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40
마탄의 사수 외전 (589)
흰꼬리수리로 변한 징겅겅은 비예미를 태우고 가며 물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애당초 한 병밖에 남지 않은 시약으로 무얼 할 수 있는가.
―근데 뭘 하려고요, 비예미 씨? 우선 믿고는 있으니 갑니다만…….
그가 결코 허튼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과거 삐뜨르와 함께 이름을 날렸던 ‘구엔’은 분명 암살자였지만 당시에도 그는 완전한 체술과 아크로바틱 위주의 삐뜨르에 비한다면, 나름대로 훌륭한 수준의 체술과 독毒을 위주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육체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지능적인 유저 중 한 사람이라는 건 징겅겅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킷킷, 그러니까 말이지. 나도 내가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니까. 삐뜨르와 치고받고 싸울 때만 해도…… 아니, 징겅겅 씨랑 하이하 씨랑 나랑, 셋이 캔들 캐슬에서 검독수리 잡으러 갈 때만 해도…….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따라서 지금의 비예미가 중얼거리는 말은 징겅겅으로서는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평소와 다른 그의 태도로 유추해 볼 뿐.
―뭔진 모르겠지만……. 테스트를 해 보려는 거죠? 그것도 연습의 기회도 없이, 실전에서 바로, 아마도 비예미 씨 자신의 육체를―.
그가 자기 희생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물론 그 이야기를 다 들어 주고 또 힌트를 줄 비예미가 아니었다.
“쉿, 쉿. 킷킷! 그것까지 다 말해 주면 징겅겅 씨도 구경하는 재미가 없을 테니까. 일단 가서 보라고요, 가서.”
그는 징겅겅의 말을 끊으며 웃었다.
독毒과 관련된 연구와 실험이라면 미들 어스 유저와 NPC를 통틀어 가장 많이 실행해 본 과학자 타입의 무투파 리자디아가, 아무런 확증도 없이 몸소 달려드는 꼴이라니.
‘아니, 오히려 비예미 씨가 이런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겠지.’
굳이 누군가를 통해 듣지 않아도 캐슬 데일에 닥친 위기는 징겅겅도 몸소 느끼고 있었다.
하이하가 복귀하며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예상한 것도 잠시.
끝끝내 《마탄》은 크툴루를 없애지 못했으며, ‘위대한 옛 존재’들은 그러한 《마탄》의 격발 타이밍을 완벽히 읽고 회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제 크툴루를, 캐슬 데일을 비롯해 미들 어스 전역에 있는 ‘위대한 옛 존재’들을 없앨 수 없다는 게 증명된 상황이 아닌가.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역시나―.’
지금의 비예미가 각오를 마친 것처럼 결국 모두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일까.
말로만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아니라 정말 그 한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일까.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미들 어스 시간으로 열흘간 로그인을 할 수 없다.
그 시간이라면 [대형 이벤트]에서 아무런 이득도 못 본 채, 그저 1레벨 다운 등의 페널티, 보유 아이템 중 무작위 분실 또는 상실이라는 페널티만 받고 끝날 수도 있다는 뜻이거늘.
“키킷, 하이하 씨가 내 뜻을 제대로 이해해 주려나 몰라, 그 사람도 가끔 어리숙한 데가 있으니 말이지.”
징겅겅은 갑작스러운 비예미의 말에 흠칫 놀라며 답했다.
―하핫, 하이하 씨가 어리숙하다……. 하긴, 다른 유저들이 보기에는 잘 모르겠죠. 완벽해 보이고, 빈틈없이 플레이하는 것 같지만―. 아니, 대~체로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고럼, 고럼. 하지만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 미숙함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고. 그걸 볼 수 있다는 게 즐거운 거죠.”
―즐겁다라…… 그렇네요. 캔들 캐슬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즐거웠으니까.
징겅겅은 하이하와 비예미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흰꼬리수리로 변한 징겅겅의 등 위에 올라탄 상태로 비예미는 잠시 그 등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과거를 곱씹어 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킷킷, 하여튼. 조금 이따 하이하 씨랑 대화하고 ‘뭔 일’이 벌어지면, 징겅겅 씨도 바로 도망가요. 뭐, 도망가는 건 원래 누구보다 잘하잖아?”
다만 그 행복을 아직 곱씹을 때가 아님을, 비예미는 알고 있을 뿐이다.
―무, 무슨 섭한 말씀을. 도망간 적도 별로 없는 데다―.
“키키키킷,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하지만 나조차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으니까…….”
휘이이이이이이───────!
점차 강해지는 바람 소리와 하늘에서부터 이어져 길게 뻗어 내린, 심지어 이하를 쫓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검은 소용돌이를 보며 비예미는 소리쳤다.
“소용돌이 근처로! 날아라, 대머리 독수리야!”
더 이상은 미련도 없다는 듯 독수리로 변한 징겅겅의 털을 뽑으며.
―흰꼬리수리―. 큿, 조심하세요, 비예미 씨!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류의 흔들림 속에서도 징겅겅은 안정을 되찾았다.
이하가 그들을 발견한 시점이었으며…….
징겅겅 그리고 비예미와 귓속말을 잠시나마 나눴을 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총성’과 그 ‘총성’이 어떤 을 뜻하는지 마침내 알아챈 징겅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키메라!
이하의 탄환은 비예미가 번쩍 치켜 올린 마지막 한 병의 시약에 닿았다.
끝까지 병을 놓지 않은 비예미의 의지일까. 아니면 의 힘일까.
충격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은 비예미는 그대로 징겅겅의 등에서 추락하여 떨어졌다.
‘검은 소용돌이’가 비예미를 집어삼키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으리라.
비예미는 말 그대로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을 한 셈이었다.
* * *
총성이 울리자마자 블라우그룬은 곧장 회피 기동을 했다.
스칠 정도로 아슬아슬한 시점에 회피한 것이었지만 그런 블라우그룬에게도 더욱 놀라운 것은 이하의 행동이었다.
[하, 하이하 님! 기브리드라니?! 저 리자디아는―.]“본인이 원한 거예요! 제기랄, 뭐가 어떻게 될지는 비예미 씨 본인도 모를 거면서…….”
이하는 말끝을 흐리며 추락하는 비예미를 바라보았다.
가 어떤 스킬인가.
‘이건 를 만들 때와 달라. 은 말 그대로 무생물에서부터 키메라를 만들 수 있었던 거다. 무생물에게 자아를 주어 키메라화化할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는…….’
원칙적으로는 무생물에게 사용할 수 없다.
단 한 번, 무생물임에도 스킬을 사용하여 생명체로 바꾼 게 있다면 라르크가 소유했던 가 바로 그것.
그러나 는 에고 웨폰이었다. 일반적인 무생물이 아니다.
자아를 가지고 있다, 즉,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생명체’ 판정으로 인정받아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한 생명체’로서 다시 형성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이하는 ‘검은 소용돌이’ 근처에서 펄럭이는 흰꼬리수리에게 말했다.
―징겅겅 씨! 우선 퇴각하세요! 기브리드의 키메라화化가 되어 버린 이상―. 비예미 씨가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도 알 수가 없는데다, 아니, 설령 살아 있어도 비예미 씨가 아닐 확률도 있어요!
―네, 넵! 그렇겠죠!? 키메라가―. 말하자면 스스로 기브리드의 키메라가 된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쵸? 비예미 씨가 안 그래도 바로 도망가라고 하긴 했는데―.
―그, 그러니까요. 기브리드의 키메라의 대전제, [무생물에게 키메라의 에너지를 주어 주변의 생물체와 융합한다]라는 걸 믿고 비예미 씨는 나한테 맡긴 거겠지만, 통할지 안 통할지는…….
를 통한 키메라 생성은 무생물의 자연 생물화가 아니다.
과거 시절 기브리드와 그 키메라 군단이 에리카 대륙에서 동진할 당시, 이하는 스킬을 사용하여 기브리드의 키메라와 같이 맞서게 한 적이 있다.
‘해당 무생물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존 생명체]와 융합시키는 게 특징이었어. 지나가던 들짐승들은 물론―. 나무나 잡초 같은 것과 뒤섞여 ‘상태 이상 꽃가루’ 같은 걸 뿌려 대는 키메라도 있었으니까. 아마 비예미 씨도 그때를 기억해서 써 달라 한 거겠지만―.’
확신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다.
에 사용했을 때나 지금은 사라져 버린 1회성 스킬 과 달리, 는 이하의 의지가 포함되지 않는다.
그저 우연을 기다려야 할 뿐!
―맡, 맡긴 거 맞죠? 비예미 씨가 그 스킬을 사용해 달라고 한 거 맞죠?
―어, 음…… 정확히 그 문장으로 부탁한 건 아닌데, 그, 뭐랄까, 뉘앙스가―. 마, 맞겠죠! 맞아요!
징겅겅의 걱정 어린 말에 이하는 잠시 당황했으나 황급히 얼버무리고 말았다.
더 이상은 징겅겅의 대화에도 집중할 수 없었으니까.
‘음? 방금―.’
이하의 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리고 회피 기동만으로 피하는 이하를 크툴루가 놓칠 리도 없었다.
[하이하 님! 위에서 또 촉수가 옵니다!]“크으, 젠장, 아래에서부터 ‘검은 소용돌이’가 오는 것도 짜증 나는데―. 은 이제 몇 번 못 써요! 우선 회피 기동으로―.”
[회피 기동을 해도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하셔야 할 겁니다! 조금 전의 ‘회피 기동’ 때문에 촉수의 수는 더 늘어난 상태니까요!]비예미에게 탄을 쏘느라 다가오는 촉수들을 끊어 내지 못했다.
거둬진 채찍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나 휘둘러지고 있으니 제아무리 원시룡이라도 회피 기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
[그래도 ‘검은 소용돌이’로는 갈 수 없으니 촉수를 뚫고 가겠습니다! 최대한 보호하겠으나 하이하 님께서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해 주십― 끄앗!?]휘이이이이─────────ㄱ!
촉수를 향해 치솟는 블라우그룬의 목이 갑작스레 꺾였다.
원시룡을 당황하게 만든 건 당연히 이하였다.
“아뇨! 블라우그룬 씨! 촉수 말고! 그쪽 말고!”
[예, 예?!]“검은 소용돌이 쪽으로! 아래로 회피 기동합니다!”
블라우그룬의 목을 강제로 꺾어 그 비행의 방향을 바꾸려는 대담함보다, 블라우그룬이 놀란 건 이하의 지시.
[하지만―.]“빨리요, 지금 당장!”
그러나 그 이유를 물을 여유는 없었다.
블라우그룬은 곧장 방향을 뒤틀어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빠르게 하강 비행을 시작했다.
[만약 제가 잘못된다면 젤레자와 ‘뽀뽀’는 하이하 님께 부탁―.]그 와중에도 은근슬쩍 투덜거리는 파트너 드래곤의 말을, 이하는 끊으며 외쳤다.
“그런 재수 없는 소리 말고! 방법이 있으니까.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을 통해 ‘검은 소용돌이’ 너머에서 보였던 실루엣.
그 열원과 형태가 자신이 생각한 그것이라면!
“그렇죠, 비예미 씨? 도와 줄 거죠!?”
이하는 소리쳤다.
답변 대신 들려온 것은 괴상한 증기 배출음이었다.
푸쉬이이잇─────────!
그것은 놀랍고도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지상에서 갑작스레 도약하며 증기 배출음이 들리길 잠시, 곧 이하에게 덮쳐 오던 ‘검은 소용돌이’가 제거되기 시작했으니까.
“방독면…… 방독면을 쓴 건가?”
허공에서 지워지듯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검은 소용돌이’를 제독除毒하고 있는 게 누구인가.
[캬아아아아아아아―!]괴성을 지르며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달려가는 리자디아의 뒷모습이 누구를 뜻하는가!
방독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머리는 물론 온몸으로 보랏빛 증기를 내뿜는 리자디아가 누구일 것인가!
하물며 발바닥에서도 가스를 분출할 수 있다는 듯, 그 가스의 압력을 통해 비행까지 한다면!?
“크, 으하하하핫!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여튼 저 사람은 말이죠! 구엔이니 뭐니, 그 옛날 암살자로 유명했던 사람이라기보단! 그냥 비예미, 독술사! 미들 어스 자체를 똘똘하게 플레이하는 인간이라고!”
이하는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과거 구엔으로 플레이를 해 봤기에 미들 어스를 잘하는 게 아니다.
캐릭터가 삭제되고 비예미라는 캐릭터를 키울 때부터 이미 그는 미들 어스의 꼼수와 시스템적 허점을 그 누구보다 잘 노렸던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이하를 향해 허공에서도 방향을 뒤틀며 살아 있는 듯 움직임을 보여 주었던 ‘검은 소용돌이’ 가스는 보랏빛 증기와 맞닿는 즉시 제거되고 있었다.
더 이상 캐슬 데일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위협이 되지 않으리란 건, 그 짧은 틈의 효력만 봐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가라, 비예미 씨! 끝내 버려요! 그 가스만 치워 주면 나머지 촉수는 내가 다 조져 버릴 테니까! !”
전신에서 보랏빛 증기를 뿜어 대며 달려가는 리자디아의 모습은 곧 을 통해 미들 어스 전역의 유저들에게도 보이게 되었다.
다만, 그들의 반응은 이하와 조금 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