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38
마탄의 사수 외전 (587)
이하 또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었던 것은 업적 덕분이었다.
‘나와 함께 전투를 한다, 라는 판정이……. 그 범위가 어디까지 들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캐슬 데일에서 감염체들을 상대하려는 유저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거나 경악한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일단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하가 획득한 업적, 덕분에 이하와 ‘함께 전투’ 판정을 받은 유저들의 스탯과 속성 저항은 눈에 띄게 상승한 상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빌어먹을…… 이것도 하이하 저 망할 놈 때문에 생긴 거라고 생각하면 빡치지만 말이지.”
“입꼬리나 내리고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루거.”
특히나 누적 스탯이 이미 많은 자들일수록 더 큰 효과를 볼 수밖에 없었으므로, 랭커나 아웃사이더급 유저들은 약 21% 상승한 자신의 스탯 포인트를 고스란히 즐기게 된 게 아닌가.
“크하하하핫! 젠장, 그래! 그래도 웃음이 나오는 건 참을 수 없잖아, 키드 네 녀석도 말이야! 올 스탯이 20%가 넘게 올라갔는데, 어떻게 안 웃겠냐고! 저 문어 원숭이들을 터뜨려 버릴 수 있는데 어떻게―.”
이하가 처음 캐슬 데일에 나타날 때만 해도 만신창이에 가까웠던 유저들이, 그 짧은 사이 포션을 통해 일부 회복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니까.
“―안 웃냐고!”
투콰아아아───────……!
의 포구에서 우렁찬 포성이 나가는 것만큼, 람화정과 아르젠마트, 키드나 신나라 그리고 구의 삼인방과 팔레오 등은 감염체들을 향해 자신만의 스킬들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염체들을 그들에게 맡긴 이하는 곧장 스킬 중 하나를 사용해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발포했다.
푸화아아아───────ㄱ!
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가는 것은 푸른 화염이었다.
붉은 불길보다 더욱 높은 온도의 화염을 통하여 크툴루가 뿜어 댄 기체를 모조리 날려 버리려는 작전이었지만 불길은 검은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크으, 블라우그룬 씨! 이걸 어떻게 막아야 하죠!?”
에도 특별히 약점 등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살아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스킬로만 취급된다는 뜻.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될 게 아닐 것 같습니다! 저 초월적 존재의 기술이라면 단순히 바람風 속성의 기술이 아닐 테니까요!”
“과연, 단순히 상극 속성으로는 제압할 수가 없는 건가, 제기랄.”
블라우그룬은 주요 인물들을 감염체와 상대하기 적합한 위치로 이동시킨 후 곧장 이하의 곁으로 복귀해 도우려 했지만 당장 큰 힘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염체 몇 기를 향하여 마법을 쓰는 것과 크툴루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공격을 막아 내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크툴루의 검은 소용돌이는 그 널찍한 범위를 휩쓸며 이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선 피하시지요, 하이하 님!]“크으, 그래야겠어요. 블라우그룬 씨, 부탁할게요!”
그것을 파악한 블라우그룬은 어느새 드래곤 폼으로 변했고 이하는 자연스레 그의 등에 올라타 회피 기동을 실시하며 외쳤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여러분 모두 피하세요! 아무래도 저 바람은 저를 쫓아오는 것 같으니―. 대피하십쇼!”
“끄, 끄아아아아, 온다, 온다!”
“빨려 들어가겠어요! 아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아니지만! 닿겠어요, 닿는다, 닿―.”
“흐허어어업!”
그러나 모두가 회복을 마친 것도 아니다.
올 스탯이 증가하고 속성 저항이 증가했다 해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유저와 NPC들은 그대로 ‘검은 소용돌이’에 삼켜져 버리고 만 것!
“이런, 젠장……. 다 죽은 건가? 도대체 저딴 스킬을 어떻게 해야―.”
“―음? 죽지 않았다뇨?”
[소용돌이의 주변부를 보십시오. 저건…… 단순히 죽음에 이르게끔 만드는 마법이 아닙니다. 놈의 기술은…….]“아!?”
이하의 에도 마침내 ‘검은 소용돌이’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마구잡이로 도망가다 소용돌이에 삼켜지는 사람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끄르르륵, 끄브븝.] [큐슈─────웃.] [후오, 후오, 후오.]검은 소용돌이 때문에 그 색상이나 외피의 느낌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인영人影, 즉, 실루엣은 명확했다.
다소 야만적으로 울퉁불퉁 튀어나온 근육질의 육체와 등에서, 옆구리에서, 허벅지에서 새롭게 돋아난 팔 또는 촉수들…….
“가, 감염체가…… 아니, 그것도 뭔가―. 크기나 형태가 다른―. 오염체? 예전의 오염체와 같다는 건―.”
키드나 루거 등이 막아 주고 있는 ‘감염체’와 유사하지만 다른, 오염체. 또는 오염체와 감염체 사이의 무언가.
이하는 물론 블라우그룬도 알고 있었다.
저런 효과를 내는 기술은 하나밖에 없다.
[씨앗! 저, 저것은 씨앗입니다! 저들이 저에게 심었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한…… 씨앗의 효과를 내는 기체입니다!]“감염 가스 같은 거였단 말이야? 이런 제기랄, 모두 피하세요! 감염체와의 전투는 나중에 하셔도 좋습니다! 우선 피해야 합니다!”
캐슬 데일을 휩쓸며 이하를 향해 유도되듯 나아가는 ‘검은 소용돌이’는 막대한 양의 오염 가스였다.
“젠장, 저걸―.”
[하이하 님! 촉수가 옵니다!]심지어 그것만 막아 낼 여유도 없게 만드는 게, 본격적으로 힘을 다한 크툴루의 능력이리라.
“―엎친 데 덮친―. 블라우그룬 씨! 가스는 알아서 잘 좀 피해 주세요! !”
투콰아아아───────……!
이하는 오염 가스를 피하며 자신을 향해 채찍처럼 내리쳐지는 촉수 한 발을 향해 을 쏘았다.
* * *
총성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폭발음, 비명, 정체 모를 괴물들의 숨소리와 포효…….
산지옥처럼 변해 버린 캐슬 데일에서, 끝없이 소리를 지르는 사람 중 한 명은 기정이었다.
“여러분! 이쪽으로 오세요! 가스의 이동 방향은 이하 형 쪽이니까! 그쪽으로 도망가면 안 된다고요!”
“기정 씨! 피해요, 가스! 가스 온다!”
“피해야 하는데……. 피하면 몬스터가 더 늘어나잖아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피하게끔 만들어야 적이 늘어나질 않는데!”
“그렇다고 기정 씨가 직접 뛰어들어서 몇 명이나 끌고 도망갈 수 있다고! 소리 질러 봐야 몇 명이나 들을 수 있다고! 의 길드 마스터가 오염체로 변해 버리는 게 제일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죠?!”
보배의 말은 타당한 것이었음에도 기정은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당장 근처에서 오염체로 변해 가는 유저와 NPC들의 수는 또 얼마나 되는가.
‘무엇보다…… 인간의 본능상― 덮쳐 오는 것의 ‘반대 방향’으로만 달리기 마련이니까. 수직으로 피하면 되는데, 그렇게 피하라고 알려만 줘도 사람들의 반응이 바뀌는데―.’
그들을 미련하다고 할 수는 없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미들 어스에서 가장 빠르고 원활하게 작동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
“꺄아아아아아아아―!”
“거의 끝나 가는 분위기 아니였냐고! 이게 뭐냐고!”
“스크롤도 다 써서 도망도 못 가는 와중에―. 사, 삼켜진다, 끄억, 끄억!”
하물며 남아 있는 스크롤도 없어서 텔레포트, 귀환 등도 하지 못하는 유저들의 수는 또 몇인가.
수정구를 작동시킨 후 발동되기까지의 10초를 못 기다리고 소리 지르며 달아나는 유저들의 수는 또 얼마나 되는가.
“가스는 하이하 씨를 따라가지만! 저 변해 버린 오염체? 미쳐 날뛰는 감염체? 하여튼 괴상한 저 몬스터들은 닥치는 대로 주변을 때려 부수고 있으니까!”
“크으, 알았어요, 보배 씨. 일단 우리도 피신하죠.”
보배와 기정이 물러설 무렵, 그나마 패닉에서 빠져나온 유저들이 스크롤이나 텔레포트 스킬 들을 사용하여, 캐슬 데일의 곳곳에서는 곧 연보랏빛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오염체와 감염체를 한 마리라도 맡아줄 유저들이 줄어드는 것을 슬퍼해야 할까.
아니면 그들이라도 살아남아 오염체가 되지 않는 것에 기뻐해야 할까.
그들이라도 살아남아 오염체가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분명 즐거운 일이었지만…….
“킷킷…… 저렇게 다 도망갔다간 진짜 랭커들만 남지 않으려나. 하다못해 스킬이라도 써 줄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게 좋긴 좋은데 말이죠.”
중 한 사람, 비예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캐슬 데일에 남아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괜히 일반 유저들을 퇴각시키느니, 한 사람이라도 남아 ‘랭커들’의 힘이 되도록 버티게끔 만들어야 한다.
“지,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잖아요, 비예미 씨. 저 사람들이라도 도망가지 않으면…… 오히려 오염체가 되어 우리의 적이 더 늘어날 뿐이니―.”
“노우노우, 징징이 씨도 참 징징거리는 걸 잘한다니까.”
비예미는 자이언트 드루이드, 징겅겅의 옆구리를 툭, 툭 쳤다.
“무슨―. 왜 그래요, 비예미 씨?”
당황한 징겅겅의 물음에도 비예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이언트를 올려다보며 씨익, 리자디아 종족 특유의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을 뿐.
“비예미 씨! 징겅겅 씨! 태일 형님은요? 는 후방에서 재집결, 태일 형님의 로 다시 활로를 터서 캐슬 데일 유저들에게 희망을―.”
“키킷, 길마님.”
퇴각하다 그들과 합류한 기정은 비예미와 징겅겅에게 지시를 내리려 했지만, 비예미는 그 말을 끊었다.
“예, 네? 왜요? 지금 바쁜데―.”
“길마님은 항상 그렇게 있어 주면 됩니다. 키키킷, 참 웃기는 일이야. 저 인간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믿을 날이 오다니.”
그러곤 역시 기정의 양어깨에 먼지를 털듯 그를 다독거렸다.
하물며 그의 말투는 또 어떠한가.
평소 비꼬기나 하는 데다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말투로 사람의 심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게 주특기인 비예미의 말에, 보배는 너무 놀라 반응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는 정도가 아닌가.
“엉? 무슨? 네? 징겅겅 씨! 비예미 씨 왜 이래요? 뭐 잘못 먹었나?”
기정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징겅겅과 비예미를 번갈아 보았다.
어깨를 으쓱거리는 징겅겅의 곁에서 비예미는 다시 한 번 리자디아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었다.
“키킷킷킷! 잘못 먹었냐고 묻는다면, 반은 정답이네요. 잘못 먹진 않았지. 잘못 먹을 예정이니까.”
그는 의 인원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주절거리며 곧장 징겅겅에게 다가갔다.
“찡찡이 씨, 나 좀 태워 줘요.”
“……뭘 하려고요?”
징겅겅은 비예미의 진지한 목소리에 잠시 마른침을 삼키곤 물었다.
비예미는 답변 대신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이제 이거 하나 남았으니까. 내 할 일을 해야죠.”
보라색 시약이 찰랑거리는 병 하나.
그것을 본 모두의 눈빛이 변했다.
“비, 비예미 씨! 내가 비예미 씨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저 가스에다 그걸 던져서― 중화시키려고요? 아니, 괜히 말려들었다가! 비예미 씨뿐만 아니라 징겅겅 씨까지 오염체로 변해 버리면 우리는―.”
“킷킷, 하여튼 보배 씨는 단순 무식해서 마음에 들어. 길마님과 아~주 어울리는 커플이라서 좋다니까.”
“―뭐요!?”
걱정 어린 보배의 표정을 순식간에 표독스럽게 만드는 게 역시나 비예미의 능력일까.
티격태격하며 웃는 그를 보며 기정은 조심스레 물었다.
“……비예미 씨, 뭘 하시려는지 모르지만―.”
“길마님은 보배 씨 잘 챙겨요. 징겅겅 씨도 무사히 돌려보낼 테니까. 갑시다, 징겅겅 씨.”
그리고 비예미는 답했다.
‘대화’가 필요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징징이’나 ‘찡찡이’ 등의 별명 따위가 아니라 ‘징겅겅’이라는 본연의 닉네임으로 그가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네, 비예미 씨. 가죠. .”
─────────────!
징겅겅은 비예미에게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은 채 변신했다.
리자디아는 순식간에 중형차 크기의 조류 위에 올라타고 캐슬 데일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삽시간에 둘만 남게 된 기정과 보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뭘…….”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지만! 할 때는…… 할 때는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란 믿음은 있으니까. 가요, 기정 씨! 우리는 얼른 태일 오빠 불러서 재정비도 해야 하고!”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네, 가죠. 보배 씨.”
태일을 찾는 일도 급선무일뿐더러…….
“답하지 않는 혜인 형님도 일깨워야 할 테니까.”
기정에게조차 귓속말로 답하지 않는 혜인의 정신을 차리게끔 만들어야 하니까.
여전히 비명과 고함 그리고 포효와 총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기정과 보배는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뒤로 한 채 비예미와 징겅겅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비행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