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101)
#재능만렙 플레이어 101화
170㎝가 넘어 보이는 큰 키, 어깨선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머리.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얼굴. 가죽 라이더 재킷으로도 감출 수 없는 풍만한 볼륨감. 또 그와 대비되는 잘록한 허리. 검은색 딱 달라붙는 흑청바지.
청바지 따위로는 감히 가릴 수 없는 각선미. 모델이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정도의 아우라와 분위기를 가진 여자.
그리고 내가 이미 얼굴을 알고 있는 여자.
‘쟤는 왜 여기 있어?’
독마녀(毒魔女) 천수지. 공원 반대편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걸어오고 있는 것이, 마치 늘씬한 모델이 걸어오는 것 같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는 아이들. 삼삼오오 무리를 모여 떠들고 있는 학생들. 남녀노소 불문하고, 적어도 한 번씩은 천수지를 훔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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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약간의 설렘/기분 좋음/내적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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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지의 발걸음은 도도해 보였다. 여왕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검은색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도 뭐랄까, 하이힐을 신고 걷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포스가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장인가 싶기도 하지만, 또 실제로 과장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또 보네요, 군주씨.”
“김혁진입니다.”
재미있는 건 선화의 요약이 바뀌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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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미인을 경계하는 브라더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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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지가 내 앞에 섰다. GVG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여전히 차가워보이고 도도해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래도 살벌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긴 어쩐 일이시죠?”
“아. 저희 길드장님께서 이 걸 드리라고 해서요.”
품 속에서 봉투 두 장을 꺼냈다.
‘수표?’
봉투 하나에 1억짜리 수표가 각각 들어 있었다.
“이걸 직접 주셨다고요?”
“네. 저보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럴리가. 송기열이 천수지를 보냈을 리 없다. 계좌이체가 얼마나 편한 세상인데.
‘천수지가 졸라댔나보네.’
나는 천수지를 한 번 쳐다봤다. 천수지의 눈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런 차가운 반응은 오랜만이네요.”
천수지가 가볍게 웃었다.
“보통 남자들은 제가 찾아가면 둘 중 하나던데.”
그래. 아마 둘 중 하나일 거다. 모델같은 피지컬에 기가 죽든지, 그도 아니면 좋아하든지. 실제로 천수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천수지는 모델일도 겸하게 되고 꽤 유명한 모델로 활약하기도 하니까.
“저는 그저 당신이 저희 집을 알아내서 찾아온 사실이 크게 달갑지 않을 뿐입니다.”
“왜요?”
“태극방패의 길드장이 제 신상을 아무렇게나 불었으니까요.”
천수지의 눈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습관인 건지, 붉은 입술을 살짝 핥았다.
“재벌 3세를 향해 그런 독설을 퍼붓는 남자는 당신밖에 없을 거 같아요.”
“그렇습니까?”
“네. 매력적이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긴 합니다만, 앞으로는 찾아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천수지와는 딱히 엮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수많은 연예인, 플레이어들과 숱한 스캔들을 뿌렸던 천수지다. 개중에는 원인불명의 사망자도 존재했다. 천수지와 연관성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천수지와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스스로 마왕의 전 애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으니까.’
그 말도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냥 천수지가 그렇게 얘기했었다. 한동안 가십거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었다.
마왕(魔王) 강선일.
물론 가명일 뿐이지만, 하여튼 아직까지 마왕과 어떤 연결고리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 솔직한 생각이다. 마왕과 대적하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다시 한 번 주어진 기회.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제 내 옆에는 소중한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송기열 씨한테도 전해주세요. 함부로 제 신상을 팔지 말라고.”
“알았어요.”
천수지는 크게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도합 2억을 받고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처음 봐요. 2억 정도면 나한테 설레지는 않을 수 있어도, 충분히 가슴이 떨릴 정도의 금액 아닌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솔직히 말해 2억이라는 그 돈은 내게 그저 숫자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좋기는 좋은데, 그렇다고 또 엄청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과거 공시를 준비하던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천수지가 뜬금없이 말했다.
“저는 저보다 강한 남자를 좋아해요.”
“…….”
“솔직히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마침, 가을 초입의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천수지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기분좋은 샴푸냄새가 느껴졌다.
‘이야.’
철두철미하네.
‘유혹의 기운을 담았어.’
이것도 독(毒)이라면 독이다. 생명이나 건강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 독. 미약에 가까운 독 능력. 내 감각안이 그걸 간파했고 내 독 저항이 순식간에 그 기운을 중화시켜 버렸다.
유혹의 기운을 믿는 것인지, 제법 당당하게 말했다.
“저랑 한 번 만나볼래요?”
그래서 대답했다.
“싫습니다.”
그 순간, 또 선화의 요약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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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안심하는 브라더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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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수지를 뒤로한 채 집을 향해 걸었다. 감각안을 통해 느껴졌다. 천수지의 감정과 상태가.
‘나를 유혹하고 싶은 모양이네.’
남자 밝히기로 유명했던 천수지다. 아무리 예쁘고 섹시해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어라. 생각해보니 한 6년 전쯤, 뉴스를 장식하고 있던 천수지의 사진을 보면서 저런 여자와 사귀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저런 여자를 평생에 한 번은 만나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던 게 떠올랐다.
‘겨우 몇 달 흘렀을 뿐인데.’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뭐랄까. 기분이 묘했다. 천수지가 먼저 내게 만나보자고 제안하고, 나는 그것을 거절하고.
‘재미있네.’
조금씩 삶이 재미있어지는 느낌.
“아참.”
잠깐 몸을 돌렸다. 천수지가 서 있는 쪽을 쳐다봤다.
“송기열 씨에게 전해주세요. 온몸이 까맣게 물들어 죽은 시체가 발생하면, 특히 남쪽 지방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연락 달라고.”
“알았어요. 협조하죠.”
서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봐요. 다음번에는 좀 더 예뻐져서 올게요.”
“…….”
“아니면 좀 더 섹시한 걸 원하시려나.”
몸을 돌렸다. 우리의 보금자리, 집으로 향하며 선화에게 말했다.
“하루 정도 쉴 거야. 알겠지?”
“네!”
선화는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선화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왜?”
“아까 그 언니. 엄청 예뻤죠?”
“응. 예쁘긴 하더라.”
선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그 언니 느낌이 안 좋아요.”
“갑자기?”
얘는 감각안같은 것도 없는데?
“하여튼 이건 여자의 촉이에요.”
여자라고 보기엔 너 너무 어리지 않냐.
“제 촉을 믿어요. 그 언니.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래?”
선화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말이 맞다는 듯, 자신은 아주 진지하다는 듯.
“저는 그 언니 반대예요.”
* * *
하루가 지났다. 신연서가 단톡방을 하나 만들었다.
-짠! 우리 파티 단톡방!
나를 비롯하여 선화, 신연서, 마상현, 곽태운, 강상구가 포함되어 있는 6인 파티. 6인 중에 무려 4명이 미래의 최상위 랭커들이다. 다시 말해 천재들. 그 천재들과 함께 팀을 꾸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신연서가 카톡을 보냈다.
-혁진 대장. 그럼 우리 이제 뭐 하면 돼?
-만나서 얘기하자.
오늘의 약속장소는 신촌. 신촌의 한 커피숍에 모였다. 사람들은 마상현을 알아봤는지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렇지만 그 엄청난 근육에 압도된 것마냥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저기, 현대 백화점 보이지?”
길 건너편에는 현대 백화점이 있다. 이름은 현대. 그렇지만 소유주는 성신기업이다.
“그 옆에 이어지는 또 다른 건물이 유플렉스 건물이야.”
“형님. 제가 저기서 옷 많이 사봐서 압니다. 빅사이즈 옷 살 때 저기서 많이 삽니다.”
“커피 한 잔 하고, 현대백화점이랑 저기 지리를 익혀놓을 거야. 이해했어?”
다들 내 말을 이해했다. 우리에게는 ‘유플렉스 던전’의 최초 입장자격이 주어져 있다.
‘저곳은 던전으로 변한다.’
곽태운이 조심스레 말했다.
“형. 그런데 저곳이 던전화 되면 저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돼요?”
“죽겠지. 서울역 던전과 똑같아.”
처음 그곳이 던전으로 변했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2번 출구 쪽에 게이트가 형성 되고나서부터, 2번 출구를 제외한 다른 곳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일단 던전으로 변했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죽는다. 클리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말이다.
곽태운이 여전히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태극방패를 통해서 경고할 거야.”
우리의 힘보다, 태극방패의 힘이 훨씬 강하다.
“문제는 유플렉스 던전이 언제 어떻게 오픈되는지 모른다는 거지.”
저곳이 던전화될 테니 영업을 중단하고 그냥 문 닫고 있으세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한다고 해서 들을 리도 없고.
과거와 같다면 9월 말에 몇몇 전조증상이 있고, 10월 3일에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진다. 그러니까 9월 말~10월 초 어느 시각에 던전이 갑자 생겨난다는 의미다.
“던전으로 변할 낌새를 알아차리는 즉시 송기열에게 연락할 거야.”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미 ‘제1차 플레이어 모임’에서 느꼈다. 내가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 정도면 아마 외국의 다른 서버 플레이어들보다도 뒤처지고 있을 거다.
‘물론, 피해 자체는 적어졌지만.’
지금의 피해는 적어졌지만, 덕분에 플레이어들과 사람들이 성장할 기회를 내가 빼앗고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플레이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그 교묘한 선과 밸런스. 그 것을 잘 찾아야 할 것 같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여행갈 거야. 시간 안 되는 사람?”
“슈밤? 갑자기 여행? 무슨 여행인데? 또 방화마스타가 필요한 부분인가?”
다들 눈치챘다. 내가 말하는 여행이 그냥 여행이 아님을.
“인벤토리에 식량 넉넉히 챙기고. 다들 오늘 돌아가면 독 저항 아이템 구할 수 있는 한 많이 구해놔.”
우리는 내일. 전라남도 신안으로 향할 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하고 있는 ‘매화도’라는 한 섬으로 갈 거다.
다들 내 말을 잘 이해했다.
“가능한 한 방어구에 투자 많이 해놓고.”
강상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또 왜? 우리 또 위험한 곳 가는 거야?”
사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그곳에 온몸이 까맣게 물들고 썩어버린 시체가 네 구나 발견 됐어.”
“슈밤. 여행이라매?”
아직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내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태극방패‘와의 협력 덕분이다.
“사망 원인은 불명.”
……이라고 알려지겠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레벨 30 초반의 몬스터. 진주오공(眞珠蜈蚣)의 짓일 거다. 우리가 반드시 잡아야 하는 몬스터이기도 하고.
“혁진 대장아. 몬스터 때문인 거야? 우리가 그놈을 잡아야 하는 거고?”
“…….”
고개를 끄덕였다. 유플렉스 던전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다. 그런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에 이름이 떴다.
[누나.]누나로부터 온 연락. 그런데 연락의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그게 진짜야?”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