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835
마탄의 사수 외전 (484)
이제 라르크는 눈조차 깜빡거리지 않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본능적인 동작조차 멈춰 버릴 정도로 그의 사고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특기, 다른 특성의 유저였다면 아마 라르크와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순 없었을 것이다.
애당초 그 가정이 성립하는가? 라는 점에서부터 턱, 하고 걸려 버려 그러한 생각을 떠올릴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라르크는 다르다.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그러한 가정이 성립되는 경우를 알고 있다.
‘……가능해. 만약 거기까지 생각한 거라면……. 처음부터? 의 몸을 쓰던 그때부터 지금의―.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아무리 티아마트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라르크는 중얼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 번 방향을 잡은 사고가 내달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정 결과를 미래로 했을 때 해당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검토하는 일이라면, 라르크에게 있어선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뭐라고…… 뭐라고 하는 거야?”
“안 들려. 무슨―. 그냥 부르르, 어버버버 하는 느낌으로밖에 안 들려. 언어 차이인가?”
“너도 프랑스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 너네 나라 말이라 번역 문제는 아닐 텐데, 그것도 안 들린다고?”
그 중얼거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의 말 한마디라도 들어 정보를 선취하고자 하던 유저들이 몇몇 접근해 보았으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처럼 들리는 게 전부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중간, 어느 시점에서 ‘그런 식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텐데, 그렇다면 그 시기라는 것은…….’
라르크는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껏 자세를 낮추고 그의 주변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던 유저들은, 나쁜 짓을 하다 적발된 사람처럼 고개를 휙, 돌리며 헛기침을 하거나 황급히 물러서야만 했다.
그러나 라르크는 ‘고작 그들’ 때문에 고개를 든 게 아니었다.
“……하이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게 모두 끝났기 때문이며.
하이하 님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부디, 이곳의 안내는 모두 저희에게 맡기시고―.
아이, 됐다니까요. 벌써 몇 번이나 온 곳인데. 라르크! 라르크 씨나 좀 찾아 줘요! 자꾸 나 붙잡지 말고! 자꾸 이러면 미니스 국왕한테 말합니다? 여기 마을에서 귀찮게 하는 사람들 있다고―.
펍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란과 그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이하였어. 하핫, 나, 원. 저 사람은 본인이 뭘 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네.”
국경 마을의 NPC와 이하가 티격태격하는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자 라르크는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계산은 미니스 군부 앞으로 달아 주시고! 아, 여러분들 제 곁에서 뭐 들어 봐야 나올 건 없습니다. 모두 레벨 업 열심히 하시고! 카오 유저분들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절망의 미래]는 막아 내야 게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수고!”
그러곤 속사포처럼 주변 유저들에게 말을 내뱉고 펍 밖으로 나섰다.
워낙 작은 마을이었으므로 이하와 라르크가 서로를 발견하는 데에는 그리 어려움도 없었다.
“어, 어어, 저기 있다! 라르크 씨! 빨리 말 좀 해 줘요! 경비들이 무슨 누구 만나고 가야 한다면서 붙잡는데―. 젤라퐁으로 밀어 버릴 수도 없고 진짜!”
너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준 낮은 NPC는 ‘사망할까 두려워’ 건드릴 수 없다는 게 이하의 딜레마가 아닐까.
“하이하 씨답다면 하이하 씨다워서 웃음도 안 나오는데…….”
랭킹 1위조차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건 랭킹 2위나 샤즈라시안 연방의 대통령, 에즈웬의 교황 따위가 아니라 국경 변두리 작은 마을의,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경비병 NPC라니.
라르크의 소리 작은 푸념을 들은 이하가 다시 한 번 그를 부르려 한 순간.
“그런 말 말고―.”
“크흠! 지금부터 본 왕국의 VVIP 하이하 님은 군부의 라르크가 담당할 터이니 모두 물러서시오!”
처척―!
라르크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을에 떠나가라 울렸다.
반강제로 이하를 끌고 가려던 NPC들은 라르크의 한마디에 부동자세를 취해야만 했다.
“이욜……. 무늬만 대령은 아닌가 보네요.”
이하는 그런 라르크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라르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그런 거죠.”
“으, 당연하다는 그 표정이 사실 더 조금…… 알죠? 근데 진짜 ‘대령’이면! 라르크 씨도 내가 군 생활했던 거 알잖아요? 사실 라르크 씨 나이대에 할 만한 게 아니기도 하고―.”
“그런 소리 할 거면 얼른 갑시다. 하이하 씨 혼자만 가는 겁니까? 블라우그룬 님은 안 가고?”
어차피 두 사람 사이에 시답잖은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는 법.
“네. 어린 딸이 있는데 집에서 쉬어야죠. 흐흐, 그럼 출발하죠.”
물론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 또한 일종의 정보 탐색전임을 이하와 라르크 두 사람 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정보들을 하나씩 쥔 채, 그들은 에리카 대륙을 가기 위한 워프 게이트로의 이동을 서둘렀다.
그들이 곧 도착하게 된 곳은 에리카 대륙 내 ‘로페 대륙 사 개국 조약에 의거한 에리카 대륙 내 공동 관리 도시’, 시티 즈마였다.
* * *
[묘오오오옹―!]“편하기도 하네. 하이하 씨는 진짜 사기 캐릭터 아닙니까? 젤라퐁을 방어 도구로만 써도 욕먹을 만한데, 이렇게 기동용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라르크는 젤라퐁의 촉수에 붙잡혀(?) 가면서도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곧장 ‘빛이 들어오지 않는 호수’를 향해 이동해야 했으나, 특별히 수정구에 저장도 되어 있지 않아 도보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이하의 입장에서 도보를 선택할 리는 없었고, 젤라퐁을 이용한 ‘입체 기동’으로 호숫가를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즉, 라르크의 불평은 젤라퐁을 활용한 이동 속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체감하였기에 나온, 일종의 부러움의 표시와도 같다는 의미였다.
“입수 난이도를 생각해 보면 그런 말 안 나올 겁니다~ 아직도 배운 유저들이 손에 꼽는다면서요? 내가 그 스킬을 언제, 어떻게 얻어 가지고 용궁에서 얼마나 빡센 일들을 처리했는데.”
이하는 그런 라르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굳이 를 배우지 않아도 여명의 바다 중앙부 깊은 곳에 있는 ‘용궁’에 갈 수 있다.
다만, 수중 호흡과 수압을 버틸 수 있어야 하는 데다, 물속에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번역 장치 등등을 구비해야 하므로 그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다는 게 문제일 뿐.
마법사 직업군이 아닌 유저들은 차라리 를 배우겠다며 여러모로 움직여 보았지만, 적어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스킬을 증명한 유저는 양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니까요. 애당초 그런 스킬을 그 시점에 어떻게 얻었냐는 거지. 인터넷에 자랑한 인간들이 열 명이 미처 안된다지만, 그런 멍청이들과 달리 몰래몰래, 를 배웠다는 티도 내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인간들이 더 많을 테니…… 뭐, 그런 사람들을 고려해 봐야 100명도 안 배운 스킬일 텐데. 안 그래요?”
스킬만으로도 인상적이건만 해당 스킬을 활용하며 용궁과의 퀘스트 진행으로 얻은 [젤라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뭇 유저들과 이하의 차이가 아직도 까마득하다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능력이 사기라지만 라르크 씨는 그냥 사기꾼이잖아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의 입수 경로도 그렇고. 미니스 왕궁과 관련이 있다는 것 외에…… 다른 거 말한 적 없죠?”
그러나 이하도 할 말은 있었다.
일반적인 유저들과 차이를 내는 건 이하 자신만의 특징은 아니다.
거의 모든 랭커들이 이하처럼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아이템이나 스킬을 얻은 경우는 있을 터, 그러나 ‘랭커가 아닌 유저’는 어떤가.
라르크처럼 랭커도 아니면서 아직도 비밀이 많은 유저들은?
“그~거야…… 굳이 말해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그런 거긴 한데―.”
“나도 그런 겁니다. 그러니 일단 다른 이야긴 말고 이번 일에만 집중하면서 갑시다.”
그런 부분부터 먼저 밝히지 않는 이상, 라르크가 이하에게 은근한 비판을 할 자격은 없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하는 투덜거리는 라르크의 허리춤을 잠시 살폈다.
‘검은 있군. 블라우그룬 씨 결혼식 때만 해도 무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에리카 대륙을 간다는 것에는 역시 긴장이 되었던 것일까.
그보다 이하는 당장 그가 차고 있는 무기의 등급이나 능력이 궁금했으나, 조금 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상태에서 물어보기도 민망한 것이었다.
“크흠, 아.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건, 그 [색과 빛]이라는 걸 반납받아서 돌려준다, 이거죠?”
“네. 첫 번째 목표는 그래요. 근데 순순히 돌려주지 않을 경우에는…….”
“하이하 씨가 무력으로 뺏고?”
“뭐,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요.”
이하는 라르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색과 빛]이 애초에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가 아닌가.‘괜히 를 들이밀어 봐야 얻어 낼 수 없을지도 몰라. 하물며 퀘스트 실패 조건 중 하나는…….’
영물 쇼어의 죽음.
쇼어가 폭포 ‘등용문’에 도달하기 전 사망할 경우 이 퀘스트는 실패하게 되며, 그때부터 이하 자신은 자격 있는 선박을 타고 [영계]를 향하는 기회를 얻는다 해도 잉어 떼의 공격을 피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일단 이번 퀘스트만으로도 또 한 가지를 확인하긴 한 거지. 영계로 가는, 그 유리병 안의 선박…… 그런 아이템이 이 세상 어딘가에 몇 개쯤 추가로 존재할 확률.’
더 이상 자격 있는 선박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애당초 실패 페널티로 등장조차 하지 않았을 터, 그것을 안 것만으로도 이미 정보를 모르는 자와의 격차는 상당히 나게 되지 않겠는가.
이하는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젤라퐁의 촉수에 매달린 라르크를 보았다.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넘기는 모습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이하는 겨우겨우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천하의 라르크라도 역시…….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하는구나.’
어쩌면 폭포 ‘등용문’의 잉어들을 만나 보지 않았으므로 또는 이하 자신이 퀘스트 전문을 읽어 준 게 아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
“아, 보이네. 저 호수 맞죠?”
“네. 크흠, 우선 가서 이야기부터 해 보죠. 젤라퐁! 저 앞에서 내려 줘!”
어느덧 도착한 호숫가 근처에 착지한 후 이하와 라르크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호숫가 근처에는 오두막과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늘 높이 연기를 올리는 모닥불 곁에는 최소한의 의복이라 할 수 있는 것만을 갖춰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음?! 누구―…….”
“카, 카프! 하이하 님? 하이하 님이다! 하이하 님이다!”
“금빛 잉어 팔레오 부락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이하 입니다!”
“수호신님께 알려라! 하이하 님의 방문이시다! 카프!”
“카프카프, 카프!”
이미 친밀도가 높은 데다 과거 용궁의 인어들과 다리를 놓아 준 장본인인 이하를 그들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하는 그들을 향해 번쩍 손을 치켜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하가 웃음을 지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젤라퐁.”
[묭?]“라르크 씨, 묶어. 빠져나갈 수 없도록 포박해 줘.”
“응? 하이―.”
[묘오오오오옹―!]─────────────!
젤라퐁은 순식간에 몸을 늘여 라르크를 칭칭 감쌌다.
손과 발은 물론, 함부로 스크롤을 사용하거나 스킬조차 읊지 못하도록 그 입을 막은 것까지.
말 그대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포박이었다.
이하는 젤라퐁에 묶여 바닥에 쓰러진 라르크를 바라보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에서, 이하의 ‘속셈’을 깨닫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바뀌기까지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이하 씨? 미친, 설마? 그딴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분노에 찬 귓속말을 들으며 이하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어요. 잉어 팔레오들은 예전에, 라르크 씨가 ‘대가’를 치를 때 자리에 없었던 걸로 알고 있거든. 아마 업적 따러 돌아다녔던 라르크 씨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극에 달해 있을 테고…… 저 또한 무언가를 가져가기 위해서 [교환 조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르크를 ‘제물’로 바치고 [색과 빛]을 받아 가려는 것.
그게 바로 라르크를 꾀어내려 했던 이하의 진정한 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