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672
마탄의 사수 (672)
기정은 친구 창을 살폈다.
이하의 위치는 아직까지 변함없었다.
“이하 씨는요?”
“아직. 귓속말 답장도 없어요.”
설득을 포기한 신나라는 기정의 곁으로 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신나라나 기정 또한 이 상황에 이하가 있다고 해서 무언가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이하, 그 사람이 뭔데 그렇게 기다리는 겁니까?”
어느새 바로 옆까지 다가온 라르크가 황당하다는 듯이 비꼬았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세요.”
“아니, 아니,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럽니다. 뭐야? 랭커야? 어디, 무슨 왕이야? 하이하가 오면 이 판도가 바뀐답니까?”
그의 질문에 답한 사람은 없었다.
보배가 재빨리 활시위를 당겼으나, 보배의 화살촉을 쳐 낸 것은 신나라였다.
“큿, 왜 그래, 나라야!”
“그래도 여기 마을 주변이야. 괜히 PK 뜨면 너만 불리해.”
“내가 질 것 같아? 저……. 저놈 때문에! 모든 발단이 다 저놈 때문이잖아!”
기정의 곁에서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한 사람 중 한 명이 보배였다.
라르크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는 없었다.
“세상에. 도와주고 욕먹기는 처음이네! 보배 님? 우리 그래도 〈신의 지팡이〉 확보할 때 제법 합이 잘 맞지 않았습니까? 제가 지난 며칠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세요? 말씀은 안 드렸지만 몬스터 무리들 정리한 게 도합 삼백 마리는 될 겁니다. 그나마도 신나라 씨와의 〈계약〉 때문에 팔레오는 건드리지도 못 하고 도망 다니면서 정리한 게 그 정도라고요. 햐~ 나 진짜 고생 많이 했지.”
“입 닥쳐요. 진짜로 날려 버리고 싶으니까.”
“흐으음, 왜 화를 내고 그러실까. 내가 몬스터를 잡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라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배가 다시 한 번 욱, 하며 나서려 했으나 이번엔 기정이 막았다.
“없죠. 당신 또한 미니스의 기사니까.”
“그럼요. 저도 교황청에서 다 지시받고 일하는 건데. 혹시 마스터케이 님만 따로 뭘 받았다거나 하신 건 아닐 거 아녜요.”
라르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홀리 나이트에 관한 것은 이미 치요에게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가 몬스터를 죽인 것 또한 은근슬쩍 기정을 방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팔레오를 공격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채워진 제약과 의무, 모든 것을 절묘하게 활용하며 명분과 논리를 쌓았다.
그의 말에 토를 달 것은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기정은 호흡을 골랐다.
“있습니다.”
“네?”
“저만 따로 교황님께 부탁받은 게 있어요.”
“기, 기정 씨?”
“케이!”
보배와 혜인이 깜짝 놀라 기정을 불렀다.
라르크의 표정도 일순 일그러졌다.
이걸 스스로 폭로한다고?
2차 전직 퀘스트 받았다는 얘기를 내뱉을 정도로 순진하다고? 그러나 기정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조용한 눈으로 라르크를 바라만 보았을 뿐이었다.
“……역시. 누군가에게 들었군. 얘기가 샜어.”
“무, 무슨? 무슨 말씀이실까?”
“방금 그 구겨진 표정. 아직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티를 내다니. 라르크 씨답지 않군요.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이 일을 밖으로 떠벌릴 자는 적어도 이곳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오히려 기정이 입을 여는 것보다 라르크의 두뇌 회전이 더욱 빨랐기에 생긴 미묘한 오차!
라르크의 뛰어난 통찰력이 지금,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저는 당신이 엄청나게 미워요. 진짜 너무너무 밉습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는 생각해요. 그래서 밉긴 해도 싫어하진 않았죠. 그런 점 때문에 더 열 받는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허나.”
기정은 검을 꺼내어 들었다.
PK라면 질색하는 기정이 이렇게나 강건하게 나오는 모습을 처음 보는 별초의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이제는 그 생각이 바뀌려 하는군요.”
“……내가 나쁜 사람이다?”
“떳떳하다면 내 얘기를 어디의, 누구한테 들었는지 밝혀 보시던가.”
기정 또한 시노비구미의 존재를 알고 있다.
치요의 어마어마한 정보력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또한 적어도 기정의 주변에서 이야기가 새어 나갈 일은 없다.
그렇다면 라르크는 누구를 통해서 들었을까? 교황에게 직접? 그럴 리가 없다.
그가 이야기를 들을 루트는 오직 한 군데뿐.
기정은 라르크를 향해 외통수를 놓았다.
라르크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말 못 하겠지?”
“아니, 이미 마스터케이 당신이 생각해 둔 답이 있을 테니 안 하는 것뿐.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나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라르크는 기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기정 또한 그의 눈빛을 살폈다.
“내가 미들 어스에 있는 이상, 나는 미니스 왕국의 수도방위기사단, 〈베르튜르〉의 영원한 일원. 내 검에 맹세코 나는 나쁜 짓은 하지 않아요.”
“그럼 왜 그런 짓을…….”
“다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추구할 뿐이지. 뭐,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 와중에 개별적인 몇몇 피해자도 나오고 말다툼도 이뤄지지만 최종적으로는 언제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이겁니다.”
“어쭙잖은 공동선共同善, 공리주의功利主義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쩝, 참새가 봉황의 마음을 어찌 알꼬. 내가 왜 랭커 자리에 오르지 않는지 알기나 하시려나?”
“뭐, 뭐요?”
라르크는 끝까지 검을 뽑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들고 선 기정에게서 등을 돌리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기정은 마지막에 내뱉은 그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그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랭커 자리에 못 올라간 게 아니라, 오르지 않는 것이라고?
기정이 둔 외통수에 대해 라르크가 취한 방식이었다.
방금 전까지 나누던 대화의 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면? 외통수는 사라진다.
주도권을 잃어버린 찰나의 순간, 더 이상 기정은 라르크를 붙잡을 기세가 없었다.
“어딜 가는 겁니까! 누구한테 그 얘길 들었는지 얘기하고…….”
“얘기해서 뭐 합니까, 이해도 못할 것을. 괜히 시간만 아깝지. 다음에―”
“팔레오들이 움직입니다! 영물들의 이동 확인!”
기정과 라르크의 말을 끊으며 루비니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방어 전선의 전방에 있는 자들에게는 루비니의 외침이 닿지 않았으나, 그들은 들을 필요조차 없었다.
[오는군.]“결국 피를 봐야만 하는가, 신대륙의 원주민들이여.”
[즈마 시티가 사라진다면 레를 죽일 여력은 없어진다.]“음, 알고 있다. 정의를 위해서라도 이곳은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황룡 전원── 전투 준비──!”
하──오!
알렉산더와 베일리푸스, 페이우와 황룡의 길드원들은 전투 준비를 마쳤다.
“자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스겜으로 고고!”
영물들과 팔레오들이 달려드는 이상, 신나라와 별초 등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케이, 어떻게 할 거지?”
“기정 씨…….”
“우선은…… 우선은 나가죠. 전장으로 합류는 하되. 상황은 최대한 지켜보겠습니다.”
검을 들지 않으면 저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뿐일 테니까.
모두가 전쟁 준비로 한창일 때, 베르튜르 기사단의 진영으로 복귀한 라르크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가자.”
“무, 무슨 소리 하고 있어, 대장? 우리가 나가서 뭐 한다고?”
차를 타 마시던 퐁이 화들짝 놀라 라르크에게 물었다.
여전히 신나라와의 〈계약〉에 의해 베르튜르 기사단은 팔레오 및 영물들에게 적대적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전쟁 통에 밖으로 나가자는 말을 하다니?
“즈마 시티로 가자는 게 아니야.”
“음? 그럼?”
“……일했으니 돈 받으러 가야지. 근데 저쪽에서 돈을 줄지, 안 줄지 모르니까 담보는 잡아야 하지 않겠어?”
“그게 무슨…….”
“위치 확인하고, 전원 준비시켜서 따라와.”
라르크는 수정구를 발동시켰다.
* * *
“우오오오오! 시작이다!”
“조져, 조져 버려!”
“몬스터 웨이브 때에 비하면 이 새끼들은 조밥이잖아?!”
유저들의 표정이 환희로 젖었다.
난이도 자체는 저번보다 쉽지만 보상의 기대값은 저번과 유사했으니, 그들이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간드아아― 앗?”
────────────!
그 순간, 유저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빛의 폭발이 일었다.
돌격하던 유저 전원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크윽!”
“무식한 동물 새끼들이!”
“다 조져 버려, 변신해 봤자 레벨 250 전후밖에 안 돼! 숫자도 얼마 없다!”
사기는 꺾이지 않는다.
이미 ‘적’으로 판명된 녀석들의 전력은 유저들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싸워, 싸워!”
“베어 버려라아아아아―!”
물론 그것도 일리는 있는 행동이었다.
이곳에 모인 유저 중 팔레오들의 단체 행동을 직접 겪은 유저는 그 누구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신대륙 서부의 열일곱 영물 중 인간과 유사한 영물이 있다는 걸 아는 자도 드물다.
“이라쿠, 그대부터.”
“알겠다, 코바.”
몰려가던 영물 중 하나가 멈춰 섰다.
뒷발에 날카로운 가시가 엄청나게 돋아 있는 멧돼지는 마치 물구나무를 서듯 앞발로 온몸을 지탱했다.
“와보오오오!”
쿠구우우우────……!
들어 올린 뒷발을 그대로 내리찍는 행위,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멧돼지 팔레오들의 부족 수호신, 이라쿠의 특능이 발현되었다.
“어? 어어?!”
“미친, 어스퀘이크!”
“공중으로 뜰 수 있는 유저들은 전부 떠!”
갑작스레 흔들리는 지표면에 유저들은 잠시 당황했다.
이제 인간들과 팔레오 간 거리는 100m도 채 되지 않는다.
한참 속도를 높여 돌진력을 얻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지진을 피하기 위해 속력을 포기하며 공중으로 뜨는 것은 올바른 행위가 아니었다.
적어도 영물들의 연합 앞에서는 말이다.
“피그미. 일제 사격 지시.”
“떠 있는 인간들부터―! 조준!”
보노보 팔레오들은 개량된 볼트 액션 총기를 들어 올렸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흑두루미 팔레오들의 부족 수호신, ‘후디드’였다.
“사격!”
“하핫, 과연, 적의 무기로 적을 친다는 거군! 흐으으으읍―!”
───, ───, ───!
짧게 끊어 울리는 총성과 함께 후디드의 부리에서 불덩어리들이 쏘아져 나갔다.
“어? 어어?”
“뭐, 뭐야, 저게? 〈쉴드〉!”
“총― 칵!”
“화염 마법이― 생각보다 강해!”
황급히 방어 마법을 사용해 보지만 어덜트 드래곤급의 실력을 지닌 흑두루미 영물, 후디드의 마법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공중으로 떠올랐던 유저들의 상당수가 잿빛으로 변하며 땅으로 추락했다.
아직 본격적인 충돌이 일어나기도 전 발생한 두 번의 공방.
아니, 그것은 공방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행위였다.
팔레오들의 공격은 인간들의 다음 행위를 예측하고 유도하듯 정확하게 적중했고, 인간들은 무식한 야만족이라 무시하던 팔레오들에게 그대로 당해 버린 셈이었다.
“인간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긴, 그러니 그렇게 간단한 물건조차 강력하게 만들 수 없었던 거겠지.”
이 모든 작전을 세운 장본인이자 영물들을 규합하러 움직였던 영물이 코밑을 훔쳤다.
“과연 코바로군.”
“그대가 있어 든든하네.”
보노보 팔레오들의 부족 수호신 코바, 루거와 이하의 무기를 분해해 보았던 용암 밀림의 영물은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진 존재였다.
“끼히힛, 다음은 내 차례겠군. 흐으으음……! 일해라, 일!”
최전방에서 달려가던 팔레오들의 주변으로 작달막한 영물 하나가 뛰어다녔다.
못생긴 얼굴을 자랑하는 원숭이가 주변을 독려하자 온갖 동물 형태의 팔레오들의 근육이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지진이 멈춘 후 다시금 땅으로 내려와 달리기 시작하던 최전방의 유저들 얼굴이 일그러졌다.
“……노, 노동을 강요하는 영물―”
“하르헤이? 하르헤이의 힘이 들어가면―”
하르헤이가 힘을 준 팔레오들은 고릴라와 멧돼지들.
일격에 나무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거체 팔레오들이 쿵쾅거리며 달려왔다.
“와봉―! 와봉― 아! 우리들이라고 강해지지 않을 리가 없지!”
“방패! 방패 들어 올―”
“우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앙───!
볼링공이 핀을 쓰러뜨리듯, 곳곳에서 유저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스킬을 써서 떠오른 게 아니었다. 팔레오들의 힘에 의해 공중으로 떠올려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돌격력이 고스란히 실린 데다, 하르헤이에 의해 근력까지 강화된 상태의 돌진 공격에 당하니, 수십 명의 유저들이 일격에 죽어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