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8
마탄의 사수 (8)
기쁨과 흥분에 어린애처럼 미소 짓던 이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어머니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 있니?”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기계 괜찮아? 환불할까, 그냥?”
“아뇨! 아뇨, 아뇨!”
이하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가상현실 접속기, 아니, 미들 어스가 없다면 어쩌면 다리의 그 감각은 다시 못 느낄지도 모른다.
“그냥 두세요. 비쌌을 텐데…… 사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뭘, 새삼스럽게. 아들이 좋아야 엄마도 좋으니까.”
현실에선 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이하가 미들 어스에 접속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검을 휘둘러 보고, 업적을 따내고, 직업을 선택하러 클래스 타워로 향한 게 겨우 두 시간 남짓이었다.
‘겨우 그것 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빠져들었나.’
원래도 게임을 좋아하긴 했다지만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하는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현실감, 중독성. 분명 돈이 된다. 이제 직업만 선―‘
그리고 뚝, 이하의 표정이 굳었다.
“이하야?”
“직업……!”
“응?”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참, 이거 사용자 호출 기능이 있거든요. 알려 드릴 테니 다음엔 코드 뽑지 마세요. 알았죠?”
“으, 으응. 그래.”
“전화, 전화!”
이하가 휠체어를 황급히 밀며 전화 앞으로 향했다.
어안이 벙벙한 어머니를 뒤로, 이하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직업을 선택 중일 땐 로그아웃 할 수 없다며? 이렇게 되면 내 직업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하가 미들 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대상은 어차피 기정뿐. 이하의 손가락이 파파팟, 기정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불안한 생각이 꾸물꾸물 자라났다.
* * *
‘망했어…… 망했어!’
이하는 인터넷 창의 스크롤을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기정이 전화를 받지 않아 결국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지만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슬픈 현실뿐이었다.
〈제목: 정전 나서 튕겼는데 재접하니까 왜 드루이드가 됨?〉
직업 선택 도중에 튕겼는데 드루이드가 됐네. 이거 어떻게 되돌림? 본사에 신고해야 하나? 탱커 계열하려고 일부러 종족도 자이언트로 했는데 첫 번째 스킬이 까마귀 소환…… ㅅㅂ 미치겠다.
당사자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러나 커뮤니티의 질문에 달리는 답변은 비웃음 90%에 안타까움 10% 남짓.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세상이다.
―ㅉㅉ 불쌍…… 캐삭하고 다시 만들려면 기다려야 하는데. 세 달인가 여섯 달인가.
―ㅋㅋㅋㅋㅋ 자이언트 드루이드 개쩌네 ㅋㅋㅋ 까마귀가 자이언트 손가락 크기일 텐데 ㅋㅋㅋ
―일본에선 지진 때문에 튕겼다는데 그것도 안 받아 줌 ㅅㄱ
―ㅋㅋㅋㅋㅋㅋㅋ미국에서도 이미 법원 판결 나온 거래요. 구플이 이김..ㅋㅋ
―분수대 돌면서 나는 빡빡이다 10번 외치면 됨.
└안 되잖아 개x기야 죽는다 진짜.
└이런 새기들이 제일 나쁨. 근데 이런 낚시에 걸리는 사람이 있네.
―캐릭터 삭제 후 다시 만들려면 석 달 걸려요…… 그냥 드루이드로 열심히 하세요…… 나중에 좋을지도……
동물의 힘을 빌려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거나 동물을 소환하는 자연친화적인 직업.
오픈 4개월인 현재까지, 탱커도 아니고 힐러도 아니고 딜러도 아닌 애매한 평가를 받고 있는 직업 중 하나였다.
글쓴이를 놀리는 댓글들을 보니 이하까지 화가 날 지경인데 저 글쓴이는 얼마나 속이 뒤집어졌을까. 말도 안 되는 댓글을 보며 따라할 정도로 다급했으리라.
‘캐릭터 삭제 후 재생성까지 석 달? 진짜 너무하네.’
현실성에 대한 추구도 어느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그러나 가상이지만 엄연한 ‘현실’, 모험을 즐겨야 하는 세계에서 테스트용 캐릭터로 잔뜩 시험하고, 정보만 추려 내어 삭제.
그 후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강해지기 위한 액기스만 뽑아 먹는 건 구플사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 그러니까 안정적인 선택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야.’
이하도 잠시 느꼈지만, 플레이 할 수 있는 종족이 많음에도 게임 상에서 인간종족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삭제 후 재생성에 3개월이나 걸리는데 누가 리자디아 같은 도마뱀인간이나, 미야우 같은 고양이 형태의 수인족을 하고 싶어 할까.
직업 또한 마찬가지.
누구나 알 법 하고, 어느 게임에서도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는 종족과 직업이 선호되고 있었다.
‘어딘가에는 특별한 취향의 사람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 정도면 게임 상 사망으로 캐릭터 삭제가 안 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야.’
이렇게 난이도가 높고 정보가 빈약하기에, 역설적으로 플레이어들을 더욱 불붙이는 게임이 바로 미들 어스였다.
‘아냐, 그래도 희망이 있어. 어쨌든 나는 드루이드 같은 걸로 전직되지는 않을 거야.’
여러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다보니 한 가지 공통점은 발견할 수 있었다. 직업을 랜덤으로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만졌던 무기의 직업으로 강제 확정을 시켰다는 것.
어쨌든 그 직업에 관심이 있으니 무기도 만져 본 것 아니겠냐는 구플사의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만졌지? 분명 마지막에 내가 붙잡은 거 맞지?’
이하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히 완드를 향해 뻗었던 손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잡았나?
‘아으으, 모르겠어!’
몸이 붕 뜨기 전에 분명 손가락을 오므린 것 같았는데.
미들 어스에 접속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접속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하는 용기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검색했다.
업적.
이것만큼은 같은 초보 중에서도 이하 자신이 앞서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니까.
검색을 하는 와중에도 커뮤니티에는 새로운 글들이 마구 올라오고 있어, 불과 오늘 오전에 써진 글들이 수십 페이지나 뒤로 밀려 버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쓸 만한 정보가 있어도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정보를 찾을 시간에 차라리 다들 게임을 할 테니까.
〈제목: 벌써 업적땄다 ㅋㅋ 초보자 훈련소의 모범생 딴 사람 있냐 ㅋㅋ〉
ㅁㅊ 주변 보니까 나 말고 아무도 못 땄던데 ㅋㅋ 이 정도면 미들 어스 적성 인정? 전직 전에 업적 딴 사람 나밖에 없을듯 ㅋㅋㅋ
―헐, 그거 머임? 좋음?
―나도 땄음. 초보 때 성능은 꽤 좋은 듯. 알려 줄까?
└알려 주세요 젭라
└님 그거 어떻게 땄어요? 효과는 뭐임?
―ㅎ안알랴쥼. 니들 다 내 경쟁잔데 뭐하러 알려 줌ㅋㅋ ㅅㄱ~
└미ㅊ논ㅁ 너 나중에 드루이드인 자이언트 조심해라
‘몇 건이 있긴 한데, 땄다는 자랑만 하지 어떻게 얻는지는 아무도 안 밝혔군.’
겨우 찾은 정보라는 것도 그 존재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만 하는 정도다. 심지어 효과가 어떤지 알려 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역시 경쟁의 한국.
게임에서도 어지간한 애정과 욕심을 보이고 있다.
이하 자신도 어떻게 얻는지, 효과가 무엇인지 굳이 밝힐 필요를 못 느꼈으니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업적이나 칭호에 대한 글들은 대부분 자랑뿐이었다. 그나마 초보자 훈련소의 모범생은 자랑 글이라도 몇몇 개 보였지만, 달리는 기쁨을 아는 자는 아예 언급조차 없을 정도로 정보가 적었다.
다만 그런 것 중에서도 예외는 있었는데, ‘토끼고기 다 판다’ 같은 업적이나 ‘눈이 멀어 버린’ 같은 칭호는 어느 정도 정보가 공개되고 또 공유하는 편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쉽게 추측이 되는 거면서, 비교적 초보자 시절에 딸 수 있어 효과가 아주 크지 않은…….
‘즉,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공유하고 있군.’
심지어 ‘눈이 멀어 버린’이라는 칭호는 미들 어스 안에서 15분 이상 태양을 직시하고 있어야 딸 수 있는 칭호라고 하니, 그 얼토당토않은 기행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 봐야 얼마나 크겠는가.
‘토끼고기 다 판다’라는 업적도 마찬가지.
레벨 5 이전에나 사냥하라고 만들어 놓은 토끼만 잡아서 레벨 9를 만들었어? 총 사냥 토끼 수가 1,000마리?
이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런 노가다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세계에서 가장 노가다를 빨리 한 게 한국인이라는 거에 기뻐해야 할까? 현실시간으로 오픈 4일 만에 토끼 1,000마리를 잡는 인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구플사에서도 놀랐다고 코멘트 달아 놨네. 허, 참. 어쨌든 내 업적은 좋아. 그것도 엄청 좋은 거야.’
그렇게 이하는 이런 저런 정보를 수집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이런다고 자신의 직업이 다시 바뀌거나, 선택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진 않을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뚜껑을 열어 봐야만 한다.
“후우.”
휠체어를 밀며 가상현실 접속기 앞으로.
이번엔 어머니에게 이야기도 잘 해 놨으니 아까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장착하기 요란한 것들을 쓰고, 물고, 잡은 끝에 마침내. 이하의 관자놀이에 찌릿, 하는 반응이 왔다.
현실의 하이하가 『미들 어스』의 하이하로 다시 옮겨지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수 초 남짓이었다.
* * *
이번에는 떨어지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공지능의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갑작스레 덜컥, 서게 된 몸과 그려지듯 눈앞에 나타난 풍경만이 미들 어스에 접속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역시…… 클래스 타워가…… 아니야.”
이하는 눈을 감았다 떴다. 직감적으로 전직이 끝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는 자신이 무엇으로 전직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제발, 제발, 제발!”
열려라, 캐릭터 창을 열려고 마음먹자 미들 어스의 이방인, 하이하의 정보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름: 하이하 / 종족: 인간
직업: 머스킷티어 / 레벨: 1 (0%)
칭호: 없음 / 업적: 2개
HP: 160 / MP: 50
스탯: 근력 13(+3), 민첩 13(+3), 지능 12(+2), 체력 13(+3), 정신력 10
“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하는 캐릭터 창에 떠 있는 자신의 직업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머스킷티어?! 제기라아아알!”
“꺅! 뭐야, 저 사람?”
좌절, 오열.
그러나 어느 정도는 이하도 직감하고 있어서일까. 머스킷티어가 선택됐다는 것에 대한 좌절보다 현실적인 대응책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뭐야, 그런데 전직 지급품은 어디 있어? 스킬은?”
그제야 이하는 이전의 접속과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야 한구석에 깜빡이며 거슬리는 빛의 존재, 이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앞에 있는 빛에 손을 대었다.
전직이 완료되었습니다!
직업별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하급의 조잡한 머스킷을 획득했습니다.
흑색화약*50을 획득했습니다.
쇠구슬 탄*50을 획득했습니다.
꼬질대를 획득했습니다.
“어, 어어어!”
갑자기 허공에 후두둑 떨어지는 총기와 꼬질대. 이하가 황급히 손을 내밀어 총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겨우 붙잡았다.
‘화약은? 탄은?’
인벤토리 창을 열어 보니 고이 접힌 종이봉투 50개와 한쪽으로 뭉쳐 있는 구슬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머스킷과 꼬질대는 크기가 너무 커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의미.
‘혹시, 혹시 아이템 공격력은 더 좋은 걸지도?’
그러나 이름도 멋진 ‘하급의 조잡한 머스킷’이 그럴 리가 없었다. 시험용 머스킷과 똑같은 능력치.
공격력 233, 사거리 40m라는 정보가 이하의 무릎을 덜컥 꺾이게 만든다.
“에휴…….”
그러고도 빛이 하나 더 남아 있다.
대충 무엇인지 감이 온 이하가 재빠르게 손을 대었다. 전직이 완료되고, 아이템을 줬으면, 다음은 하나지.
스킬 머스킷 마스터리를 배웠습니다.
스킬 총검 돌격을 배웠습니다.
“뭐야 이거? 이걸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