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2006
마탄의 사수 외전 (655)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겨난 혼란이기에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절체절명의 순간에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혼란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컬러 드래곤의 여왕과 순수한 원시룡 그리고 원시룡 중 한 갈래인 오리엔탈 드래곤과 한 명의 인간이 마주 보고 있는 기묘한 상황에 더하여, 그 상황을 홀로그램 화면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미니스의 정보 사령부와 미들 어스 곳곳의 유저들.
“저, 저 멍청한 놈이…….”
“어처구니가 없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이하의 《마탄》은 역시 그러한 위력을……. 칫.”
“칫? 지금 칫이라 했나, 키드?”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뭘 들은 겁니까.”
“우하하핫! 진짜 이하 형 때문에 미치겠다! 뭐 하는 거냐고, 지금!”
“……저것도 능력이야, 진짜. 하이하 씨만 보면 기운이 쭉 빠진다니까.”
“킷킷, 반대로 기운이 쭉 날 때도 있는 거 보면 능력은 능력이죠.”
“허헛, 티아마트 님조차 상대하기 어려웠던 ‘위대한 옛 존재’를 일격에 후퇴시키는가…….”
“리얼…… 씹사기임.”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재 자신의 대화와 상황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이하까지.
“저기, 그래서, 티아마트 님? 오리엔탈 드래곤에게 하실 말씀은 뭐죠?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게…….”
이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티아마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그녀는 자신의 상처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말했다.
날개 하나가 뜯겨 나가 불균형적인 모습인 데다, 남은 날개에도 구멍이 뚫려 있고 심지어 온몸에 난 깊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굳지도 않았다.
응급 상황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제법 큰 피해를 입은 것만은 분명하건만, 그럼에도 티아마트는 자신의 몸 상태에 관심도 두지 않고 있다니.
“그러면―.”
[드래곤 볼, 그것을 가져와. 내게 가져오면 된다.]티아마트가 관심을 갖는 건 오직 하나였다.
이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또한 ‘가장 거대한 찐리’였던 오리엔탈 드래곤의 눈치를 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 그, 퀘스트는 완료됐잖아요? 오리엔탈 드래곤의 모습을 직접 티아마트 님께 증명함으로써―.”
[그딴 건 하나도 중요치 않아. 하이하, 당장 가져와! 지금 저게 필요하다, 서둘러야 해. 놈이―. ‘니알라토텝’이 다시 돌아온다면 그다음 일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어. 네 녀석이 설령 《마탄》을 몇 발이나 더 쏠 수 있더라도! 남은 24시간 이상을 막아 낼 수 있다고 장담하지는 못하지 않느냔 말이다!]그러나 오히려 그녀를 자극하기만 할 뿐, 티아마트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제서야 ‘가장 거대한 찐리’였던 오리엔탈 드래곤은 말했다.
[드래곤 볼……. 나, ‘계명룡啓明龍’의 ‘사리舍利’를 말하는가, 컬러 드래곤의 여왕이여.]“저기, 계명룡 님, 그게 아니라―.”
[분명 하이하, 그대의 말은 티아마트와의 대화였을 텐데. 이것이 ‘대화’인가.]‘계명룡’의 목소리가 안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고 이하는 곧장 둘 사이에 끼어들어 부연 설명을 하려 했으나,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뭐, 일종의, 그렇죠. 대화. 티아마트 님이 그것을 왜 필요로 하시는지 들어 본다면 계명룡 님 께서도 충~분히 이해를…… 하시진 않겠죠?”
[그대는 이미 우리 일족, 우리 동지들에게 ‘사리舍利’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 않나.]“그, 그렇죠. 그렇긴 한데…….”
이하는 언젠가 들었던 사리의 설명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들었던 설명 또한 떠올랐다.
이하가 말을 잇지 못하자 계명룡은 다시금 티아마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티아마트, 컬러 드래곤의 여왕이여. 나는 사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사리를 포기한다 해도 네가 사리를 취하여 사용할 수는 없는 바, 이것이 네가 원하는 대화였다면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군. 동지들의 행방을 따라―.] [상관없어. 지금까지 없었다고 하여 앞으로도 없는 게 아니니까.] [―음?]티아마트는 말했다. 계명룡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움직여 있었다.
그녀는 이하를 바라보았다.
“어…… 물론 티아마트 님이 좋은 의도로 어떻게 하실 거라곤 믿지만 그걸 계명룡 님이 아니라 저에게 말씀하셔도―.”
그러곤 말했다.
[이것은 명령이다.]일견 지금까지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 이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선택: 티아마트의 명령이 발동되었습니다.
내용: 티아마트가 ‘아이템: 사리’의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력
이하는 자신의 눈앞에 뜬 홀로그램 창을 보며 당황했다.
“어, 어라? 잠시만요, 티아마트 님! 이건―.”
[하이하……. 나는 너를 인정했다. 너희가 날 위해 준비한 육체라지만 애당초 이 육체에 깃들기 위한 ‘의지’만큼은 내 스스로 정한 것, 그것은 너를 인정했기에 내가 선택한 일이다.]그러나 무어라 질문할 틈도 없이 티아마트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하도 생각나는 게 있었다.
뜬금없이 홀로그램 창이 뜬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니 너 또한 선택하라. 내 명령을 따를지. 아니면 따르지 않을지.]그녀의 말을 들으며 이하는 한 가지의 업적이 떠올랐다.
과거 티아마트를 부활시키던 바로 그 시점에 획득했던, 벌써 까마득한 기억 속에나 있던 그 업적을.
……바하무트와 함께 드래곤이라는 거대 종족을 양분하여 자연의 흐름과 그 이치를 수호하는 존재. 무한하게 늘어나는 생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반드시 파괴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려 주는 존재. 어떤 의미로는 잔혹하고 무섭지만 어떤 의미로는 반드시 필요하여 그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알려 주는 존재.
그러한 존재와 대화를 나눴다면 당신은 이미 그녀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받고 또 어떤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당연히 그녀는 당신에게 어떤 역할을 주었는지 또 어떤 인정을 했는지 결코 말해 주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생각해야 합니다. 티아마트에게 부여받은 당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때가 왔을 때, 결정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할 것인지. 또는 거부할 것인지.
이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업적의 내용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입을 연 건 블라우그룬이었다.
“하이하 님, 말씀드리기 외람되오나…… 하이하 님께서는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으, 응? 뭘 할 수 있어요, 블라우그룬 씨?”
“이 오리엔탈 드래곤, 계명룡에게…… 사리를 내어 달라 소원을 비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블라우그룬은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낸 셈이었다.
파트너 드래곤이자 NPC가 유저에게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일종의 힌트였지만 정작 블라우그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하는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뿐이었다.
“흐, 흐흐으…… 그거예요. 그것 때문에 지금 답답한 거라고요.”
“예?”
“이런 명령을 내릴 거였으면―. 진작부터 이야기를 했으면 얼마나 좋냐고!”
이하는 판단했다.
[찾아라, 드래곤 볼]의 퀘스트는 어찌 되었든 ‘오리엔탈 드래곤’의 부활 증명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그녀가 ‘드래곤 볼’이라 칭했던 오리엔탈 드래곤의 ‘사리’ 또한 부활 증명의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오리엔탈 드래곤 자체를 그녀 앞에 데려가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명이 어디 있겠는가.따라서 사용한 것이다.
“이미 썼어요, 소원!”
스킬 을.
* * *
[티아마트와 대화를 해 달라? 세상이 이리 뒤숭숭한데 그런 태평한 말을 건네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인가. 하이하 그대 또한 ‘건널 수 없는 계곡’을 건널 방안을 찾는 게 아니라―.]“그, 계곡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는 한데요! 어쨌든…… 당장 좀 가 주셔야겠습니다. ‘가장 거대한 찐리’였던 오리엔탈 드래곤님을 찾느라 말이죠, 진짜 저랑 제 동료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 참, 이미 알고 계시려나? 아까 말씀하신 걸로는 ‘다른 일족’들과 소통을 하고 계신 것 같던데요.”
궁금한 게 많지만 이하는 간단히 축약하여 그에게 말했다.
‘세상이 뒤숭숭하다’라는 표현 가지고는 부족할 정도로 ‘위대한 옛 존재’와의 전투가 갓 시작한 지금, 일분일초의 시간이라도 아껴 가며 그를 데려가야만 하기 때문.
이하 자신이 그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떤 오리엔탈 드래곤들을 만나 어떤 테스트를 받았고, 어떤 방식으로 교류했는지 그가 알게 된다면 이야기가 빨라질 거라는 생각에 물어본 것이었지만 계명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 수 없네.]“음? 조금 전―. 다른 일족들은 무슨, 계곡을 건너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일족 내 다른 오리엔탈 드래곤 분들과―.”
[아니, 아니. 설령 우연히 마주쳤다 해도 우리는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겠지. 그저 바람에 실려 오는 이야기를 대강 들었을 뿐이네. 이라는 기술이지. 우리는 세상의 일을 그런 식으로 듣곤 하니 말이야.]오리엔탈 드래곤들만이 사용하는 기술일까.
이하는 해당 스킬의 조건과 능력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일었지만 당장 중요한 일들이 많아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 어쨌든 그럼! 티아마트 님께 함께 가 달라는 제 부탁은―.”
[아쉽지만 친애하는 그대라도 들어 줄 수 없지.]“―결국……. 제가 을 써야만 한다는 거군요.”
아무리 친밀도가 높다 한들 개인적인 성향이 너무나 강한 그들을 설득하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이하는 넌지시 일렀다.
[……그것이 그대의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나, 계명룡은 그대에게 큰 빚이 있으니.]“좋습니다. 그럼 제 소원을 빌도록 하죠. 저와 함께 티아마트 님을 만나러 가 주십시오.”
소원을 말하라: 오리엔탈 드래곤을 사용하였습니다.
제한된 횟수를 모두 사용하였으므로 스킬이 소멸됩니다.
홀로그램 창으로 아쉬움을 한 번 더 느꼈지만 적어도 이하는 한 가지 일을 끝냈다고 여겼다.
[알겠다. 어떻게 이동하면 되지?]“어, 잠시―. 잠시만요! 블라우그룬 씨한테―. 제 파트너 원시룡 아시죠? 그쪽에 얼른 수배해 놓으라고 말할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가장 거대한 찐리’였던 오리엔탈 드래곤, 계명룡을 블라우그룬과 함께 티아마트의 앞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 * *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자도 많았으나, 적어도 ‘오리엔탈 드래곤 수색팀’에 참가했던 인원들은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하 못지않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이하 형이 소원을 빌지 못하면 결국 티아마트 님의 저 말은 들어줄 수가 없다는 건데―.”
“키키킷, 다 된 밥에 재 빠뜨렸군…… 그럼 하이하이 씨가 지금까지, 미들 어스 시간으로 한 달이 다 되도록 생난리를 쳤던 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되었다는 건가?”
“그,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비예미 씨. 하이하 씨의 노력을―.”
“성과가 없는 건 사실인데요, 뭐. 킷킷…….”
쿠르르르릉……!
와 프레아가 있는 지역의 상공이 다시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이제 말할 것도 없었다.
“에잇, 비예미 씨가 재수 없는 소리 하니까 놈들이 돌아왔잖아요! 혜인 오빠! 태일 오빠! 기정 씨!”
비예미 또한 아쉬움에 하는 말이라는 걸 의 인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말투가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보배였다.
보배의 외침에 따라 혜인은 곧장 물리 방어용 스킬을 준비했다.
“으, 음, 준비해야죠. 우선 ‘하스터’의 물리 공격을 방어할 테니, 프레아 씨가 ‘주크사브’의 전격을 막아 주시겠습니까?”
크툴루의 거대 촉수와 또 다른, 무수한 촉수로 더욱 세부적이고 확실한 ‘타깃 공격’을 해 오는 하스터의 공격에 대비하는 혜인.
태일 또한 자신의 검 두 자루를 준비하며 감염체와 하스터의 공격에 대비했다.
다만 문제는 하스터와 함께 다녔던 ‘전격으로 이루어진 구체’와 같은 형질의 ‘위대한 옛 존재’, ‘주크사브’일 뿐.
“이히힛, 혜인 씨 부탁인데 당연히! 근데…… 알죠? 아무리 저라도 그 전격을 막아 내는 건 ‘이 정도 범위’밖에 안 되니까. 다들 밖으로 밀려나지 않게 조심해요.”
최초의 전격 공격만으로도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던가.
기정조차도 방패를 다시금 들어 올리며 마른침을 삼킬 정도로 ‘주크사브’의 전격 공격은 압도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이하가 희망이었던가. 너희들이 믿는 마지막 등대였던가. 그러나 전율하라, 너희들의 희망은 우리에게 닿지 않을지니……. 안 그런가, 주크사브.]어느새 허공에 나타난 ‘하스터’가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먹구름 내부가 파직거리며 빛났다. 그 전류 에너지가 흐르길 잠시, 어느새 ‘하스터’의 곁에 전격의 덩어리가 생겨났다.
파츳, 파츠츠츠───────ㅅ!
‘주크사브’에게서 다시 한 번 새파란 전격의 에너지가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 번 이상 그것을 겪은 자들에게 있어, 그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으아아아아, 이하 형! 얼른―. 얼른 남은 《마탄》쏴서 이놈들 좀 사라지게 만들어 주면―.”
“키, 키킷! 하이하이 씨만 믿고 기다렸는데 이러다 진짜 희망 꺾이겠다고!”
기정의 외침에 비예미는 다시금 툴툴거렸다.
그런 그들의 외침이 이하의 귀에는 들릴 리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이하는 증명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일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
‘주크사브’에게서 새파란 전격이 360도 전방위로 쏘아져 나갔다.
“끄아아아아앗!?”
“프, 프레아 씨만 믿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눈과 귀를 멀게 만드는 강렬한 천둥 번개는 몇 초나 이어졌을까.
다행히 [상태 이상: 실명]에 걸리지 않은 의 인원들은 실눈을 뜨며 경악해야 했다.
파칫, 파치치칫……. 파측―.
‘주크사브’와 유사한 형태로 전격의 에너지는 똘똘 뭉쳐 있었으니까.
다른 점이라면 그저 새파란 전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허공에 뭉쳐, 마치 멈춰 버린 것처럼 고여 있는 전류는 새파란 색 그리고 ‘새빨간 색’이었다.
“이럴 수가…….”
“서, 설마, 이 붉은 번개는―.”
그리고 두 가지의 색이 뭉친 전류의 덩어리 앞에 서 있는 것은, 짙은 보랏빛의 비늘을 자랑하는 기다란 형체의 용龍이었다.
[별다를 것도 없군…… 이것이 이계의 생명체가 전류를 다루는 방식인가.]오리엔탈 드래곤, 오자룡梧紫龍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