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3
마탄의 사수 (3)
『미들 어스』가 얼마나 유명한 게임인지는 이하 역시 잘 알고 있다. 퇴원한 후로 제대로 밖에 나갈 수도 없는 그가 하는 일이라곤 TV 시청이 거의 전부였으니까.
가상현실 게임 『미들 어스』.
사실 단순한 게임으로 치부할 건 아니다. 개발사이자 관리사인 구플은 『미들 어스』를 제5차 산업혁명이라고 자찬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도 인정을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든 감각 구현, 전 세계 단일 통합서버. 게임 내 언어 통일.
그리고 현실의 하루는 게임 상의 5일.
단어의 나열이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언어의 장벽을 없애고, 공간의 장벽을 없애고, 마침내 시간의 장벽까지 없앤 셈.
즉, 게임 안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는 이미 「미들 어스 아엘스톡 시(市)분교」에 대한 정식 절차를 밟고 있고, 스페인 축구협회 프리메라리가는 미들 어스의 스킬과 액션 캠을 활용한 「미들 어스―프리메라리가」에 대한 방송 송출권의 정당한 소유권을 득하기 위해 법원에 확인 판결을 받아 내는 중이라고 했다.
아직 주요한 회사들의 회의, 국가의 정책 등 비밀을 요하는 부분에서는 실행되고 있지 않았으나, 교육, 창작, 여행 등 많은 부분이 『미들 어스』를 통해 준비되고 있었다.
게임을 넘어선 가상 세계.
오픈된 지 겨우 4개월 만에 세상은 이미 절반 가까이 미들 어스에 포함되고 있었다. 그러니 그곳에서 파생된 이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다단할 수밖에.
현실에서의 힘은 게임에서의 힘이, 게임에서의 힘은 현실에서의 힘이 되었다.
즉, 『미들 어스』의 돈은 곧 현실의 돈이라는 의미다.
“……어, 저기…… 설치 다 됐는데요. 지금 사용해 보실 거 아니면 일단 메뉴얼만 여기 두겠습니다.”
뜬금없는 사촌 간 언쟁을 듣고 뻘쭘하게 서 있던 설치기사의 발가락이 꿈지럭거렸다.
* * *
이하는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가상현실 접속기에도 눈이 있다면 말이다.
‘접속만 하면 마음이 바뀔 거라고? 여기서 돈을 번다?’
기정과 택배기사를 내보내고 한참이나 씩씩거리던 마음을 추리자 이하도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미들 어스』라면 게임 전문 채널은 물론, 공중파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지 않던가.
고작 4개월.
어제만 해도 뉴스에서 이름도 괴상한 장검이 1억에 거래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이전 게임에서 억 단위가 넘는 아이템이 거래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들 어스』는 이제 4개월 차 되는 신생 게임이다.
‘아직 고수들도 별로 없을 거고, 환율이야 당연히 불안정하겠지만……. 그런 건 차츰 안정될 테니까. 확실히 내가 하긴 좋을지도…….’
취업의 노력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잊기 위해서, 차라리 일에 집중코자 했으나 현실은 냉담했다.
장애인에게는 더욱. 하반신 불구에게는 더더욱.
‘어차피 정상적인 취업도 안 되는 거, 돈만 벌 수 있다면……. 그리고 난 시간도 많잖아.’
게임이 돈이 된다면 목숨이라도 걸고 할 수 있다.
―형 접속하면 ‘마스터케이’로 귓속말부터 해!
이하는 기정이 정리해 놓은 공략집을 살폈다.
제일 앞 장에는 기정이가 적은 메모 한 장. 그 뒤로는 게임에 대한 내용이다. 공략집이라고 부르기엔 말도 안 되게 조악한 설명서다. 그저 기정이 게임을 하며 느낀 점이나, 최근엔 이런 게 좋다더라 하는 뜬소문이 적힌 정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들 어스』의 모토는 ‘꿈과 모험과 환상의 세계, 또 하나의 지구’니까.
모험과 환상의 세계에 뭐부터 해야 하는 공략집이 있고, 뭐가 제일 세니까 이것만 하라는 노하우가 있으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래, 해 보자. 해 보고 환불하면 되잖아, 까짓것.’
이하는 기정이 준 노트를 고이 내려놓았다.
일단 해 보고! 돈이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가차 없이 환불!
이하는 끙끙거리며 휠체어에서 가상현실 접속기로 몸을 옮겼다.
“장애인용으로 친절하게 좀 만들어 주지, 이거 무슨.”
헬멧을 쓰고, 입에 뭘 물고 온갖 난리를 쳐야 하는 『미들 어스』 전용 가상현실 접속기에, 마침내 이하의 몸이 피트되었다.
편하게 뉘인 몸으로 손잡이 근처의 구동 버튼을 누르자, 관자놀이에 닿은 감각이 곧 두개골 전체를 울린다.
순간 11평 남짓 되는 이하의 집이 날아갔다.
* * *
“으아아아!”
갑작스레 공중에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는가 했으나, 어느새 이하는 암흑 속에 서 있었다.
“서…… 섰어?”
단단하게 바닥을 지탱하는 두 발로.
벌거벗은 채.
[이방인은 언제나 환영이지요! 미들 어스에 발을 들인 그대에게 축복을!]화아아악, 빛이 밝혀졌다. 갑작스레 켜진 빛보다 놀란 것은 들려온 목소리가 여성이었기 때문.
“어, 어어, 잠깐만요! 잠깐!”
두 다리로 섰다는 기쁨을 느낄 틈도 없었다.
이하는 황급히 허벅지 사이를 가리고 섰다. 이런 흉기를 예쁜 목소리의 아낙에게 함부로 보일 순 없지 않은가.
그러나 목소리만 계속 들려올 뿐 목소리의 주인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남성 이방인들은 언제나 같은 포즈로 시작이군요! 이미 수 천만 번 봤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미들 어스를 살아갈 당신의 아바타를 만들기까지의 도우미일 뿐. 앞으로 두 번 다시는 만날 일 없으니까요.]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공지능인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죠?]즉각적인 대답, 인간적인 반응. 벌써 이런 질문을 수 천만 번 이상 겪었으리라.
구플사의 AI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다.
[그럼, 미들 어스에서 살아갈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알려 주시겠어요?]닉네임. 기정은 이런 물음에 대고 ‘마스터케이’라고 당당하게 외친 걸까? 쑥스러움은 이하의 몫이었다.
게임이라면 닉네임을 새로 짓는 게 좋긴 하겠지만 당최 게임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하의 신체에 느껴지는 감각은 그야말로 나, 나 자신. 닉네임을 정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하. 아니, 하이하.”
[‘하이하이’ 가 맞습니까?]“‘이’가 하나 더 붙었어! 하이하이가 아니고 하이하!”
[재밌는 이름인데 아쉽네요. ‘하이하’가 맞습니까?]“맞아요.”
꺄르륵거리는 효과음이 이하의 기분을 살짝 묘하게 만들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하는 지금 설레고 있었다.
두 다리로 선 것에.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려는 자신의 모습에.
* * *
[좋아요, 하이하이. 미들 어스에서 살아갈 당신, 어떤 종족의 삶을 겪고 싶은가요?]“하이하입니다. 하이하이가 아니고.”
또 한 번 꺄르르륵,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정말 인공지능 맞아? 인간 아냐?
이하도 소위 인공지능이 탑재된 게임들, 가상현실이라는 게임들을 좀 해 봤었다.
어쨌든 젊은 남성, 특히 한국의 젊은 남성들에게 게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근데 이건 차원이 다르잖아?’
과연 외국회사, 라는 말로 퉁 쳐 버리기엔 너무나 압도적이다. 모습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고 있기에 더욱 사실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떤 종족이 있죠?”
[이방인이 선택할 수 있는 종족은 인간, 우드엘프, 리자디아, 자이언트, 미야우의 다섯 가지입니다.]“별게 다 있네.”
비늘로 몸이 뒤덮인 도마뱀 같은 인간, 리자디아. 심지어 꼬리까지 있는 모습에 이하가 질색을 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꼬리가 없는데 저 꼬리는 어떻게 써먹는 거지? 엉덩이를 흔들면 꼬리가 움직일까?
미야우는 고양이 같은 모습의 인간, 수인(獸人)으로 사족, 이족 보행을 교체하며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아무리 게임이지만 인간이 사족보행을 한다는 게 좀…….’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는 자이언트, 여리여리 얇으며 자연 친화적인 우드엘프까지.
각 종족을 선택했을 때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하는 결국 인간을 택했다.
“인간으로.”
[인간. 외모는 만족하세요?]“어? 만족 못하면? 바꿀 수도 있어요?”
[간단한 흉터의 수정, 눈매 교정, 잡티 제거 등 기본 보정은 물론, 키와 몸무게의 일부 수정도 가능합니다. 성별의 전환은 안~돼용! 아참, 인종도 바꿀 수 없어요. 미들 어스에선 인종보다 더 다양한 종족이 있으니 부디 서로 싸우지 말자고요!]“셀카 보정 어플도 아니고, 굳이 그런 건 필요 없겠죠. 그냥 하겠습니다.”
외모에 특별한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키를 더 키우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이하는 여전히 게임이 아니라 현실처럼 느끼고 있었으니까.
다시 암흑천지로 변한 세상, 이하 자신이 무얼 밟고 서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두워졌던 시야가 순식간에 밝아진다.
화아아아악!
그 틈에서 분명히 들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며 웃고 있는 도우미의 목소리를.* * *
“끄어어어윽!”
체감 상 한 5층 높이에서 떨어진 것 같았으나, 신체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주변에서 풉,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곧 잠잠해졌다.
초심자들이 미들 어스에 떨어지며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 중 하나였으니까.
“허어, 세상에……. 이게 게임?”
확실히 다르다.
이하는 주변을 둘러봤다. 갑자기 카메라들이 튀어나오며 ‘사실 현실이었습니다!’라고 말해도 충분히 믿겠다.
분수대의 물이 가끔 튀며 닿는 차가운 물방울의 느낌, 태양을 마주 봤을 때의 시큰한 눈, 쥐락펴락하는 손바닥, 숨을 들이쉬면 부풀어 오르는 흉부.
그리고 두 다리.
휠체어 안에서도, 밖에서도 아무런 쓸모가 없던 두 다리가 움직였다.
낡은 샌들 밖에서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까치발을 들었을 때 튀어나오는 종아리. 기마 자세를 취하니 허벅지의 근육이 땅땅해진다.
울컥하는 이 기분을 과연 누가 알까.
이하는 눈물을 흘렸다. 게임 속에서 눈물이 흐른다는 사실 때문에 놀란 것은 조금 후였다.
“그렇게나 감동인가! 캔들 캐슬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렇게 순수한 이방인은 처음이군!”
“깜, 짝이야……. 누구세요?”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이하가 화들짝 뒤를 돌아봤다.
하반신 불구가 된 채로 지낸 기간이 꽤 길었다. 몸을 도는 동작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는 이방인들이 미들 어스에 적응하도록 돕고 있는 사람이지.”
‘사람’이라.
이하는 기정이 놓고 갔던 허술한 공략집을 떠올렸다. 시작 마을은 랜덤이지만 어디로 떨어지든 극 초반의 루트 정도는 비슷하다고 했다.
초보자를 돕는 NPC들이 있고, 그 NPC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직업을 선택하고, 초보자 사냥터로 나가게 된다고.
그렇게 자신의 클래스를 선택하고부터가 진정한 미들 어스의 시작이라 했었다.
즉, 뜬금없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영국인처럼 생긴 남성이 NPC라는 걸 이하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움직일 수는 있겠나?”
“네, 그럭저럭요.”
“걷는 건 문제없지. 하지만 달리기는 조심해야 할 거야. 인간은 무한정 달릴 수 없거든.”
“음, 그렇겠죠.”
스태미너의 존재에 대한 언급.
이하는 이런 사항 또한 알고 있었다.
현실과 같게 만드는 게 구플사의 목표였으므로 인―게임에서도 게임에 대한 티를 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보통의 게임처럼 HP 바, MP 바를 플레이하며 즉각 확인할 수 없다. 하물며 스태미나, 활력 같은 것들을 숫자로도 볼 수 없게끔 해 놨으니 어지간히 불친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반대로 진정한 자유도, 진정한 가상현실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