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2
마탄의 사수 (2)
“그, 그럼 걸을 수 없다는 건가요?”
“그게, 그, 지금으로서는…….”
의사가 말끝을 흐렸다.
척추의 C7, C8번 신경세포가 복합적으로 끊어지는 부상은, 멀쩡하고 건장한 청년을 하반신 불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으로선? 그, 그럼 수술은? 수술은요?”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돈이 조금…… 듭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제발 우리 애 좀 살려 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낼 게요. 얼마죠? 얼마가 있으면 되죠? 지금 적금 있는 거랑 전부 깨면―”
작은 의자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의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다시 걷게 해 달라는 말,
그 간절한 부탁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겨우 3초 정도 걸렸을 뿐이다.
“약 20억 정도.”
“……네?”
“죄송합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얼마라고……?”
“20억…… 가량입니다.”
의사가 말미에 한숨을 내뱉었다. 중년 여성은 이미 정신을 놓은 듯 눈이 풀렸다.
“이, 이, 이십억…… 이요?”
“국내에서 불가능한 수술입니다. 독일에서…… 아니, 자세히 설명 드리기엔 복잡하군요. 어쨌든 대략적인 추정 금액이 20억 정도입니다만, 사실 실제로는 얼마가 더 들지 모릅니다. 이런 말씀드리긴 뭣 하지만 25억, 아니…… 30억이 넘게 들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가상현실이 만들어지고, 자율주행차량이 고속도로를 누비는 2030년이지만 돈은 여전히 귀했고, 뛰어난 의사와 의술은 더 귀했다.
의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중년 여성은 풀린 눈만큼 손아귀의 힘도 풀었다.
“죄송합니다.”
의사는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사과했다.
20억.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지간한 집에서 수술비 20억을 어찌 구할까.
군에서의 사고이므로, 의사도 처음엔 국가에서 지원을 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몇 단계를 거쳐 알아봤다.
일단 결과는 불가.
국군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후송하는 과정에서의 환자 개인 파일까지 받아가며 직접 국방부 관계자를 만났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왜 안 되는 겁니까?”
의사는 자기 일처럼 나서서 따졌다.
“공무 상 당사자의 과실이 큽니다. 현장에 있던 병사의 증언으로는, 부주의하게 탄통을 옮겼다고 하더군요.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그런…….”
머리를 긁적이는 국방부 측 대변인의 말. 그러나 의사 자신이 현장을 보지도 못했고, 목격자까지 있다는 말에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허나 이하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탄통을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충격을 가한 것도 아니었건만. 그것으로 ‘당사자 부주의’이라는 딱지가 붙었다니.
“어쨌든 연금이나 보상금은 제대로 지급될 거니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젊은 청년이 반병신이 됐는데!”
“그러니까 저희가 이번 수술비에는 맞게끔 맞춰 드린다는 거 아닙니까. 걱정 마세요.”
“하…….”
의사가 국방부 관계자를 향해 소리치지만 소용없었다.
일시불로 받은 군인연금과 장애보상금은 이번 수술에 대한 비용으로 이미 모두 사용됐다.
그나마도 금액이 조금 부족한 걸 의사가 우격다짐으로 수술을 진행한 것이었다. 만약 더 적었다면 의사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국군병원으로 다시 옮겨지거나, 금액이 맞춰질 때까지 차일피일 수술이 미뤄졌을 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각종 보상금은 이하의 통장에 입금이 되자마자 병원 측으로 회수될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국방부 관계자와의 일을 떠올리던 의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은 동정도, 위로도, 심지어 사고에 대한 설명도 해 줄 것이 없었다.
“아이고…….”
의사와 간호사가 나간 상담실에서, 중년 여성만이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설 줄을 몰랐다.
“우리 이하……. 우리 이하 어쩌면 좋니…….”
수신: 중사(예비역) 하이하, 29세
제목: 보상금 지급 통보의 건
1. 귀하의 가정에 평안을 기원합니다.
2. 귀하는 군 복무 중 사고로 인한 공무 중 상이, 의병 제대로 병무를 모두 종료하였고, 그로 인한 보상금 산정 절차가 모두 완료되어 통보 드립니다.
3. 다만 귀하는 두 팔과 안면, 뇌의 기능이 유지되어 노무에 종사할 수 있다고 판단되며(첨부파일1참조), 사고 상 당사자의 과실이 상당히 인정되므로(첨부파일2참조), 심신장애 7급 이상의 등록은 불가합니다.
4. 따라서 심신장애 7급에 준하는 장애보상금, 군인연금 지급대상자에 해당합니다. 단,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등록은 통과되지 못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5. 상기와 같은 이유로 군인연금법 제23조(상이연금)에 의거, 금397,000원을 매월 지급합니다.
“이하…… 우리 이하…….”
배꼽 아래의 모든 감각과 매월 397,000원의 교환.
공문에 적힌 것처럼 가정에 평안이 있기는 쉽지 않으리라.
짤막한 공문 한 장이 모자의 가슴을 찢었다.
눈을 뜬 이하가 난동을 부렸다 한들 그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 *
쾅, 쾅, 쾅.
거친 노크 소리에도 이하는 반응하지 않았다.
택배요. 하이하 씨 계십니까? 하이하 씨!
“…….”
이하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있다고 대답하는 것도 싫었고, 대답을 하고 현관까지 나가는 건 더 싫었다.
하이하 씨? 하이하 씨!
‘그냥 가라 좀…….’
무엇보다 택배로 올 만한 물품을 구매한 기억이 없다.
아니, 최근 들어 무언가를 산 적이 없다. 뭘 사기는커녕 밖에 나가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먹는 것도, 심지어는 숨을 쉬는 것도 싫었다.
중사 시절 건장한 체격은 온데간데없고, 삐쩍 곯은 앙상한 손목엔 혈관만이 툭 불거져 있었다.
‘갔나?’
누워 있는 이하의 귀가 드디어 평온을 찾았을 때, 현관 밖에서 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뭐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다시 현관문을 쿵, 쿵 두드렸다.
형! 이하 형! 있는 거 다 알아! 문 연다? 혹시 혼자 뭐 이상한 거 하고 있으면 얼른 바지 입어! 딱 10초 후에 열 거야, 진짜야!
‘제기랄…….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누워 있던 이하가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이상한 거 하고 있으면 바지 입으라고? 하반신 불구에게 하는 농담치고는 너무 거칠다.
그만큼 친한 이종사촌 기정이니까 참고 넘어갔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휠체어로 박아 버렸을 것이다.
이하가 끙끙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기어가듯 휠체어로 움직일 때, 도어락의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밝고 쾌활한 표정의 기정과 당황한 설치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 내가 있을 줄 알았다니까. 아저씨, 그거 저쪽에다가 설치해 주세요.”
기정은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설치기사에게 위치를 설명했다. 구입한 적도 없는 물건인데다, 그 물건이 어지간한 냉장고 박스보다 커서 이하로서는 황당하기만 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저씨, 그거 뭐예요?”
“그게 저―”
“제가 설명할 테니 그냥 설치해 주세요. 빨리요.”
“예, 예.”
기정은 설치기사의 말을 끊으며 이하에게 다가왔다.
상체만 침대에서 세운 채, 마치 인어 같은 자세로 있는 이하에게 다가오는 기정. 두 사람의 자연스런 협력에 이하는 곧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뭐냐, 기정아. 나 놀 기분 아니야.”
“또, 또, 우울하게 그런다. 형 기분 풀어 주려고 내가 온 거 아닙니까. 사람이 맨날 이렇게 있으면 되나. 바람도 좀 쐬고 건강하게 있어야지.”
기정은 이하의 휠체어를 밀며 발코니 앞으로 가 문을 열었다.
투명한 창밖의 세상,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러나 이제 이하가 생활하기에는 너무 무섭고 거칠어진 곳.
“이 몸으로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냐.”
물론 더한 몸으로도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이하 또한 안다. 그러나 이하는 아직 그런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니, 무엇보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음……. 그러니까 내가 있잖아, 형. 뿌잉뿌잉?”
“흥이다 자식아.”
이하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이놈도 고생이지. 괜히 나 때문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하는 기정에게 신경 쓰고 있었다.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짓고 사는 이하와 어머니를 위해, 기정이는 시간을 쪼개 수시로 놀러 오고 있었다.
그 예쁜 마음씀씀이를 잘 아는 이하이기에 기정을 더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건 뭔데.”
“궁금하지? 궁금하지?”
기정은 휠체어를 스르르 밀며 비지땀을 흘리는 설치기사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박스에서 꺼내진 것은 무광의 거대한 물체.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안마 의자가 저런 모양일까.
“가상현실 접속기?”
이하가 황당한 표정으로 기정을 올려다봤다.
뭔가 했더니 가상현실 접속기였나? 가격이 꽤…… 비쌀 텐데. 그럴 돈 있으면 그냥 모아 두지. 그런데 이 자식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걸…….
“노우, 노우. 보통의 접속기가 아니지. 『미들 어스』 완벽 구동용으로 맞춘 거라고.”
“미들…… 뭐? 그거…… 그러니까 게임이잖아.”
기정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이하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보통 게임이 아니지요! 출시 4개월 만에 가상현실게임 점유율 31%, 전 세계 총 가입자 수 1억 명 돌파! 이모를 설득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무슨 말이야? 엄마가 왜?”
이하는 기정에게 신경을 쓰지만, 기정보다 훨씬 신경 쓰는 사람은 모친이다.
“이모에게 사 달라고 했어.”
기정의 마지막 한 마디가 결국 이하의 뚜껑을 열었다.
“우리 엄마한테? 야, 너 미쳤어? 뭐하러 그딴 말을 해? 내가 지금 게임 할 팔자야? 우리 집 사정 뻔히 알면서…… 게임기를 사라고 부추겼단 말이야?”
“어, 어? 아니, 형,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우리 엄마 등골 빠지게 일하면서 병신된 아들 새끼 보살피는 것도 못 볼꼴이라 뒤지고 싶은데. 그런 엄마 두고 나보고 게임이나 처하라고?”
유쾌하고 낙천적이었던 천성은 하반신의 감각과 함께 사라졌다.
모든 일을 부정적이고 날카롭게 받아들이는 이하가 눈에 핏대를 세우며 기정에게 소리쳤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지금 이하의 가정 사정을 뻔히 알면서 이런 걸 구입하라 설득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 말 좀 들어 봐, 형. 내가 형보고 게임이나 하라고 하겠어? 『미들 어스』라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모를 설득했을 것 같아? 형 취업시켜 주는 곳도 없다며! 『미들 어스』만 하면 돈도 벌 수 있단 말이야!”
이하는 화가 났지만 더 이상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야 이, 자식아, 아무래 그래도!”
“형 지금 화난 거 아는데, 내 말 한 번 믿어 봐. 접속만 해 보면 마음이 바뀔 거야.”
“……하아. 됐다. 너랑 이런 말해서 뭐하냐.”
이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까스로 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