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305
마탄의 사수 (305)
“뭐, 뭘 했길래요?”
“나야 모르지. 어쨌든 헬앤빌에서 쫓겨난 거 보면 보통 일은 아닐걸. 아마 거의 최초지? 드워프 족장 회의를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흐음……. 대체 무슨…….”
주변에 물어물어 위치를 겨우 확인하고서야 이하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족장들의 회의까지 거쳐 헬앤빌에서 추방당했다니!
이것은 이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특히 플레이가 불가능한 드워프이기에 더욱 그랬다.
‘유저들의 이권다툼이 아니라 NPC들의 판단이라는 건데. 이것도 뭔가 퀘스트가 있는 건가.’
드워프들의 권력은 ‘솜씨’에서 나온다.
이하도 알고 있다. 드워프 족장은 싸움을 잘해서 뽑히는 게 아니라 최고의 수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앉는 자리다.
즉, 그들의 권력은 광물, 광석에게서 가까운 자리에서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
헬앤빌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은 드워프들에겐 치욕이나 다름없는 일일 것이다.
‘대체 뭔 일을 저지른 거야? 수정구 위치도 바꿔야겠네.’
몇 가지 보조 아이템을 의뢰하러 왔다가 별 경험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헬앤빌에서 나와 내리막길을 걷기를 두 시간여, 멀리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까앙― 까앙―!
“보틀넥 님!”
“누, 누구야! 비어드, 비어드 브라더스!”
“예, 보스!”
버스럭버스럭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틀넥과 비어드 브라더스는 겁먹은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태도를 보였다. 각종 무기를 들고 나무 뒤에 숨은 그들을 보며 이하는 손을 높이 들었다.
저걸 숨는다고 숨은 건지, 비죽이 튀어나온 무기가 다 보이는데.
“저, 저예요! 하이하! 싸우러 온 사람 아니라고요!”
“……하이하?”
“나 참, 뭔 일을 저질렀길래 이런 곳으로 오셨대? 하여튼 오랜만에 뵙습니다. 뭐 필요하실까 싶어서 음료수랑 좀 사 왔―”
보틀넥과 비어드 브라더스가 멍한 표정으로 이하를 바라보았다. 이하는 멋쩍은 인사를 건네고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였다.
그 순간, 비어드 브라더스의 드워프 하나가 이하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노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차, 참아, 동생!”
“우왓?!”
옆에 있던 형이 동생을 붙잡으며 우당탕탕,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이하는 뒷걸음질 치며 보틀넥과 비어드 브라더스의 안면을 살폈다. 무슨 소리지?
“뭐예요?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을 이렇게 박대해도 되는 거예요?”
“그걸 말이라고 해?! 엉! 그, 그 키메라 아이템! 네 녀석이 기브리드와 관련이 있는 거지?! 그, 그것 때문에― 크허어엉…….”
“그만둬, 비어드 브라더스. 둘 다 들어가 있어. 이 녀석과는 내가 얘기하겠다.”
보틀넥은 피곤한 목소리로 그들을 들여보냈다.
비어드 브라더스의 동생은 급기야 훌쩍거리며 눈물까지 쏟고 있었다. 검댕 묻은 얼굴에 수염 뒤숭숭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드워프라니.
이하는 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키메라 아이템은 또 무슨 소리야? 기브리드?’
비어드 브라더스가 난리를 치기에 보틀넥도 분명히 한소리 할 줄 알았다. 항상 구시렁구시렁 투덜투덜 온갖 욕설이란 욕설은 입에 달고 다녔던 드워프였으니까.
그러나 이하의 걱정과 달리 보틀넥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너, 엘리자베스의 후예가 확실하지?”
“무슨 말씀이세요, 새삼스럽게. 제 총, 뻔히 아시면서.”
“마왕의 조각과 연관이 없는 것도…… 맞지?”
“마왕의 조각?”
이하는 조금 당황했다. 여기까지 와서 또 그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얼마 전 푸른 수염과는 만났습니다만―”
인간들의 대규모 전쟁을 종식시킨 것은 마왕의 조각의 등장, 그것을 확언한 교황의 힘이었다.
유저가 아닌 NPC들의 종족도 그 정도 소식은 충분히 들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상태다.
그러나 보틀넥은 고개를 저었다.
드워프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푸른 수염에 대한 소식은 나도 들었어. 나는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네? 푸른 수염이 아니라면, 또 뭐요?”
“‘기브리드’…….”
보틀넥은 이하가 처음 듣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리곤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하는 그 뒷말까지 듣고서야 무슨 일인지, 비어드 브라더스가 왜 난리를 쳤는지 어림잡아 볼 수 있었다.
또한 확신이 들었다.
“……마왕의 조각 중 하나, ‘키메라 둥지’ 기브리드와 연관이 없는 것…… 맞지?”
마왕의 조각들이 조만간 깨어날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이.
* * *
당연하죠, 무슨 그런 말씀을? 기브리드라는 단어도 오늘 처음 듣는데요!
이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잠시 뜸을 들였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답할 때가 아니다.
보틀넥의 표정은 비장하다 못해 간절할 지경이었다.
툴툴거리면서도 항상 이하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게 무엇 때문인지 정확힌 알 수 없었으나, 이하도 보틀넥이 자신에게 일종의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장난스럽게 대답할 정도로 이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맹세코 기브리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름조차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이하는 보틀넥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 흥분 없는 호흡, 그리고 투명한 눈동자. 드워프는 이하의 눈을 한참이나 마주치고 있었다.
혹시 갑작스런 공격을 하지 않을까, 저러다가 비어드 브라더스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보틀넥은 그저 크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 왈가닥의 후예 아닌가. 심성이 나쁜 사람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미안하게 됐네.”
“아뇨, 미안하다뇨. 무슨 그런 말씀을.”
이하는 잠시 그의 안색을 살피다 슬쩍 목소리 톤을 높였다
“무슨 얘기인지 듣기 전에 그 뒤에 무기나 좀 치워 주세요. 이 근처에 설치된 함정도 해제해 주시고요.”
“흐, 눈치챘나?”
“무딘 놈들이라면 걸리겠지만, 저야 엘리자베스의 후예 아닙니까. 이 정도에 걸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요.”
이하가 장난스러운 태도로 다시 분위기를 띄우자 보틀넥도 그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러나 확실히 보통의 사태가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
헬앤빌에서 쫓겨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불청객들을 내쫓기 위한 각종 장치들을 설치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드워프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다는 뜻인가?’
함정들을 대체 몇 개나 설치한 것일까.
처음에 이하가 나타났을 때 허접한 동작으로 나무 뒤에 숨은 것, 자신들이 숨어 있다는 걸 뻔히 노출한 등등의 움직임까지가 모두 함정이었으리라.
진짜 침입자들이 만약 그걸 보고 함부로 움직였다면…….
‘하여튼 대단한 드워프들이야.’
나무 사이사이 설치된 실을 끌러 내는 보틀넥을 보며 이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가 지난번 부탁드렸던 ‘나이트 비젼’, 그 야간투시경을 만드는 일 때문에 불려 가셨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설마 그것 때문입니까? 하지만 그건…… 그건 키메라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제 창작 아이템입니다.”
구조나 원리야 현실의 것을 참고했지만, 미들 어스 안에서는 오롯이 이하의 발상이었다.
싸이클롭스의 수정체로 스코프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이후, 여러 가지 재료들을 통해 야간투시경의 기능을 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나도 그게 키메라와 관련이 없다는 건 알고 있어. 날 부른 족장들이 그저 미쳤다고만 생각했지.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보틀넥은 이하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답했다.
“후우, 들어가서 얘기하지.”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함정까지 해제하고 나서야 이하는 새로운 보틀넥 대장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 *
“어우, 저번보다 낫네! 여기가 훨씬 넓고 크네요! 저번에 거기는 내가 들어가려면 허리 숙이고 막 난리도 아니었―”
“비어드 브라더스에게 코가 베이기 싫다면 더 이상 그런 얘기는 하지 말게.”
“헙…… 넵, 알겠습니다.”
보틀넥은 어느 정도 평소로 돌아와 있었지만 비어드 브라더스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다.
괜스레 분위기를 띄운다고 나섰다간 화를 당할지도 모를 분위기였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입니까? ‘기브리드’는 뭐고요?”
“말하지 않았나. 마왕의 조각 중 하나야. 귀족(鬼族, 貴族)이라는 말장난으로 스스로를 백작이라 부르는 레 녀석에 비하면, 그야말로 마왕의 조각에 걸맞은 녀석이지. 온갖 몬스터를 조립해서 새로운 키메라로 만드는 게 놈의 특기니까. 놈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을 끝없이 바꾸어 대는 괴수……. 키메라를 토해 내는 ‘키메라 둥지’…….”
보틀넥의 묘사에 이하가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푸른 수염은 마왕의 조각 중 하나라는 힘은 느껴졌으나, 적어도 겉모습이 이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중후한 노년 신사의 모습에 가까웠으니까.
이하는 하수구 오물통에서 꾸물텅거리는 오수덩어리를 잠시 상상했다.
“으음……. 예쁘지는 않겠다는 게 확 와닿네요. 아니, 그래서 몬스터들의 특성을 조합해 아이템을 만든 걸 보고 족장 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겁니까? 보틀넥 님을 퇴출시키기로?”
“낌새는 있었어. 푸른 수염이 나타난 이후에 허겁지겁 확정된 것뿐이지. 퉤, 빌어먹을 족장 녀석들.”
“낌새요?”
“네놈이 제안한 그깟 아이템 하나 때문에 내가 불려 갔을 것 같아? 그게 키메라가 아니라는 건 머리까지 광석으로 가득 찬 족장들도 알고 있는 일일 거야. 그럼에도 나를 부른 시점에서 이미 모종의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는 거고, 푸른 수염이 나타난 것을 보며 그 정보를 사실이라 확정했다는 거지.”
보틀넥의 주장은 논리적이었다.
겉모습과 다르게 손놀림도 섬세하고 똑똑한 종족은 과연 눈치 또한 빨랐다. 그리고 눈치라면 이하 또한 지지 않는다.
“그 정보라는 게……. 키메라에 대한 것이라는 거군요.”
“붉은 산맥 너머에 광맥을 찾으러 갔던 드워프들이 키메라 떼를 봤었다는군. 당시 족장 회의에서 화들짝 놀라 조사단까지 파견했지만, 그 후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었대. 그래서 그때는 그냥 넘겼던 거지.”
“음……. 그냥 키메라처럼 보이는 몬스터가 어딘가로 이동했을 수도 있잖아요?”
“이동은 했을 수 있겠지…… 그러나 키메라는 자연 발생하는 몬스터가 아니야. 반드시 인공적인 손길이 있어야 한다. 인간들도 그렇지 않나. 국가와 직업을 불문하고 키메라 수정은 최악의 불법행위거든. 어쨌든 결국 증거가 발견되지 않자, ‘증거도 발견되지 않은 키메라가 어딘가로 이동했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없었다, 잘못 봤다.’라고 결론을 내린 거지. 그게 쉽고 빠르니까. 퉤, 멍청한 족장 녀석들. 그게 일을 더 키우는 건 줄도 모르고.”
“그런 상황에서 푸른 수염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니…… 당시의 키메라도 진짜였을 것이다, 즉, 기브리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라는 결론까지 간 거군요. 근데 그것과 보틀넥을 추방한 게 관계가 있나요?”
“있지. 기브리드의 등장은 대륙을 뒤집어엎을 일 아닌가. 만약 정말 기브리드가 나타난 거라면? 모든 종족 중 가장 먼저 그것을 알아 놓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몰라. 족장 의회에선 그걸 견딜 수 없었던 거겠지.”
“허…… 그, 그니까 면피용으로…… 일단 보틀넥 씨를 추방한 거다? 아니, 무슨― 국회에서 할 법한 짓을― 하긴 족장 회의니까 그것도 결국 의회긴 하네요.”
국가 불문, 종족 불문 의회의 치졸한 행동은 모두 같은 것인가. 나중에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일단 보틀넥을 쳐 냈다는 뜻.
황당한 이하의 표정을 보며 보틀넥도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한 짓이야. 나와 기브리드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다 결국 못 찾고 내린 게 추방 조치니까. 정말 증거가 나왔으면 날 죽였어야 맞는 것 아닌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들이지.”
바꿔 말하면 그게 바로 ‘마왕의 조각’이라는 단어가 갖는 힘이라는 뜻이다.
죄 없는 희생양이 필요할 정도의 힘.
‘이거 참……. 아이템 의뢰하러 왔는데 말도 못 꺼내겠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보틀넥이 말한 대로 그 아이템이 키메라와 관계없다는 것은 보틀넥을 내쫓은 족장들도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어쨌든 그 계기를 제공한 건 자신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