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9
마탄의 사수 (9)
몇 글자 적혀 있지도 않은 홀로그램창이 스스로 훅, 사라져 버린다. 이름만 봐도 크게 도움 될 것 같지도 않은 스킬 명을 떠올리며 이하가 스킬 창을 열었다.
〈초심자의 머스킷 마스터리(패시브)(Lv.1)〉
설명: 머스킷은 다룰수록 익숙해지는 것. 명중률과 장전속도를 상승시켜 준다.
효과: 명중률 추가상승 0%, 장전속도 추가상승 0%
〈초심자의 총검 돌격(Lv.1)〉
설명: 머스킷에 마나총검을 부착하여 돌격할 수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도록 하자.
효과: 15초간 머스킷의 공격력 30%를 근접공격력으로 전환.
소비마나: 50
쿨타임: 5분
‘마스터리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상황이고, 스킬이라고 하나 생긴 건 총검 돌격?’
이하는 생각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임을 직감했다.
인터넷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는 찾아보았다.
미들 어스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유저 수가 적은 직업 중 하나가 바로 머스킷티어라고 했다.
이하도 이미 느껴 봤듯 달팽이 뺨치는 장전속도와 얼토당토않은 명중률은 세계의 유저들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대단한 양덕들 중에도 대부분이 포기를 할 정도라고.
이렇게 현실감 넘치고 스타일리시 한 가상현실 게임을 하면서 누가 그렇게 살고 싶을까.
게다가 한 발의 강력함을 믿고 싸우기엔 이 게임의 난이도가 그리 만만치 않다. 맞아가며 장전하기엔 HP가 순식간에 닳아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슨 총검 돌격을……? 자살특공대냐? 게다가 지금 총 마나가 50인데, 소비마나가 50이면 어차피 한 번 쓰면 못 쓰는 거잖아!’
혹시나 했다.
인터넷에서 울고 있는 다른 머스킷티어 유저들의 글을 보며 너무 징징거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게임이니까.
기본 공격이 후지면 스킬로 보정이라도 해 주겠지, 라는 어떤 기대감도 슬쩍 해 봤던 게 사실이다.
물론 자신의 직업이 머스킷티어로 확정되었다는 최악의 가정을 잊기 위해 한 것이었지만.
하다못해 쿨타임이 조금 길더라도 명중률 100%의 기술이 있다든가, 총을 연발로 쏘게 해 준다든가.
근데 이건…….
“으아아아아아!!!!”
“까, 깜짝이야!”
“뭐야, 저 사람?”
“미친 놈 아냐?”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까의 좌절과는 다르다. 이젠 정말 희망도 뭣도 없다.
이하는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하루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 드디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사고 이후 다 버렸던 성격도 다시 밝아지고!
얼마든지 돈도 벌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생활비도 벌고, 랭커가 되면 혹시 수술비용까지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좀 빛이 드나 했는데!’
일장춘몽. 불과 하루 만에 미들 어스에서의 꿈이 깨져 버린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머스킷티어로 전직한 이방인은 오랜만이군.”
괴성을 지르며 클래스 타워의 유저들을 질겁하게 만들고 있을 때, 새로운 목소리가 이하의 귀를 두드렸다.
* * *
“아으으으……. 네?”
“머스킷티어로 전직한 것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가?”
불난 집에 부채질도 유분수지,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껄껄거리며 웃는 남성이라니.
그러나 이하는 화내지 않았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말투와 저 타이밍, 분명 유저는 아니리라.
무엇보다 얇은 사슬로 만들어진 고급스런 체인메일을 입고 있는 유저가 초보자 마을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건 상당히 이상하다.
“무슨 일이시죠?”
“새롭게 직업을 얻은 이방인들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자, 라고 할까.”
“가능성을?”
발광을 했던 이하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씩, 씩거리는 동안에도, 체인메일을 입고 콧수염을 기른 남성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근 들어 성 밖의 짐승들이 흉포해졌다는 민원이 발생하고 있네. 우리가 직접 나서면 좋겠지만 토벌령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치안대가 마을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여, 전직으로 새로운 힘을 얻은 이방인들에게 퇴치를 요청하고 있지.”
“그렇군요.”
“부디 거절은 말게! 새롭게 얻은 그대의 힘을 시험할 기회이기도 하니까. 보상이라면 섭섭잖게 주겠네.”
순간 이하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뜬다.
단순한 설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 미들 어스에 들어온 이하가 처음으로 마주한 퀘스트였다.
[흉포해진 토끼 사냥]설명: 캔들 캐슬의 관문 밖 흉포한 토끼가 나타났다고 한다. 작물과 짐승을 먹어 치우는 괴생물체를 없애도록 하자.
내용: 토끼 가죽 (0 / 10)
보상: 캔들 캐슬 내 모든 NPC 친밀도 10% 상승, 캔들 캐슬 치안대 친밀도 15% 상승, 50코퍼
수락하시겠습니까?
이하가 순순히 예스를 눌렀다.
치안대의 인원은 대부분 클래스 타워 근처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었다. 그것이 전직을 한 초보유저들에게 퀘스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하도 알 수 있었다.
‘하아, 전직 실패는 실패고…….’
굳이 이런 퀘스트를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어느 관문이든 밖으로 나가 조금만 걸으면 볼 수 있네. 토끼답게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 탈이지.”
“알겠습니다.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체인메일을 입은 남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하에게 악수를 청했다. 머스킷과 꼬질대를 끌어안고 어정쩡한 자세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해 보자. 하는 수밖에 없어.’
캐릭터 삭제 후 재생성까지 3개월.
게임을 접으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뭐, 사실 좀 늦게 시작한다고 뭐 달라지겠냐마는, 지금 이하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찾은 가능성인데.
‘개떡 같은 총이지만 어쨌든 내 전문 분야였잖아. 익숙해지면 분명히 할 만할 거야.’
이하는 머스킷을 어깨에 메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어깨끈이라도 있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클래스 타워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남문을 향해 이동하는 틈에도 이하는 유저들의 이목을 끌었다.
“와, 저거 뭐야? 총이야?”
“오오! 머스킷티어로 전직한 사람이 있네.”
“대박. 저거 하는 사람이 있었냐?”
“있는 줄도 몰랐다. 넌 쏴 봤냐?”
“아니. 장전하다가 집어 던졌지. 석궁은 명중률 85%던데. 뭐하러 머스킷을 골랐지?”
친구인 듯, 파티인 듯. 웅성거리는 유저들의 말소리가 이하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누구는 모르냐. 나도 봤어! 크로스보우 사거리 30m! 머스킷이랑 겨우 10m차이밖에 안 나면서 명중은 거의 다 되는 거 나도 안다고!’
40m거리에서 50% 명중률과 30m거리에서 85%의 명중률.
머스킷과 크로스보우의 아이템 설명 상 차이는 유저들이 머스킷을 집어 던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장전속도 또한 머스킷에 비해 7배나 빠르다.
분당 1발과 분당 7발의 차이.
머스킷 1분에 1발, 공격력 233. 크로스보우 1분에 7발, 공격력 30―60. 크로스보우를 쓰는 유저가 정말 재수가 없어서 최저 1발 빗나가고 나머지가 최저 공격력만 나와도 180. 머스킷티어는 운이 너무 좋아서 100% 맞춰도 233.
크로스보우가 운이 중간이라 평균 공격력만 나와도 270. 최대 공격력까지 나오면 300 이상.
그러나 머스킷티어가 재수가 없으면? 제로.
분당 피해량 180에서 300을 가하는 크로스보우
vs
분당 피해량 0에서 233을 가하는 머스킷
무엇을 선택할지 자명하지 않은가.
즉, 공격력의 차이나 10m의 거리 이득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뜻이다.
이하는 우울한 걸음걸이로 터벅, 터벅 남문을 향했다. 관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을 지나 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나오는 푸른 초원이 나왔다.
언덕은 이미 사람들에 의해 기합소리가 난무했다.
“강타!”
뀌이익―!
이하도 전투의 기본을 배우며 사용했던 스킬, 검 끝에 붉은 잔상이 생기며 토끼를 베어 낸다.
게임답지 않은 현실감은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인지 붉은 피, 심지어 내장까지 흘러나오는 모습에 이하가 잠시 눈을 찌푸렸다.
‘내장까지 구현해 놓은 건 멋지다고 해야 할지, 끔찍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긴 하네.’
베고, 찌르고, 차고.
사람들의 기합과 토끼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필드는 혼잡하기 그지없다.
벌써 미들 어스가 오픈한 지 4개월이나 지났건만 초보자 사냥터라고 볼 수 있는 곳에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렇게 사람 많고 돈 될 법한 게임에서 망한 직업을 고른 게 문제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와 불평을 한다고 나아질 건 하나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직진뿐!
뀌익, 뀌익.
이하가 첫 번째 목표를 포착했다.
경사진 땅에서 무언가를 뜯어 먹고 있는 토끼, 거리는 약 35m 전후.
‘토끼가 움직이는 걸 고려한다면 이 정도 거리에서 쏴야겠지.’
손이 느긋하게 움직였다.
순간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심장. 전투 보조 시스템이 작동하며 이하의 몸을 유도한다.
허벅지에 머스킷의 개머리판을 받쳐 댄다! 화약 접시를 열고, 가방에서 꺼내는 포장된 흑색화약을 소량 넣는다!
‘으으, 쫌!!!’
머스킷을 세우고 총구에 흑색화약의 잔량을 주르륵, 쏟은 후 쇠구슬 탄을 집어 들고 총구로.
총구에 입을 대고 후웁, 바람을 한 번 불어넣은 후, 머스킷에 부착시켜 놨던 꼬질대를 떼어 총구에 넣고. 꾸욱, 꾸욱.
‘제발 좀 빠르게!’
물론 그런다고 동작이 빨라지진 않았다.
기나긴 1분이 끝나고 마침내 머스킷을 들어 올리는 이하.
사격 자체는 전투 보조 시스템에 의하는 거라지만 안정적인 자세는 사람이 내는 것. 이하는 쏘기 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혹시 조금이라도 명중률이 높아질까 하는 기대감을 안은 채.
‘살아 있는 걸 쏘는 건 처― 아니지, 이건 현실이 아니야.’
토끼의 귀가 쫑긋거리는 너무나 현실적인 느낌에, 이하가 순간 헷갈렸으나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게임이다. 그리고 자신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작 동물을 쏘는 느낌에 주저해선 안 된다.
타아아앙―――!
사람들의 기합소리만 무성하던 필드에 인위적인 폭발음이 크게 울렸다.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소리의 근원을 찾아 이하를 돌아볼 정도로 자극적이고 놀라운 음향, 그리고 효과.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머스킷을 내려놓은 이하가 토끼를 살폈다.
‘맞았나? 핏자국 같은 게 생긴 것 같은데…… 어?’
핏자국은 핏자국이었지만, 이하의 총에 맞아 생긴 자국이 아니다. 그럼?
‘응? 뭐지? 토끼가 낸 핏자국…… 이라고? 쟤…… 지금 뭘 잡아먹는 거야? 이게 말이 돼?’
이하는 몸을 일으키며 눈을 꿈뻑꿈뻑 떴다.
그제야 상황이 좀 제대로 보였다. 토끼는 두더지인지, 쥐인지. 발버둥치는 먹잇감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이하는 보았다.
육식 토끼가 붉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어? 어어, 어어어!”
35m 밖에 있는 토끼.
그 표적이 이하의 눈에 또렷하고 크게 보였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표적이 크니까.
어지간한 고양이보다 몸집이 클 법한 토끼가 붉은 눈을 부라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으아아.”
장전, 장전!
전투 보조 시스템에 의지하느라 다행이었지 실전이었다면 화약이 든 종이봉투를 집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황한 이하의 정신과 달리 몸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흑색화약을 꺼내어 접시에 넣고― 등등의 긴 동작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재장전 시간 1분. 거리는 겨우 35m.
1분 동안 물구나무로 걸어와도 35m는 걸을 수 있으리라. 하물며 토끼는? 눈이 빨개지고 쥐를 뜯어 먹고 있던 괴물 토끼는?
뀌이이익―!
“캭.”
고양이만 한 토끼가 도약하며 뒷발을 후렸다.
화약 접시를 막 닫고 있던 이하의 가슴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큼직한 발!
떡―! 소리와 함께 발이 닿는 순간, 이하는 느꼈다.
‘아……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