 부활했고 모든 것을 기억해낸 자라고 해야겠지요. 당신은 [영계靈界의 관리자] 로보에게 그 사실을 인정받고 마침내 영계로의 출입 권한을 획득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들어서게 될 공간은 미들 어스의 모두가 가야 하는 곳이나, 그곳에 갔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장소입니다.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자를 제외한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원하는 모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끝을 향한 여정에서 마침내 종착점에 도착한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너무 시간을 오래 허비하지 마세요. 영계에 들어갈 권한은 있어도 당신의 ‘신체’는 영계에 적응치 못할 테니까요. 제아무리 [영계의 관리자]에게 인정받은 당신이라도, 그곳에서 찾아올 ‘두 번째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걸 잊지 마세요.
보상: 스탯 포인트 500개
[영계靈界] 입장 자격 획득 [상태 이상: 영계]로 인한 피해 가속 +15%(명예의 전당이 없는 업적입니다.)
* * *
“뭐…… 이 정도겠지.”
차라리 확실한 페널티가 부여되어 있다는 게 오히려 이하를 안심시키는 일이었다.
다만 500개에 달하는 스탯 포인트만큼의 페널티가 고작 ‘+15%’라는 가중치이므로, 애당초 영계 안에 입장했을 때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될지가 걱정될 뿐.
이하는 자신의 업적을 살피며 로보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가시죠? 우리 일행들과 함께―.”
[일행은 갈 수 없다. 자격을 얻은 것은 하이하, 너뿐이다.]신이 나 발걸음을 떼려는 이하를 보며 로보는 물론, 주변의 유저들도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애당초 마탄의 사수가 되었다 해제된 이하 수준이 아니라면 결국 영계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의 대화가 지속되지 않았던가.
로보를 설득해 내더라도 자격이 없는 타 유저들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으리란 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 그거, 경계선 말씀하시는 거죠?”
[음?]그리고 이하라고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망각의 강’을 건너기 위한 자격 요건은 너무나 까다롭다.
이하 자신도 마탄의 사수가 아니었다면 미들 어스의 어떤 플레이 방식을 통해 얻을 수 있을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을 지경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기까지 올 때 새로운 업적 하나를 얻었거든요. [경계선을 새롭게 그리는 힘] 이라고…….”
미들 어스에서 죽음을 겪었으나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가.
도저히 방법이 없는 그 일을 해낼 만한 장소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미들 어스는 언제나 ‘어두운 등잔 밑’에 단서를 두기 마련이다.
[경계선을 새롭게 그리는 힘이라면―.]〈업적: 경계선을 새롭게 그리는 힘(U+)〉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이상 건널 수 없는 강, 당신은 그곳에서조차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건너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곳, ‘세상의 끝’에서 [영계]로 향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장소는, 미들 어스를 이루고 또 흘러가게 만드는 절대적인 규칙이기도 하지요.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고 따라서 그 누구도 성공한 적 없는 규칙의 파괴는 당신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죽었으나 죽지 않은 자들이 [영계]로 향할 수 있는 ‘진정한 죽음’을 겪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적어도 이 길에서만큼은, 이제 다른 모든 이들도 당신이 만드는 새로운 규칙을 따라야 할 겁니다.
보상: 스탯 포인트 250개
스킬―인스턴스 던전 생성: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곳’ 획득
[영계의 관리자]와의 친밀도 –10%〈경계선을 새롭게 그리는 힘〉 업적의 첫 번째 등록자입니다.
업적의 세 번째 등록자까지 명예의 전당에 기록 되며, 기존 효과의 200%가 추가로 적용됩니다.
효과: 스탯 포인트 500개
[영계의 관리자]와의 친밀도 –20%이하의 레어와 달리, 이토록 먼 곳에 도달하여 상봉했음에도 로보가 이하를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명예의 전당을 포함하여 무려 30%의 친밀도 감소가 적용되었으니까.
물론 이하가 그것으로 기 죽을 일은 없다.
페널티가 그토록 크다는 건 반대로 보상 또한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네, 뭐…… 그런 거죠. 로보 님이 인정할 수 있는 ‘죽음’을, 저는 이들에게 선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하는 그 보상에 대한 것도 이미 확인을 끝내 놓은 상태였다.
〈인스턴스 던전 생성: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설명: 이제 당신은 새로운 경계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격을 보유하고 또 당신에게 간택받은 이들은 당신이 만든 인공적인 공간에서, 당신의 분신과 싸우며, 당신이 선사하는 새로운 경계선 너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단, 명심하세요. 당신에게 부여된 힘은 당신이 새롭게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자격을 보유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으므로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능력을 보유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된다면…… 예컨대, 당신의 분신이 제압을 당한다면……. 글쎄요. 부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죽었으나 죽지 않은 자들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까. 억울하진 않으시겠죠? 그것이 ‘경계선을 새롭게 긋는 자’가 짊어질 숙명이니까요.
효과: 인스턴스 던전 생성
―생성자 입장 불가
―[업적―죽었으나 죽지 않은 자] 획득 유저 및 생성자가 지정한 자에 한하여 입장 가능
―파티 또는 공격대 결성 후 입장 불가
―‘망각의 강’ 인근에서만 생성 가능
―생성 시 난이도 조절 가능
―던전 생성 이후 3일 내 미션 실패 시 자동 폐쇄 및 추방
(로그아웃 시에도 인스턴스 던전에 위치됩니다.)
마나: 1
지속 시간: 3일
쿨타임: 50일
로보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일반 영령 늑대들은 꼬리까지 말아내린 상태였다.
* * *
“그, 그럼……. 하이하 씨가 만든 인던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해도―.”
“출입 권한이 생긴다는 건가요? 말도 안 돼! 어떻게? 왜? 왜 하이하 씨만 그런 게 다 있어요!? 그럼 애초에 마탄인지 뭔지도 필요 없었던 거 아냐?”
스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유저들에게서 질문 공세가 펼쳐졌다.
보배가 다른 유저들을 대신하여 두 배의 호들갑을 떨어 주고 있었으나, 마음만큼은 모두가 같았다.
이러한 스킬이 있다면 《마탄의 사수》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닌가.
《마탄》에 당하거나, 일곱 번째 《마탄》을 쏜다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아, 이걸 설명 안 했네. 정작 인던 생성자인 저는 인던 출입이 불가능해요. 아마 여기 설명대로…… ‘내 분신’이 죽음을 선사하는 방식이라 그런 것 같은데. 뭐, 아마 들어가면 여러분들은 ‘또 다른 하이하’와 싸우게 되는 거겠죠.”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이하의 설명에도 여전히 몇몇 유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페르낭은 달랐다.
“알 것 같군요.”
“네? 뭐가요?”
“말하자면…… 이건 ‘이곳까지 온 동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겁니다. 애당초 〈세상의 끝〉이니, [영계]니 하는 곳에 혼자 올 만한 유저들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겨우 자격은 갖추고 있지만 이곳까지 와서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사람이 생긴다면―.”
“부히히힛, 억울해서 잠도 못 자겠지. 아니, 내가 못 들어가면 남도 못 들어가게끔 콱― 다 죽여 버리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할 거야!”
“그, 그 정도로 극단적인 사람은 삐뜨르 씨 외에는 없을 것 같긴 해도……. 여하튼, 그런 겁니다. 결국 두 가지 조건, 파괴의 강을 파괴하지 않고 건널 정도의 능력을 지닌 자와, 망각의 강을 건널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사람 또는 둘 중 하나를 갖춘 두 명의 사람. 그들을 포함한 일행 모두가 [영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둔 셈이죠. 애당초 파티 플레이를 권하는 여정이었나 보네요. 하긴, 고래의 위胃만 해도 이미 그런 느낌이 났지만…….”
개척왕으로서 미들 어스의 여러 지역을 전전한 페르낭은, 이하조차도 아리송했던 스킬의 의도를 파악해 냈다.
실제로 마그마를 건너 얻은 업적도 U+급, 로보에게 인정받은 것도 U+급으로 같았던 게 이하에게 있어선 의문이었으니까.
“……다만 이 경우에는 하이하 한 사람이 그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겁니까.”
“하여튼 재수 없는 짓, 욕먹을 짓은 골라서 하는군.”
“그, 그게 왜 재수 없는 짓이야!? 내가 잘난 게 죄야?”
키드, 루거의 말에 이하는 발끈하여 말했다.
키드는 훗, 하고 웃었다.
그러곤 아직 페르낭도 지적하지 않은 점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페르낭, 당신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예? 잘못 알고 있다뇨?”
“이곳까지 온 동료들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즉, 이곳까지 온 유저들은 하이하가 만든 인던에 입장하여, 하이하의 분신에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키드는 〈크림슨 게코즈〉를 뽑았다.
철컥, 거리는 소리는 몇 번이나 울렸을까.
순식간에 네 정의 리볼버에 탄환을 전부 삽입한 그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 그렇죠? 하이하 씨의 스킬 설명이 맞는다면― 저도 그렇게 이해했는데―.”
“크하하하핫, 그렇군. 페르낭, 네 녀석도 한참 잘못 알고 있어. 그딴 물러 터진 생각이라니.”
어리둥절한 페르낭의 답변을 끊으며 루거도 〈코발트블루 파이톤〉을 매만졌다.
두 사람의 갑작스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순순히 ‘인스턴스 던전’의 효과와 설명에 대해 이야기했던 이하는,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