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4
마탄의 사수 (4)
“좋아! 이해했다면 넘어가지. 저기 저 소녀 보이나?”
“네.”
프릴 장식의 앞치마를 입고, 엮어 짠 바구니를 들고 있는 소녀. 바구니 안에 사과가 담겨 있다.
“사과를 사고 싶다면 저 소녀에게 말을 걸면 되는 거야. 아주 쉽지. 그러나 자네가 갑자기 소녀의 가슴을 주무르면 어떻게 되겠나?”
“네? 네? 뭘요? 가슴을 주물러요?”
NPC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언급. 근데 예시가 어째 좀…….
“저 소녀는 자네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남들에겐 3코퍼에 주는 사과도 자네에겐 10코퍼를 받겠지.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 맞아. 자네는 눈치가 보여 캔들 캐슬에서 생활할 수 없을지도 몰라. 상인들끼리는 소식을 빠르게 주고받거든. 누구도 자네를 상대하지 않게 될 거야.”
가슴을 한 번 만지고 사과를 조금 비싸게 산다, 라니.
뭔가 나쁘지 않은 교환비율이라는 생각이 잠시 이하의 머리에 스쳤다. 아니, 아니, 그건 범죄지.
“더 심해지면 현상수배 같은 게 되는 거고요?”
“그렇지! 이해력이 빨라서 좋군!”
남성이 박수를 짝, 아마 이하의 이런 반응조차 NPC와의 상호작용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NPC남성과 이하의 친밀도가 상승했을 것이다.
‘튜토리얼도 아니고 게임 시스템을 설명하는 아저씨랑 친해져서 뭐하겠냐만은.’
이하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더 설명을 들었다.
확실히 놀랄 정도의 가상현실이고, 흥미로운 게임세상이지만 이하는 즐기러 온 게 아니니까.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를 놓쳐선 안 된다.
“다음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교육받을 거야. 북쪽에 있는 훈련소로 가게. 자네의 ‘가방’에 있는 나침반을 사용하면 도착할 수 있을 걸세.”
남성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설명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더 설명해 주실 건 없고요? 챙겨 주실 거나…….”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듣고 싶은가?”
“아뇨, 아뇨.”
남들이 하지 않을 법한 맞장구까지 쳤건만 떡고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별 거 없는 건가? 이렇게나 열심히 들었는데.’
가끔 외부 게시판에 NPC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 작은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들은 것인데, 이 NPC는 아닌 모양이다.
사실 누가 뭘 줄지는 확정된 것도 아니긴 하다.
미들 어스는 일단 게임사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전무! 모든 것은 유저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직업에 대한 정보나 기본적인 지도조차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저들이 밝힌 지역에 대한 지도라도 업데이트를 한다는 것 정도?
미개척 지역은 아예 블라인드 처리까지 되어 있으며, 오픈 4개월 차에 달하는 지금까지도 개척된 지역은 전체 지역의 오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
전체 지역의 면적이 얼마나 큰지도 알 수가 없으니, 그저 개략적으로 점쳐 보는 것이다.
‘하긴 그중에서도 유저들이 다니는 지역은 더 적은데다……. 미개척 지역이었던 곳을 절반 이상 밝힌 게 한 사람이라는 소문도 있었지? 미친 듯이 탐험만 하는 놈이 있다고 커뮤니티에서 떠들던데.’
이하는 몇 걸음 걷다 말고 멈춰 섰다. 문득 찾아오는 짜릿한 느낌.
“하핫. 북쪽으로 ‘걸어’가라니.”
절로 웃음이 난다는 게 이런 걸까. 이하는 처음으로 총을 쐈던 감격이 떠올랐다.
두 다리가 움직인다는 기쁨, 당연한 기쁨.
“그래, 움직인다, 움직여!”
이하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 본다.
“와하핫. 하학, 흐히히힛.”
달리고, 또 달리는 이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물론 거지같은 옷을 입고, 웃으며 분수대 주변을 뱅글뱅글 달리는 사람을 고운 눈으로 볼 리는 없었다.
“뭐야, 저거.”
“미친 거 아냐?”
“초보 때는 저러기도 하던데, 좀 심하네.”
“야, 조심해. 괜히 부딪쳤다가 시비 걸라.”
그러나 주변의 유저들이 주춤거리며 자리를 비키는 것도, 손가락질을 하는 것도, 자기 욕을 하는 것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이하는 달린다는 감각에 집중했다.
“하아, 하아. 우와. 숨도 차! 게임인데 숨이 차. 킥킥.”
스태미너를 다 쓴 상황의 느낌.
몰아쉬는 콧김까지 리얼하다.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파티를 구하느라 소리치는 사람들, 뭔가를 거래하려는지 흥정을 하는 사람들,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지만 달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저 사람들이야 밖에서도 원 없이 걷고 뛰겠지.”
신기하긴 하지만 게임 안에서까지 움직임에 집착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이하는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니, 본인이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자각도 없이 서서히 호흡이 정리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회복되는 건가. 좋아.”
발목을 풀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관절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다시 뛰었다.
‘와하핫. 달릴 수 있어! 달릴 수 있다고!’
캔들 캐슬의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큰 대로변을 따라 이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오직 달리기 위해 게임을 시작한 사람인 것마냥.
스태미너가 떨어지면 멈춰 쉬다 다시 달리고, 멈춰 쉬다 다시 달리고.
“하아, 진짜, 하아, 대박이야.”
이하는 무릎을 짚고 숙여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몇 번이나 이렇게 뛰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오직 다시 움직인다는 기쁨 하나뿐.
“여기가 어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하가 주변을 살폈다. 중세 유럽풍의 집들, 파스텔 톤의 지붕들도 보이고 화강암으로 지어진 창고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지 모르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초보자 튜토리얼 대로라면 자신이 가야 할 곳은 북쪽에 있는 훈련소. 여기서 다시 중앙 분수대까지만 갈 수 있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
“좋아, 다시 가 볼까. 흐히힛.”
이하는 달렸다. 중앙 분수대가 보이는 광장까지.
숨이 턱에 받치도록 달리고 또 달리며, 사과를 파는 꼬마 숙녀가 보일 때쯤 새로운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응?”
〈업적: 달리는 기쁨을 아는 자(E+)〉
축하합니다!
10회 연속으로 스태미너 100%를 소모하셨군요. 마라토너는 아니시겠죠? 달리기의 기쁨을 아는 당신, 미들 어스의 구석구석을 부탁합니다!
보상: 민첩+3, 체력+3, 스킬―러너스 하이 획득.
스킬―러너스 하이를 배웠습니다.
‘뭐야, 이게. 업적?’
업적이라니? 이런 건 뭔가 특별한 성취를 달성해야 주는 거 아니었나? 이런 식으로도 업적을 딸 수 있는 건가? 그것도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사람이?
그러나 이하는 문구를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비상시에 한, 두 번 정도 스태미너가 다 떨어질 때까지 달리는 상황은 있을 법 하지만 10회 연속으로 100% 스태미너를 소모한다?
그런 사람이 흔하진 않으리라.
‘하핫, 좋아, 좋아. 나를 위한 게임이나 마찬가지잖아?’
중앙 분수대의 수많은 사람이 있다지만 이 업적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하는 미소를 머금었다.
업적에 보상으로 나오는 스킬은 또 무엇일지 기대하며 스킬 창을 열어보았다.
〈초심자의 러너스 하이(패시브)(Lv.1)〉
설명: 달릴수록 빨라진다! 스태미너 0%시 자동 발동
효과: 5분간 스태미너 소모 없이 달리기 가능, 달리기 속도 7% 증가
“으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이하는 바로 감이 오지 않았다. 물론 마을을 계속 달려 보니 스태미너가 꽤 빨리 닳는다는 건 알았지만, 체험 삼아 뛰는 게 아니라면 스태미너가 제로로 되는 상황이 있을까?
‘뭐,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래도 스킬인데 쓸모가 없진 않으리라. 이하는 들뜬 기분 그대로 가방을 열었다.
허공에 생긴 인벤토리 창.
그러나 다른 게임처럼 칸칸이 나뉘어 정렬되는 모습이 아니다. 홀로그램으로 뜬 가방의 외관 안에 그저 새까만 공간이 보일 뿐.
나침반이 가방 속 오른쪽 아래에 덜렁 놓여 있다.
보통 왼쪽 위부터 아이템이 차례로 정렬되는 게임들을 생각한다면 터무니없이 불편하다.
‘이러다가 물건 많아지면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하는 나침반을 꺼내들었다.
하다못해 초보자용 마을지도 하나 없는 게임, 나침반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히 힘들겠다 싶다.
‘나야 군대에서 토 나오도록 배웠으니 상관없지만. 아, 귓속말부터 해야지.’
훈련소로 걷던 이하는 기정을 떠올렸다.
게임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귓속말이나 파티 말까지 없애자는 의견이 개발초기 있었던 거 보면, 구플사의 집착은 거의 병적이라고 봐도 좋겠다.
―기정아.
―어, 형! 접속했네!
기정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두개골에 대고 직접 떠드는 기분이다.
―어때? 괜찮지?
기정의 짧은 물음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반신 불구에게 있어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물까지 날 정도의 감동이었으니까.
아직 튜토리얼도 못 끝냈지만 게임으로서의 재미도 기대되고, 이런 재미와 인기, 많은 유저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래. 아까 화내서 미안하다.
―엉아 화내는 거 한두 번 보나. 나도 형 놀라게 한다고 괜히 깝쳤으니 욕먹을 짓 했지. 근데 형 아이디가 이게 뭐야? 인터넷 실명제 장려운동 같은 거 해?
―너야말로 ‘마스터케이’가 뭐냐. 무슨 만화 주인공이냐?
―킥킥, 형도 이름이 만화 같아서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어쨌든 클래스는 골랐어? 일단 법사 쪽으로?
―아니. 지금 훈련소 가는 중. 접속한 지 얼마 안 됐어.
기정의 공략집에 있던 설명 중 하나.
현재 미들 어스에서 가장 인기 있으면서 재밌는 직업은 마법사 계통이라고 했다.
난이도는 탱커나 근접딜러에 비해 높지만, 어쨌든 마법사들은 공중도 날고 번쩍번쩍 하는 효과를 볼 수 있으니 화려하기도 하고.
확실히 인기는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응, 그럼 얼른 하고! 전직하면 다시 귓말 해. 쓸 만한 것 좀 줄게.
―넌 레벨 몇이냐? 어딘데?
―허허, 지금의 엉아랑은 하늘과 땅 차이지. 비밀이야. 큭큭.
정수리에 입을 대고 기정이 웃는 것 같아 이하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묘하게 간질간질 하기도 했고.
―아참, 나 업적 땄다. 큭큭.
―업적? 웬 업적? 지금 훈련소 간다면서?
―‘달리는 기쁨을 아는 자’. 뭔지 알아? 스킬도 주던데?
―달리는? 그게 뭐야? 스킬 주는 업적을 전직도 안 한 사람이 어떻게 따?
기정의 놀란 목소리에 이하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레벨은 이하 자신과 하늘과 땅 차이라고 콧대 높이더니 업적 한 방에 새소리를 내다니.
알기만 하면 금방 딸 수 있는 거지만 알기가 어려운 게 업적 시스템 같은 거니까.
―나중에 말해 줄게. 나 이제 훈련소 다 왔다.
―헐, 알았어, 형. 나중에 나도 알려 줘.
―킥킥, 알았다. 고생해.
이하는 기정과 귓속말을 끊으며 멈춰 섰다.
간판에 적힌 문자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였으나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그냥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도 여기가 훈련소라는 것은 알겠다.
“뭐하고 있나, 신참!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해!”
의족을 끼고 있는 중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하를 불렀다.
“네, 넵!”
“미들 어스는 전장이다! 누가 널 기다려 줄 것 같아! 너 같은 초보는 한 대만 맞아도 시야가 붉게 될 거다!”
시야가 붉어지기 시작하는 건 HP가 50% 미만으로 줄어들 때의 일. 5% 미만으로 가면 온통 검붉게 물들어 코앞을 보기도 힘들어진다고 했다.
“당장 검을 주워! 그리고 목표를 가격해라!”
“알게씀닷!”
이하는 군 시절이 떠올랐다.
다소 과격하고 딱딱한 사회였지만 이하는 역시 이런 느낌이 더 편했다.
오픈 4개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분명 초보자 마을일 텐데 여전히 훈련소에는 이하 같은 ‘이방인’들이 많았다.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그들을 피하며, 이하는 조심스레 비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가 좋겠네.’
허수아비 앞에 놓인 목검을 잡아보는 이하.
손에 감싸 쥐는 떡갈나무의 감촉. 다소 투박한 느낌 그대로, 목검을 휘둘렀다.
‘오?’
따악―! 따악―!
그냥 몽둥이 휘두르듯 했을 뿐인데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관절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진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지는가? 아무리 전투에 재능이 없어도 미들 어스에서 살고자 할 의지가 있다면 ‘전장의 신’이 널 인도할 것이다!”
‘아, 이게 전투 보조 시스템이구나.’
태어나서 검이니 창이니 활이니 하는 건 만져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가상현실에서 전투를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플사에서 내놓은 해답은 전투 보조 시스템이었다.
무기를 들고 휘두르거나 찌를 때 그에 맞는 적당한 루트를 찾아 아바타를 움직이게끔 하는 것. 말도 안 되는 궤적으로 팔이 꺾이거나, 관절구조 상 불가능한 범위에서의 공격은 할 수 없다.
당연히 활을 쏠 때도 그런 보조 시스템이 적용된다.
특히 무기에 맞춰 최적의 루트를 찾는 것이나, 가격했을 때의 파괴력, 조준의 정확성, 휘두르는 속도 등은 스탯에 영향을 받아 확률로 자동조정 되었으니, 현실감도 느낄 수 있고 게임의 재미도 배가 된다.
따악, 따악!
“하지만 전장의 신의 도움 없이 싸울 수도 있지! 자신에 대한 완벽한 믿음만 있다면 말이다!”
허수아비를 때리던 이하의 몸에서 갑자기 심장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투 보조 시스템을 사용한 전투 모드일 때와 전투 보조 시스템을 껐을 때의 차이.
‘과연…….’
힘없이 팔을 휘두르자 현실처럼 톡, 목검이 허수아비를 건드릴 뿐이다. 타격력 제로.
다시 온 힘을 다해 휘둘러 본다.
따아악!
전투 보조 시스템을 사용할 때 보다 강력한 파괴력과 반발력이 손아귀에 느껴진다.
‘오호, 오호. 이런 거라 이거지.’
단, 전투 보조 시스템을 끄고 싸울 때는 아이템 드랍 확률에 가중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하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미들 어스에 자연스레 적응해 가는 자신이 신기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