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253
마탄의 사수 (253)
살기등등한 기세는 차치하고라도, 이 퓌비엘군에서 얼굴에 광대 분장을 하고 다니는 자는 지금껏 없었으니까.
“암살자! 거기 누구 없―”
“꼭두각시의 술!”
무리의 가장 앞에 서 있던 자.
유일하게 광대 분장을 하지 않은 자가 재빨리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바삐 움직인 다음부턴 그랜빌의 목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뿌히히힛, 일본 장기는 체스와 비슷하다더니! 정말이었어! 체크 메이트! 체크 메이트! 끝이야, 끄으으으읕―!”
그의 뒤를 따라 광대들이 들어왔다.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이들이 정말 암살자인가? 게다가 여기까지는 어떻게 올 수 있었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 법했음에도 그랜빌 총사령관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이 정도 위치에 앉을 수 있는 자.
무엇보다 무인 출신이다. 모든 소리를 봉인당하고도 그는 덤덤하게 검을 뽑았다.
당황 없는 긴장감만이 그의 얼굴을 주름지게 만들 뿐이었다.
“얼른 처리하세요.”
“이까짓 늙은이! 중늙은이를 처리하지 못해서 그렇게 벌벌 떤 건가? 부기맨을 본 소녀처럼, 그렇게나 벌벌 떤 거야?”
“……오카상을 모욕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퓌비엘의 총사령관, 최소 레벨 280 기사 유저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을 겁니다.”
“꺄흐흐큭큭, 바보구나, 바보야! 나와 레인보우 곡예단, 우리 [미드나잇 서커스]의 최정예들이라면 아무 문제없다고!”
이 넓은 퓌비엘 진영에 퍼진 유저들이 이자들을 봤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말 그대로 이를 갈아도 시원치 않을 인물, 사스케와 삐뜨르 그리고 미드나잇 서커스의 암살자들은 이미 퓌비엘 진영에 잠입해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말이다.
“공중그네를 시켜 줄까? 응? 아니면 불의 고리를 통과시킬까?”
“크히히히힛.” “푸후후훗.”
“목을 떼어 내서 저글링!? 어떻게 해야 이 늙은이와 가장 재밌게 놀 수 있을까? 응? 응? 뿌히히힛!”
삐뜨르와 7명의 광대들은 천천히 그랜빌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정신 사나운 목소리와 다르게 암살자들에겐 틈이 없었다.
디스펠을 사용해 천막에 혹시나 있을 모든 마법을 삭제한 그들이다.
그랜빌의 목소리를 죽여 고함과 더불어 스킬을 봉했음은 물론이고, 외부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차음 스크롤도 사용했을 것이다.
그랜빌의 눈동자가 암살자들을 빠르게 탐색했다.
그러나 사스케 쪽의 준비도 분명 만만치 않았다. 자신의 수준을 정확히 알고 완벽한 기회를 포착해 공격했다. 아마도 저들의 실력 수준은 자신을 능가하고도 남을 것이 분명하다.
즉, 삐뜨르와 광대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면 그랜빌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총사령관이 죽으면 전쟁은 끝이다.
적어도 이번 국가전에선 국왕만큼 중요한 게 각국의 총사령관이니까.
“키시시싯, 레인보우 곡예단 전원―”
멈─ 춰어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앙―!
소음과 함께 그랜빌이 서 있던 천막의 뒷부분이 찢어졌다. 사스케와 삐뜨르, 그리고 미드나잇 서커스의 정예 암살자들이 깜짝 놀라 거리를 벌렸다.
“하아, 하아! 수호의 인장!”
기정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샤아아아―…….
검을 쥐고 있던 그랜빌과 기정 사이에 푸른 띠가 연결되었다.
“태일 형님! 비예미 님! 그리고 별초 전원은 그랜빌 총사령관을 보호합니다!”
Yes, Sir!
총사령관이 죽으면 전쟁은 끝인 점.
적어도 이번 국가전에선 국왕만큼 중요한 게 각국의 총사령관이라는 사실.
바로 그 점을 이하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 * *
이하가 미니스 전역의 끄트머리에서 특임대 별초를 모아 두고 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라면 분명히 암살을 노리겠어. 내가 저쪽의 ‘보이지 않는 작전참모’의 입장이라면 말이야.”
“무슨―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 그게 말이 돼? 여러 가지 안 좋은 소식을 듣고, 퓌비엘은 밤새 진형 정비를 할 것이다, 그 혼잡해진 틈을 타 분명히 삐뜨르와 암살자들이 올 거라고? 그건 완전― 그냥 형의 상상력이잖아?”
기정이 기를 쓰고 반대한 것도 타당한 것이었다.
이하의 지시대로, 혹시 모르니 돌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특임대 별초가 돌아가고 나면? 크로울리와 파우스트가 있는 행군의 평원 전역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그것도 머스킷티어 혼자서!
“나만의 생각이 아냐. 키드한테 물어봤어. 지금 재정비하느라 정신이 없대.”
“그거야 당연한 거고!”
“지금 빨리 돌아가야 해. 다시 가는 데 최소 두 시간은 걸릴 거야. 당장 출발해야 가장 느슨한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거야.”
새벽 세 시 전후.
가뜩이나 사람이 피곤을 많이 느끼게 되는 시간이다. 자정쯤인 지금 당장 출발해야만 그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할 수 있다.
삐뜨르가 정말로 ‘암살자’라면 경계가 느슨해지는 그 시각을 반드시 노릴 것이다. 이하는 분명히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 녀석은 암살에 있어선 프로니까.’
이하 역시 암살에 있어서 프로나 다름없다. 저격수란 각종 잠입, 침투, 암살 작전을 실행하는 직업. 반대 의미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형이…….”
“기정아. 저쪽에서 이걸 생각한 놈은 보통이 아니야. 우리가 행군의 평원 고지전으로 꾸물거릴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를 계산하고 작전을 짠 놈이라고. 이고르와, 크라벤과, 심지어 알렉산더와 끊이지 않는 줄을 잇고는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는 녀석이야. 그런 녀석이 암살 한 번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 없어. 더군다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랜빌에 대한 암살 기회는 오지 않을 테니까―”
기정은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부탁한다.”
이하의 굳건한 눈동자를 바라본 그 순간부터 말이다.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설마 정말로…… 저 사스케 새끼까지 진짜 있다니.’
의심 반, 걱정 반으로 부리나케 달려온 게 바로 지금 이 타이밍, 때마침 그랜빌 총사령관의 천막에서 불이 꺼지는 모습을 발견하곤 곧장 스킬을 발동했다.
‘대단해, 정말 이하 형의 생각이 맞았어.’
기정은 방패를 그러쥐고 앞에 선 암살자들의 낯빛을 살폈다.
비예미 또한 자신의 검에 독액을 충전하며 미소 아닌 미소를 지었다.
‘키키킷, 하여튼 보통 사람이 아니라니까.’
과거 암살자였던 비예미조차 지금의 사태를 예견할 순 없었다. 이하의 말을 듣고서야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한 정도.
그만큼 알렉산더의 만레벨 소식과 행군의 평원 보급선 파괴, 그리고 퓌비엘 북부와 크라벤의 대대적 공습은 그만큼 여러 유저들의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분명히 떠난 것을 봤는데…….”
“우리 쪽엔 너보다 ‘서프라~이즈’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 이번에도 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삐뜨르. 키킷, 놀래키는 서프라이즈는 좋아도 당하는 서프라이즈는 기분이 썩 별로지?”
삐뜨르의 광대뼈가 내려앉았다.
언제나 킬킬거리는 녀석이 갑작스레 진지한 표정을 지을 때, 분위기가 급변한다는 걸 이미 기정과 일행들은 알고 있다.
“……위치는?”
“미니스 전역 내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행군의 평원으로 향한 것이 아닐지―”
광대 하나가 삐뜨르에게 속삭였다.
스킬―마킹에 대해선 무효지만, 업적 ‘미드나잇 서커스의 표적’의 대상자들은 그 대략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퓌비엘의 왕궁에서 당한 이후 이하를 줄곧 쫓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
이번 전쟁에서도 특히나 하이하의 위치만큼은 꼼꼼히 살폈었건만.
“부히히힛, 과여언……. 과연 하이하로군. 설마 마지막에 팀원들을 돌리는 선택이라니.”
다시 광대의 광대뼈가 솟구쳤다.
그 곁에서 복면을 두르고 있는 사스케 또한 기정과 태일, 그리고 기존 별초의 유저들과 눈을 마주쳤다.
가린다고 가렸겠지만, 적어도 두 사람을 속여 넘길 순 없었다.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스케― 너― 당신이 여기저기서 헛짓하는 동안 우리도 놀진 않았어.”
기정이 치아가 부서져라 악물며 겨우 분노를 참았다.
길드 전원을 가지고 놀다 배신한 놈,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으깨 주고 싶지만 자신이 맡은 ‘임무’를 잊을 순 없다.
지정 대상의 데미지를 대신 입는 〈수호의 인장〉.
문제라면 스킬 발동 이후 자신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방금 그 스킬만 봐도 알겠군. 처음 보는 거야. 많이 컸구나, 케이.”
“닥쳐! 아는 동생 대하듯 말하지 마! 태일 형님!!”
“사스케 군! 자네는 내가 맡도록 하지! 화(火), 선기(先技).”
“목각분신술!”
태일의 불붙은 검이 사스케보다 앞섰다.
선을 잡아 들어간 찌르기는 사스케의 배를 관통했지만, 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느덧 검에 찔린 대상은 나무로 변해 있었으니까.
심지어 주변엔 사스케와 같은 분신이 두 개 더 추가된 상태였다.
“수란! 하민! 살틴! 케이카! 로망 님은 태일 형님과 보조를,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비예미 님과 함께 미드나잇 서커스를 막으세요!”
옛―!
이하가 빠졌다 한들 특임대 별초의 인원은 서른이다.
제아무리 삐뜨르와 사스케가 있다지만 아홉 명의 적군을 상대로 시간을 벌기엔 충분했다.
“포이즌 레진!”
“뿌히히힛, 두 번은 안 당합니다!”
“너야 안 당하겠지! 키키킷!”
비예미가 순식간에 내뱉은 독액에 광대 하나의 옷이 흠뻑 젖었다. 이미 고지전과 공성전에서 수없이 합을 맞춰 본 특임대 별초가 저 스킬의 의미를 모를 리 없다.
“그, 그림자 암습! 그림자, 그림자 암―”
스킬 봉인.
비예미는 암살자들의 움직임을 강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적절한 위치에 내뱉는 독액을 회피하려 하지만 그 회피 자리를 노리고 들어가는 특임대 별초의 인원들이 있다.
삐뜨르처럼 절정급의 고수가 아닌 이상, 비예미와 별초의 합공을 버티긴 어렵다. 이런 제한된 공간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크로스 컷―!”
“크루얼 배쉬―!”
두 개의 검이 공간을 가른다. 미드나잇 서커스에서도 최정예급 암살자, 레인보우 곡예단의 광대가 재빨리 백덤블링을 하며 피했지만, 그 피한 곳으로 이미 철퇴가 내려찍히고 있었다.
그 철퇴를 다른 광대의 클로가 쳐 냈다.
카아아앙―!
거대한 파열음이 천막에서 울리기도 잠시, 이번엔 클레이모어 한 자루가 공간을 꿰뚫으며 다가왔다. 또 다른 광대는 발끝에 달린 작은 단검으로 가까스로 검면을 올려쳐 내고 뒤로 점프하는 틈, 그곳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비예미의 부식액이다.
츠즈으으―――!
피부로 침투하자마자 변성시켜 버리는 PK전용의 살인 독액.
주머니에서 해독약을 꺼내 재빨리 들이마셔 보지만 이미 늦었다.
즉사를 피했지만 부분마취에 걸려 부자연스런 움직임밖에 낼 수 없는 사이, 별초의 또 다른 검 하나가 이미 광대의 허벅지를 덜어 냈다.
기정이 찢으며 들어온 천막의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고즈넉한 달빛 하나에 기댄 채 격렬한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캬하하핫! 재밌어요! 아주 재미있어!”
“……역시 넌 미친 게 분명해, 삐뜨르.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었나? 암살에 실패했으면 즉각 미련을 버리고 도망가야 했어.”
“뿌히힛, 아니, 아니! 미친 건 당신들이지! 당신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구엔! 캬아아아앗―!”
비예미의 일침을 듣기 무섭게 삐뜨르가 몸의 방향을 바꿨다.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킬 정도로 유연한 미야우 종족의 발끝이 향한 곳은, 또 다른 미야우의 목덜미였다.
“커, 커헉―!”
“뿌히히힛, 숭고함이야, 이게 바로 서커스의 숭고함이라고!”
삐뜨르는 또 다른 광대에게 달려들어 그의 턱 밑에 자신의 손톱을 밀어 넣었다. 별초의 인원들이 당황할 정도의 팀 킬. 미친 건가? 라는 놀람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했다.
“막 나가기로 한 거야?”
“‘여분’을 쓴 후로 링마스터에게 허락받았거든. 키시싯.”
비예미만이 그 동작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시켜 자신을 빛내는 것. 아마도 삐뜨르의 목숨을 ‘추가’하는 작업이리라. 물론 삐뜨르의 손에 죽는 광대들은 전혀 들은 바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준비는?!”
“끝, 끝이라고, 끝! 오늘의 놀이는 여기까아아아아―지!”
사스케의 외침에 삐뜨르가 답하는 순간, 마지막 광대가 죽었다. 이제 천막에 남은 인원은 둘. 그들은 차음(遮音) 스크롤의 유효시간이 끝나기 전에 몸을 빼낼 계획이었다.
“도망가려는 겁니까, 어딜!”
그리고 태일은 그 점을 눈치챘다. 태일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것까지 사스케가 예측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미 함께한 시간이 너무 오랜 그들이었다.
“수리검, 천조(千鳥)! 미영무(迷影霧)!”
“끄, 아아앗! 귀, 귀!”
“귀 막지 말고 앞을 봐! 쳐 낼 수 있는 건 쳐 내야―”
촤촤촤촤촤촤!
귀가 떨어질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마나 수리검이 수없이 쏟아졌다.
태일의 불붙은 검이 검막을 펼치며 몇 개나 되는 수리검을 쳐 내었지만, 다른 별초의 인원들은 최대한 급소를 가리며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꺄하하핫! 다음에 보자고 구엔, 아니 비예미! 그리고― 하이하와 아이들!”
태일과 비예미, 그리고 별초의 인원들이 방어 자세를 취하는 사이, 어느덧 사스케와 삐뜨르가 있던 자리에선 매캐한 연기가 흩뿌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